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캐나다 동부여행(2)/ 수도 오타와(Ottawa)

ilman 2023. 3. 12. 17:32

*.수도 오타와(Ottawa) 
 어제 우리는 천섬 유람을 마치고 온타리오 주 남동쪽의 오타와 카티노 강과 리도 강의 합류지점에 있는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에서 여정을 풀었다.
오타와(Ottawa)는 4,663km² 면적에 인구 88만 3천만여 명(2111)이 사는 캐나다 수도다.
원래 캐나다의 수도는  온타리오 주의 킹스턴(Kingston)이었던 것을 당시 적대 관계에 있었던 미국의 국경과 너무 가깝다 하여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결정에 따라  벽지(僻地)였던 이곳을 1855년에 캐나다 자치령의 수도로 삼은 것이다.

오타와의 원래 이름은 ‘바이타운(Buyoet)’이었다.  1812년 미영전쟁 당시 이 지역은 나포레온과의 전쟁 무렵이어서 조선(造船)에 쓸 벌목을 리도 강을 이용해서 킹스턴까지 날랐는데, 이를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1826년 영국 공병대의 존 바이 중령이 리도(Lido) 운하(運河)를 건설하였다.

이곳이 그 지휘본부가 자리 잡았던 곳이라 해서 중령의 이름을 기념해서 '바이 타운'이라고 하던 것을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따서 '오타와(Ottawa)'로 개칭한 것이다.
미국의 제일 도시가 워싱턴이 아니고 뉴욕인 것처럼, 캐나다의 제일도시는 퀘벡(Quebec)이고 수도는 오타와(Ottawa)였다.
 오타와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매년 5월 하순이면 오타와를 뒤덮는 튤립과 수선화로 아름답게 장식되는 튤립축제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캐나다에서 망명 생활을 한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왕비가 독립 후 감사 표시로 만여 개의 튤립 구근(球根)을 보낸 데서 기인한 이 행사다.

봄이면 꽃의 도시 고양시 일산(一山)처럼 전 세계의 원예가들이 만든 튜립과 원예 작품이 오타와 전역을 장식하는 모양이다.  
오타와는 연방도시이기 때문에 행정도시며, 오타와대학, 세인트폴대학, 칼텐대학이 있는 교육도시이기도 하지만 캐나다 제일 도시 토론토, 퀘벡의 명성에 눌려서 우리네 같은 관광객에게는 토론토나 몬트리올과 퀘벡을 가는 길에 잠간 들리는 곳에 불과 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도 오타와에서는 바이중령이 1832년에 완성했다는 리도 운하와 주청사를 둘러보는 것이 고작이다. 생각 같아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타와 강(Ottawa River)을 사이한 퀘벡 주 헐(Hull) 다리 넘어 개티노파크(Gatineau Park)의 웅장한 단풍나무 숲이 한창이라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것도 생략하는 모양이다. 아깝고 아까워라, 투어여행의 슬픔이여.

오타와 고색창연한 주청사를 둘러보고 있는데 그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사를 하고 있다. 오는 길 곳곳이 막히어 돌아왔더니 이 행사 때문이로구나 하였더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암 정복 기원하는 달리기 대회'(Terry Fox Run) 마라톤을 하는 것이었다.

*. 캐나다의 영웅 절름발이 테리 폭스(Terry Fox)

 테리(Terry)는 달리고 있었다,
19살 대학 1학년 농구 선수였던 테리(Terry)는 골수암으로 무릎 위 15cm를 절단하고 철과 유리섬유로 만들어진 의족을 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달리고 있었다. 1980년 4월이었다.
그의 커다란 꿈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때 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암 환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암 연구 기관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기금 100만 불을 모금하자는 것이었다.

테리(Terry)는 이를 “희망의 마라톤(Marathon of Hope)”이라 스스로 이름 하였다.
의족을 하고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나라 캐나다 대륙의 동쪽 끝인 뉴펀들런드주 세인트 존스를 출발하여  서쪽 끝까지의 횡단한다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5.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가는  테리(Terry)였다.  
한 19 살 대학 1학년 농구선수였던 대학생 테리가 잘린 발에 의족(義足)을 하고 하루에 43km를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의족 아래 짧은 러닝 팬츠로 해서 드러난 피 흘리는 잘린 다리에 온 캐나다 국민의 시선이 몰렸다.

달리는 테리의 손에 100달러를 쥐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야채장수는 과일 판돈 912달러를 내놓기도 했다.

이렇게 전 국민의 격려와 성원(聲援)이 쏟아졌으나 144일째 되는 9월 1일 6개 주를 통과하여 5,565km를 달리던 테리는 2/3가 남은 지점인  온타리오 주의 썬더베이에서 그의 굳센 의지를 접어야 했다. 암이 폐로 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강제로 달리기를 중단해야 했지만 그의 정신은 외치고 있었다.
“I’ll do everything I can. I’m gonna do my very best. I’ll fight. I promise I won’t give up.”
23세 생일을 한달 앞둔 1981년 6월 28일 그가 사망하자 모든 캐나다인들이 조기(弔旗)를 내어 걸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희망이었던 100만달러를 뛰어 넘은 2천4백17만 달러가 모이고,  캐나다는 물론 한국에서까지 '암 정복 기원 달리기 대회(Terry Fox Run)'를 오늘날 오타와에서처럼 거행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주청사


 위 그림은 그 주청사 앞에 있는 불굴의 인간의지의 화신으로 온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캐나다의 영웅 캐리의 동상이다.그는 22세의 짧은 인생을 살고 갔지만, 암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암 투병의 상징이 되어 그의 거룩한 희생 정신은 광장에 불타고 있는 '꺼지지 않는 불'처럼 전 세계로 퍼져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캐나다 전역에서 5천여 개의 학교가 테리 폭스 달리기를 실시했다. 오는 3월에는 그를 기념하는 주화(鑄貨)를 발행한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