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팔라우(Palau) 여행(1)/ 남태평양 섬나라

ilman 2012. 12. 31. 09:42

 

팔라우(Palau)  여행(1)/ 남태평양 섬나라  

 

정년한 후 약간의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자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아내와 약속을 하였다.
더 늙기 전에,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가급적이면 먼 나라부터 떠나자고-. 그래서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 호주 대륙을 전전하다가 최근에는 아세아의 인도, 네팔,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적지 않은 곳을 다녀왔다. 영어 실력이 짧은데다가 배낭여행을 떠날 나이도 아니어서 우리는 투어(tour)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가이드가 한 번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 우리들 늙다기에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러면서도 거금을 투자하는 것이 너무 아까워서 여행 후기를 쓰기 시작하다가 이제는 글을 쓰기 위해서 떠나는 여행작가라는 명함을 갖고 다니게 되었다.
그래서 녹음기와 디카, 캠코더를 가지고 기록하며 다니면서,'가 본 사람에게는 추억을', '가 볼 사람에게는 꿈을' 주고 싶어서 오래 전부터 해외 여행기를 써왔다.
  글도 구색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모든 나의 여행은 짐을 싸고 풀며 이곳저곳 다니는 투어 여행이었으니 요번에는 아내와 함께 휴양을 겸한 섬나라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그 중에도 이름도 생소한 섬나라  팔라우(Palau)를 선택한 것이다.  팔라우는 우리에겐 미지의 나라다.  적당한 모험을 즐길 수도 있는 미개척지로 자연과 인간이 동화되는 곳이다. 내가 어렸을 적 자란 곳이 바다가가 굽어 보이는 인천의 수도국산 달동내 약우물터이어서 수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도 있고, 아내도 수영장을 3년 이상 다니는 중이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물속의 세계를 넘보고 싶다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팔라우'를 향하게 된 것이다.

*. 팔라우(Palau)란 나라 
  
  어젯밤 인천공항에서 떠나 4시간 30분만에 일본의 규슈 상공을 지나 팔라우 공항에 꼭두새벽에 도착하였다. 이 정도 거리면 시차도 바꿔야 할 텐데 한국과 시차가 같았다. 적도(赤道) 바로 위인 이 나라는 한국과 경선[經線, 날줄]이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도 일주일에 목, 월요일만 운항하는 아시아나 소형 비행기였고,  여기에 맞춘 듯이 팔라우의 코롤공항도 한국의 지방 시외버스 터미널 수준 정도의 시설이어서 모든 것을 수작업에 의하여 입국 수속하는 국민소득 3,000불 내외의 가난한 나라였다.
  팔라우 공화국(Republic of Palau)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397.00m)보다 조금 더 큰(508㎢) 섬으로 인구 1만 9,700여 명이 사는 나라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 중 198째로 작은 34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 섬 중 유인도는 12개인데 그중 제일 큰 바벨 투아(Babeldaob) 섬에 공항이 있다.
바벨 투아 섬(370㎢)은 강화도(405.2㎢)보다도 훨씬 작은 섬이다.
섬의 최고 해발고도라야 서울 남산(262m)보다 낮은 217m이다. 이 나라 인구의 3/5이 산다는 옛 수도 콜롤(Koror)은 이 섬의 남쪽 680m 지점에 있다,

