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釜山) (2)/영도(影島) 태종대 항구 도시 '부산!'하면 영도(影島) 다리가 생각난다. 영도다리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이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다.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의 골육상쟁의 참극이었던 6 25 피난살이를 노래한 한(恨) 많은 대중가요였다. 일가 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 영도(影島)의 어원 영도다리(부산대교)는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연결하는 한국최초의 연육교(連陸橋)다. 특히 영도다리는 도계교이기도 하다. 도개교(跳開橋)란 큰 배가 지나 다닐 수 있도록 다리의 한 쪽 끝을 들어 올리게 만들어진 다리를 말한다. 영도대교는 뭍 쪽의 31.3m를 위로 들려 올라가게 만든 도개교(跳開橋)로 '부산의 랜드마크'라고도 말할 수 있는 다리였다. 1934년 3월에 완공된 이 다리는 1966년부터는 그 들어 올리는 것을 멈추고 말았다. 그것은 들어 올리는 기계가 낡았고 다리를 통하여 뭍에서 영도로 수도관이 놓였기 때문에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다리가 된 것이다. 그러던 것을 47년만인 2013년12월 8일에 롯데에서 1천 100억을 투자하여 도개식 영도대교를 다시 개통하여 부산시에 기증하였다. 옛날에는 하루 6번씩 들어 올리던 다리를 요번에 만든 영도다리는 낮 12시에 75도 각도로 15분간 들어올린다고 한다. 이를 구경하려고 평상시에는 5~6 천 명이 주말에는 1~2만 명의 인파가 모여 드는 영도다리는 관광의 명소가 되었다.
그런데 그 영도(影島)란 이름의 어원은 어떤 뜻일까?
김정호의 '청구도(靑邱圖)'에는 이 섬의 이름이 '牧場 絶影'이라 나온다. 그래서 영도(影島)는 '목도(牧島)' 혹은 '절영도(絶影島)'라 불려오던 섬이다. 나라에서 쓸 역마(驛馬)나 군마(軍馬)는 제주도에서 주로 길렀는데, 제주도는 너무 멀고 불편해서 조선 정조(正祖) 때부터 영도에 나누어 말을 기르게 하였다 옛날 이곳에서 사육하던 말 중에는 명마(名馬)가 많아서 그 말들이 한번 달리기만 하면 하도 빨라서 그 그림자[影]조차 볼 수 없었다[絶] 하여 '절영도(絶影島)'라 한 것이다. 그러던 것을 '무연탄'을 '무'자를 빼고 '연탄'이라 하듯이, '절영도'의 '절' 자를 빼어 '영도(影島)'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영도 지도를 보니 지금도 종합 사격장 근처에 '목장원'이 있다. *. 태종대 유원지 이야기 태종대(太宗臺)는 영도대교에서 9.1㎞의 영도의 최남단 해안가에 있는 곳으로 태종산((太宗山, 250m) 기슭에 있는 유원지다.
이 영도는 북동쪽은 완만하지만 남서쪽은 급경사로 절벽 지역이다. 남해 바다의 파도로 해식애(海蝕崖)가 되어 높이가 거의 100m의 수직 절벽을 이루어 그 해안은 기암괴석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태종대에도 예전에는 군부대가 있어 '민간인의 출입금지' 지역이었다가 태종대가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면서 유원지로 새로 단장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 제17호'가 되었다.
태종대에서는 아침 9시 30분부터 “다누비”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다누비'란 공모에 의하여 채택된 이름으로 아름다운 태종대 곳곳을 '다 누비고 다닌다'는 뜻이 담긴 멋진 이름이다. 열차는 태종대 입구를 해안 쪽으로 출발하여 원점 회귀하는데 그 정류 장은 태종대 5경인 '태종사', '영도등대', '전망대', '구명사', '자갈마당' 등 5개소다. 관람객은 그 도중 어디서나 하차 하여서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30분 간격으로 있는 다음 다누비 열차를 이용할 수가 있다. 요금은 일반 1,500원/학생 1,000원/ 65세 이상 경로 해당자는 신분증을 제시면 무료였다. 오늘은 비가 오락 가락하는 궂은 날씨여서 다누비 열차는 운영하지 않아 망설이다가 유람선(1인 1만원)을 이용하였지만 이 배도 풍랑이 거세어 반쯤 가다가 안타깝게도 뱃머리를 돌려야만 하였다.
