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화 만발한 겨울 산 덕유산(德裕山) 향적봉
나는 2008년 7년 전에 71세 되던 해 강풍경보 속에 목숨을 걸고 단독 덕유산(德裕山)을 종주했다.
그 덕유산에 금년에 처음으로 산행을 하다 보니 그때가 그리워 당시에 쓴 나의 '덕유산 종주기' 그 일부를 여기에 일부 옮긴다.
덕유산 종주는 지리산, 설악산과 함께 남한 능선 3대 종주 코스 중의 하나로 산악인들에게 사랑과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산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면 꿈꾸게 되는 것이 종주 산행(縱走山行)이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백두대간 종주(白頭大幹 縱走)가 된다. ,
그 종주 중에서도 겨울 산의 종주는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라는 덕유산(德裕山‘ 1,614m)을 으뜸으로 친다.
서해 습한 공기를 실은 바람이 호남과 영남을 가르는 덕유산의 장쾌한 능선에 눈보라를 쳐오면, 거기 온갖 나무에 설화(雪花)가 만발한 새로운 세상을 연출해 내기 때문이다.
덕유산은, 한국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북덕유산과 남덕유산을 통틀어 덕(德)이 많고 품이 크고 넉넉한(裕) 너그러운 산이라 하여 덕유산(德裕山)이라 이르는 말이다.
덕(德)이란 사람의 품성을 말할 때 쓰이는 말이다.
밝고 크고 옳고 빛나고 착하고 아름답고 부드럽고 따스하여 바른 길을 행하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말이다.
그것을 산을 두고 말하면서, 거기다가 넉넉할 '裕 '(유) 자까지를 더하여 이 산 이름을 덕유산(德裕山)이라 이름 하였다.
덕유산은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산 이름으로 가진 것 같이, 산으로서도 덕유산은 주능선 17.5km에 1,200m가 넘는 봉우리를 20개 이상이나 거느리고 있는 중후한 산이다.
덕유산은 봄에는 해가 철쭉꽃밭에서 떠서 철쭉꽃밭으로 진다는 철쭉의 산이요, 여름에는 원추리꽃이 만발하는 녹음 속에 구천동 33 경이 몸과 마음의 더위를 식혀주는 산이다.
가을이 오면 단풍으로 손짓하여 우릴 부르다가, 겨울이 오면 눈꽃 세상을 열어주는 한국 산 중의 명산(名山)이다.
무주구천동(茂朱을 지나 백련사(白蓮寺)에서 시작하여 주봉인 향적봉(香積峰, 1,614m)에서부터 1,000m가 넘는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으로 30여 km나 파도치다가 지리산에 이르기 직전에 1,507.4m의 남덕유산의 동봉(東峰)과 서봉(西峰, 일명 장수봉)을 일으켜 세운다.
거기까지 가서 700여 개의 철 계단을 내려가는 영각사(靈覺寺)까지가 장장 26.7km가 덕유산 종주 코스다.
덕유산은 한반도 남부 한복판을 남북 능선으로 흐르면서 옛날에는 신라(新羅)와 백제(百濟)의 국경선을 긋던 산이다.
그 동쪽이 영남지방 산수 갑산 거창군(居昌郡)이요, 서쪽이 호남의 첩첩산중 오지에 해당하는 무주(茂朱)다.
*.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전설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계곡은 덕유산 향적봉에서 시작되어 나제통문(羅濟通門)까지 36km에 이르는 계곡이다.
거기서 흐르는 물이 계곡을 깎고 바위를 갈면서 금강 상류의 지류인 원당천(元唐川)까지 흘러간다.
그 계곡 따라 '한국의 10경'의 하나라는 '구천동 33경'이 28km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은 이름 자체가 자못 시적(詩的)이어서 '그 어원에 대한 전설이 없는가.' 하고 찾고 또 찾다가 드디어 '암행어사 박문수 전설'을 보고 무릎을 쳤다.
-박문수 어사가 덕유산 계곡에서 밤이 깊어서 인가를 찾아 헤매다가 불이 반짝이는 외딴집 한 채를 발견하고 하룻밤을 유하려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주인인 듯한 한 노인이 젊은이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지 않는가.
