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인도 투어 여행(4)/ 타지마할(Taj Mahal)과 시크라성(Sikla城)

ilman 2023. 3. 1. 12:46

인도 투어 여행(4)/ 타지마할(Taj Mahal)과 시크라성(Sikla城) 
*. 산다는  재미

  나도 아내와 더불어 세계7대불가사의 하나라는 타지마할(Taj Mahal)을 보러 아그라(Agra)에 왔다니-. 산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다.
그 어렵다는 대학을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몸부림치며 울며 방황하던 고3 시절의 내가, 고학(苦學)으로 대학 4년을 찌들며 고생하면서 가난을 나대로 그치겠다고 벼르던 내가, 인도와 페르시아 양식의 대표적인, 세계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타지마할(Taj mahal)을 찾아와서, 그 모습을 시인과 수필가의 눈으로 보며 감격한 것을 글로 사진으로 이렇게 손수 남길 수 있다니 말이다.
  게다가 오늘은 3일절, 내가 71번째로 맞는 생일이라서 더욱 그러하였다. 오늘 아침은 네팔 현지 가이드가 생일케익을 마련하여 일행과 함께 축하하여 주었고, 나는 술을 사고 우리 일행을 위해 쓰라고 가이드에게 금일봉을 투자하였다.
 거기다가 오늘은 맞춘 듯이 인도 여행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라가 되는 날, 나는 세계7대불가사의 타지마할(Taj Mahal)에 이어 또 하나의 유네스코문화유산인 시카리성(Cicaka)까지 보는 호강을 누리게 된다. 

 

 

 

 

 

 

 

 

 

 

 

 

 

 

 

 

 

 

 

 

 

*. 타지마할의 전설  
   타지마할은 아그라시의 교외에 있는 아그라 성(Agra 城)의 동쪽 약 2km 지점 야무나(Yamuna) 강 언덕에 있는 궁전형식이지만 궁정이 아니라 묘묘(墓廟)다. 타지마할이란 무굴제국의 전성기였던 5대 황제 샤자한(Shah Jahan,1627~1658)이 사랑하던 애비(愛妃)가 죽자 세운 무덤을 위한 건물이다.
'타지 마할'은 '마할의 왕관'이란 뜻으로 '타지'는 왕관이란 뜻이요, '마할'이란 샤자한의 애비(愛妃) '뭄타지 마할'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이 건물 묘지 모양은 궁전 같고, 그 궁전은 왕관 모습이다.
예배소를 가운데 두고 광탑(光塔)을 달았으며 벽면은 멋진 무늬로 장식하고 지붕이 뾰족한 돔 형식인 '타지마할'은 '이스파한'의 모스크,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더불어 사라센건축의 대표작이라 한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페르시아, 이집트, 중국, 이탈리아의 당대 일류 예술가들이 동원되었고, 여기에 쓰일 보석을 구하기 위하여 대상(隊商)이 동원되어 중국에서 비취를, 버마에서는 루비를, 다마스쿠스에서는 진주 등을 가져왔지만 지금은 그 대부분은 도둑맞은 모양이다.

이 건물을 짓게 된 전설로는 다음과 같은 서글픈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무굴제국 재상의 딸에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아름다운 아르쥬만드 바누가 있었다. 19살에 사자한을 만나서 이듬해에 결혼을 하였다. 황제 샤자한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여 '궁전의 영광'이라는 뜻의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이란 칭호를 주고 사랑을 쏟았다. 타지마할은 17년 결혼 기간 동안 14명의 아들을 낳고 전쟁에 나가는 황제를 따라 15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출처: indiary.net
왕비를 잃고 하룻만에 머리가 하얗게 시었다는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1년 후 아그라 언덕에 아내의 묘 타지마할을 세우기로 하였다. 
1631년부터 22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2만여 명의 노동자와 1,000마리 코끼리를 동원하여 호화 분묘를 지었다.
한 변이 약 95cm, 높이 6m 되는 기단 위에 대리석으로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같은 대칭형의 타지마할을 지은 것이다. 중앙의 큰 돔은 흰 대리석으로 높이 33m, 사방에 작은 돔을 거느리고 있다.
대리석은 빛이 투과하는 고급 인도 대리석이라서 자연광이 대리석을 뚫고 왕비의 석관을 비치게 하였다.
그 관에 '신은 영원하시며, 신은 완전하시도다.' 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사랑은 신처럼 영원하며, 신처럼 완전히 저승에서 다시 재결합을 상징할 것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그리고 건설에 동원된 2만 인부들의 손을 잘라 다시는 이와 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모스크바에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원의 하나라는 성바실리 사원을 지은 러시아 황제 이반 4세가 이 건물을 지어놓고 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어서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짓지 못하게, 이 성당을 설계한 자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이야기처럼-.
  국력을 탕진하고 있는 건축왕 샤자한의 이런 공사의 불평에 편승한 막내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가 반란을 일으켜 형제 왕자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고 왕인 아버지를 타즈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포트의 무삼만 버즈( (Musamman Burj)에 유폐시키는 바람에 아내의 무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8년 동안 그리워 하다가 거기서 75세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죽어서야 샤자한 왕은 아내의 무덤타지마할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사랑의 세레나데인 그 무덤은 지하에 있고, 그 가묘를 관광객이 보이는 곳에 위 그림과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일주문에 해당하는 붉은 사암으로 만든 정문을 들어서면 정면 정원 수로(水路)에 타지마할의 그림자가 담겨 있었다. 무굴(Moghul) 양식의 이 정원 옆에는 열병식 하듯 푸른 나무들이 도열하여 서 있었고-.
 그 수로가 끝난 곳의 좌우로 붉은 색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寺院
)와 그 사이에 우윳빛 대리석의 커다란 돔(dorm)이 다시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어울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거기 사방에 서 있는 망루(望樓)인 네 기둥을 보면 약간 밖으로 기울어져 있다. 만약 지진이 났을 경우 안으로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이 타지마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일 때가 달빛과 어울린 모습이라서 매달 달 뜨는 보름밤만은 특별히 밤에도 이 타지마할을 개방한다고 한다. 
어느 누군가 인도를 이렇게 말하더라. 
 