이 섬에 일인(日人)들이 조성한 항구와 TV , 레디오 방송국, 병원이 있다. 지금의 수도는 2006년 코롤에서 멜레케오크으로 옮긴 모양이다. 그런데도 이 섬이 '천상의 바다 정원', '천상의 섬', '신의 오아시스', '세상의 모든 바다가 질투하는 섬나라' 등으로 불리며 크게 알려진 섬나라가 팔라우였다.
팔라우는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가 보아야 할 50 곳' 중의 제2위라는 호주의 유명한 '대보초'를 제치고, 세계적인 해양 전문가 단체인 CEAM이 '세계 최고의 해양지역' 세계 1위로 선정한 나라로 다이버와 낚시꾼이 꿈에도 그리는 천국이다.
아직은 문명에 덜 때 묻은 소박하고 자연적인 나라이기여서 여행자의 동경의 대상인 섬나라가 되었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지금은 다 큰 양(羊)이 된 옛 제자(김유철 전무)가 내 아내인 사모님의 칠순기념 여행이라고 우리에게 특별히 주선해 준 팔라우 퍼시픽 리조트(PPR)다.
이 호텔은 팔라우에서는 유일하게 태평양의 산홋빛 자체 해변 비치와 선착장을 가지고 있는 최고급 호텔로 제자 덕분에 VIP 고객이 되어 4박 5일을 여기서 머물다 가게 된 것이다.
좋은 것은 이름값을 하는 법이다. 조식 뷔페식당의 풍성함은 물론 화장실의 비데까지 갖추어진 객실이 있다.
태평양을 향해 뻗어 가는 더할 수 없이 투명한 푸른 바다는 완만한 고운 백사장인데 어떤 처녀는 거기서 커다란 바다거북을 보았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열대 지방이라서 바닷물 수온도 25도 정도다. 이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면 호텔 야외수영장은 민물이어서 샤워장이 따로 필요 없었고 그 옆에는 야외 온천스파가 있어 몸을 따뜻하게 데울 수도 있다. 그 바로 옆에 큰 타월을 수시로 무료로 빌릴 수가 있어 몸을 가리고 고급 파라 숄에 누어 저 멀리 거북이 모양의 작은 섬을 바라보게 한다.
먹이 같은 아주 작은 섬을 옆에 둔 거북 모양의 이 섬 위에는 환상적이 야자수 한 구루가 우뚝 솟아 있어 유토피아와 같이 멋지다. 이를 바라보며 남국의 정취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그런 고급 레조트였다.
 어제 밤 늦게 인천공항을 떠나오면서 밤을 기내에서 설친 잠이라 우리는 느지막하게 쉬다가 야자수 우거진 호텔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둘러보다가. 11시부터 팔라우 관광을 위해 호텔을 나섰다.
  팔라우 시내 관광은 한국의 70년대를 뒤돌아보게 하는 소박하고 순수한 시골 풍경 같았다.
시내 관광에서는 초등학교 건물 정도의 옛날의 대통령 집무실이었다는 1층집, 아름다운 산호섬, 젤리 피쉬, 희귀 바다 생물 등 팔라우의 해양생태계 등을 한눈으로 볼 수 있다는 아쿠아리움(수족관) 등을 볼 수 있다는데, 이 나라 뭍에서는 볼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이 거의없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바다로 향한다.

우리는 뉴욕이나 파리를 보러 온 것이 아니라 팔라우 그 자체를 보러 온 것인데-.

*. 아이고 다리(bridge)

 파라우의 옛 수도 코롤을 지난다. 이곳은 UN이 자연보호를 위해 건축을 제한하는 나라여서 이 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라는 코롤에도 2층 이상의 건축물은 호텔 이외에는 거의 없어 초등학교를 다니던 1940년 대 후반 나의 고향 인천을 생각게 하였다.
코롤 동쪽 끝에 다리를 지나는데 이곳이 '아이고 다리

(bridge)

'라는 말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

'아이고'란  아프거나 힘들 때, 놀라거나 원통하거나 기막힐 경우에 나오는 우리들의 한탄의 소리인데 이 이역 땅에 어떤 연유로 이런 이름이 생겼는가.
  이 아름다운 남국섬 나라 팔라우에도 일제 강점기였던 한국처럼 슬픈 역사가 있었는데 그게 우리나라와 공유하던 시절이었던 모양이다.
1543년 에스파냐 항해가(R.L. 비얄로보스)가 이 섬에 온 뒤로 300년 동안 에스파냐령이었던 팔라우는 그후 부근의 다른 제도(諸島)와 함께 독일에 팔렸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망한 후 일본이 지배하던 제2차 세계대전 무렵 일본은 필라우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그 무렵 조선총독부는 1936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15세의 소녀 10여 명을 종군 위안부로,  토목공사를 위해서 전라도에서 200여 명의 노무자들을 이곳에 강제로 징용하여다가 이 다리를 세우게 하였다. 한국노동자들은 이국땅에서 혹독하게 왜놈들에게 시달리면서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다리야!' 하며 이 다리를 세우던 그 소리를 원주민들이 듣고 이 다리를 '아이고 다리'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이 팔라우는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격전지가 되어 미군이 공습해 오자 일군(日軍)은 섬 중앙의 석회암 동굴에 숨어 2개월 보름이나 미군과 격전을 벌렸다.
그때 일본군 1만여 명과 1,800명의 미군의 전사자를 낸 댓가로 1947년부터 미국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그러다가 팔라우는 1994년 10월 1일 독립국가가 되어 그해 12월 UN에 185번째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태평양 당시 왜놈에게 우리의 젊은이 1,000여 명이 강제 징용당해 강제 노역을 하던 곳으로 1995년에 수교한 나라다. 북한과는 수교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에서 쓰는 화폐가 US달러요, 국방도 미국이 지켜 주는 나라여서 이 나라에는 군인이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자연스레 미국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로 살게 되었다.

