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십장생(十長生)1/ 소나무

ilman 2017. 4. 9. 14:18

십장생(十長生)1/ 소나무

 

동물 중에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이 거북이라면, 식물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것은 나무다. 
십장생(十長生)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식물도 소나무다.
소나무보다 오래 사는 나무로는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도 있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朱木)이 있다.

그러나 주목(朱木)은 평지가 아닌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악지대에서만 자라는 나무여서 인간과 가까이 사는 나무가 아니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도 큰 키 나무에 하나이지만 소나무보다 그 쓰임새가  많지  않다.

  지중해(地中海) 문화를 '올리브문화'라 하고, 영국의 문화를 '장미문화'라 하듯이 우리나라의 문화는 ‘소나무 문화’라고 한다.  우리는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태어나, 소나무 속에서 함께 살다가, 죽을 때는 소나무 관 속에 누워 솔밭에 묻히는 민족이기에 생긴 말이다.
소나무 속에서 산다.’ 함은 소나무와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소나무 장작으로 취사를 하여왔다. 그 온돌 난방에서 겨울을 보내고, 소나무로 각종 요리를 해 먹었다.
솔잎으로 송죽(松粥), 송편이나 송엽주(松葉酒)를 만들어 먹는다. 술 중에는 솔방울주, 소나무 옹이[松節]로 담근 송절주(松節酒)도 있다.

  송진 또한 어떠한가. 송진이 땅에 들어가 천년을 묵으면 호박(琥珀)이란 보석으로 변하고, 그 관솔 가지는 조명으로도 썼다.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먹(墨)은 소나무를 태운 그름에다 아교를 녹여서 만든 것이다.

소나무가 특히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한국 건축자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재목이라는 점이다. 

나라님이 사는 궁궐도 모두 소나무로만 지었다. 소나무는 다른 어떤 나무보다 뒤틀림이 적고 그 송진은 비나 습기에 잘 견디게 하기 때문이었다.   소나무를 왜 ‘소나무’라고 한 것일까?  우리말 합성어에서 ‘버들나무>버드나무, 불 삽> 부삽, 불나비>부나비’인 것처럼 복합어가 될 때 앞 말의 ‘ㄹ‘이 탈락되는 현상이 있다. ‘솔’ +‘나무’의 합성어(合成語)가 소나무다.    솔은 한자의 거느릴 ‘率’(솔) 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 ‘率’은  ‘상(上)’, ‘고(高)’,‘ 원(元)’의 뜻을 지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 가운데에서 우두머리가 되니 ‘수리’라 하였고 그 ‘수리’가  ‘술’ > ‘솔’로 변했다는 것이다. 
  소나무는 한자로는 ‘松’(송)으로 쓴다. 그래서 ‘송’+‘나무’가 소나무로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松’(송) 자를 破字(파자)하면 ‘木’ + ‘公’인데 ‘公’은 소나무가  모든 나무의 윗자리에 서는 나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본초강목(本草綱目; 李時珍 저)에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어른(長)이다"라 쓰고 있는 것이

그 예다.

 ‘松’ 자는 고대 중국의 황제 시절 그의 신하 창힐(蒼?)이 만든 글자라는 말도 있지만, 세조 전설이 어린 속리산의 ‘정이품소나무’처럼 진시황(秦始皇)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진시황이 길을 가다가 들판에서 소나기를 만났다. 마침 큰 소나무가 있어 그 아래에서 비를 긋게 되어서  그 보답으로 오작(五爵)의 으뜸인 공작(公爵)이란 벼슬을 주어 ‘목공(木公)'이라 하였다. 이 두 글자가 한 글자로 합쳐져서 '松'자가 되었다.


소나무의 세계적인 학명은 '피누스(Pinus densiflora)'다.

'피누수(Pinus)'는 켈트어(기원 전 1,000여 년경 유럽 대륙에서 사용되던 말)로 ‘산에 사는 나무’란 뜻이고,  덴시플로라(densiflora)란 라틴어로 ‘꽃이 빽빽이 모여 난다’는 뜻이다.

