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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상장 능선(上將峰, 534m)

ilman 2023. 3. 3. 14:00
북한산 상장 능선(上將峰, 534m) 산행 

*. 상장봉 가는 길

상장봉은 두 번째 가는 길이지만 처음에는 등산회 따라간 곳이라서 구파발 1번 출구로 나와서 북한산 버스정류소까지 갔지만 혼자 가려니 어딘지 알쏭달쏭하다. 거기 옛날에 있던 상가는 없어지고 그 주변 일대가 한창 아파트 공사 중이다.
그래서 등산 기구를 파는 노점상에게 물어 보았다.
"상장능선 가는 버스는, 몇 번 버스를 타고 가서 어디서 내리지요?"
"의정부 행 '34번' 버스를 타고 가시다가 '솔고개'(예비군 종로, 중구 교육장)에서 내리세요."
그제야 생각난다. 솔고개에서 내려서 산 쪽으로 아스팔트길 따라 동네를 지나 우측으로 오르던 들머리가-.
상장봉 능선은 군부대시설 지구로 10여년 이상 휴식 년제에 묶여 있다가 2006년 1월 1일에 풀린 산행 코스라지만, 새로 나온 '북한산국립공원' 지도에도 그 등산로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지금도 정식으로 허락된 등산코스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선지 산행 들머리에 등산로 소개도 표지도 없지만 곳곳에 주민들이 비닐 끈으로 또는 '등산로가 아님'이나 '산행 주차 출입금지'라 써 놓은 것들은 이곳이 산행 들머리인지를 알게 하여 준다.

*. 폐타이어 참호봉(325m)
 겨울답지 않은 요즈음 날씨에 눈은 길가에만 잔설처럼 하얗게 쌓여 있다. 산 아래서 들려오는 훈련받은 소리, 사격 연습하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오르다 보니 까맣게 잊었던 군대시절 기동훈련하며 산에 오르던 생각이 난다. 그 오름길이 한 30분 계속되더니 지금은 11시인데 해가 산 능선에 붙어있다. 거기가 속칭 '폐기타이어 봉(325m)'이 상장산 첫 번째 봉우리였다. 이곳은 폐타이어를 이용하여 파놓은 교통호로 산행 휴식처이기도 하였다.
  올라온 방향에 마주 보이는 산이 일영봉(443.8m)이요, 그 왼쪽 사기막골 앞에 있는 산이 노고산(495.7m)인데 그 아래 멀리로 일산에서 의정부로 향한 외각도로 인하여 생긴 멋진 다리 위에 장난감 같은 차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거기서 얼마 안가서 길을 막아서는 암봉이 있다. 상장봉(上將峰, 534m)이었다.
 상장봉은 오랜 동안 통금지역이었던 곳인 데다가 서울산악회들은 너무 가까와서 안 오는 코스라 이정표는 물론  리본도 거의 없다. 게다가 등산지도나 등산 서적까지 아직 정리되지 않아서 상장 능선에 있다는 제1봉에서 제9봉에 대한 설명이 등산인마다 각각이어서 모르고 지나친다.
위 그림에서 보면 가장 왼쪽이 폐타이어봉이고 그 다음에 있는 암봉이 상장봉이요, 가장 오른쪽의 바위봉이 왕관봉(550m)이라는 제9봉으로 이어진다.

.*. 위험한 암봉 상장봉 길
 

'어느 쪽으로 가야한다?' 상장봉 바로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직진하면 상장봉을 넘는 바위길이요, 오른쪽으로는 긴 하산 길이어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상장봉을 올라보고도 싶은데다가, '로프를 준비해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바위능선을 타고 오르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산중에서, 이 나이에 앞으로 어떤 난코스가 있을지 모르는 길을 고집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 아닌가. 집을 떠나올 때 당부하던 아내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여보, 20일 후에 인도 네팔 해외여행 간다고 예약까지 해 놓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산에 가려는 거예요?"
  '그렇다 전에 왔을 때도 이런 험난한 코스로 오른 기억도 없다. 만약 아까 우측길이 하산길이라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도 왼쪽 길이 있는가 해서 다시 올라가서 살펴보다가 갈림길로 내려와서 보니 희미한 색깔의 리본이 달려 있고 자세히 보니 저 아래에 바위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가도록 매어있는 밧줄이 보인다.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이 있었던 것이다.
 

 상장봉 큰 바위 밑을 지나서 가다 보니 바위가 만들어 놓은 통천문(通天門)같은 것이 보인다. 지리산이나 월출산 같이 그 문 아니면 갈 수 없는 문이 아니어서 싱겁기는 하였지만-.