*.낚시의 천국 팔라우
 우리들의 제일 처음의 팔라우 관광은 열대과일 농장 견학이다.
이 농장으로 가는 차는 관광객을 위해 조잡하게 개조한 트럭으로 옛날 '아이고다리'를 놓을 때 한국노무자를 싣고 가던 차를 연상케 한다.
비포장도로를 한 10분 달려가니 '에밀릭 농장'이 있고 그곳을 관리하는 한국인 최씨가 노니 및 열대과일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그 후 열대과일을 시식하게 하여 주어 아침에 호텔 뷔페에서 먹은 열대 과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여 준다.
시식 후 우리나라처럼 과일을 팔아먹으려고 하지나 않을까 하였더니 그게 아닌 것이 고마왔지만 먼 나라에 와서 이런 정도를 견학으로 보내는 2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그 시간에 시내 관광이나 하였으면 오죽 좋을까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시내 관광에는 입장료를 내는 곳이 있어서 생략한 것은 아닌지-.'
저녁 식사 후에는 밤낚시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
'
물고기 한 마리가
구름

사는 세상 보고 싶어
춘하추동
하늘

그리다가
강을 열고 나왔네.


1998년 일산에 수로에서 월척(越尺)을 하고 쓴 나의 시다.
소년 시절 나는 인천 앞바다에서 망둥이를 잡으면서 컸다. 젊어서는 청평에 가서 견지낚시를 하며 지냈고, 노년에는 서해에서 우럭을 잡으러 다녔고, ,일산수로에서는 참붕어를 잡던 시절 월척을 다섯 수나 한 낚시꾼이다. 그러다 생명체인 고기를 먹지도 않으면서 취미로 잡는 것이 죄를 짓는 듯하여 낚시를 버리고 산행(山行)으로 소일하던 산꾼이 되어 금년에는 '국립공원 산행 Photo 에세이'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곳 낚시배는 최소 6명 이상이어야 출조하는데 우리들은 남성 5명 여성 9명 총 14명이었다. 여성들은 바다낚시보다 자연산 회나 맛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낚시는 축구공 만한 도르래에다 돌잡이 손가락 만한 커다란 낚싯바늘에 미끼로 한치 머리만한  크기의 미끼를 낀다. 다음은 사이판에서 낚시로 소일하다가 이곳에 와서 6년째 낚싯배를 운영한다는 김씨의 말이다.

"팔라우 바다는 343 개  섬으로 둘려 쌓여 있어서 파도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아울러 밀물 썰물 이외에는 조류가 없이 잔잔한 바다로 낚시꾼의 천국이랍니다. 이곳은 태풍이 생기는 곳이어서 태풍의 피해가 없은 지역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바다를 향해 양반다리하고 앉아서 10m 정도로 낚시 줄을 바다 깊이 넣어서보세요. 뽕이 개펄에 닿거든 팽팽하게 하여 고패질을 하지 말고 그냥 두고 기다리세요.
고기가 입질해도 그냥 두세요. 여기는 큰 고기를 잡는 곳이지 작은 고기를 잡은 곳이 아니거든요. 여기서는 입질할 때 재빨리 채는 고기가 아니라 물고 달아날 때 끌어 올리는 낚시랍니다. 이곳 고기들은 한국의 바다 고기와 같이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지 않은 순진한 고기들입니다.
이곳에서 낚시 배, 그것도 밤낚시를 띠우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거든요."