소나무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자라는 나무지만 두 나라에서는 국토의 일부분에서만 자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토 전역에 자라는 나무다. 그래서 소나무의 종주국(宗主國)은 한국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나무는 영어로 '자파니스 래드 파인(Japanese Read Pine; 일본 붉은 소나무)이란 학명으로 통용되고 있다.  과거 문화가 우리보다 앞선 일본인 학자가 먼저 소나무를 세계 학계에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흔히 솔나무, 송목(松木), 적송(赤松), 육송(陸松)이라고 부르지만 여송(女松), 청송(靑松)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적송(赤松)’이란 소나무 껍질이 위로 갈수록 검붉은 비늘 꼴이라서 생긴 말이요, 껍질이 흰빛을 띄는 중국이 원산지인 ‘백송(白松)’이나 검은빛을 띠는 ‘곰솔[해송]’에 상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적송은 내륙(內陸) 지방에 주로 난다고 해서 ‘육송(陸松)’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닷가에서 주로 나는 ‘해송(海松=곰솔’)과 상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해송의 억센 잎과 비교하여 유연한 잎 때문에 육송은 ‘여송(女松)’이란 이름도 갖는다. 

  

소나무 중 제일로 꼽는 나무가 금강송(=강송)이다. ‘금강송(金剛松)’은  강원도와 경북 북부 태백산맥 높은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라서, 나이테의 너비가 좁고 고르다.
재질이 단단하고 결이 곱고 광택이 있는데다가 무엇보다 줄기가 굽지 않고 곧게 쭉쭉 뻗은 나무였다.
그래서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송(金剛松)을 으뜸으로 치는 것이다.
 금강송을 ‘춘양목(春陽木)’이라고도 하는 것은, 경북의 춘양역(春陽驛)으로 금강송을 모아서 기차로 실어 날랐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불탄 국보제1호 숭례문도 삼척 준경묘의 금강송으로 복원할 모양이다.
'준경묘'란 태조 이성계의 4대 조인 목조(穆祖)의 부친 이양무(李陽茂) 장군의 묘다.
 ‘일본 소나무는 곧은데 우리나라 소나무는 굽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말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우매한 민초들은 일본인들과 달리 내일을 생각지 않고 곧고 좋은 나무만을 우선하여 마구 베어다가 함부로 쓰는 바람에 생긴 말이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모양으로 ‘반송(盤松)’과 ‘처진 소나무’로도 나누기도 한다.

반송(盤松)은 키가 작고 모양이 부채꼴 모양이어서 정원수로 많이 심는 나무다.

처진 소나무는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아래로 칙칙 늘어진 나무이어서 ‘유송(柳松)’이라고도 하는 나무다.

  사람을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누듯이 소나무에도 육송, 해송, 잣나무 등 종류가 많다.

그 종류를 겉으로만 보아서는 잘 구별이 안 된다. 이럴 경우엔 잎으로 구별할 일이다. 솔잎이 2이면  솔나무, 적송(赤松), 육송(陸松)이다. 솔잎이 3장이면 백송(白松)인데, 솔잎이 3장이면서 줄기에도 솔잎이 많으면 북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고 병충해에 강하다는 리키 다 소나무다. 
열매 속에 잣이 열리고 바늘잎이 5장이면 잣나무다. 그래서 잣나무(栢)를 ‘오엽 송(五葉松)’이라도 이른다.

소나무 잎은 2개이기 때문에 이엽송(二葉松), 이침송(二針松)이라고 한다.
이 두 개 솔잎의 아랫부분이 하나의 입자루에서 함께 솟아나 2~3년 정도 함께 하다가  떨어지므로 백년해로(百年偕老)의 부부를 상징한다 하여 소나무는 음양수(陰陽樹)란 애칭을 갖는다.

 ‘歲寒然後 松柏之後也’(세한연후 송백지후조야)라는 말이 논어에 나온다. 한겨울의 추위가 지난 연후에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변치 않는 굳굳한 절개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 세한삼우(歲寒三友)에는 송죽매(松竹梅)가 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철에도 청청한 푸름을 잃지 않고 굳건한 송죽매(松竹梅)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하여 동양화의 화제(畵題)가 되어왔는데 그중 우두머리가 소나무였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시서화(詩書畵)에 소나무를 즐겨 그렸다.

