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캐나다 동부 여행(3)/퀘벡(Quebec) 최종회

ilman 2023. 3. 11. 21:56

*.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퀘벡(Quebec) (3)

  캐나다 속의 프랑스, 북미(北美)의 파리요, 북미 유일의 성곽도시로 불리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퀘벡(Quebec)은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센트 로렌스 강을 따라 북동쪽으로 240km 거리에 세인트 찰스 강과 합류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 퀘벡에는 약 800백만명 인구 중 95% 국민이 프랑스어를 사용할 만큼 유럽풍이어서 '캐나다 속의 프랑스'로 불린다.

그래서 퀘벡 주민들은 캐나다인이나 프랑스인이라는 것보다 퀘벡 인이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프랑스의 전통에 긍지를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로 표지판에도 불어와 영어를 함께 쓰고 있지만 불어 중심이었다.

퀘벡(Quebec)은 세인트로렌스 강폭이 급격하게 좁아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인디언(앨곤퀸) 말로 '강이 좁아지는 곳'(place where the river narrow)라는 말이  퀘벡(Quebec)이었다.  

퀘벡 시(Quebec City)는 크게 절벽 위의 어퍼타운(Upper Town)과 아래의 로어 타운(Lower Town)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퍼 타운은 다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구시가지는 마치 중세 유럽의 도시를 찾은 것처럼 고풍스럽다. 아기자기한 매력으로 가득한 퀘벡시를 제대로 즐기려면 좁은 골목 사이를 샅샅이 훑고 걸어 다니는 것이 좋다
 로어 타운(Lower Town)의 르와얄 광장 (PLACE ROYALE)은 개척자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17~18 세기의 중세 유럽의 시가지 모습이 짙게 남아있는 자그마한 광장으로 그 주변에 좁은 골목이 미로와 같이 이어져 있다.
퀘벡시의 명소는 성벽으로 에워싸인 어퍼타운(Upper Town)의 구시가에 집중되어 있어서 걸어 다니면서 구경하거나 중세풍의 마차를 이용하여 옛 퀘벡 인들의 운치를 맛볼 수도 있다.  


그러면 17세기 유럽 중세풍 퀘벡 특유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만나게 된다.
  건물들은 서구 여행 중 보던 옛 건물 같이 테라스를 갖추고 있다. 주택마다 조그만 베란다가 있고, 만약에 불나면 탈출하기 쉽게 만들었다는 계단이 건물 외부에 설치되어 있다. 빨래 줄을 거는 쇠막대를 집 앞 정면에 높이 설치해 놓은 것도 그러하다.

고풍스런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 중에는 화가의 거리가 제일 볼 만하다. 관광객의 초상화 그려주는 가난한 화가가 각 가지 미술작품들이나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길모퉁이에서는 구레나룻이 멋진 거리의 음악가가 낯선 악기로 옛날을 연주하고 있다.
  우리가 갔을 때가 석양 무렵이어서인가. 1인극으로 금색 은색으로 온몸을 도장한 마네킹 맨 등 구경거리가 많다는데 거의 없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이 고가 도로까지 멋진 벽화로 장식한 것도 그랬지만 건물 벽 전체가 벽화로 되어 있어 실제 창에 사람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유네스코에서는 이곳을 '주옥(珠玉)의 도시'로 극찬하면서 세계 보존지구(World Heritage Site)로 지정하였다 하니 살아있는 박물관이 바로 퀘벡 구시가지인가 보다.
이런  항구도시 퀘벡을 보러 세계 각지에서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 매년 2,000여만 명 이상애 40억 달러를 소비하고 간다.

*. 캐나다 유일의 별 다섯의 샤토 프롱트낙 (CHATEAU FROMTENAC) 호텔

버스에서 내려서니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센트 로렌스 강이고, 샤토 프롱트낙 (CHATEAU FROMTENAC) 호텔이다.

시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급경사의 청동 사다리꼴 지붕에 붉은 벽돌의 커다란 성곽 같은 빌딩이다.