  이 배에는 우리들 이외에 현지인 5명이 더 탔다. 운전하는 이, 포인트를 찾아 배가 이동하면 닻을 올리고 내리는 이, 낚시 미끼를 끼워 주고 빼주는 이, 회를 뜨는 사람과 낚시 지도를 하는 캡틴이다.

 

포린트에 이르자 배가 시동을 끄고 낚싯배가 닻을 내리어 고정되자 이곳저곳에서 '우- '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어를 잡겠다는 꿈을 안고 고국에서 릴대와 바다 낚시용 프랑스제 미첼까지 준비해온 나에게도 입질은 오지만 캡틴의 말처럼 끌고 가는 대어가 없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채 보아도 바늘이 커서 허탕이었다. 
잡는 이가 적으면 15분 간격으로 배를 옮기는 것이  반복되는 동안 밤하늘에 별은 쏟아져 내리는 별빛은 아니었다. 달밤이어서 그런 것도 같고 아니면 흐린 날씨여서 그런 것 같았다. 20cm급 고기를 3마리를 잡았는가 했을 때 고함을 지르는 이가 있다.
59cm급 대어를 잡은 것이다. 그렇게 큰 고기를 잡는 것을 가까이서 본 것도 처음이었다.

다음은 우리가 잡은 고기로 회를 떠서 소주와 캔 맥주와 함께 마시는 시간이다. 점심 전에 다녀온 슈퍼에서는 카스 맥주는 1.3불이지만 소주는 6.95불 하는 진로 소주였다.

이곳에는 한국교민이 100 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이 경영하는 한국 식당은 4개다. 거기서 12,000원에 팔고 있는 우리의 술 진로소주도 여기서는 푸짐하였다.
이곳의 모든 물건은 거의 다 수입품이고 주 수입원이 관광수입이어서 물가가 아주 비쌌다.
 오늘 저녁을 먹고 온 곳의 한국 교민 주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 드시고 있는 것 중 팔라우산은 고추와 오이뿐이랍니다."
감불청고소원(敢不請固所願)하던 회(膾), 그것도 자연산에다가 목숨을 걸고 마시던 술을 남태평양에 밤배를 띄우고 먹고 마시고 있으니 술꾼에게 이보다 더한 행복도 있을까.
다만 아쉬운 건 내가 대어(大漁)나 다어(多漁)를 하지 못했구나 하는 낚시꾼의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낚시를 하는 동안 아내는 코코넛 오일마사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향기로운 코코넛 오일을 사용하여 남국의 전문 마시지에 의해 피로를 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억울한 것은 전신 마사지를 US 35불이라 해 놓고 발마사지를 하려면 추가 요금 20 달러를 더 내라 한다. 동남아 어디에서도 없는 제도다.
이 나라 사람이 전신이라 하는 말이 다리와 발은 제외하는 말이 아닐 터인데.
                   

 필라우(Palau)

여행(2) 남태평양 섬나라 

*. 돌핀 퍼시휙 (Dolphin Pacific) 투어

  우리는 호텔 전용 선착장에 수영복 차림으로 나가서 구명복과 어제 원주민이 깨끗이 닦던 물안경과 오리발을 준비했다. 그걸 준비하는데만도 각자 10불을 주어야 했다.
'락 아이랜드'로 가는 길에 '돌핀 퍼시휙 (Dolphin Pacific)' 투어를 먼저 한다. 돌핀이란 돌고래의 영어다. 

 돌핀 퍼시휙은 물 위에 나무로 만든 길로 들어간다. 우리들을 일제히 함께 들어가지 않고 일행을 나누어 들어가게 한다.
돌핀 투어는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돌고래와 1: 1로 만나는 것이어서이기도 하였다. 그곳의 일본인 여 조련사의 도움을 받아 돌고래와 인사를 나누는데 돌고래는 물벼락으로 인사를 대신하여 카메라에 특별한 주의를 해야 했다.

 

돌고래가 우리를 낯설어 하지 않게 되면 돌고래와 키스나 악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다.
돌핀 심포니(Dolphin simphony)에서의 하일라이트는 돌고래의 지느러미를 잡고 돌고래와 함께 헤엄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는 곳이다. 물론 구명복(life jacket)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단체 투어 여행이라 이는 생략되고 말았다.
이렇게 지금까지 보아만 오던 돌고래가 아니라 만질 수도 있고 키스할 수도 있고 함께 수영할 수 있어서 '돌고래와 가까운 만남 투어'(Dolphin Close Encounter tourd)라고도 하는 곳이다.

