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하(甲天下) 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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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계림산수촬영정선 이강출판사무찌르자 오랑캐 몇 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초개(草芥)로구나 -. 6.25 동란 때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몰려오는 중공군을 이렇게 노래 부르던 우리는 계림에 어제 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손녀일지도 모르는 중국 처녀에게 발마사지로 노독을 풀었다. 인생유상(人生有常)이었다. 계림프라자(桂林觀光酒店)에서 일어나 호텔식을 하고 드디어 밖을 나섰다. 여행은 밤에 도착하여야 다음날 관광의 멋을 만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계림 시내 관광길에 드니,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들이 뿌연 안개 속의 이국적 풍치를 돋구어 중국 관광의 절정이라는 계림 이강의 선상 유람에 대한 기대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당송팔대가 중의 한 분인 소동파는 '願生高麗國見金剛山(원생고려국견금강산)'이라 하여 고려국에서 태어나 금강산을 보고 싶다고 하였듯이, 우리도 세계인이 가보고 싶어 열망하는 계리(桂林)에 우리가 와있는 것이다. 우리의 금강산은 1만2천 봉인데 계림 봉우리는 무려 10만 여 봉. 그중 3만여 봉이 우리가 가기로 한 이강 저 아래에 몰려 있다 한다. 우리 나라 진안(鎭安)에 가면 만나보게 되는 말 귀 같이 생긴 마이산(馬耳山)의 모습 수백 배가 모여있는 곳이 계림이다. 3억 년 전 무렵에는 계림 지대는 바다여서 석회질 부분이 물에 녹아버리고, 남은 바위 봉우리가 지각의 융기 작용에 의해 솟아올라 저렇듯 능선이 없는 봉우리가 산 속 아닌 평야에 여기 불끈 저기 불끈 기암 기봉의 모양이 되었다 한다. 산이 봉우리요 봉우리가 그대로 산이었다. '계림에서 와서는 경치 자랑은 하지 말라.' 하였다. 그래서 옛부터 '桂林山水甲天下'(계림산수 갑천하)라 하였고 이곳 그림이 그대로 중국 산수화의 대종을 이루었다고 한다. 계림 관광은 사계절 중 어느 때 찾아와도 제 각각 멋이 있다. 봄철 아침 안개 속에 비치는 햇살을 뚫고 배를 타고 내려가다 마주치는 평야에 치솟은 봉우리와 그 뒤의 봉우리들은 수천 년 전의 세상 속을 찾아 드는 것 같고-. 여름철에는 시원한 강바람 속에 펼쳐지는 맑은 날의 초록빛의 봉오리들과 물에 비췬 봉우리 또 봉우리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고, 겨울 안개 속에 펼쳐지는 보일 듯 말 듯한 첩첩한 기암 기봉을 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심산 유곡에 들어선 듯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한다. 그래도 무엇보다 갑천하 품천하(甲天下品天下)계림의 풍광은 가을 경치가 제격이라 한다. 시내 가로수로, 이강 가에 무성한 계수나무 꽃이 하양 노랑 빨강으로 어우러져 흐드러지게 피는 때라 꽃향기가 천리 만리 풍겨 나온다. 2,000년 전 이곳을 찾은 진시황(秦始皇)이 계수나무 숲의 고장이라 하여 '계림(桂林)'이라 하였다. 이 꽃으로 빚은 술이 이 고장 특산물인 계림의 명주 '삼화주(三花酒)'다. 우리가 서울을 떠나올 때는 32년만에 내린 큰 눈을 보고 왔는데, 이곳은 남쪽이라 자목련과 노란 유채 꽃이 만발한 것을 보니 막 시작되는 이른 봄이었다.리
강 선상 관람은 상비산(象鼻山)으로부터 시작된다. 상비산은 '이강'과 '도화강(桃花江)'이 합류되는 곳으로 도심에 있는 공원이다. 강으로 면한 바위 모양이 코끼리가 코로 이강의 물을 먹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 하여 '상비산(象鼻山)'이라 이름하였다. 그 정상에는 높이 13.5m의 보현보살탑(普賢菩薩塔)이 보인다. 바로 앞 강에 대나무로 엮은 긴 뗏목 같은 배 위에는 두 마리 가마우지가 묶인체 조용히 앉아 있다. 가마우지는 길들인 고기잡이 새로, 밤이면 불을 밝히고 가마우지가 물고기 잡는 모습을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얼마의 돈을 받는다. 우리 나라 백령도 '두무진'에 가면 볼수 있는 새다. 강심 속에 땅이 보이는 부근에는 수천 마리의 오리를 한가로이 방목을 하고 있고, 모래 채취를 하는 모습, 해초를 채취하는 모습, 강가에서 남녀가 빨래하는 모습 등을 바라보면서도 우리는 시간이 갈수록 실망을 더해가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안개는 강가에 끼어서 산하를 가리다가 시간이 되면 경치를 되돌려 주는 그런 안개가 아니라, 계속되는 찌푸린 흐린 날씨의 운무(雲霧)였다. 더구나 요즈음은 겨울철 갈수기라, 계림 최고의 경치라는 '양삭'까지의 6시이 아닌 3시간뿐인 선상 유람이라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관음동굴' 부근에서 볼 수 있는 네 겹 다섯 겹 이상으로 보인다는 중국이 자랑하는 천하 절경의 모습은 겨우 봉우리 뒤에 봉우리일 뿐 계림산수의 비경은 우리에게 을천하(乙天下) 정도도 허락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가이드는 조선족이면서도 중국을 '우리 나라, 우리 나라 ' 되풀이 하는 정도로 우직한 사람인데다가, 별로 아는 것도 없고 거기다가 과묵까지 하여 물어보면 대답하는 정도의 사람을 만났으니-. 그러나 계림의 이런 경치는 좋은 날씨에 속한다는 그 사람의 말로써 위안 삼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계림의 산하를 보러 국내외 관광객이 연 800만이나 모여든다는 이 명승지에 와서의 실망은 다음날 날씨가 드는 틈을 타서 모든 일정을 폐하고 되짚어서, 이번에는 버스로 다시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낭만(浪漫)'이란 이국적, 목가적(牧歌的), 자연애와 동경적이라던데, 낭만 아닌 실망으로 '계림산수 촬영 정선'이란 사진 책자를 사서 보는 것으로 감탄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먹어 여행은 온 곳은 다시 또 올 수 없는 건데, 찾아올 여유가 없는 건데 하면서.
甲天下 品天下의 이강에 배 띄우니 달려오는 저 風景 山인가 봉우린가 桂林선 자랑 말라던 景致가 저 景致ㄴ가.
물아래 잠긴 峰들 峰 뒤에 또 봉우리 稜線은 어디 가고 峰들만 서있는가 흐릿한 날씨 탓했더니 겨울 모습이라데. -2001년 2월 19일 중국 계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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