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병중일기病中日記/

ilman 2019. 2. 27. 12:52

병상일기(病床日記)/ 병중에 필요한 누구와 무엇(2)

 

  몸이 아프고 보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가장 필요한 것이나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누구인가 하는 것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강을 잃고 보니 집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나의 손발이 되어 주는 아내가 그렇다.

 늘 수영이나 강습이나 친구 만나려  자유롭게 나다니던 아내가 신기하게도 잔소리 하나 없이 나를 도와주고 있고, 아내 외출에 걱정 말고 다녀오라고 보낼 때 미안하게 나서는 아내의 뒷모습이 고맙고 예쁘다.,
밖에 나가면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인이나, 걷기 보조기를 밀고 다니는 노인들도 수없이 새롭게 보인다.  내가 넘어져 일어서지 못하고 꼼짝없이 엎드린 자세로 도움을 청할 때 자식보다 먼저 달려와 도와주는 가장 고마운 사람은 119 대원이었다.

옛날 우리 장인이 가시던 날 내가 쓴 시(詩)가 갑자기 생각난다.  

 

 아아, 119여

 

내가 젊었다면

나도 119 구조대원 되어 살고 싶다.

나라와 겨레가 부르면

제일 먼저 달려가는

작은 영웅의 삶을 살고 싶어서다.

나만을 위해 사는 세상에서

나와 우리를 위해 젊음을 불태우는 삶이란

얼마나 찬란하고 축복된 삶이던가.

옛날 우리 장인(丈人)이 생명을 다투시던 날

엠블런스로 위급을 도움 받던 날

건네는 감사의 금일봉(金一封)에

가슴을 찌르던 그 말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아닙니다. 우리는 Koera의 119 구조대원입니다.'

스마트폰과 스틱에 매단 호루라기로 무장하고

희수(喜壽)의 나이 지나서도

걱정 없이

내가 이렇게 전국의 산(山)을 홀로 누빌 수 있는 것도

생각해 보면, 부르면 달려오는

다정한 형제, 가족 같은

든든한 우리 119 구조대원(救助隊員이 있어서였나 보다.

                       -2014년 수리산 사고 현장에서

 

 위급을 당하거나 부모가 병들 때 먼 데 있는 자식들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나은 법이다.
언제 119구조대에 찾아가서 나를 도와준 구조대원에게 나의 저서(著書)라도 건네며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병중에는 남을 만나지 않고 혼자 있고 싶어지는가 보다. 
그것은 그무엇보다 나의 다친 경로를 반복하여 말하기도 귀찮고, 친척과 지인에게 연락하여 귀한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거니와  그보다 갑자기 닥친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그동안 미루다가 못다 한 것들 하나하나를 찾아 정리하고 싶어서다.
내일 모래가 83세 내 생일이어서 찾아올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고, 다행히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과분한 기대(?)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나는 47평의 아파트에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다. 둘이 살기에는 집이 너무 넓어 청소하기에 힘들다고 아내는 이사를 원하는 것 같지만 나는 이 집에서 내 인생을 마치고 싶다. 집을 줄이면 돈의 여유는 더 생길 테지만 결국은 다시 더할 수 없는 내 재산만 줄어 들 터이고 늙어 갈수록 홀로 집에 있는 시간도 많을 것이니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다.

뜰이 없는 아파트에서 침실 방 2과 화장실 2개는 아내와 내가 각각 써야 할 꼭 필요한 공간이다. 나머지 방 둘은 나의 서재와 아내의 옷방이고 앞 베란다는 아내의 정원, 뒷베란다는 창고이며, 거실(居室)은 공용으로 쓰기에 적당한데, 나와 함께 하던 책과 가구를 버리면서까지 좁은 집으로 이사 가는 것은 내 생전(生前)에는 반대다.

몇 년 전 나는 집수리를 하면서 고급 안락의자(安樂椅子)를 하나 사다가 서재 컴퓨터 책상 앞에 놓았다. 
지금보다 더 늙거나 병들어서 집에서 지낼 시간이 늘어날 때에 내가 눕거나 않는 것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소일하며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선 자판기에 넓은 모니터를 마련해 놓았는데 그것이 지금의 나를 위한 사전 준비가 된 것 같아 기쁘다.
나는 자식들이 생일이나 명절 때 와서 우리를 위해서 식사를 대접하거나 용돈을 주고 가는 것보다 청소나 도와주고 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노후가 준비된 공무원 연금수급자이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