*락 아일랜드(Rock islands)

쾌속정(스피드 보트)을 타고 팔라우 관광의 하이라이트 중에 하나라는 락 아이랜드(Rock islands) 로 향한다. 태평양의 마지막 휴양지요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라고 극찬하는 곳이다.
이 바다 일대는 2009년 UN총회가 세계 최초로 상어 보호구역으로 선포할 정도로 환경이 깨끗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은 1978년 서양인에게 알려 지기 전까지는 금단의 섬들이었다.
락 아이랜드(Rock islands) 섬들은 원시림으로 뒤덮인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으로 버섯모양의 올망졸망한 작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다.
태풍이 형성되는 지역이어 이 섬들에는 태풍으로 연마된 기암괴석이나 절벽은 없는 대신에 조류로 인하여 빙 둘러가며 잘록하게 패인 모습이 섬 하나하나가 하나의 분재(盆栽)로 보이는 것이 그 푸른 바다는 분재를 받친 수반(水盤) 같다.
 그런 섬이 70여개가 모인 것이 파라우가 자랑하는 팔라우의 '70섬(Seventy of Palau)'인데 공중에서 보면 그 아름다움은 미의 극치가 된다.
락 아이랜드를 향한 스피드 보트는 어찌나 빨리 모는지 그 시원한 남국의 바다 바람이 아내의 얼굴을 소녀로 되돌려 놓게 한다.
해외여행을 크게 나누면 휴양과 투어라고 할 수 있는데 팔라우는 그 중 휴양에 속하지만 정(靜)보다는 동(動)에 가까운 역동적(逆動的)인 휴양처다.
쾌속정을 타고 전속력으로 그 많은 다양한 섬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구비구비를 누비며 다양한 모양의 섬들을 관광하며 다니는 것이 그러하였고, 오리발에 스노쿨린을 하고 물안경을 쓰고 수영하면서 바다 밑을 탐색하는 것이 그랬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구명복을 입고 물에 뜨는 판자를 잡고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동참하게 하였다. 

 

우리의 다음 일정은 1m가 넘는 대왕조개(Giant 크램)를 보는 것이다. 잡아 올린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수중에서 살고 있느 그 모습을 스노클린(Snorkel, 잠수 중 호흡관 대롱)을 착용하고 물안경을 통해 보는 것이니 아쿠어랜드 같은 수족관에서 보는 것과는 질이 다른 깊은 감동을 준다.
가이드는 잠수하여 그 조개의 속살을 만져 보기도 하고, 원하는 이를  끌고 가서 만지게도 하여 준다.
팔라우 바다는 겹겹이 둘려 싸인 섬에다가 조류가 없어서 바닷속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투명하다.

 그래서 물 밑 시야가 15m~ 40m까지도 보조광 없이 볼 수가 있다.
그 모습을 반평생을 카메라와 함께 살아온 내가 어찌 사진에 담지 않으랴.
마침 수중 촬영 장비는 아니지만 비 올 때 방수하는 팩이 있어 카메라를 그곳에 넣고 사진을 찍었더니 대왕조개 하나까지는 찍을 수 있어 안심하였는데 아아, 물이 들어가고 만 것다. 디카의 천적은 물이라 그동안 나를 도와주던 디카가 그 천수(天壽)를 이 남태평양에서 다한 것이다. 디카에 물이 들어갔을 때에는 즉시 배터리를 빼어 주는 것인데 나는 수중에 있었고, 게다가 자이언트 크램에 정신이 팔려서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자이언트 크램(대왕조개) 촬영 댓가로 나를 도아주던 카메라 하나를 버린 것이다.

그보다 더 걱정은 지금까지 찍은 그 귀한 사진의 메모리마저 못쓰는가 했더니 다행히 그것만은 건질 수가 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자이언트 크램(대왕조개) 구경에 이어 산호의 묘지라는 '세먼터리(Cemantery, 묘지)'관광이 이어진다.
물안경은 물론 호흡관 대롱이라는 스노 클린(Snorkel)을 써보는 것도 난생처음이라 대왕조개 구경 시에는 코에 물이 들어와 고생이 되더니 두 번째가 되는 여기서부터는 그 착용의 멋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지게 되었다.
산호의 무덤이라고 하는 이곳에는 수많은 산호 사이를 다양한 열대어가 서식하는 곳이었다. 가이드가 준비한 식빵을 얻어 손에 잡고 있으면 겁 없이 열대어들이 모여들었다.