퀘벡의 상징이라고 일컬어지는 캐나다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다는 별 다섯(5-Diamond Hotel)의 이 호텔 이름은  프랑스령 시대에 유명했던 총독의 샤토 프롱트낙 (CHATEAU FROMTENAC)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구시가의 중심 다룸 광장( PLACE D'ARMES)의 남쪽에 있는 이 건물은 옛날 캐나다 총독 관저 자리에다 19세기 말 르네상스 시기에 프랑스의 성곽을 모방하여 지었다는 건물이다.

하루 저녁 숙박비가 하루에 수백만 원을 하는 모양이다.
  그 다름 광장(Place d'Armes) 앞에 동상이 하나가 서 있는데 누구일까?
사무엘 드 샹프랑(Champlain)의 동상이었다. 1608년 경 퀘벡 시 건설의 은인으로  기억되는 사람이다.

*,  르와얄 광장(Place Royal)  주변
르와얄 광장(Place Royal)은 '캐나디 언 프렌치 문화 요람의 장소'라고 불리는 곳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는 구역이다.
 퀘벡 관광은 이 로어 타운에서 시작된다. 루이14세의 흉상이 있는 광장 일대는 '절벽 아래 도시'로 캐나다 조상들의 최초 거주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센트 로렌스 강변 따라  펼쳐진 프티샹플랭(Quartie Petit Champaln) 거리는 '북미에서 가장 오래 된 번화가'로 꼽힌다.

그 좁은 골목에 카페, 선물 가게, 레스토랑으로 빽빽한데, 파리에서 보던 것처럼 레스토랑은 문 밖에다가 전을 벌여 놓고 있어 우리도 그 중 하나가 되고 싶어진다. 이 좁은 거리를 걸어서 '목 부러지는 층계'를 통하여 어퍼 타운(Upper Town)으로 올라 갈 수도 있지만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45도 급경사를 올라가면서 눈 아래의 로어 타운(Lower Town)의 시가지를 감상할 수도 있다. 이를 이곳 사람들은 퓌니쿨라(Funicular)라 하였다.

*. 성곽의 도시의 퀘벡 성 (LA CITADELLE)

세인트로렌스 강이 내려다보이는 성벽 안의 별 모양의 요새 시타델(Citadelle)은  퀘벡시를 빙 둘러 완벽한 하나의 성곽 도시를 만들고 있다.
지금도 캐나다 군이 주둔하고 있어 운이 좋으면 염소를 마스코트로 한 위병 교대식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성의 곳곳에 있는 대포의 포신이 센트 로렌스 강을 향하고 있다. 그 강을 향하여  멋진 산책로 (PRO-ME NADE DES GOUVERNEURS)를 거닐다 보니 옛날의 포성과 화약 냄새가 풍겨 오는 듯하다. 평화롭기만 한 이곳이 옛날에는 오랜 동안 영국군, 미국과의 격전지였던 모양이다.
갑자기 워싱턴 한국전 참전 기념비 앞에 있던 표어가 다시 생각난다.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외세에 의한 해방이었기 때문에 분단의 비극을 살고 있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  귀국 길에서

  나는 캐나다를 두 번째로 다녀간다.
처음에는 로키 산맥 투어로 서부를, 요번에는 미국 동부를 거쳐서 캐나다 동부를 둘러보고 간다.
캐나다는 국토 면적이 9,970,610 ㎢로  남한보다 100배나 큰 나라로 그 중 7%의 땅에서만 인구 3,000만여 명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나라다. 지하자원은 세계 2위, 국민소득은 2,2000불을 상회하는 부유한 나라다.
자연이 태고처럼 그대로 보존 되어 있어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사는 나라다.
  법이 엄격하여 범죄가 없는 나라. 세금만 제대로 내면 별도로 노후를 위한 저축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노후를 완벽히 보장해 주는 나라였다. 국기의 잎 모양처럼 다민족이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미국처럼 인종 차별 없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였다.
  미국인들도 그랬지만 캐나다 곳곳에는 국경일이 아니어도, 관공서가 아니어도 캐나다 국기가 펄럭인다.

국민들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도달하고 싶어 하는 세상을 먼저 만들고 사는 나라, 천국 같은 나라다. 