질겁하여 주인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저는 구(具)재서라는 훈장입니다. 그런데 아랫마을에 사는 천(千) 석두라는 부자(父子) 놈들의 흉계에 빠져서, 내일 오후에는 아내와 며느리를 뺏기게 되었습니다. 그 천가 놈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우리 네 식구가 함께 죽자고 하던 참이었지요.”
박 어사는 구재서를 안심시킨 다음 그 길로 무주현으로 내려가서 네 광대에게 청·황·흑·백 네 가지 색깔의 옷을 입혀 가지고 이 골짜기로 다시 들어와 구재서의 집에 가서 천가 놈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에 사모관대를 한 천석두 부자가 나타나자 누런 털 달린 도끼와 귀신을 그린 깃발을 든 한 괴물이 들이닥치며 초례상을 타악- 치며 저승사자 넷을 불러내더니
“내가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너희를 잡으러 왔으니 저승사자는 저 천석두 두 부자를 잡아가지고 돌아가라.” 하니
저승사자가 천가 부자에게 달려들어 결박 지어 가지고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후 박 어사는 천석두 부자를 귀양 보내고 구재서에게 부인과 며느리를 돌려보내 주었다.
그 뒤부터 사람들은 무주(茂朱)에서 구(具→九)씨와 천(千)씨가 살던 마을(洞)이라 하여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위 이야기는 좀 황당한 얘기 같아서 무주구천동의 또 다른 이야기가 없나 찾아보았더니 백련사(白蓮寺)와 연관된 전설도 전하여 온다.
사찰 측에서는 신라 흥덕왕 5년에 무염(無染) 국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하지만 다음 전설에서는 그 연대가 조금은 차이가 난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작은 연못이 있는 이곳에 초암(草庵)을 짓고 은거하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 자기의 이름과 같은 하얀 연꽃(白蓮)이 솟아 나와 그 위에 절을 짓고, '백련암(白蓮庵)'이라 하였다.
당시는 불교 전성기 때에는 14개의 암자가 있을 정도로 사세(寺勢)가 융성하여서 9,000여 명의 불도들이 도를 닦던 곳이어서 '구천동'이라 하였다. 그래서 백련사의 이름을 한 때는 '구천동사(九千洞寺)'라 한 것이다.
당시 나는 일산 S 산악회 따라왔더니 그분들의 일정은 무주 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올라가서(20분 소요) 향적봉, 중봉을 거쳐서 오수자굴(吳秀子窟)로 해서 백련사로 하산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분들과 홀로 떨어져서 전설 어린 구천동울 거쳐서 향적봉을 올라 향적봉 대피소와 삿갓 대피소에서 각각 1박 하고 영각사로 내려갔었다. 당시에 강풍경보를 내릴 정도로 바람이 센 곳의 종주라서 목숨을 건 종주길이었다.
오늘은 나도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편도 9,000원)를 타고 오르고 있다. 향적봉대피소에서 1박 하고 아침에 해 뜨는 것을 촬영하고 다시 곤돌라를 타고 내려올 계획이다. 내일은 수안보 호텔에서 문학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대피소에서 이용은 1일 7,000원, 담요 2장에 4,000원, 컵 나면 2,500원에 조그만 식용수가 1,500원을 받고 있었다.,
*. 우리나라 조망 제1의 향적봉
날씨가 흐리다는 예도 흐려서 벼르고 온 일출은 보기 틀렸구나 하고 잠을 청하는데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이 35명과 함께 9시에 소등을 하고 보니 밤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릴없이 밤새 뚝 떨어진 화장실 몇 번이나 가다 보니 뽀얀 안개 같은 눈이 오고 있더니 새벽 녘에는 설화(雪花)가 제법 나무마다 닥지닥지 엉켜 붙었다.
산장 주인에게 물어보니 오늘 일출 보기가 힘들 것 같다 하여 일행이 1km 지점에 있는 중봉(1,594.3m) 까지 다녀온다 떠난 사이 나는 우리 일행에게 커피대접이나 하겠다고 산장에서 150m에 있다는 샘물로 물을 길러 나섰다.
