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생각하고 술을 먹는 사람이 아니라서, 엊저녁 구(丘) 선배님과 마음놓고 마신 술이 작취 미상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라, 일산신도시 '고양산우회'를 따라 나선 것이 후회가 앞선다. '이런 몸으로 어떻게 등산을 한다?' 자꾸만 후회가 난다. 감악산(紺岳山)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과 충북 제천시 봉양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같은 이름의 감악산이 파주시 적성면에도, 거창에도 있다. 원래 이 감악산 오르는 정코스는 창촌에서 백련사를 거쳐 오르는 것이지만, 대형관광버스 16대가 함께 가다보니 신림터널 근처의 '감악산 만남의 광장'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산은 절이 있어서, 절은 으레 산에 있어서 더욱 아름다운 것인데, 그래서 하산 길에 절의 한 모금의 생수는 등산의 멋을 더 하여 주는 것이련만 우리들의 가는 코스는 백련사(白蓮寺)와는 다른 쪽 황둔에서 좁은 계곡 따라 오르는 길이다.
우리가 둘러보지 못한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문무왕 2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절이다. 절을 지을 당시 연못에서 백련(白蓮)이 피어났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황둔 주차장에서 보니 저 산 위로 봉우리 셋이 몰려 있는 것이 어찌 보면 낙타 등과 같은 것이 파란 초목에 싸여 정원사가 전지한 것 같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어서 오라는 듯이 우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3봉 중 우측의 두 봉우리가 일출봉(日出封)과 월출봉(月出峰)인데 세 봉에 각각의 길이 있어 정상까지 오를 수가 있다 한다. 산길에 들어서니 오솔길이 정상으로 향해 있다. 울창한 아름드리 낙엽송이 곧게 하늘을 막아 아까 지내온 '신림터널'처럼 이번에는 신림(神林)이 숲의 터널을 이루어 삼림욕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여기 나무는 캐나다와 같은 원시림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요, 우리 나라에서는 절의 입구에 가서나 만나 볼 수 있는 숲의 터널이었다. 감악산은 원주시 신림면(神林面)에 있는 산으로, 글자 뜻 그대로 신성한 숲이라서인가 자고로 신(神)과 관계된 것이 많다. 남쪽 봉양 쪽에 있다는 대원군때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火田)과 옹기를 구워서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키워 나갔다는 '베론 성지'가 그러하고, 이 근처에 있다는 '가나안농군학교' [Canaan Farmhand School] 또한 그러하였다. 계곡에서 만난 물은 말 그대로 청정수로 산천어(山川魚)가 수없이 떠 있다. 오늘은 평일이라 함께 온 사람들이 거의가 다 노인이라선가. 그 계곡 찾아 삼삼오오 몰려가는데 등산하다 말고 입맛을 다시며 넝쿨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추석이 지난 가을이라 파랗게 대추 같은 크기의 익은 다래를 따먹으며 그 맛을 키위와 견주어 감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키위란 참다래가 아니던가. 등산로 초입에다 도중 도중 통나무를 듬성듬성 엮어 평상을 만들어 두어 쉬어가라고 등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오늘은 나와 카메라와 라디오와 함께 온 산행이라 '아까 보던 감악산 삼봉이 가까이 보이는데까지만 가서, 사진 몇 장 찍고 술이 깰 때까지 느러지게 한숨 자고 오는 거야-.' 하며 쉬기를 반복하면서도 한편 이런 생각은 했다. '썪어도 준치라, 그래도 20일 전 태풍을 뚫고 지리산 단독 종주를 한 내가 아닌가.' 숲의 터널을 빠져 나가는 곳에 산줄기 일부가 말의 안장 모양으로 낮아진 안부(鞍部)가 있다. 