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Cambodia)란 어떤 나라인가
캄보디아는 한반도의 4/5인 181,035㎦에 인구 1,100만 명이 사는 나라다. 국민 소득이 겨우 330불정도 되는 아시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다.
평균수명이 겨우 50세도 못 미치는 것은 도시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의료 시설이 전무하다 싶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면 몰핀(마약)을 먹는다. 농촌 마을 어디서도 대마초를 누구나 쉽게 구할 수가 있다. 그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입원할 정도의 병자가 생기면 이웃나라 태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라오스처럼 캄보디아 화폐 릴(Reel)보다 태국 화폐 바트(Bait)를 더 선호한다.
캄보디아는 서쪽에 태국, 북쪽에 라오스, 동남쪽에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태국과 베트남의 침입과 지배를 받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슬픈 일은 킬링필드(Killing field)로 알려진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뼈저린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1966년에 제1회 아시안게임이 열렸을 정도로 옛날에는 우리보다 더 잘 살던 나라였으나, 그 동안의 전쟁과 잦은 내전으로 인하여 1970년부터 국가 발전이 멈추어 버려서 지구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가난한 나라 속에 속하고 말았다.
지금도 국토 전역에서는 총칼을 갖고 있는 반대파 무리가 있고, 전쟁 후유증으로 지뢰를 조심해야 하는 나라다.
캄보디아(Cambodia)는 세계에서 AIDS 증가율이 세계 최고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국민들의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하여 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서다.
캄보디아 민족은 크메르족이 90%로 9세기부터 사용하던 국명은 '캄푸치아'였다.
캄푸치아(Kampuchea)는 20세기 침략해 들어온 서구 열강들이 캄푸치아를 불어로 '캄보츠', 영어로는 '캄보디아'로 읽히어 캄보디아가 되었다.
캄보디아 지도를 보면 호주와 비슷하게 생겼다. 라오스와 태국의 국경선을 긋던 메콩 강이 캄보디아 남동부의 '캄푸차 평원' 중앙을 뚫고 흘러가며 만들어 놓은 비옥한 평원 국가이다.
남쪽을 향하여 비잉 북동서 삼면으로 둘러싼 산지가 중앙을 향하여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어 거기서 흘러내리는 모든 강이 움푹 들어간 중앙 호수 톤레샵(Tole Sap)에 모여든다.
그렇게 형성된 이 호수의 지름이 자그마치 400리로, 160km나 되는 바다 같은 호수를 이룬다.
그래서 이름도 이 나라 말로 대호수(大湖水)라는 의미의 톤레삽(Tole Sap)이 되었다.
만약 그 동안 불행한 전쟁과 내란만 없었다면, 메콩 강과 톤레삽으로 형성된 이 평원에서의 3~5 기작(期作)의 농사와 어업만으로도, 아시아의 낙원 중에 낙원에 해당되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프놈펜의 가이드(guide)
프놈펜(Phnom Penh) 공항도 하노이나 라오스와 같이 초라하였다. 그 넓이와 시설은 물론 비행기의 수(數)로도 그러하였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문에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 좌변기 세면대 위에 올라앉은 모습을 그려 놓고 ×표를 해 놓은 것이다. 한 마디로 캄보디아 생활수준이 옛날 우리나라 1960년대 이전임을 알게 하여 주는 것이다.
프놈펜에서 만난 가이드는 ‘보시면 되겠습니다.'나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를 말끝마다 붙이는 30대 초반의 우리 한국 청년 서(徐)씨였다 .
베트남의 어눌한 가이드에서 실망하였었고, 라오스에서 만난 라오스인 가이드는 남방예의지국의 양반 중의 양반인 라오스 사람인데다가, 서투른 영어로 말하고, 그걸 서울에서 함께 간 가이드가 통역하여 말하는 것이라 인터벌도 있어 한계가 있었는데, 캄보디아에서 만난 가이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에다 여행 내내 한 번도 앉지 않고 쉴 새 없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를 즐겁고 행복하게 하여 주었다. 그 동안 가이드에 목말랐던 우리에게는 단비와 같은 사람이었다.
