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아프리카 여행/ 미완성 오벨리스크( 최종회)

ilman 2023. 3. 3. 15:26

아스완 댐과 미완성 오벨리스크/ Photo 에세이 최종회

*. 아스완(Aswan Hight Dam)

유람선은 어느 틈엔지 이집트의 최남단 아스완(Aswan) 선착장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나일 강의 어둠이 막 물러간 하늘에 달이 걸려 있다. 저 산 꼭대기에 비석처럼 우뚝 서 있는 것이 사람들의 뼈들이 흩어져 있다는 암굴 분묘군이다.
당시 이곳을 지배해 오던 로마 시대 귀족들의 무덤이다.
오늘은 이집트의 마지막 관광으로 아스완하이댐에 들렸다가 고대 채석장에 가서 미완성 오벨리스크를 보고, 야간 침대열차 편으로 카이로(Cairo)를 향한다. 그리곤 알랙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두바이(Dudai)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해외여행의 멋은 이렇게 하루하루가, 시간 시간이 변화의 연속에 있다.
아스완은 룩소르(Luxor)에서 남으로 200km  떨어진 곳 나일 강의 동안(東岸)에 발달한 세계에서 가장 일조율이 높은 도시로 흑인 누비아 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이다.

누비아(Nubia)는 옛날에는 이집트의 지배를 받다가 이집트에 통합된 지역으로, 그들은 누비아 언어와 그들만의 특유한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문자는 없다.
아스완 시내는 나일 강 따라 2km로 걸어서 30분이면 다 구경을 할 수 있는 작은 도시로  아스완하이댐(Aswan Hight Dam)

으로 하여 유명해진 도시다.

*.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t Dam)

 아스완 시내에서 남쪽으로 12km되는 거리에 세계 3대 댐 중에 하나라는 아스완 하이 댐(Aswan Hight Dam)이 있고 그 댐 북쪽에 수력발전소가 있다.
1970년 독일과 구소련의 협력으로 완성된 높이 111km, 폭이 360m인 댐이다.  그 크기는 기자의 피라미드 크기의 92배나 되는 거대한 건축으로 나세르 대통령 때 만든 다목적  댐이다.
다목적 댐(多目的 dam)이란 홍수 조절, 수력 발전, 농공업 용수, 관광 사업 등으로 치수와 다각적인 물의 이용을 위해 만든 댐이다.
그 댐 위에 개 한 마리가 아스완 댐 쪽을 배경으로 하여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카메라를 대니 좀 불안한가 보다.

*. 나세르 호수(Lake Nasser)

낫세르 댐의 건설로 경제적인 면에서 성공하였다고 이집트 정부는 기념비를 세워 자축하기도 했다.
하류에는 수심이 얕아지면서 많은 섬들이 생겨나고 경작지가 넓어지게 되었고 인간의 힘으로 홍수를 막게 되었다.  그뿐인가. 이집트인들이 쓰고도 남을 만한 수력발전도 할 수 있었지만 다른 문제도 많았다.
그 하나가 생태계의 파괴였다.
나일 강에서 잡히던 풍부한 어종이 사라지고, 나일 강이 일 년에 일정한 시기에 범람하면서 상류에서 날라주던 비옥한 검은흙은 비료 하나 주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였는데, 이제는 비료를 써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물은 염분이 더 많아져서 농사에 지장이 많았다.
그보다 큰 걱정은 댐을 막았기에 생긴 나세르호였다.
수단까지 500km가 넘는 거대한 인공호수 때문에 

아스완 하이 댐에서 아부심벨  신전(Abu Simbe神殿l)  이르는 300km 이내에 '세부아 신전(Sabuu神殿)'이나 '아마다(Amada 神殿)'같은 세계 문화유산이 수몰 위기에 처하였지만 가난한 이집트는 이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이를 구하기 위해서 유네스코가 나서서 국제적인 모금과 캠페인을 벌여서 신전을 지금 같이 안전한 위치로 옮겨 주었다.  
신전을 1,036개의 블록으로 절단하고 원래 위치보다 60m 높은 위치로 감쪽같이 이전하여 주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놀랬다고 한다.