그림으로 그 대표적인 예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 단원 김홍도의 ‘선인송하취생도(仙人松下吹笙圖)’, 혜원 신윤복의 ‘송정아회(松亭雅會)’다.

이들 그림들은 눈[雪]과, 신선과 어울려 부는 생황(笙篁), 시(詩)가 정자에서 소나무와 어울려 풍류를 이루어 한 바탕의 아름다움을 꾸미고 있다.

소나무의 붉은 몸은 자고로 사악(邪惡)한 기운을 제압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단청(丹靑)과 함께 선비의 충절을 상징하고 있다.

소나무는 중국에서도 기려오던 나무로 시문(詩文)에서도 소나무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하루의 계획으로는 파초를/ 한 해의 계획으로는 대나무를 심고,

십년 계획이면 버드나무를/ 백 년 계획이라면 소나무를 심어야 한다.
                                            -淸 유몽영(幽夢影) 山卽思學其高      산에 오르거든 그 높이를 배우고,  , 臨水卽思學其淸   물가에 임하거든 그 맑음을 배우고,

座石卽思學其堅   돌에 앉게 되면 그 견고함을 배우고, 

  
看松卽思學其貞  소나무를 보거든 그 곧음을 배워야 하며

帶月卽思學其明  달을 쳐다보거든 그 밝음을 배울 것을 생각하라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김시습의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십장생 중 산, 물, 돌, 소나무, 달을 노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십장생 중에 소나무의 수령(樹齡)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속리산의  ’
정2품소나무’는 수령이 800년으로 소개 되고 있다.
그러나 버팀목으로 지탱하고 있고, 링거 주사로 극진히 보호 받고 있는 나무로서의 중환자 신세인 것을 보면 100세 이상의 인간 보살핌 이상이다.
그렇다면 소나무의 수명은 인간 수명의
10배가 되는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황금 시절이 청춘시절(靑春時節)이듯이, 소나무가 늘 푸른 나무로 이렇게 정정하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를 한 마디로 솔잎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소나무 잎은 푸름을 간직한 채 나무에 달려 있다. 그 솔잎이 2~3년으로 잎의 수명이 다하여 떨어질 무렵이면 새 잎이 그 뒤를 이어 사시사철 푸른빛을 자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保護樹(1972년 내무부 간)’ 지에 의하면 한국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되는 노거수가 약 1,400여 주나 된다는데 그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老去樹) 중에 제일 많은 것이 백송, 곰솔, 같은 소나무  30점으로 은행나무 18점보다 많다.

잎이 살아있는 나무는 고사목(枯死木)이 아니다. 소나무가 늘 푸른 나무인 것도 푸른 솔잎 때문이다. 솔잎은 줄기에 태어나서 해마다 줄기를 비대(肥大)시키며 최선을 다하여 일하다가 나이테를 더하며 가며 윤회를 되풀이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잎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일까? 젊었을 때  보던 영화 유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잔이 선인(善人)으로 탄생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장발 잔이 감옥에서 출소하고 공원에 앉아 있을 때 어느 아이가 동전을 던지며 놀다가 떨어뜨린 것을 발로 밟아 가지려 했다. 그후 죄인 장발 잔은 선량한 시장(市長)으로 변신한다. 그때의 내레이션이 다음과 같았다. 바다보다 넓은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넓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

그렇다. 나무에게 매년 돋아나는 잎이 있다면, 사람을 새롭게 소생하게 하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은 장수하는 동식물의 세계에서도 크게 좌우되는 화두(話頭)다. 


 

                      장수(長壽)하고 싶은 이여,
                       마음을 열어 두자.

                             나에서 너로, 너에서 우리로. 
                     죽어도  죽지 않는 마음을
                              소나무 솔잎처럼,
                     한 잎 두 잎 필 때마다 푸른 세상 여는 솔잎

                              나이테로 비대(肥大)하는 잎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소나무로 살아가자

                                                                                  -소나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