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실버 愛’ 잡지에 2010년 6개월 간 연재한 ilman 성철용의 “십장생 이야기”입니다.
십장생(十長生)2/ 학(鶴)
동양인들은 학(천연기념물 제202호)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도교(道敎)에서 장수하는 신선들이 타고 다닌다는 학을 ‘선학(仙鶴)’, ‘선금(仙禽)’이라 말한다. 우리나라는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서 더욱 그런 것도 같다. 예로부터 한국인이 숭상하는 선비의 이상적 성품을 학에 비유하여 말하기도 하였다. 몸을 닦고 마음을 실천하는 선비를 학명지사(鶴鳴志士), 선비가 은거하며 도를 닦지 못함을 탄식하는 것을 학명지탄(鶴鳴之歎)이라 하고, 그런 선비들의 외롭고 쓸쓸함을 학고(鶴孤)라 하는 것이 그 예다. 조선 시대 지체 높은 선비들이나 벼슬아치가 즐겨 입던 옷에 학창의가 있다. 학의 모습을 본떠 소매가 넓고 뒤 솔기가 학의 날개처럼 갈라진 흰 창의(氅衣)가를 돌아가며 검은 헝겊으로 넓게 꾸민 웃옷이 학창의(鶴氅衣)다. 조선시대에는 문무관의 관복에 흉배(胸背)를 달았다. 문관은 학, 무관은 호랑이를 품계(品階)에 따라 그 수를 각각 달리하여 붙였다. 이때 문관들을 학반(鶴班)이라 한다. 우리 조상들은 도자기, 그릇, 문갑이나 함, 필통, 베갯모 등에 학 무늬를 즐겨 그렸다. 학은 장수와 행복과 풍요의 상징하기 때문이다. 장수를 축하하는 말에 학수(鶴壽)라는 말이 있다. 머리는 학의 깃처럼 하얀 백발이지만 얼굴은 아이들 같이 붉고 윤기가 도는 노인을 학발동안(鶴髮童顔)이라 하면서 장수를 축하여 말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천년을 산다고 믿고 있는 학의 실제 수명은 몇 년이나 될까? 조류서적을 살펴보면 학은 야생 상태에서는 약 30년을, 미국의 동물원에서 최고 85년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계인의 평균수명이 66세라니 학은 인간보다 단명한 새다.
십장생(十長生)은 ‘해· 달· 산· 내·대나무· 소나무· 거북· 학· 사슴· 불로초’로 말하기도 하지만 ‘해· 돌· 물· 구름·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학· 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중에 생명이 있는 동식물로는 ‘소나무· 대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여섯뿐이다. ‘불로초(=영지 2년), 대나무(60년), 학(30~40년), 사슴(15~17년)‘’은 사람보다 단명한 동식물이라니 십장생 중 ’소나무와 거북‘만이 사람보다 장수할 뿐이다. 창덕궁 소장 ‘십장생도(十長生圖)’를 자세히 살펴보면 장수의 상징인 소나무 가지 위에 앉아 있는 학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이도 잘못된 것이다. 학은 늪지에서 사는 새요, 소나무에 둥우리를 틀고 사는 새는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나 백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논밭이나 강가에서 흔히 보는 자그마한 흰 새는 학이 아니라 백로(白鷺)다. 백로는 학보다는 1/3 정도로 작은 새로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를 상징하는 새다. 그래서 시문이나 화조화(花鳥畵)에 자주 등장한다. 학을 두루미라고 하는데 '학(虐)'은 한자어요, '두루미'는 순 우리말이다. 두루미라고 하는 것은 수놈이 ‘두-’하고 선창하면 암놈이 ‘두루, 두루-’하며 따라 운다 해서생긴 말이라고 문헌에 전한다. 그러나 황새는 두루미와 달리 명관(鳴官)이 없어 울지를 못한다. 부리를 부딪쳐서 ‘고록 고록, 가락가락’ 둔탁한 소리를 낼 뿐이다.