인간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져서 그걸 기다리던 고기들이었다. 열대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서 팔라우에만 있다는 나폴레옹피쉬가 무언지, 저 꼬리가 노란 고기는 무엇인지 몰랐지만 먹이를 든 손의 손가락까지 무는 놈도 있어서 겁이 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어제 낚시하던 생각이 난다. 작은 고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큰 놈은 간혹 몇 마리가 저 아래 홀로 다니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제 큰 고기를 못잡았구나 하였다.
비가 오고 있었지만 수영복 차림이라 크게 걱정 될 것은 없었다. 올 때 호텔에서 빌려온 대형 타올은 물에 젖은 몸을 보호하기엔 충분하였다.
팔라우 여행 중에 자주 비가 왔다. 그러나 이곳 비는 우리나라 장마비처럼 하루 온종일 아니면 며칠간 열심히 오는 비가 아니라, 소나기처럼 잠깐 잠깐씩 내리는 우리나라에서는 호랑이 장가간다는 그러한 비였다.
우리들은 무인도에 올라가서 가이드 일행이 준비한 바베큐에 김치로 점심을 한다. 바베큐가 이렇게 맛있는가 비로소 오늘 처음 깨닫겠다.
이곳 락 아일랜드는 체험 스쿠버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초보자 코스로는 40분 정도 강사에게 꼼꼼하고 상세한 교육을 받은 후 산소공기통 1개를 지고 30분 동안의 물속을 유영하는 것이다. 이곳이 세계 3대 스쿠버 포인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곳이라는데 다녀온 사람의 말에 의하면 대형 거북과 대형 만타(가오리) 그리고 대형 상어를 본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라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스쿠버의 천국이 파라우요 그중에도 락 아리랜드인 모양이다.
귀국할 때 공항에서 Palau DVD를 35불을 주고 사왔는데 그 내용을 보니 내가 본 팔라우의 아름다움은 팔라우의  1/100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 롱 비치(Long Beach)
우리 나라의 진도의 모세의 기적이라는 길처럼 조류가 빠지면. 남태평양 한가운데 바다로 죽 뻗은 800m의 모래톱이 형성되면 관광객은  환상적인 그 모래길을 거니닐 수 있다는 곳이 '롱비치(Long Beach)'다.
그 길은 발목서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얕은 바닷물길이 되기도 하여 그것을 거닐거나 달리기도 하며 바다와 하늘과 인간의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로 자연과 일체감이 되게 한다는 곳이다.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런데 꼭 가보아야 할 팔라우 관광의 명소 중에 하나인 롱비치를 여기서는 먼 곳이었는지 가이드는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비가 오고 있으니 생략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우리들이 꼭 가보아야 할 곳이지만 그들의 편의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고국에 돌아가서 그곳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 어쩌냐 ? '하는 . 나의 말은 외면 한 체. 
 
산호 무덤이라는 시멘트 터리(Cemantery, 묘지)에 이어 써브 레이크를 한다.

 앞서 말한 세계2차 대전에서 침몰된 전함을 물안경을 쓰고 스노클링으로 구경하는 것이다.
20m~30m 급의 옆으로 누운 녹슨 전함 위에 아름다운 고기가 무심히 노닐고 있었다.
카메라가 고장나서 그 모습을 찍을 수도 없었지만 카메라가 있다 해도 그걸 찍기에는 군함은 너무나 컸다. 그래서 위 사진은 팜푸릿에서 구한 2차 대전 중에 침몰한 전투기의 잔해다.
이 나라에서 수출하는 것이 농산품 이외에는 고철뿐이다. 이곳이 제2차세계대전의 격전지여서 부서진 탱크, 침몰한 배, 대포 등이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6.25 전쟁 후 일본에 고철을 수출하던 1960년 대 우리 나라를 뒤돌아 보게 한다.