  우리들은 퀘벡을 떠나 보스턴에 와서 MIT 공대와, 하버드, 예일대를 둘러보고 귀국한다. 그 중 인상 깊은 곳은 하버드대의 설립자 하버드 동상에서의 기념 촬영이다.
거기서 설립자 하바드 동상의 발을 만지는 사진을 찍으면, 자손이 하바드 출신이 된다는 이야기에 아내도 사진을 찍어달란다.

자기 남편이 ‘하바드’ 사람이라는 것을 아내는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는 일 없이, ''쁘게, ''나드는 사람이 ilman(지은이 아호)이 아닌가.
나의 이 긴 여행의 프롤로그를 첫 번째 쓴 나의 '캐나다 로키산맥 투어'에서 돌아오면서 쓴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로키산을 다녀오는 귀국길에 태평양을 건너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로키산의 단풍을 보러 왔다가 캐나디안 로키의 진면목(眞面目)을 유감없이 보고 간다.
멀고 먼 나라 캐나다 국립공원을 찾아갔지만, 내가 보고 온 것은 한 나라의 공원을 넘어선 세계의 공원이었다.
이 경치들은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 이상의 아름다움에다가 경탄(驚歎)과 외경(畏敬)을 더 하고서도 표현이 모자란다.
중국에서, 이집트에서 본 만리장성(萬里長城)과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서, 나를 놀라게 한 것이 인간이 도저히 이룩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거대한 인간의 힘이었다면, 캐나디안 로키에서 만난 자연은 신의 위대함이 아니면 도저히 만나 볼 수 없는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경탄과 감격의 세계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천국을 다녀오는 길 같다.
 선경(仙境) 같은 아름다운 곳에서 태고처럼 동물과 함께 사는 나라가 캐나다이기 때문이다.
짐승들이 가축처럼 사람을 따르지는 않았으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과 함께 사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 자연을 지키려는 이 나라와 국민의 자연에 대한 사랑은 또한 어떠하던가?
'로키에서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 아무 것도 가져오지도 말라' 하는 말을 법보다 잘 지키며 사는 국민이었다.
곳곳에 서있는 입간판에 쓰인 '잠자는 짐승들을 깨우지 말자'는 것을 실천하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였다. 산 속에, 호수 속에 쓰러져 누운 나무를 그대로 두게 한 것은 문명 이기의 출입으로 인한 자연 훼손을 막고자 하는 이 나라의 자연보호에 관한 강한 의지였다.
특정 구역을 제외하고는 이 나라는 1세기 전부터 수렵을 금하여 왔고, 자연과 어울리지 않거나 그 조화를 깨뜨리는 어떠한 구조물도 짓지 못하게 하였다. 고속도로에서는 길가에 철조망을 쳐서 도로에 뛰어드는 짐승과 사람을 보호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국기가 단풍잎으로 그 잎이 여러 가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다민족(多民族)으로 구성된 나라임과 다 민족의 문화를 서로가 존중하고 도와주는 나라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캐나다의 모든 차들은 낮이나 밤이나 불을 켜고 다닌다. 차의 시동을 켜면 불이 들어오고 시동을 꺼야 불이 꺼지게 되었다. 그것이 법제화 된 나라였다.
너무나 거대한 나라로 북극에 가까워서 낮과 밤의 시간이 우리네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여 30%로 교통사고가 줄었다는 인명 존중 사상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였다.
이만큼 나라는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은 위정자를 믿고 사는 나라다.
그래서 캐나다는 옛날부터 21세기의 국가로 불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닌 어느 분에게 어느 나라가 그중 살고 싶은 나라이던가 하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캐나다를 들던 이유를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거의가 노인(老人)들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부부들이 손을 맞잡고 밝은 표정으로 몇 주일씩 세계를 여행하면서, 어디서나 웃는 얼굴로 나이와 관계없이 먼저 양보(讓步)하며, 조용히 노년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캐나다는 노인의 나라요 노인이 와서 살고 싶은 노인의 천국이기도 하였다.
그 동안 내가 다니던 곳이나 내가 본 것은 주마간산(走馬看山)이요 창해일속(滄海一粟)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캐나다를 통하여 정작 내가 보고 온 것은 실상은 우리나라 우리 국민의 모습을 돌아보고 귀국(歸國) 하는 것이다.'  (끝)
                                                       - 2005. 12. 30 북아메리카 동부 여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