 

 

오늘 종일 삼각산의 멋진 모습을 향하여 가다 보니 스스로 흥겨워져 고려말 목은 이색(李穡)의 7언절구 '三角山'이란 시를 읊어본다.
 
三峰削出太初時(삼봉삭출태초시)  세 봉을 깎아 세운 건 태고적 일일러니
 仙掌指天天下稀(선상지천천하희)  희한하이 손가락으로 하늘 기리키는 모습
 自少已知眞面目(자소이지진면목)   등뒤가 양귀비같다 세인이 말하더군
 人言背後玉環肥(인언배후옥환비)                                                                                                        -ilman 시조 역

  상장봉 능선 길은 왼쪽으로 멀리 삼각산을 바라보며 오르다가 중간쯤부터는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여성봉, 오봉, 만장봉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가는 멋이 일품이다.
그 중 백운대 인수봉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 상장봉 능선 산행의 멋이다. 가다보면 이정표도 리본도 없는 갈림길이 두어 번 더 나타난다. 그때는 인수봉과 그 앞의 영봉 쪽을 선택하여 갈 것이다. 

그 능선 길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멋진 봉이 있어 모르고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상장능선의 끝이라는 제9봉 '왕관봉(550m)'에 이르렀지만 상장봉에서의 고생으로 미련 없이 우회 코스로 지나쳐 버렸다.

이제는 하산길인데 안부에 못미처 절이 있을 만한 위치도 아닌데 오른쪽에 둥근 철조망이 보인다. 그것도 녹슬지 않은 철조망이다. 그러더니 군부대 출입금지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거기 송전탑 아래에 안부에 이정표가 있다.
'←영봉 1.3km / ↓육모정매표소 1.3km'

*. 산을 사랑하다 가신님들
여기가 육모정 고개인데 이창렬 박사비가 있는 곳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 이 비는 1974. 10.10 한국산악회장 노산 이은상의 추모비였다.


지현 이창렬 박사

님은 산을 그렇게도 사랑하더니
끝내 여기서 산과 하나가 되다

상장능선 종주산행은 솔고개에서 육모정을 지나서 영봉(靈峰)까지라 생각한다. 상장능선 산행 내내 인수봉과 영봉을 바라보며 가는 산행이어서 그렇다. 영봉에서는 0.2km 아래에 있는 '하루재'에서 인수산장을 거쳐서 백운대로 향하든지, 아니면 도선사(道詵寺)로 향하든지 그건 형편에 따라 하는 것이고-.
  평일이라서인지 솔고개에서 육모정까지 올 때도 산행하는 사람들을 너댓 번 정도만 만나더니, 육모정고개에서부터 영봉 가는 길에서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였다.
대신 헬리콥터 장에서는 '코끼리바위'를 만나고
 산장 같이 멋진 도치카를 지나서는                   
1994년 영봉까지 덮친 산불에 흉하게 탄 현장을 목격하고 탄식하다가
영봉 정상에 이르렀더니 정상석도 그렇지만 그 밑에 오석에 새긴 정공채님의 시가 멋지다.
                                      
                                          을 어디라 손을 대려 하느뇨
                                          山에 들면 가득한 靈氣에 감사할지니                                                    의 精氣 있으매 푸른 氣運 솟고                                                          의 自然 있으매 맑은 물도 흘러                                                          우리 생명 더불어 모든 生命 사노니
                                          이여, 靈峰이시여 萬古不變하여라                                                               시 鄭孔采                                                                                               서 農庵 鄭祥玉                                                                                       靈峰命名人 尹柱廣
  영봉 주변은 하나의 산악인들의 묘소 같다.
 수려한 인수봉을 바라보며 수없이 비석으로 혹은 바위에 붙인 동판으로, 산을 사랑하다 먼저 간 이들을 추모하여 기리고 있다.
 - 인수봉은 810.5m나 되는 하나의 바위로 된 산이다. 기록상으로 이 인수봉 정상에 처음 오른 이는 경성 주재 영국 부영사관이었던 C.H 아쳐와 일인 하야시(林茂)가 서북면 C코스로 1926년에 오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1935년에 엄홍섭, 김정태가 동남면 B 코스로 오른 이래 지금 같이 볼트와 하켄이 드물 때 수없는 젊은이들이 이 인수봉을 오르다가 일부가 이렇게 추락으로 또는 동사하여 죽어간 것이다.
그들의 나이가 당시 다 20 세 내외로 그 중 나이 많은 이가 나보다 15년이나 어리니 살아있었으면 지도자로서 한창 활동할 나이라. 아, 아깝기 그지없구나.
꽃다운 젊은 나이를 산에서 살다 간 이들이여! 그대들을 아끼던 서러운 이들의 추모의 말씀들을 산을 사랑하는 이 늙은 몸이 여기에 옮깁니다. 산이 그리워, 산을 살다가, 산으로 돌아온 그대들이여! 부디 하늘나라에서라도 산처럼 명복하시라.