*. 밀키 웨이(Milky Way)
 락 아일랜드 주변은 풀라우에서도 가장 섬이 촘촘하게 붙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조류의 흐름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산호가루가 가라앉아서 그대로 머물러 있다.
그래서 바다가 밀크 색깔이라 하여 '밀키 웨이(Milky Way)'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곳에 도착하면 가이드는 잠수해서 바닷 속에 침전되어 있는 우윳빛 산호가루를 퍼다가 배 위로 올려 주면 관광객들은 이 천연 산호가루를 온몸은 물론 머리에까지 바르며 즐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산호가루인 머드팩이 꾸득꾸득 해지게 마르면서 그 과정에서 우리들 피부의 노폐물을 흡수한다고 한다. 그러면 바다에 풍덩 뛰어 들어서 산호가루를 바닷물 속에 다시 털어내는 것이다. 산호가루는 밀가루보다 더할 나위 없이 고왔다.
그런데 비가 오고 있어 마르기를 기다릴 수가 없음인지 바른지 몇 분도 되지 않아서 바다에 뛰어내리라 한다.
우리는 그 과정만 거친 체 안내인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는 잠시 선생(先生)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퇴지의 '師說(사설)'이란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생이란 어떤 사람인가.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도를 깨우친 사람이다. 나보다 늦게 나서도 나보다 먼저 도를 깨우친  사람도 우리들의 스승이다. 그때 우리들은 그의 도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위 말이 맞는다면 가이드도 선생이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먼저 이곳에 와서 어떻게 하는 것이 관광객들을 위하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가야할 곳을 가지 않거나, 여행비 이외에 거금의 옵션까지 내면서 바다 건너 먼 곳을 찾아온 자기의 동포들에게 그 과정에 소홀함이 있다면 이는 자기 일에 태만하는 것이요, 그것을 자기의 고객이었던 사람들도 지나고 나면 알게 되어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성실을 버리고 건숭건숭하거나 적당히 지나치는 일은 결국에는 자기를 헤치는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특히 투어에서는 현지인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때 현지인의 생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 한국 가이드는 외국 가이드에 비하여 그런면이 너무 소홀하였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떠날 때 우선의 설렘은 이번 여행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하는 여행일까 하는 것이요, 두려움은 혹시나 돈을 너무 밝히거나 안내를 소홀하거나, 안내 자체를 아예 싫어하는 가이드를 만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요번 팔라우에서 만난 가이드는 시종 명랑하고 유모러스하며 관광객을 배려하여 주는 것은 훌륭한데 일정을 소홀히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아침 나절 호텔에 유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해야 유용하게  보내는가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였다.

* Jellyfish Lake(해파리 호수)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시집으로 1923년에 안서 김억이 지은 '해파리의 노래'가 있다.

같은 동무가 다 같이 생의 환락에 도취되는 사월의 초순 때가 되면
뼈도 없 는 고깃덩이밖에 안 되는 내 몸에도 즐거움은 와서 한도 끝도 없는 넓은 바다 위에 떠 놀게 됩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나의 이 몸은 물결에 따라 바람결에 따라 하염없이 떴다 잠겼다 할 뿐입니다.~

위의 시처럼 해파리는 뼈도 없고 바다 위를 우산 같은 몸으로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떠도는 강장동물((腔腸動物)이다. 몸은 우산이나 종 모양인데 2개의 층으로 부유생활에 적합한 모습이다.
해파리는 이렇게 해류와 바람이나 파도,  수축운동에 의해 이동하며 푸랑크톤을 먹고 살지만 어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 우리나라 바다에 나타나는 해파리는 독침이 있어 찔리면 위험하다. 통증은 물론 채찍 모양의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팔라우의 마르크 섬 소금물 호수 젤리호수(Jelly Lake, 산호 호수)에는 바다의 해파리의 독성이 퇴화되어 독 없는 형형색색의 해파리 수백만 마리가 유영하고 있어 이곳 스노클링의 환상적인 체험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해파리가 유영하는 것이 수면 가여서 스노클링을 하다 보면 부드러운 해파리가 몸을 스치는데 이를 손으로 가볍게 잡으면 보드라운 감촉의 이 해파리가 수축작용으로 벗어나려 하는 모습이 귀여워 이젠 팔라우를 떠나 고국을 향하여야 하는 것을 아쉬워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