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화 유람선에 사랑을 싣고/ 실야 라인(silja line)
여행이란 기쁨으로 만났다가 아쉬움으로 헤어져야 하는 사랑 같은 것인가. 그 먼 곳을 찾아와서 단 하루만 핀란드에서 머물다가 헬싱키를 떠난다.
오후 5시경 핀란드를 떠나 내일 아침 9시 30분까지 타고 갈 호화 유람선 실야 라인(silja line)을 타고 우리는 스웨덴을 가고 있다. 이 배는 58,400t 급에 차량 400대와 승객 2,980명이나 실을 수 있다. 선실만도 985개(4인 1실)로 침대 수가 2,980개나 된다. 길이는 무려 203m. 위로 갑판까지 7층이나 되는 호화 유람선이다.
선내에는 오늘 저녁에 식사와 각종 술을 마음대로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전통적인 스칸디나비아 뷔페식당을 위시해서, 카지노, 사우나, 디스코텍, 면세점, 회의실, 무료 나이트클럽, 가라오케 등 부대시설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이런 호화 유람선을 타고 유람하는 것을 어찌 꿈이나 꾸었으랴. 그것도 아내와 함께-.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북유럽 여행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니-. 흙수저로 태어나서 가난 때문에 학창 시절 초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수학여행 한 번도 가지 못한 내가 이렇게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며 호강을 하고 있다니-. 산다는 것이 새삼 재미있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림) 선 내 면세점에 들러 양주를 13병이나 샀다. 헬싱키에서 환전하여 가지고 주머니 깊숙이 모셔 두고 잃었다 하다가 찾고, 시간 없어 못쓰고 온 핀란드 돈이기에 아낌없이 썼다. 여기 아니면 어디서 쓸 수 있으랴 해서였다.
술병은 등산화 모양, 전구 모양, 만돌린 모양, 기타 모양, 삼각형 술병 등등 참 재미있게도 생겼다. 외화를 펑펑 쓰고 다닌다고 오해들 마시라. 내가 산 양주는 10cm 미만 크기의 장식용이니까.
이 미니 술병들을 사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더 늙어 임종이 임박하다는 의식을 하게 된다면 이 작은 양주 병들을 하나하나 뜯어 마시며 오늘의 즐거운 이 여행을 생각하리라.
선창(船窓)을 통하여 지나가는 풍경을 두고 그냥 자기에는 너무 아쉽고, 다가오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그것들을 촬영하다가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토바라기가 손꼽아 기다리는 토요일이 아닌가?
성(性)을 잃은 아내에게
성을 내고 달려들면
삼십육계 줄행랑.
이순(耳順)의 주책이란다.
급습하기도 하고
공갈과 협박에다 애걸을 더해도
언제나 불발탄.
하여, 가엾은 몸을 이끌고
해우소(解憂所)에 서면
거울 속에 내가 나에게 욕을 한다.
예끼 놈!
-예끼 놈(1995년 작)
그러나 우리 아내가 아내란 이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내를 열어 주는 날이 있다. 토요일이다. 그래서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고 사는 것처럼 나는 토요일을 바라고 사는 토 바라기다.
토요일이 가까워지면 아내에게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무슨 핑계를 잡아서라도 앵- 돌아서면 낭패기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토요일이면 가끔씩 두 딸네가 들이닥치거나, 병약한 아내가 아프거나 하여 낭패를 당할 때의 서운하고 허전함이란. 허나 이 망망대해 이국 하늘 아래, 그것도 바다 가운데 둥둥 떠 있는 우리 둘만을 위한 이 선실에 무슨 장애가 있고 어느 누구의 방해가 있으리오. 아내와 함께 여행 다니는 재미가 이것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을까-. 갈매기만 기웃거리며 지나갈 뿐이었다.
토 바라기의 소원이 풀렸구나 하였을 때 요란한 노크 소리다. 이 사랑을 방해하는 작자는 누구일까?
기겁을 해서 부리나케 바지만 꿰고 선실 문을 열어보니 함께 온 홀로 된 대학 동창 친구 소 교장의 뒷모습이 멀리 사라진다.
함께 술 한잔하자고 찾아온 모양이다. 주책도 없지-. 예끼! 사랑을 방해하면 어디도 못 가는 줄 알아? 애꿎은 욕이 나온다. 큰 일 날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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