악우여!
너의 하얀 꿈은
꽃잎 되어 피어오르고
너의 정열은
거친 들판의 푸른 솔잎처럼
우리들 가슴 속에 언제나 기억 되리라.
트리츠마르에 잠이든 악우 조준용 신흥전문대
1995년 7월 24일

-고 박성정 추모비
우리는 지금 너의 모습을 보고 있네
그리고 너의 목소리도 듣고 있네
1980년 12월 22일 인수봉
                    -크로니산악회 일동

-임인철 1975 ~1997
산이 좋아

                                                                                 산에 살다
                                                                                산이 되다.

                                                                                       -서울문리대 산악회 

-  故 박효섭
애타게 산이고져 했던
목마른 잠듦이여
그대 이제 메아리 돼 남으니
우리 놀란 가슴 쓸어 안으며
그대 이름 부르노라
             -경승산악회일동

-이선희 지묘
1961.718~1986.4.27
비록 우리 언제나 함께
있지는 못할지라도
우리 여기 있어
그대를 사랑하니
부디 알아주오.
       이화여대 문리대 산악부

-山川地의 넋
강덕순 1955.12.10~1988.2.12
이병주 1967.9.16~1989~4.19
유 신 1970.10.12~1978. 6.26
이윤하 1998. 11.30 졸

백운대 푸른 하늘에 그대들 산새 되어 날고
인수봉 바위틈에 그대들 산꽃으로 피고
우리는 여기 올라 그대들 이름 부르리
                                  김동수 1958. 4.6
                                  이종환 1955. 6.9
                                  김철훈 1958. 5.15

故 李慶復之碑
여기
산에 올라
구름 되었네
백마의 넋이 되어
오르고 또 오르리

나 여기 잠드니 산에
항상 매어 있으리
    고 권재균

산을 꿈꾸던 악우
이제 산에 드노라
    고 이 병림
*. 도선사(道詵寺) 전설
  산에 가서 절을 찾는다는 것은 그 산의 역사를 찾는 격이라서 막 어둠이 시작될 무렵 하산 길에 도선사에 들렸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절이라서인가 북한산과 직접적인 이야기는 없는 편이었다.
도선사는 신라 경문왕 2년(862년)에 당시 풍수지리설의 대가이자 왕건의 고려 건국을 예언 등으로 유명한 도선(道詵)대사가 지은 절이다. 이 절에서 유명한 마애불에 얽힌 창건 설화로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도선대사는 이곳의 산세가 1천년 뒤의 말법시대(末法時代)에 불법을 다시 일으킬 명당 자리라고 절을 창건하려 할 때였다.
국사가 7일 기도를드리고 있는데 이를 방해하려는 산신(山神)이 돌풍을 일으켜 모래바람을 휘몰아치며 호랑이들 시켜 에워싸고 잡아먹을듯이 으르렁거리며 어지럽게 굴 때였다. 도선국사가 신통력으로 장풍(掌風)을 날려 큰 바위를 둘로 갈라버렸다. 산신이 놀라 물러남에 도선대사가 그 바위에 손수 8.43m의 마애관음보살상(磨崖觀音菩薩像, 서울유형문화재제34호)을 조성하고 초당을 지어 이 절을 창시하게 되었다.
도선사 마애석불은 지금은 참회도량으로 멋있게 꾸미었는데 영험이 있다하여 축수객들 특히 입시생을 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 그 석불은 비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상부는 구조물로 씌었는데 앞에는 석탑과 석등이 있다.
그러나 5.16 전에는 암자 수준이던 이 절이 30만 신도를 자랑하는 오늘날 같이 사세를 확장하게 된 것은 15년 동안 이 절에 주석(駐錫)하던 청담스님의 공로 같다. 청담(靑潭)대사는 조계종 총무원장과 종정(宗正)을 지내는 동안 박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그래서 육여사도 자주 기도를 드리던 도량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절에서 가장 큰 건물인 호국참회원에는 청담스님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과 육여사 영정을 크게 모시고 있다.
오랜만에 찾은 이 절에는 옛날에 보지 못하였던 수없는 불사가 있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몇 가지를 사진으로 소개하며 오늘의 산행을 기념한다.

*. 도선사의 이모저모
도선사사천왕문
지장보살
 대웅전 
불사리상과 윤장대
연수각과보리수
(2007. 1. 23/ 구파발-솔고개-폐타이어참호봉-상장봉- 제9왕관봉-육보정고개-영봉-도선사/ 내 아내의 유랑의 남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