간밤 온 안개 같던 눈에 온천지가 모든 나무들이 밤사이 눈으로 치장한 것 같은 백설애애한 세계였다.
향적 참샘은 콘센트로 막아 놓은 바람 없는 곳이어서 졸졸 소리 없이 소량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페트병을 몇 개 가져 간지라 우리 일행에게도 나누어 주고 커피도 끓여 먹고 가방에 지고 와서도 약수라고 아껴 아껴 먹다가 거기서 찍어온 안내판 사진을 보니 식용불가한 샘물이었다.
갑자기 원효대사 생각이 난다. 그렇게 좋다고 마신 물이 해골에 담긴 물을 먹은 기분이 꼭 지금의 나의 기분이었다.
해가 뜨고 있다. 박두진이 노래한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맑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의 그 해가 고맙게도 눈부시게 뜨고 있는 것이다. 이 뜨는 해를 박두진 시(詩)에서는 조국광복을 노래한 것이라 했다는데 지금 깊은 산속 주목 사이에서 뜨는 해를 나 홀로 바라보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주는 것일까?
어제 설화 없이 바라보던 향적봉에도 설화가 만발해 있었다.
'한국 제1의 조망대'라는 눈의 나라 향적봉에 올라서니 하늘 공원에서 세상을 굽어보는 것 같다.
주변에는 주목군락지가 눈으로 치장한 것이 은은한 향기가 그득히 쌓여 있는 봉우리라서 향적봉(香積峰, 1,614m)이라 하였다는 정상도 어제와는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향적봉에서 0.6km 저 아래 설천봉을 향하며 누각을 중심으로 한 일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천국을 훔쳐보는 것 같이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설천봉(1,520m) 정상 마당에는 이런 장관 속에 스키를 타고 60도가량의 경사를 활강하는 젊은이들을 한참이나 눈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난 속에 보내던 학창 시절, 그리고 집을 한 칸 마련하느라고 모든 젊음을 불태우던 지난날이 어찌 보면 억울한 주마등 같이 지나갔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나는 늙다리로 서 있구나!' 해서다.
설천봉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고풍스런 누각이다.
겉으로는 삼층인데 안을 보니 천장이 높은 하나의 층으로 된 누각이었다. 현판에 '上帝樓'를 보니 여기가 옥황상제가 계신다는 백옥루(白玉樓)가 저렇겠지 하였다.
7년 전 처음 보던 누각을 두른 기둥은 간밤 내린 눈보라에 지붕은 물론 기둥까지 닥지닥지 둥근 구슬로 아롱지게 얼어붙은 것이 백옥 같아 동화 속에서 듣던 영락없는 백옥루(白玉樓)였었는데-.
여기가 1990년대에 국립공원 한가운데를 200만 평이나 파헤쳐서 지었다는 무주리조트로, 한국의 대표적인 자연 파괴의 장소라더니, 오늘 보니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이룬 하모니 같이 그렇게 아름다운 선경(仙境)이었다.
서쪽은 광활한 벌판 너머 내장산, 북쪽으로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일부로 한국 100경 중의 하나라는 적상산(赤裳山 1,034m)이, 저 멀리로는 황악산, 계룡산이 문득 다가선다.
남쪽으로는 남덕유산까지 백두대산 줄기가 힘차고 변화무쌍하게 벋어가고 있고 그 뒤에 지리산 반야봉이 얼굴을 불쑥 내밀며 다가선다. 그중 무엇보다 백미(白眉)는 동쪽에 가야산 금오산 등의 산들이 펼쳐지는 저 산파(山波)다. 푸른빛이 감도는 산의 물결과 그 뒤에 거듭 중첩되는 저 산들의 능선들. 동쪽으로 파도치는 저런 파노라마의 풍경으로 향로봉이 구천동 33경 중에서도 으뜸을 자랑하고 있게 된 것이고, 그래서 덕유산 향적봉이 '사진작가의 산'이 되어 향적대피소의 투숙객의 80%가 사진작가란 말이 있었나 보다.
