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이집트 여행(5)/ 기자(Gizeh)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ilman 2023. 3. 3. 17:15

기자(Gizeh)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5)

 
*. 기자(Gizeh)의 피라미드

이집트에 무엇을 보러 왔는가 묻는 것은 우문(愚問)이다.

누구나 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Sphinx)를 보러 왔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을 위해서 고맙게도 카이로에서 13km 떨어진 기자(Gizeh)에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고 큰 피라미드가 셋이나 몰려 있다.
기원전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높이 146.5m의 쿠푸 왕(Haram Khuufuu) 피라미드, 그의 아우 1437m의 카푸라 왕(Haram Khafra)  피라미드, 카푸라 왕의 아들 65.5m의 메켄우라 왕(Haram Menqawra) 피라미드가 그것이다.
쿠푸 왕 피라미드 동쪽과 메켄우라 왕 서쪽에 각각 3개씩 총 6개의 작은 피라미드가 있다. 왕비의 무덤들이다.
20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9년 전에 내부의 텅 빈 모습을 구경한 곳이어서 포기하고 주어진 3~40분을 그 외부를 열심히 사진에 담는데 쓰고 있다.


낙타의 똥냄새가 곳곳에서 확- 풍겨왔다.
이 낙타를 한 번 타는데 1불, 둘이 타면 2불이다. 앉아있는 낙타를 타고 일어났다 앉는 1분 사이에 그 사진은 알아서 찍어야 한다. 낙타가 몇 걸음 걸으면 계산이 달라진다.  낙타꾼과 함께 낙타를 넣고 사진을 찍는 외국인도 1불을 주고 있었다.

근처에서 서성이는 나를 보고 총을 멘 관광경찰이 부른다. 자기 사진을 찍든지 찍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것도 1불인데, 외국에 나가보면 1불이 만원같이 아까워 지던데 내가 제 말을 들을까.
그랬더니 나에게 다가와 바쿠시시를 달란다.

바쿠시시(Baksheesh)란 팁과는 다른 개념이다. '팁'이 제공된 약간의 서비스에 대한 적절한 보답이라면,  바쿠시시란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동냥이나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그들이 믿는 이슬람의 5계명 중에 4번째로 '자선(Zakat)'란 말이 있다.
'모든 무슬림들은 자신의 수입, 저축, 금, 은 보석의 2.5%를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해 매년 사회에 헌납한다.'는 것과 통하는 말 같다. 그러니까 바쿠시시를 달라는 것은 신의 계명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 그들 사고방식으로는 떳떳한 것이다
.


왕비의 묘는 두 군데가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관람하였다. 쿠푸 왕 옆 왕비의 묘는 층계 따라 아래로 30m 가량 내려가서 현실(玄室)을 보고 올라오는 것이요, 작은 피라미드 옆에 있는 왕비의 묘는 수평으로 드나드는 곳이었다.
제일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 상단부에 꼭대기 중앙에 이상하게도 안테나 같은 철봉이 있다. 이것은 피뢰침이 아니라 세월에 부서져 나간 원래의 정상의 높이 143m(현재 137m)를 나타낸 표지다.
왜 부서졌을까 하는 데는 강풍 때문이라기도 하고 이집트 지방에 100년 주기로 나타나는 지진 때문이란 말도 있다.

세 피라미드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의 카푸라왕 피라미드(Haram Khafra) 상단부와 하단부에 화장암(化粧岩)이 남아 있다.
화장암(化粧岩)이란 피라미드 표면의 외장용 화강암으로 모든 피라미드에 있었는데 이것들을 후세대 사람들이 그들의 모스크나 기타 건물을 짓는데 피라미드의 화장암을 벗겨다 썼다는 것이다.

겉표면에 있었던 돌의 17만여 개가 아랍과 터키 점령 하에서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벗겨 갔다는 기록도 있다.
돌이 귀해서이기도 하였지만 당시에는 문화재 보호 차원이란 의식이 없었고, 게다가 신성한 곳의 돌을 가져다 건물을 지으면 자기들도 신성해 진다는 믿음이 있던 시대였다.  그러니까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한 장방형의 쌓인 돌들의 모습은 피라미드가 내복만을 입고 있는 격이었다.  

*. 피라미드(pyramid)의 신비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한 피라미드는 왜 만들었을까? 무슨 목적으로 저렇게 큰 수많은 돌들을 어디서 날라다가 어떻게 저렇게 쌓았을까?
도굴꾼에 의해서 내부의 모든 수장 품이 도굴당하여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다.

외계인이 지은 것이다, 고대인의 천문대로 지은 것이다, 왕묘다, 하는 설들이 그것이다.
외계인이 지었다는 것은 4, 500년 전의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당시로는 도저히 왕래할 수 없는 아메리카 멕시코에서도 피라미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뚱뻬이(만주)의 장수왕 무덤도 동방의 피라미드라 하는 무덤이다.
피라미드의 신비 중에 또 하나는 피라미드의 밑변의 네 모서리가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는 동지 무렵에는 80 m의 그림자를 드리우다가, 봄에는 그 길이가 거의 0으로 줄어든다 한다.  

