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1920년 봄 이야기지만 기록상 보관을 위해서 그냥 싣는다.
금년 겨울(1920)은 기상대 창설 이후 가장 온화하여 눈다운 눈을 구경하지 못한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었다. 그런 기상이변 때문이었을까.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원된 역병(疫病) Corona19가 한국을 위시하여 전 세계가 공포에 떨게 하였다.
이 무서운 얼굴 없는 역병은 몇 년 전의 Mers나 Sars보다 더 무섭게 3달도 안 되어서 세계 209개 국에서 1백만 명 이상의 확진자(確診者)에 사망자 5,4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하여 각 나라마다 외국인의 입국을 금하며 금년 7월에 일본에서 개최되는 인류의 축전인 올림픽을 부득이 2021년으로 연기하게 할 정도였으니 세계인의 공포를 더 말하여 무엇하랴.
조선 숙종 때만해도 원인 모를 역병이 돌아 25만 명이 병들어 죽고,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라고 하던데 지금도 그런 형편이다.
외출하여 보면 건강한 사람도 전 국민이 마스크를 쓰고 있고 안 쓰면 눈총을 받는 실정이다. 그 마스크는 한 사람에게 1주일에 2개씩 약국에서 주민등록을 보여 주고 사서 쓰거나 개인이 만들어 쓰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 조간신문을 보니 달걀값과 쌀값이 오른 모양이다. 외출을 금하기 때문에 집콕하며 숙식을 배달해 먹거나 직접 해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기다리던 봄은 와서 봄소식이 들리더니 '진해 군항 벚꽃축제'처럼 서울 '여의도 윤중제 벚꽃축제'도 출입금지로 꼭꼭 닫아놓았다는 소식이다.
목욕탕도, 헬스장도 갈 수 없어 큰맘 먹고 운동 삼아 아내와 함께 일산의 정발산에 올랐더니 봄의 전령사 산수유 노란 꽃과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이 다투어 피어 있건만 Corona19 전파가 두려워 산행하는 사람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모처럼 식당에 들러보니 그 큰 식당에 우리 부부 둘뿐이다.
작은 요식업계나 식당들이 임대료를 내기도 힘들어 줄줄이 문을 닫는 바람에 서민들의 밥줄인 직업을 잃은 자가 부지기수라는데 그분들도 집에 꼭꼭 박혀 있어야만 하는 세월인데 '병들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마찬 가지라는 말들이 오가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Corona 마마(媽媽)여!
병 들면 처용(處容) 탈이라도 쓴다 하여
‘탈 났다! “던 이 나라에선
여제(厲祭)를 드리거나
“마마(媽媽)“로 모시어도,
수 천 명, 수만 명
저승길로 모셔 가더니,
이젠
'뭉치면 죽고
헤어지면 산다.'는 허무 속에
꽃피는 새봄도
제 홀로 그냥 오가야만 하는데,
밥그릇 긁는 소리 듣기도 어려운
가난에 더욱 벌주는
Corona 마마(媽媽)여!
이런 재앙(災殃)은 무슨 뜻인가?
-2020. 3. 16
*. 청명(淸明)과 식목일(植木日)
청명(淸明)은 24 절기의 하나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 식목일(植木日)이나 한식(寒食) 전후에 온다.
"청명(淸明)에 죽으나 한식(寒食)에 죽으나"라는 속담은 그래서 생긴 것 같다. 어떤 일이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청명(淸明)과 한식(寒食) 무렵은 봄빛이 완연하고 날씨가 맑고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때여서 농촌에서는 논밭에서 논밭 둑을 손보거나 가래질을 하고 나무 심기를 서두른다.
"청명절에는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도 산다."라는 속담처럼 만물에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1949년부터 한식과 청명 무렵인 4월 5일을 식목일(植木日)로 공휴일로 정하기도 하였다.
식목일을 4월 5일로 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참작해서였다.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날이 문무왕 17년(677년) 음력 2월 25일로 한식날 무렵이었다. 이 무렵 성종 24년(1343년) 3월 10일에는 성종이 문무백관과 함께 동대문 밖의 선농단(先農壇)에 나가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낸[親祭] 후에 왕이 친히 농사를 지었다.
이에 신라의 삼국통일과 같이 우리의 소원 통일을 위해 청명(淸明) 전후인 날을 정하여 1949년부터 4월 5일을 국가적인 행사의 날인 식목일로 정하여 공휴일로 지정하였던 것이다. 그후 식목일은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따라 이를 폐지하게 된 것이다. -(참고문헌): 동아 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최상수의 세시풍속
*. 한식(寒食)/ 4월 6일(목)
한식(寒食)은 설,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의 하나다.
한식이 오면 한국 사람들은 정성껏 차린 제수(祭需)를 가지고 성묘를 가서 묘제(墓祭)를 지내고 벌초(伐草)를 하고 잔디를 돌본다.
‘음력 2월 한식(寒食)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하며 옛사람들은 그 해의 철이 이르고 빠름을 알았다는데 금년 한식날은 3월 13일인데도 Corona19에 시달리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서인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
한식은 신라 시대 무렵에 중국에서 들여온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따라서 한식의 유래담 또한 중국에서 유래되는데 그 몇 가지을 들면 다음과 같다.
-한식의 풍속을 고대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나온 것이다. -육당 최남선.
--중국의 옛 풍속: 한식 무렵에는 풍우(風雨)가 심하여 불을 금하였기 때문에 이 날 찬밥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 개자추(介子推) 전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진(晉) 나라에 문공(文公)이 아버지 헌공(獻公)에게 추방당하여 망명 생활을 할 무렵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19년 동안 모실 때였다.
한 번은 문공이 배가 고파서 탈진하여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개자추는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도려내어 구워 먹여 문공을 살린 일이 있었다.
그 후 진(晉)의 왕이 된 문공은 자기를 도와준 신하들에게 상을 주었는데 개자추를 깜박 잊고 챙기지 않았다.
뒤늦게 개자추를 생각하고 벼슬을 내리려 하였으나 개자추는 이를 고사(固辭)하고 노모와 함께 면산(緜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나오지 않았다.
왕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면산(緜山)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노모와 함께 그냥 타 죽고 말았다.
이를 매우 안타까워하던 왕 문공은 개자추가 죽은 날은 불을 쓰지 말게 하여 백성들은 찬밥을 먹게 되었다. 그 후 개자추가 타 죽은 일을 기리기는 것이 한식(寒食) 풍속이 되었다.
옛사람들은 한식(寒食)에 비가 오면 ‘물 한식’이라 하여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였으나 천둥이 치면 흉년이나 국가에 불상사가 난다고 몹시 꺼려했다.
-2023년 4월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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