  -극과 극이 공존하는 나라. 화려함과 남루함, 성과 속, 신비와 퇴폐, 부귀와 빈곤, 근면과 나태, 환락과 금욕, 현세와 내세, 천국과 지옥 등등의 나라라고-. 이런 극과 극들이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전반에 편안하게 공존하는 곳이 인도다.
인류 4대문명의 하나인 인더스문명, 불교와 힌두교의 발상지, 뿌리 깊은 카스트 제도, 카레, 200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 종교분쟁, 마하트마 간디(Gandhi) 등등을 찾아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 들지만 그 인도 중 한 곳만 말하라면 그것은 인도의 상징인 타지마할(Taj Mahal)이 꼽힐 것이다. 타지마할은 인도를 대표하는 세계유산이라서 검문 검색이 심하였다.
카메라의 촬영 티켓을 팔았으나 건물의 겉 모습일 뿐 타지마할의 내부는 촬영 금지구역이라서 찍을 수가 없었다.
한국과 인도의 다른 것 중의 또 하나는 사진을 찍을 수는 없으나 만질 수는 있는 나라였다. 

*. 유령의 성 시크리 성(Fatehpur Sikri城)

 

 
 
 

 

  아그라(Agra)에는 타지마할도 있지만, 유령의 성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시크리성(Sikri城)도 있다.
옛날 무굴제국의 수도였다가 너무 더운 날씨와 식수 사정이 나빠서 부득이 14년간 수도로 있다가 아그라로 옮긴 후 버려진 도시라 해서 시크리 성을 '유령의 도시'라고 하지만 지금은 이곳에 인구 3만명이 살고 있다.
이 시크리 성(Fatehpur Sikri城)은 악바르 왕과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인도 무굴제국의 3대 악바르(Akbar the Great, 1556 - 1605) 황제는 무굴의 광개토대왕이라고 할 정도로 고대제국 아소강왕에 비견할 만한 대제국을 건설한 왕이었다.
그런 악바르 황제에게 근심이 있었으니 그것은 아들이 없는 것이었다.
어느날 유명한 성자 살림(Sheikh Salim Chisti)을 소개 받은 황제는 아그라(Agra)로부터 37km 떨어진 파테푸르 시크리(Fathepur sikri)를 걸어서 찾아갔다.
성자 살림(Salim)은 삼고초려(三顧草廬)하여 찾아온 악바르(Akbar) 홍제의 정성에 감격하여 황제에게 아들의 축복과 득남의 예언을 하여 주었다.
이렇게 해서 세 아들을 낳은 악바르 황제는 그 성자의 소원대로 1569년에 성자가 살던 시크리(Sikri)를 발전시켜 주기 위해서 수도로 선포하고 새로운 도읍지로서의 건설을 명하였다.
악바르(Akbar) 황제는 자기의 '구자랏트(Gujarat)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높은 문을 건축하였으니 그것이 '승리의 문(Bland Darwaza)'이다.
이 시크리는 11년 동안 수도로 있었지만 기후가 너무 덥고, 식수가 아주 부족한 곳이라서 성자 살림(Salim)의 유언에 따라 1585년에 수도를 아그라(Agra)로 다시 옮긴다.
 악바르 황제가 오늘 아침에 우리가 보고온 타지마할을 세운 사자한(Shah Jahan)의 할아버지였다.

 

 
 
 
 
 
 
 
 
 
 
 
-계속: 자이푸르(Jaipur)의 '아멜성'과 '하와마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