그 그림자의 길이를 이용하여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하루의 시간을 알고, 계절을 구별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더욱 깊게 하여 주는 것이 내부의 105m에 이르는 상승 통로가 그렇고 한다. 이런 것들이 피라미드를 우리나라 경주의 첨성대처럼 천문대로 보는 이유이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 파라오(Pharaoh)의 왕릉이었다는 말이 가장 신빙성이 높다. 쿠푸왕의 피라미드 북측에 장제전(葬祭殿)이 건설 되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장제전(葬祭殿)이란 이름 그대로 장례와 제사를 주관하는 곳이다. 거기에는 왕의 혼이 머무는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어 사후의 왕을 모시기 위한 집이기 때문이다.
'불탑의 아래층에 조각된 불교의 수호신 인왕상(仁王像)이나 대웅전 앞의 사천왕 같이 기자의 스핑크스도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이었겠지-.' 하는 생각은 왕묘 설을 통설로 인정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라의 왕묘가 큰 것이, 피라미드가 커야 하는 이유와 그 의미를 같이 하는 것 같다.

*. 피라미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기자의 쿠푸 왕 피라미드는 세계 최대의 석조 건물로 높이가 146.5m, 저변이 230m이고, 사면 경사가 51°52'나 된다.  

각 면에 평균 2.5t의 돌을 230만 개나 쌓아올렸다는데 한 면이 90cm보다 작은 돌이 하나도 없다.
이 돌로 지을 수 있는 것을 높이로 말한다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35개나 지을 수 있는 양이라 한다.
B.C 5세기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저서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를 건설하기 위해서 10만 명이 동원되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한다.
  당시 이 피라미드를 짓던 이가 쓴 낙서가 발견 되었다는데 그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다 한다. '일을 주신 파라오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찬양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극빈자에게 일거리를 주는 취로 사업처럼, 당시의 파라오들이 가난한 백성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일종의 구휼(救恤) 차원의 공사였다는 야기가 된다.
이를 멘젤스존이란 사람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나일강 범람기에 농업에 종사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돕기 위하여 국가에서 행한 공공사업이다.'
이집트인이 '메르라'라 부르는 피라미드의 어원은 그리스어 'pyramis'에서  유래했다 한다.  그리스인들이 먹는 과자 중에 피라미드 모양의 과자가 있었던 모양이다.

*. 기자의 스핑크스(Sphinx)


테베(지금의 룩소르)의 암산(岩山) 부근에 사는 스핑크스(Sphinx)가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어게?'
 '사아람.'
 오디푸스 대답에
 몸을 던진 스핑크스 .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우리들의 어렸을 때 듣던 동화를 시조화 한 것인데, 쿠푸 왕의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스핑크스 그 앞에 나는 서 있다.
스핑크스를 아랍어로는 아부르 호르(Abu-l-Hool: 공포의 아버지)라 하는데 스핑크스(Sphinx)란 무슨 뜻일까?  '살아있는 형상'라는 뜻이란다.
스핑크느스는 사람의 얼굴에다가 사자의 몸체로. 앞으로 뻗고 엎드려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내며 태양신을 상징한다. 얼굴은 쿠푸 왕의 생전의 모습이라는데 코가 떨어져 나가서 납작 코가 되어 버렸다.


높이 20m, 몸체 길이 70m로 그 자리에 있던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만든 거석이지만 앞에 있는 쿠푸 왕의 피라미드의 거창한 모습 때문에 그리 크게 보이지 않는다.
예날에는 머리 위에 뱀모양이 있었던 모양이다. 코가 떨어져 나간 것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나폴 레온이 이집트에 침략했을 때 신형 대포를 실험하기 위해서  쏘아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나폴 레온이 이집트에 올 때 역사 학자 206명과 함께 왔을 정도이니 그건 거짓말이다.'라는 이의 반론도 있다.

기독교 신자들이 우상이라고 코를 떼어 버렸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이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말한다. '기독교인들의 행위라면 목을 자르지 코를 베지는 않는다.'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나라 기독교 광신자들이 초등학교에 있는 단군의 모가지를 뎅겅 잘라 놓은 것을 우리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랍인의 소행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아랍인들은 코나 귀로 영혼이 드나든다고 생각하여서 죄 지은 자는 코를 잘랐던 것이다.
어느 것이 맞든 이 스핑크스의 그때 떨어진 코와 수염을 영국인들이 냉큼 가져다가 대영 박물관에 모셔 두었다 한다.

스핑크스 앞 다리 사이에 검은 석비(石碑)가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어느 왕자가 기자(Gizh)에 사냥을 나와서 보니 모래 위에 얼굴만 내민 스핑크스가 있었다.  무심히 보고 잠들었다가 꿈을 꾸었다. 꿈 속에 낮에 본 스핑크스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를 이 모래 더미에서 파내어 주면 왕위에 오르게 도와주겠다."
그래서 왕자는 모래를 파내어 온몸이 들어나게 하여 주었더니, 스핑크스는 장자가 아닌 그를 왕이 되게 하였다. 그가 그런 내용을 새기어 세운 비석이 바로  스핑크스 앞발 사이에 있는 '투트메스왕  4세 비였다.


그런데 큰 일 났다. 아내가 무엄하게도 그 스핑크스가 귀엽다고, 턱을 어르만지고 스핑크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으니 이를 어쩐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