"옛날 이곳 메콩 강이 큰비로 강물이 범람하였는데, 펜(Penh)이란 부인이 있어 떠내려가는 큰 나무 속에 불상(佛像) 3을 건져 이 언덕 위에 사원을 짓고 모셨습니다. 캄보디아어로 언덕이란 뜻이 프놈(Phnom)이니까 프놈펜(Phnom Phonh)의 어원이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그 ‘왓 프놈'(Wat Phnom)은 그 이름처럼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입구에서부터 중앙 탑을 빙 둘러 있는 계단에 우리가 좋아하는 용처
럼, 그들이 좋아하는 나가(Naga:코부라) 조각들이 서 있다.
그 뜰에는 원숭이 가족이 햇볕에 놀고 있는데, 층계 한쪽에서는 한 여자 아이가 새장을 들고 새를 팔고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제비였다.
한 가족이 식구 수만큼 사 가지고 ‘뭐이, 삐, 바이.'(하나, 둘, 셋) 하면서 동시에 휘익 날려 주고 있다. 방생하며 복을 빌고 있는 것이다.
그렇구나, 한국에서 가을이 깊어지면 제비가 강남으로 간다더니, 그 강남 이 바로 여기였었구나. 시내 구경에서도 ‘보시면 되겠습니다.'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는 계속되었다.
"캄보디아에서는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데이트는 없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신랑은 결혼 비용으로는 300만원 정도 준비해야 하고, 여자 집에 가서 결혼 허락을 받아야 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결혼하면 3년 정도 데릴사위 노릇을 하며 처가에서 사는데 능력이 없으면 평생 처가살이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저기 보이는 자전거 냉차 장수가 보이죠? 여기서는 병째로 사 먹으면 비싸서, 비닐봉지에 저렇게 넣어서 빨대와 함께 사 먹는다 것을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캄보디아에 와서 주의 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공짜가 없습니다.
식당의 물도 사 먹어야 합니다. 수돗물을 먹으면 탈이 납니다. 대마초나 아편도 길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가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나라는 공무원 월급이 50불 내외밖에 안 되지만, 정부 고관이나 경찰 간부나 고위층 군인은 수십만 달러 저택에 살고 있고, 그들의 아들은 우리나라 강남의 오렌지 족처럼 호텔을 전전하며 유흥비를 헌 칼 쓰듯이 쓰며 배회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 15세 선장에게 목숨을 맡기고/ 톤레삽 호수에서
버스에서 내려 톤레삽 호수의 노을을 구경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가며 시엡립 강가(Siem Reap River) 양안을 바라보니, 그래도 그곳은 부자 축에 든다는, 배 위에 집을 짓고 사는 가옥들이 많았다.
해머라는 그물 침대가 거기에도 있고, 방 속에 TV도 있구나, 할 무렵 우리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국땅에서 적어도 2시간 이상이나 그 위험하다는 바다 같은 드넓은 물위, 5명 정도밖에 탈 수 없는 이 작고 좁은 배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믿어야 할 사람이 어린이 선장이 아닌가.
여행 중이라 모든 귀중품을 갖고서, 우리들의 목숨을 의탁한 이 배의 선장이 초등학교 6학년의 15살 소년이었고, 그를 돕는 장래에 예비 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는 14살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일몰 구경을 포기할망정, 나는 이렇게 무모한 승객이 되지 않았을 꺼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우리 모두 이렇게 태연자약할 수 있을까?
아무리,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폴폿 정권이 지식인들을 다 죽였다더니 무능하고 무식한 놈만 남아서 그런가. 캄보디아 인이 게으르다더니 그래서 아이들에게 맡기고 어른들은 낮잠이나 자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아까 보니 어른들은 아랫도리만 가리고 다니더니 옷이 없어서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주(船主)란 놈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 하는 약은 수작의 짓거리이리라 생각하니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배가 뒤집힌다면 나는 인천 바닷가에서 태어난 짠물 출생이라, 수영에서 한 가닥 하지만 이 디지털 카메라는 어떻게 한다? 이 캠코더는? 그보다 수영 못하는 우리의 동행들은 어떻게 하지?
하는 사이 이 쪼고만 배는 사방이 수평선뿐인 망망대강(茫茫大江) 속에 닻을 내리려 한다.
해가 지려면 아직 30여분 남았다. 마침 수상 음식점이 있다기에 들렀더니 고기를 잡아 올린다는 독수리 모양의 가마우지가 대 여섯 마리 묶여 있고, 객을 맞이하기 위해 키우는 2m 이상의 커다란 비단구렁이를 꺼내어 목에 두르며 사진을 찍으라 한다.
