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만 산행기 ☎

팔공산 갓바위 산행기-- 사진 무

ilman 2007. 2. 11. 10:43

 

 
 
팔공산(八公山) 갓바위 산행기
 일찍이 신라에는 오악(五嶽)이 있었다.
동에 토함산
(吐含山), 서에 계룡산(鷄龍山), 남에 지리산(智異山), 북에 태백산(太白山), 중앙에 부악(八公山)으로
신라의 진산(鎭山)이 이렇듯 팔공산은 예로부터 유명한 산이다.
 멀리서 보는 산과 오르면서 보는 산이 다르다고 말하는 산은 팔공산을 두고 하는 말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비로봉을 머리로 하고 서봉과 동봉을 양 날개로 하여 봉황(鳳凰)이 하늘로 막 날라 오르는 모습이 곧 팔공산이다.
  북한산에 정해진 코스가 따로 없이 다양하듯이, 팔공산 등반길 코스도 그러하지만 북한산의 백운대(白雲臺)처럼 거의 모두 다가 동봉(東峯, 1,155m)으로 이어져 비로봉(毘盧峯)으로 향하고 있다. 
 지금은 엄동이라 6인 승이라는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도 없고, 아내가 불자인데다가 여자에게 찾아오는 불청객 골다공증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라, 비교적 쉬운 갓바위 길을 택하기로 하였다. '갓바위를 보지 않고 대구를 다녀왔다 말하지 말라.' 라고 할 정도로 갓바위는 대구시민에게 사랑 받는 부처요, 그 명승지이다.
 대구 시민들이 너무 자주 찾는 곳이라 입장료도 없다.
정상으로 향한 돌층계를 한 시간 이상 올라야만 한다는데 먼저 다녀온 친절한 아저씨가 있어 관암사 좌측으로 질러가는 산길을 고맙게도 가르쳐 준다.
 옛날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갓바위에 오르는 좌우 곳곳 쉼터마다 판자집 손두부집이 있어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나는데, 다 철거되고 지금은 입구 아래 갓바위지구에 몰려있어 거기서 두부로 점심을 때우고 갓바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다음은 갓바위를 소개하는 안내판의 중요한 부분에다가 내 나름대로 약간의 설명을 더한 것이다.

 험준한 팔공산 관봉에 병풍처럼 둘러 처진 암벽을 배경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원광법사의 수제자인 의현 대사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신라 선덕여왕 7년에 조성하였다고 전해온다.
전설에 의하면 의현대사가 이 돌부처를 만드는 동안 밤마다 큰 학이 날아와 그를 지켜 주었다 한다.

  이 불상은 왼손에 약호(藥壺)를 든 것으로 미루어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으로 볼 수도 있다.
길게 드리워진 귀. 굳게 담은 입술. 지긋이 감은 눈 등 세련된 이목구비와 잘 조화를 이룬 격조 높은 근엄하고 자비로운 얼굴에다, 거대한 체구에 밀착되어 흐르는 유려한 옷주름선이 상현좌를 이루어 9세기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당시의 불상군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평가 된다.

 보물 431호인 갓바위의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冠峯石造如來坐像)'이다. 
  9세기 경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작으로 머리 위에 15cm의 평평한 자연석으로 된 갓을 쓰고 팔공산 능선 가장 동쪽 봉우리인 해발 850m의 관봉
(冠峰)의 정상의 암벽에다가 조각한 높이 4m의 거대한 좌상 불상이다.
 자고로 영험하기로 소문이 나 있어 이 불상에 불공을 드리고 소원을 지성으로 빌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진다고 한다.  특히 아들을 낳기 위한 아녀자들의 참배와 병을 낫게 하려는 참배객들이 많아 입시철이나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신도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따라서 시주
(施主)도 어느 사찰보다 많아서 종단의 교육, 포교와 사회복지, 지역의 불교 발전을 위해 쓰인다고 이곳 선봉사(갓바위) 주지 합장으로 협조를 부탁하고 있다.
 아내에게 무엇을 빌었느냐 물었더니 말한다.
 "부정 타요. 말 안할래요. 비밀이 없는 사람은 재산도 없다 하지 않아요?"
만약 누가 나에게 무얼 빌었느냐 묻는다면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ilman을 영웅이 되게 하여 주소서, '서민의 영웅'이 되게 도와 주소서. 복권에 당첨되는 것만이  서민의 영웅이 되는 길이 아니오니까? 저는 그 돈으로 가난한이를 도와주는 '성 길동'이 되고 싶나이다.

 
                                                        -2023봄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