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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산(長安山, 1,237m) /전북 장수군

ilman 2007. 2. 11. 10:47

 

장안산 산행기/전북 장수군
일만성철용  2003-06-05 06:01:14, 조회 : 417, 추천 : 0

장안산(長安山) 산행기
         일시: 2003년 6월 2일(화) 코스: 무령고개→장안산(상봉)→중봉→하봉→어치재→덕천         

  전라도에는 무진장이란 말이 있다. 무한량으로 많다는 무진장(無盡藏)이란 말이 아니라 무,진,장(茂鎭長)으로 무주, 진안, 장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무지무무지하게 깊은 두메 산골의 오지라서 생긴 말인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그중 장수군 장수읍의 장안산(長安山)으로 향하고 있다.
  장안산은 장수읍 동쪽으로 30리에 있는 산이다.

먼 산을 가는 기쁨 중에 하나가 생전 처음 와보는 고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장수읍(長水邑)에서 느끼는 나의 첫인상은 장수(長水)는 '충렬의 고장' 이로구나 하는 것이다.
장수에는 장수 3절(長水三節)이 있다. 이 고장 태생의 '논개(論介')와 '정경손'과 '무명의 마부', 세사람이다.
이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장수군에서는 옛부터 '의암사(義岩詞)', '정충복비(鄭忠僕碑)', '타루비(墮淚碑)'를 세워 높은 기개를 찬양하고 있다.

이 세 분들은 모두 미천한 신분의 서민들로서 의(義)가 무엇인가를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밝혀준 역사에 길이 빛나는 '서민의 영웅'들이다. 
  의암사(義岩祠)는 논개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놈들이 승전 축하 잔치를 남강 바위(지금의 의암)에서 벌이고 있을 때였다.
남편 따라 진주에 갔던 주논개(朱論介)는 전사한 남편 최경희 장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기생으로 분장하고, 진주성 공격의 주장이었던 왜장 게야무라를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그때 논개의 나이가 겨우 19세 때였다.
 정충복비(鄭忠僕碑)는 향교 지킴이 정경손을 기리는 비로 장수 향교 앞에 있는 비다.

정신적 지주 향교를 불태우던 정유재란 때
'나를 태워 죽이고 향교를 태우거라'
왜적이
그 충절에 강동해
최고(最古)의 향교로 남았네.
                               -최고의 향교(보물 제272호)

이조 숙종 때였다. 처천면으로 민정시찰을 나선 현감을 통인이 모시고 장척을 지날 때였다.

푸드득 꿩에 놀란 말에 장수 현감 소(沼)에 빠져 죽었을 때
혈서로 꿩과 말과 타루(墮淚) 글자 남기고
마부도
주인 따라서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네
                                           -말몰이꾼

이 장수3절 이외에도 계남(화음리)에 '수열비(樹烈碑)'가 하나 더 있다.
  임진왜란 때였다. 양사순의 부인 오(吳)씨가 베를 짜고 있는데, 왜병이 집에 침입하여 무엄하게도 오씨의 젖을 만졌다.오씨는 겁탈하려는 왜놈을 크게 꾸짖고 더럽힌 유방을 칼로 짤라 왜병을 향해 던지고는 자결함으로써 우리 나라 여인의 절개를 드높였다. 