수천 년 전 람세스 2세는 당대에 이 같은 신전들을 수 없이 만들었는데문명 사회를  사는 오늘날에 그것들을 옮기는 데만도 세계 각국이 동원하여 참여하였구나 하고-.
이시스(Lsis 神殿)도 그중에 하나였다.
지금은 수몰된 '필라에 섬'은 이시스 신이 호루스(Horus)를 낳은 곳으로 이집트에서는 성스런 섬으로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이 섬을 수몰 직전에 유네스코가 1980년에 아기르키아 섬으로  옮긴 것이 아스완 하이댐에서 보면 오른쪽에 그 선착장과 함께 고색이 창연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스완 하이댐에서 고대 채석장으로 향하는 곳에 영국의 식민지 시절인 1902년에 만들었다는 아스완 댐(Aswan Dam)이 있다. 
길이가 2,140m, 높이가 51m를 화강암으로 쌓았는데 당시에는 세계 최대였던 댐이었던 모양이다.

*. 미완성 오벨리스크 (The unfinished of Queen Hatshepsut)

아스완 시내에서 남쪽으로 1km 위치에 오벨리스크를 만들던 유명한 채석장이 있다. 여기 오면 만들다가 만 미완성 오벨리스크(obelisk)를 보게 된다.
완성 되었으면 세상에서 가장 컸을 이 미완성 오벨리스크는 만들던 중 돌 두 곳에 금이 가서 만들다가 중단한 오벨리스크지만 새옹지마라 이것 때문에 오벨리스크를 만들던 당시의 모습을 오늘날에 알게 된 것이다.
청동기 시절 이전에 어떻게 이 돌을 자르고 다듬었을까? 어떻게 무동력 배에 싣고 룩소르 신전까지 싣고 갔을까? 신비롭고 신비로운 일이었다. 채석장 곳곳에 돌을 떠낸 흔적이 있어 그 경탄(驚歎)을 더하게 한다.

*. 야간 침대 열차를 타고

  나는 침대 열차를 평생 처음 타본다. 부산까지 KTX도 타보지 못한 내가 지금 외국인 전용 야간 침대열차에 몸을 싣고 이집트 국철의 종점 아스완 역에서 카이로까지 장장 900km를 달리고 있다. 그것도 아내와 함께-.  산다는 것이 이렇게 신기하고도 재미있는 것이다.
1실은 2인 용으로 침대는 상하로 두 개인데 세면대와 거울이 있고 냉난방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벽에는 라디오 스위치도 있고 불의 밝기도 조절할 수 있는 고급 시설이었다.
차에서 도시락으로 저녁과 아침을 먹었는데 크루즈에서보다 질이 높았다.

우리는 새벽 4시에 카이로에서 내려 버스로 바꿔 타고 처음에 들렸던 알렉산드리아 공항으로 갈 것이다.
이 철도는 나일 강변을 따라 계속 북을 향하여 달리는 열차다.
이집트는 나의 회갑 여행 시 지중해 여행으로 스페인의 마드리드, 발로세로나와 그리스의 아테네, 터키의 이스탄불을 거쳐서 들렸던 곳이다.
다녀와서 그 여행기를 글로 남기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 하다가 나의 고희(古稀) 기념 여행으로 아내가 스폰서가 되어서 온 것이다.  아내의 저축이 고맙고 고맙다.
이집트 여행은 그 신전이 그 신전 같고, 왕가의 계곡의 묘도 그 묘가 그 묘 같아서  혼돈의 여행이라고도 한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친절하고 유능한 현지 가이드 신양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녀는 가이드를 위해 태어난 가이드 같다. 안내하고 설명하면서 자기 말에 자기가 열중하는 모습이 특히 좋았다.
9년 전에 귀국길에서  쓴 시로서 나의 책 한 권이 될 정도의 이 글을 이제는 마치고자 한다. 



주여,
우리들은
시대와 나라와 민족을 함께 함으로 하여
청포도 빛 지중해와
그 하늘 빛 닮은 삶을 탐함으로 하여
아담 이브처럼 Korea에서 쫓겨나
열이틀 간이나 방황하였습니다.

그동안 남아서
담당하여야 할 우리의 몫을
이해하고 도와준 고국의 우리들에게
감사와 축복을 주소서.

부디 이 여행이
언제나 창조 앞에서
부지런히 살아온 "왜"를
끄덕이며 되돌아보는 희망으로 쓰게 하소서.

왕궁에서, 신전에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서 본
자신만을 위한 준비 대신에
남을 위해 나를 쓸 수 있는
건강 수명을 허락하여 주시고,
주마등(走馬燈) 같은 그동안의 하나하나가
잊지 못할 감동이 되게
주여, 도와주소서.
                         -'귀국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