향적대피소 근처에 있는 송신탑을 지나서 향적봉에서 1km 거리에 있는 덕유산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중봉(1,594.3m) 전망대에 올라보니 오수자굴로 해서 백련사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삼공탐방지원소→백련사→향적봉: 총 8.5km/3시간// 백련사→오수자굴→중봉→향적봉: 총 5.2km/2:20
덕유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복판을 남북으로 치닫는 능선으로 평균 해발 높이가 1,000m를 훨씬 웃도는 능선길이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다가 오늘은 기상 예보대로 강풍주의보까지 겹쳐서 종주 길은 몸을 가눌 수조차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세었다. 그 중봉에서 송계 3거리까지는 1km의 거리지만 오르내리는 길의 연속이었다. 이정표 때문에 '송계 3거리'로만 알려진 백암봉(白岩峰)은 횡경재를 넘어 신풍령(빼재)으로 가는 갈림길인데, 이 신풍령-백암봉-남덕유 동봉-서봉- 육십령까지가 백두대간 줄기였다.
*. 설화(雪花)와 상고대
덕유산 설화를 구경하고 오는 길에 모든 사람이 '상고대 상고대' 하며 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있어 국문학도로서 듣기가 거북하다.
내가 알기로는 상고대는 가을과 겨울 사이 초겨울에 서리가 내려서 초목에 눈꽃을 이룬 것이요, 설화(雪花)이란 겨울에 눈이 내려서 나뭇가지에 붙은 눈꽃을 말하는 세계다.
상고대의 국어사전 풀이는 이렇다.
- 상고대: 서리가 나무에 내려 눈처럼 된 것. 목가(木稼), 무송(霧淞), 수가(樹稼), 수괘(水掛:걸괘), 수빙(樹氷), 수상(樹霜)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상고대: 초목에 내려 눈 같이 된 서리. 몽송(霧淞), frost on the tree tops
[표준국어사전(민중서관, 이숭녕)]
-상고대: 나무나 풀에 내려 눈 같이 된 서리. 목가(木稼), 무송(霧淞), 수가(樹稼), 수개(水介), 수괘(水掛:걸괘), 수빙(樹氷) [ 국어사전( 민중서관, 이희승)]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고대의 공통점'은 주체는 '서리'요, 그 서리가 '눈 같이 내린 곳은 초목이나 나무다.
-서리: 하늘이 맑고 바람이 없는 밤, 기온이 영하로 낮아질 때, 공중의 수증기가 땅 위(지표)의 물건 곁에 닿아서 엉긴 흰 가루(얼음)를 말한다.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상고대에 상대하는 말의 한자어가 '설화(雪花 雪華)'요, 순우리말이 '눈꽃', '눈송이'다.
-설화(雪花) : =눈송이. 나뭇가지에 붙은 눈발 (雪花 雪華)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설화(雪花 雪華): =눈송이, flokes of snow. 나뭇가지에 내린 눈발 snow on the branches
[표준국어사전(민중서관, 이숭녕)]
-눈꽃: 나뭇가지에 얹혀 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 눈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눈송이: 굵게 엉기어 꽃송이처럼 되어 내려오는 눈 [한]설편(雪片), 설화(雪花 雪華)
'눈(雪)'이란 공중에 떠 다니는 김이 찬 기운을 만나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희고 여섯 모가 난 결정체(우리말 큰사전)
여기서 서리와 눈의 공통점은 영하나 찬 기운을 만나 땅 위로 떨어지는 것이다.
떨어지다가 물건에 닿아서 엉긴 흰 가루가 서리다.눈은 땅에 떨어지거나 나뭇가지 등에 쌓인 것이다.
서리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갖지만 눈은 고정적이기도 하지만 동적인 이미지도 갖는다.
한마디로 서리가 초목에 눈처럼 엉긴 것이 '상고대'고, '설화'는 눈발이 초목에 내려 눈꽃을 이룬 것이라고 구별하여 말하자는 것이다.
상고대나 설화는 세계 언어에서도 구별하여 쓰는 말이니 우리말 사랑 차원에서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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