유람선을 타고 태종대의 하일라이트인 신선대(神仙臺)와 망부석(望夫石)이나 자살바위와 등대(燈臺)를 바다에서 우러러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했지만 오늘 우리들의 안복(安福)으로는 이에 만족하여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나의 태종대 이야기'는 몇 년 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 간다. 순환도로는 1974년에 완공 된 4.3㎞ 아스팔트길로 걸어서 2시간 코스라 하여 당시 나는 다누비 열차의 역방향으로 걷기로 하였다. '산은 절을 품고, 절은 세상을 품는다.'는 말처럼 나를 태종대에서 제일 먼저 품어 준 것은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도량인 태종사(太宗寺)였다. 여기서 사리(舍利)라 함은 부처님을 화장하고 남은 유골 중 구슬 같은 것으로 2,500년 동안이나 스리랑카에서 모셔 오다가 그 인정서와 함께 한국의 도성 큰스님께 전달하여 이곳 태종사에 모신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였다. 따라서 태종사(太宗寺)에서 특별한 볼거리는 그 사리(舍利)를 모신 당우였다. 태종사에서 조금 지나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하얀 등대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해안가에 멋있게 서 있다. *. 영도 등대 영도등대는 1906년 12월에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건립된 등대로 2004년 8월 최신 시설로 지금처럼 새롭게 단장하여 부산항을 찾아오는 국내외 선박들에게 바다의 길안내를 하여 주고 있다. 다른 등대처럼 식별이 쉽게 높은 굴뚝 모양에다가 흰빛으로 형상표지를 하였고, 밤에는 광파표지(光波標識), 프리즘렌즈, 동명기를 이용하여 8초마다 3번씩 50만 광촉의 빛을 발사하여 24마일(38km) 떨어진 바다에서도 잘 보이도록 하였다. 안개 끼고 비나 눈이 오는 날과 같이 시야가 흐릴 때에는 전기혼을 이용하여 매 45초마다 5초 동안 소리를 5마일(8km)까지 들리도록 음파표지를 하고 있다. 영도등대 일원은 태종대 경치의 가장 중요한 명승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영도등대에 딸린 부속 시설은 물론 부산을 대표하는 바닷가 암석 지대의 절경과 부산을 상징하는 오륙도(五六島)도 그렇지만, 태종대(太宗臺)라는 두 개의 대(臺)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등대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해기사 명예의 전당' 조형물들이 있고, 등대 부속물로' 전망대, 바다와 바다 갤러리, 해양도서실, 정보 이용실, 해양영상관, 자연사 전시실' 등 해양문화공간 시설물이 각종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등대보다 더 볼거리는 등대에서 계단 따라 해안 쪽으로 내려가면 그 중간 오른쪽으로 바다에서 100m 이상 솟아 있는 두 개의 대(臺)를 볼 수가 있다. 금강산의 총석정(叢石亭)처럼 바다에서 쭉 뻗어 올라가다가 중간이 뚝 잘린 모습인데 그 위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앞에 있는 대(臺)는 우리가 직접 밟아 볼 수 있는 운동장처럼 평평하고, 7m 정도의 바다 사이를 두고 있는 건너의 대(臺)는 옛날에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 하고 그 중간쯤에 바다를 향하여 애절한 모습으로 우뚝 선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망부석(望夫石)이었다. 왜구(倭寇)에게 끌려갔나, 파도가 삼켰는가. 바다에 물어보고, 불러보는 한(恨)이 되어 그 마음 내 낭군 기다리는 망부석으로 서있다. -망부석(望夫石)
이곳을 신선대(神仙臺)라고도 하는데 옛날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수려한 자연 경관에 반해서 이곳에서 활을 쏘며 즐겼다는 속전(俗傳: 東萊府誌 所載)에 따라 현재는 이 두 대를 태종대(太宗臺)라 하는 곳이다. *. 부산의 상징 오륙도(五六島) 등대 전망대에서 좌측을 굽어보면 파도가 남해의 푸른 바다를 하얗게 부수고 있고, 눈을 들어 보면 저 멀리 부산의 상징이라는 부산기념물 제22호 오륙도가 아득하다. 오륙도(五六島)는 부산항을 지켜 주는 파수꾼 같은 섬이지만 오육도란 이름자체만도 자못 신비롭고 시적(詩的)이다. 