*. 육산(陸山) 장안산(長安山, 1,237m)
 장수읍에서 동쪽으로 30리 길 산의 중턱 고개 못미처 주차장이 있고 거기서 한 5분 오르면 장안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우리들의 산행은 무령(舞嶺)고개에서 시작되었다. 무령고개서부터 장안산으로 향하는 산의 기세가 마치 용이 하늘로 춤추며 오르는 기상이라서 '무령고개'라 했다는 말이 전해온다.
무령고개는 해발 965m나 되는 높은 재인지라 장안산 정상 1,237m까지는 고개서 272m만 오르면 되는 산행이라서 여유 만만 한데다가 육산 즉 흙산이라서 어느 산보다 숲이 무성하고 오솔길에는 솔잎이 쌓여서 마치 카펫을 밟고 가는 듯 내디디는 발 걸음이 푹신하였다. 산죽 사이를 걸어 몇 분 안 올라왔는가 싶은데 시야가 탁 트이는 안부에 도착하였다.
바위 하나 보이지 않던 육산이 이제는 돌길도 시작이 되고 가을이 오면 키를 넘는다는 억새군락지가 시작되고 있다.
 민둥산이나 125만평이 억새밭이라는 사자평고원까지는 못가도 장안산의 억새와 단풍은 이 산의 자랑이다.
 사람들은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
이 둘을 가장 손쉽게 구별하는 법으로는 물가나 축축한 곳에서 자라는 옅은 잿빛 꽃이 피는 것이 갈대이고, 둔덕이나 산에서 자라는 자주빛 꽃이 피는 것이 억새이다.
억새군락지의 실날 같은 오솔 산길을 밟고 오가는 등산객들 멀리서 보면 선경(仙境)을 찾아오가는 신선(神仙)들 같다.
  등산하면서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산을 사랑하는 산꾼과 함께 할 때다.
산을 오기 위해 태어난 분 같은 이들을 만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분들에게서 산소 같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다.
걷기가 건강에 제일이라는 생각을 가진 50대 후반의 직장인이 있었다.
토요일이 휴무라 금요일에는 빠짐없이 전주 토요일 일요일에 남쪽을 향하여 걷다만 곳까지 간다.
거기서 자고, 토요일부터 다시 남쪽을 향하여 걷다가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일을 되풀이 하였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땅끝마을까지 갔다가 광주쯤엔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삶인가.
내가 아는 바로는 뒤로 걸어서 도봉산에서 한라산까지 갔다는 사람도 있었다.
해안선 따라 인천에서 시계바늘 반대 방향으로 화진포까지 걸어서 전국을 3년만에 돌아서 집에 와보니 출발할 때 임신 중이던 아이가 네 살이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신문 기자가 애로 사항을 물으니 두 사람 다 한결 같은 대답이, '미친놈 소리 들을 때'라고 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 미친 사람이지. 그러나 이 기인들은 아름다울 美(미), 친할 親(친), 놈 者(자) 아름다움에 미친자(美親者)라 말해 주고 싶다.
'야호~ '소리가 들리고, 떠드는 소리가 가까워 지더니 그게 바로 상봉이라는 장안산 (長安山) 정상이었다.
 금봉이라고도 하는 넓찍한 산마루에는 헬기장을 조성하느라고 나무를 베어버렸는지,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좋았다.
100여km 가량의 백두 대간(白頭大簡)이 보인다. 희미하게나마 운무(雲霧) 사이로 지리산 천왕봉에서 반야봉과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다가 바로 저건너 백운산에 이르렀다.
북쪽에 깃대봉(1015m)에서 남덕유산 사이에 육십령(六十嶺)이 있다. 옛날에는 이 고개는 도둑의 출몰하는 곳이라 사람들이 이 길을 넘으려면 60명 이상이 모여야 안전하다 하여 60령 고개라는데, 지금은 60령 휴게소가 있다는 곳이다.
 장안산은 호남정맥의 최고봉이요, 종산이라고도 불리워 지는 호남의 지붕에 해당하는 산이다.
여기에서 계류가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錦江)의 시작이요, 남쪽으로 흘러 내리면 섬진강(蟾津江)의 원천이 되는 분수령이 되는 곳이다.
상봉이라는 장안산 표지가 점잖게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제 나의 산행의 기록에다 장안산을 보태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정상주를 한 잔 기울인다. '술 지고 장안산 상봉에 오르니 아니 먹고 어이 하리.' 하면서-.
대초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드르며
벼 빈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채 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하리.
                            -황희
  장수읍은 세종 무렵 명상(名相) 방촌 황희(黃喜)의 출생지라 생각하니 장수군이, 장안산이, 더 정겹게 느껴 온다.
방촌 황희 같은 정치가는 오늘에는 왜 없을까?
 우리가 뽑아준 전직 대통령들이 뇌물 먹고 형무소를 가는 이 나라, 전직 대통령 아들 모두가 잡혀가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의 생각에는, 24년 간이나 정승을 역임한 청백리 방촌 황희같은 분이 신기하기 만하다.
  지금부터는 하산길이다. 정상인 상봉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면 중봉(1230m)이 있고, 다시 20분 거리에 하봉(1205m)이 있다는데 표시가 없어 아깝게도 지나치고 말았다.
장안산은 다시 육산의 푹신한 오솔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원시림 속에 쭉쭉 근심없이 하늘로 뻗은 나무들 사잇길로 함께 간 한뫼 산악회 여인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모여서 식사를 하는 분들이 있다. 법연동과 덕천의 갈림길 어치재였다.
권하지도 않은 술을 한 잔 청하여 얻어먹고 덕천길로 들어서니 요번에는 환상적인 낙엽길이다.
밭이 보이고 고분 하나 보이니 여기가 덕천마을,
외양간에는 점잖은 소가 있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색 창연한 화장실이 있고,
만수산 입구라는 간판도 있다.
오늘 우리들의 등산은 능선길로 일관한 것이지만, 장안산에는 덕산 계곡을 비롯하여 계곡 26개 소, 윗용소, 아랫용소 등의 7개의 연못이 있어 장수(長水)의 수(水)의 이유를 알게 하는데 이를 못본 것이 못내 아쉽지만, 먼 길을 달려왔듯이 달려가야할 우리들이니 어쩌랴.
덕천마을 너머 저 멀리 만수산 상봉이 하산하는 우리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 산사랑방 - 그냥 산으로만 올라 지나치면 아무런 의미없는 산이 될 것 같은데.. 무진장(무주,진안,장수) 깊은 오지? 장수3절(논개,정경손,이름없는 마부) 하나 더 수열비와 임진왜란에서 현대에까지 .. 억새와 갈대의 지적, 선생님이 부여하신 의미로 장안산이 우리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
▣ 홍미화 - 일만선생님 글 , 사진 잘 보왔습니다. 건강하세요.또 뵙겠습니다.
▣ 청파:윤도균 - 선생님 저 지리산 종주 갔다가 졸음과의 전쟁을 하면서 선생님께서 눈덮힌 설악산 산행 그 모진강풍에서 잠이오는것을 이겨내려 고생하시던 그런체험 했습니다 위대한 산 앞에 지나친 자만은 금물이란 산경험을 알게 해준 산행이었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 일만성철용 - 이렇게 격려 주시어 고맙습니다. 여기 저기서 격려를 주시는 산사랑님, 한뫼의 홍미화님, 부평의 윤도균님. 지난 겨울 천당과 지옥을 오간 설악산 산행은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