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나그네길이라 한다. 인생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듯이 어딘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라면, 여행은 떠나는 즐거움과 함께 돌아오는 기쁨으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인생과 다르다. 시간 속에 묶여 바쁜 현대를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며칠이나마 그 구속이 풀리게 될 때 우리는 여행을 생각한다. 아무리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따르게 되면 그것이 여행이 되는 것이다. 여행은 어딘가로 떠나는 나그네길이다. 떠나되 아무 때나 다녀올 수 없는 적당한 거리를 필요로 하는 예술이다. 그러나 그 길은 반드시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가는 길이요, 새로워져서 돌아와야 하는 출발이 되는 길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어딘가 떠나게 된다. 수학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 회갑여행, 칠순여행을 떠난다. 왜 떠나는 거지? 즐거움의 시작과 끝에 여행이 있는 이유는 무엇이지? 무엇 때문에 인생의 즐거운 추억에서 그 중요한 자리 매김으로 여행을 생각하게되는 거지? 인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활이 있다. 그 생활은 그 다른 공간과 환경으로 하여 조금씩은 서로 다른 사람과 문화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렇게 호흡하고 있는 그것과 서로 마주칠 때 우리는 색다른 감흥에 잠기게 된다. 감흥이란 곳에 따라, 계절에 따라 사물을 접하였을 때 가슴에 느끼게 되는 서정의 세계다. 여행은 홀로 떠날 수도 있다. 그때의 동반자는 내면 속의 자아(自我)다. 그러나 여행은 동반자가 있을 때 더욱 가치를 갖게 된다. 슬픔도 그렇지만 즐거움은 나눌 때 더욱 커지는 것이니까. 세상살이를 즐겁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취미다. 취미란 의무적으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여 즐기며 사랑하며 좋아하는 세계다. 그 취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취미가 있다면 그것이 여행이기 때문에 여행에는 동반자가 있기 마련이다. 여행은 만남이다. 새로 보고, 듣고, 새로 만나는 세계다. 나 밖에서 서성대던 무엇이 나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 여행인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에 제한되지만 그 관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여행이다. 길에서 오랫동안 헤어져 지내던 친구를 우연히 만난다. 옛날부터 몰랐으면 그냥 지나쳤을 사람이다. 그렇게 지나쳐 살던 사람들이나, 아니면 낯선 곳에서 찾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해어지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자기로부터의 탈출이요, 나의 확대요, 닫쳐 있는 나를 개방하는 길이다. 여행은 새로운 것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 중에서도 날마다 새로운 만남을 하게 하여 주는 것이 해외여행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사계절인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순서대로만 살아왔다. 추운 겨울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게 하였고, 무더운 여름은 하얀 눈이 쌓인 스키장을 향하는 겨울을 그리워하게 하였다. 그렇게 차례로 오는 계절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해외여행은 얼마나 환상적이던가. 이렇게 여행은 우리들의 삶을 보태주고 변화시켜 주고 재충전하여 주는 것이다.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현실에서의 탈출 때문인가. 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인가. 인간 본연의 호기심이라는 본능 때문인가. 기행문은 여행을 꿈꾸는 독자에게는 그리움이 되고 안내문이 되지만, 다녀온 사람에게는 추억이 되게 한다. 기행문을 읽으면서 즐거운 과거의 반추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여행은 투자다. 낭만에의 투자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현재에 대한 확실한 저축이다. 우리가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여유 없는 생활 속에 빠지게 될 때, 다시 가볼 수 없는 병약과 늙음 속에 갇히어 살게 될 때에, 종종 마주치게 되는 여정의 충동에서 즐겁게 꺼내 볼 수 있는 서고 하나를 마음속에 마련해 두는 일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여행은 미지의 세계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행복한 의지의 실행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아름다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는 여행 다녀와서 내가 본 세계를 열심히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여행기를 쓰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여행작가(旅行作家)가 되고 말았다. 내가 다시는 일어설 수 없는 병상에서 죽음을 맞게 될 때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될 때에,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찾아와 나의 글을 읽어 주는 소리를 들으며 떠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망구순(望九旬)을 지나 구순의 나이에도 여행을 꿈꾸는 나는 복받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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