*. 일산 호수공원의 홀아비 단정학(丹頂鶴)/ 인터뷰 기사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자연학습장에는 단정학(丹頂鶴) 홀아비가 외롭게 살고 있다. 이 학은 1997년 고양시 호수공원에서 열린 제1회 꽃박람회 축하로 고양시와 자매결연한 중국 흥룡강성 치치하얼(齊齊哈爾) 시로부터 시민의 장수와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는 뜻으로 기증받은 한 쌍의 학 중 수컷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암컷이 10 여 년 전 다리 염증을 치료하다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필자는 오랫동안 이 외로운 홀아비 단정학을 살피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위로하곤 하였다.
십장생(十長生) 홀아비 학(鶴) 짝을 잃고 혼자 산다. 청아한 목소리로 때때로 울부짖으며-. 우리 집 여보, 당신도 저리 살다 가겠지-. -홀아비 단정학(丹頂鶴)
오늘은 호수공원관리소 자연학습원을 찾아 학 관리원 이상영씨(43세)에게 몇 마디를 물어보았다. 학을 장가보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곳을 찾는 고양 시민들이 외롭게 사는 이 단정학의 짝을 구해 줄 수 없는가를 묻는 이가 많습니다. 작년인가요. 세계 단정학의 1/4이 산다는 이 새를 기증한 치치하얼(齊齊哈爾) 시와 교섭을 하였더니 학은 함부로 사고 팔 수 없는 국제보호조인데다가 마침 조류독감이 성하던 때라 무산되고 말았데요. 게다가 두루미와 황새는 철저히 일부일처(一夫一妻)를 하는 새라서, 낯선 암놈을 울안에 넣었다가는 부리로 쪼아 죽일지도 몰라서 함부로 짝을 지어 줄 수도 없답니다.
-저는 이 단정학을 5년째 관리하고 있는데요. 1년 5개월이나 걸려 겨우 친해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학을 만져 보는 것은 고사하고 30cm이상 접근할 수가 없을 정도로 경계심이 깊은 새입니다. 자기가 아주 기분이 좋을 때 부리로 툭 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흔한 일은 아니지요.
-학이 기분 좋아 할 때는요. 하루 세 번 먹이 줄 때와 수족관을 깨끗이 청소해 줄 때에요. 그러면 들어가서 온 몸을 물에 담으며 씻고 부르르 깃을 털며 수족관 한 바퀴를 돌며 너울너울 한바탕 학춤을 출 때랍니다. 수족관이 지저분하면 일부러 자갈 같은 것을 수족관에 물어넣으며 심통을 부리기도 하지요.
-먹이요? 곡식이나, 부드러운 잎, 물고기, 곤충, 조개를 좋아 한다지만 여기서는 주로 미꾸라지를 아침 점심, 저녁 세 번 2kg씩 20마리 가량 먹이지요. 성질이 어찌나 깔끔한지 상한 것은 물론 죽은 것이나 싱싱하지 않은 것은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절대로 먹지 않아요. 사람이 던져 주는 먹이를 먹으면 십중팔구 병에 걸린다는 것을 관람객들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학의 울타리 관리상의 애로는요. 이 귀한 새 앞에서 사람들이 너무 소란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한다는 소리가 저 새는 화투의 ‘5광 중 1광이다.’ 하든지, 옆 울의 금계 등을 ‘골든 치킨’이라고 농담하며 떠드는 것을 보면 가슴 아파요. 그보다 더 한 것은 건너편 새장에 아이들이 장난감 총 비비탄을 겨냥하여 쏘아대는 바람에 이를 머리와 다리에 맞은 두 마리의 귀한 새가 신경을 다쳐서 병들어 외롭게 앓고 있는 중이랍니다. *. 2016년 다시 가보니 어렵쇼. 단정학이 신부를 맞아 장가 갔더니 2017년에 가보니 알을 품었다고 관람객의 시선을 막아 놓는 경사가 났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