게서 조금 더 가니 드디어 하늘이 열리며, 소나무 사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방금 올라온 황둔리의 전경이 시원하게 그림같이 열린다. 여기가 감악산 1/3쯤 능선에 있는 마당 바위이다. 마당 바위 지나서는 등산객들은 정상을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도토리 줍기에 한창이다. 그들의 비닐과 등산복 주머니에는 주워 담은 도토리가 가득하였다. 금년은 도토리 풍년인데다가, 태풍 루사호가 수십 미터의 큰 나무들을 뿌리 체 뽑아 눕혀 놓은 것을 수없이 넘어왔으니, 나무를 오직 흔들어 댔겠나! 그 태풍이 지나간 뒤라 도토리가 지천으로 떨어져 있다. 정상 근쳐까지는 동네 사람들의 손이 못미쳤음이라. "아줌마, 뉴질랜드에 갔더니요, 거기는 도토리는 물론 밤도 줍지 않더라구요." "우리 나라도 그렇게 되겠지요." 올라가다 생각하니 문극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랬었구나, 뉴질랜드 사람들은 도토리와 밤을 안 주운 것이었구나, 산에서 나는 열매를 산에 사는 동물들의 것이라고 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그래서 뉴질랜드의 갈매기, 키위, 까마귀, 흑조와 같은 새들이 사람들을 그렇게 따랐구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서 보니 감악산은 단애와 암벽으로 통나무 길도 지나야하는 것이 '악(岳)'자가 붙으면 명산이라는 이름 값을 톡톡히 그 바위 길이-, 로푸 아니면 올라할 수 없는 길이- 하고 있다. 정상에 가까이서, 일출봉에서는 인부들이 우리네 등산객을 위해 밧줄을 매고 있었다. 나 같이 늙스그레한 사람들이었다. "수고하십니다. 막걸리 한 잔 대접할 수 없으니 어쩌지요?" 내가 누군가 일만이 아닌가? 하루에 술 일만 원 어치 먹으며 살고 있는 일만이 아닌가. 오늘은 저 고마운 입을 통하여 막걸리를 마셔보자 하며 술값 하라고 일 만 원을 선뜻 꺼내 주다보니, 갑자기 옛날에 끄적거린 나의 글이 생각난다.
-아저씨 담배 피우세요? 새벽을 쓸고 있는 아저씨에게 5,000원을 주었다. -막걸리 좋아하세요? 개화산 층계를 만드는 아저씨에게 5,000원을 주었다. -중풍을 든 후 한 푼도 못 벌었다고요? 약사사 물 뜨러 가는 할아버지에게 5,000원을 주었다. 우체부 아저씨에게 점심 값으로 5,000원을 주었다. -아즘마, 지금 막걸리 한 잔 드시고 나가신 할머니가 오시면, 한 잔씩 그냥 드리세요. 단골 '순천순대국집' 아줌마에게 5,000원을 맡겼다. -얼어죽지 않으려고 밤새 걸어다녔다구요? 유난히 추웠던 제야(除夜)를 이겨낸 집 없는 천사에게 5,000원을 주었다. 어느 미친놈이 5,000원을 주더라고- 5,000원이 작다고 욕을 먹을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나를 주는 미친(美親) 내가 좋더라. 너 일만(一萬)이 일 만원을 왜 안 주었냐고? 5,000원은 막걸리 먹을랴고 나 위해 남겼다, 왜. -5,000원
일출봉과 월출봉 서너 평 남짓한 바위 945m의 정상에 오르니, 가을 하늘은 더 푸르고 멀리 조망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엊저녁 목숨을 걸고 마신 술까지 말끔히 흘린 땀과 함께 씻어준다. 조망하는 곳에 주론산과 구학산과 백운산들과 동남으론 석기암산과 용두산이 겹겹이 보인다는데 어디가 남북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를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는 나침반이 아쉽다. 술에 깨어 서둘러 오느라고 두고 온 나침반이-. 내 고마운 제자 신영철 사장[명금사 사장]이 길을 잃지 말라고, 멋있는 등산을 하라고, 이렇게 와서 구체적으로 행복을 하나하나 찾아보라고, 자기가 쓰려고 고이 모셔온 것을 보내온 그 고마운 나침반이-. 메밀꽃이 핀 무렵이었다. 코스모스가 선명한 연분홍 빛으로 하늘하늘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천일홍이 무르 피어있는 한가을었다.귀가하면서 '감악산 만남의 광장'에 세워진 나옹화상의 "토굴시"를 읊으면서 ilman의 나라 일산 신도시로 향하고 있다.
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