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대장검사를 하면서 모니터에 나타난 나의 창자 대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50년 이상 마셔온 술이 할퀴고 간 그 통로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다.
얼마나 많은 술이 저 길을 통과하였을까?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는가.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추태를 부렸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의 내장에 술이 흘러가지 않은 날은 어렸을 때나, 아니면 이렇게 몸을 아파하는 때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술을 마시다가 부끄럽게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운전면허증을 다시 따던 날 울면서 나는 이런 시를 썼다.
낯선 이 태워 주며 우리 되거나
초면(初面)과 흠뻑 취해 허허롭던 낭만(浪漫)이
일순의 만용(蠻勇)에
차(車)도, 면허(免許)도, 돈도
술 마시던 명분(名分)과
그 알량한 체면(體面)마저 일순간(一瞬間)에 다 날려 버리고,
그리고 그리고도
나를 잃었다.
그 대신에 회환(悔恨)과 불편(不便)과 위로(慰勞)를 얻었고
가해(加害)와
구속(拘束)과 허영(虛榮)에서
해방되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슬픈 자아(自我)와
밤바다 꿈마다 자결(自決)을 모의하였다.
-참회록(懺悔錄)
그 후로도 술로 인한 슬픔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목숨을 걸고 또 술을 마시고 다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에는 건강을 잃고 그 무서운 백혈병 무균병실에 입원하기도 했었다.
그때 나는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느 땐가
만약 아내의 눈동자에서
내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게 된다면
노을로 떠서 노을 속에 지는 태양같이
가을날의 마지막 단풍잎처럼
아름다운 나머지를 살아가리라.
눈물겹게 준비하고
친구 따라 여행 떠나던 아내처럼
마음 찍어 기록하리라.
가진 것 없던 나를 있게 해 주고
가슴 깊던 한을 풀도록 지켜 준 것이
그중 가장 고마웠노라고
무심하였던 그동안이 나를 용서하라고
주저하고 아껴온
나의 가슴을 열어 주리라.
사랑하였다고,
사랑하고 있노라고
사랑하다 가노라고--.
당시 생각으로는 내가 마약 무사히 퇴원을 하게 된다면 다시는 술을 안 먹거나 절주 하리라. 아침에는 언제나 일산 호수공원을 건강을 위해 걷거나 조깅을 하리라고 맹세하였건만, 그것도 얼마 지나니 흐지부지 도로 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그러다가 대장검사를 한 것이다. 그 자세한 검사 결과가 1주일 후에 나온다 해서 그 예약을 하고 왔다.
나는 지금 의사로부터 금주 선고를 받을까 보아 두려워하는 나날인데, 아내는 그때 만사를 제폐하고 따라나설 모양이다.
의사가 여의사이니 '요번에는-' 하고 아내는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이길 희망은 전무하니, 나의 음주 인생은 이제 마감해야 될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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