썰물 때는 섬이 5개, 밀물 때는 6개의 섬으로 나누어 진다하여 오륙도라 불리기 때문이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 솔섬(5,505㎡)· 수리섬(5,313㎡)· 송곳섬(2,073㎡)· 굴섬(9,716㎡)· 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파도를 방패처럼 막아주니 '방패섬', 소나무가 있어 '솔섬', 갈매기를 잡아먹으려고 독수리가 떠돈다는 '수리섬'. 송곳 같이 뾰족해서 '송곳섬', 큰 굴(窟}이 있어 '굴섬'. 등대가 있어서 '등대섬'인데 이 섬은 밭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밭섬'이라고도 한다니 말이다. 이 여섯 섬 중 방패섬과 솔섬은 두 섬의 아랫부분이 1m 가량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1개의 섬 '우삭도'가 되고, 밀물일 때는 '방패섬'과 '솔섬' 2개의 섬으로 보인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로 낚시꾼의 천국이어서 어선만이 오가는 곳이다. 어디선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파도 소리에 실려 들려오는 것 같다.
님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말없는 그 사람 ~ 여기서 동백섬은 오륙도가 아니라 유람선이 되돌아 오는 반환점 근처의 오륙도가 마주보고 있는 '아치섬(朝島)'이다. 아치섬은 영도와 제방으로 연결 되어 한국 해양대학교(韓國海洋大學校)가 있는 섬으로, 부산에서 아침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섬이라 하여 '조도(朝島)'라고도 하지만, 동백꽃이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동백도'라고도 하는 섬이다. *. 자살바위 전망대 영도등대를 뒤로 하여 순환도로에서 조금 내려가니 울창한 숲 사이에 지붕이 원형인 전망대가 나타나더니 그 앞에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모자상이 있다. 여기가 부산에서 악명 높은 '자살바위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아래 바다를 굽어보니 아슬아슬한 수직 절벽인데 그 높이가 해발 168m란다. 여기서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을 비관하여 뛰어 내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해서 속칭 자살바위라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부산시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1973년 전망대를 세우고 뛰어내리기 어렵게 울타리를 막아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를 한번만이도 생각하고 참으라고 세운 조각이 '모자상(母子像)'이었다. 부산에서 고교 학창시절을 보낸 전 노(盧) 대통령이 태종대의 자살바위를 기억하는 분이기에 봉화마을의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끔찍한 일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억설일까.
전망대에서 700m를 내려가면 또 하나의 전망대 '남항 조망지(南港眺望地)'를 만나게 된다. 여기가 이름 그대로 부산의 대표항인 남항(南港)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세상이 고해(苦海)라고 하지만 그 세상을 멀리 보면 아름답다. 산위에서 굽어보는 산은 동화 같이 아름다운 세계요, 바다 건너로 멀리서 바라보면 천국 같은 세상이다. 이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지만 망원경 아니라도 부산 남항은 물론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 둥둥 떠있는 외로운 섬 하나가 배처럼, 수석처럼 보이는 '주전자(酒煎子) 섬'을 볼 수도 있다. *.구명사(救命寺) 남항조망지를 뒤로 하고 700m를 다시 내려오니 절 이름치고는 이상한 구명사(救命寺)가 있다. 이 절은 자살바위에서 1m 거리이니 자살바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절은 구내가 아주 좁아서 종각 속에다가 종은 물론 부처님들까지 가득히 모신 것이 특이하다. 그중 주불이 지장보살(地藏菩薩)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사후의 세계를 관할하는 부처님이고 보니, 세파에 시달려 육신을 버리려는 가여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립된 사찰 같아 마음을 숙연케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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