앙코르 비어(매주)를 2불씩 내고 먹으면, 안주로 여기서 잡히는 새우를 얼마든지 준다 하니, 술을 좋아하는 나 일만(一萬)에게는 천국의 복음 같은 소리라. 낙조에 늦을 새라 서둘러 세 깡이나 들이 마셨다. 그 짭짤한 붉은 공짜 새우를 안주하여.
해가 진다. 바다 같은 수평선 토렌삽호에 붉은 노을이 한창이다.
자연은 이리도 광활하고, 저리도 아름다운데,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세상은 도랑보다 개천보다 적은 가난 속에 묶여 있구나. 저녁은 캄보디아 무희들의 춤을 보며 뷔페에서 하였다. 무희는 물론 거기서 써빙 하는 웨이터들이 이 나라에서는 성공한 사람이란다.
이 캄캄한 밤에 그 호숫가에서 새들처럼 어둠 속에 잠들고 있을 수상 가옥 난민촌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려서다.
새같이 사는 사람들/ 톤레삽
프놈펜에서 앙코르 유적지를 가는 방법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배로 톤레삽 호수를 거슬러 올라가거나, 육로로 가거나, 비행기로 가는 것이다.
그 6~7시간 이상 걸리는 것을 우리는 우리나라 시외버스처럼 지정 좌석도 없는 비행기를 타고 45분 만에 씨엠리엡(Siem Reap)에 도착하였다.
씨엠(Siem)은 '태국'을 일컫는 말이요, 리엡(Reap)은 영어로 '획득하다'라는 뜻이고 보면 씨엠리엡(Siem Reap)은 태국이 점령했던 곳이라는 데서 생긴 이름이다.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에, 인도차이나 반도 내에서 최고의 유적지라는 앙코르(Angkor)는 내일 보기로 하고 캄보디아의 젖줄이 되는 톤레삽 호수의 일몰을 보러 가고 있다.
호수로 이어지는 씨엠리엡 수로 둑길을 버스로 30여분, 배로 10여분을 가는데, 도중 둑 가에 있는 집들은 6.25때 보던 판잣집이 아니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문도 없어 휑하니 안이 들여다보이는 집들은 우기(雨期)를 대비하기 위해 대부분 둑보다 높이 2m 내외의 말뚝 위에 바람이 불면 날아갈 듯한 새 집 같은 집을 지어 놓았다. 여기는 열대지방이라 태풍이 생성되는 곳이어서 장마가 없고, 여름 우기(雨期)에도 한국처럼 종일 열심히 내리는 비가 아니라 2~3시간 오락가락하다가 그치는 비였다.
게다가 겨울 갈수기(渴水期)에는 아래로 흘러가서 메콩 강과 합류한다. 그러다가 여름 우기(雨期)에 접어들어 메콩 강 수위가 높아지면 메콩 강 물은 톤레삽호로 역류하여 자동적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면 톤레삽 호수는 넓이가 배나 늘어나 유량조절을 하여 주는 천혜의 자연 댐의 역할을 하여 준다.
그래서 동남아시아에서 6개국을 흘러오는 제일 긴 강인 메콩 강의 모든 물고기가 톤레삽호로 모이게 된다.
이 호수에 사는 물고기는 800여종이나 되어 캄보디아인의 식단에 없어서는 안 될 해산물을 제공하여 주고 있다. 톤레삽호의 담수어(淡水魚)는 1㎢ 당 8t으로 세계 어느 나라 강보다 많아서 이 나라 경제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새들은 모여 산다. 날개, 부리 하나만으로 물고기를 잡아먹으러 주로 강가에서 모여 산다.
그 새들이 모여 사는 열대 부동항이 캄보디아 씨엠리입호(湖)다.
이 호수에 새보다 더 많이 사는 것이 물론 물고기다. 새에게 잡혀 먹히고, 어부에게 잡혀 먹히고, 큰 물고기에게 잡혀 먹히면서도 물고기가 이렇게 살아남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새끼를 많이 낳는 것이다. 그래서 장어인 경우 새끼를 한번에 20~30만 마리, 대구인 경우 120만 마리 알을 낳는다 하지 않던가.
수상 가옥에서 사는 사람들도 그러하였다. 먼 조상들은 제왕의 무덤인 앙코르 유적을 쌓는데 하루 10만 명씩 동원되어 갔고, 전쟁과 내란에서는 총받이로 싸우다 갔다. 캄보디아인들은 폴폿의 학살까지 겪은 불쌍한 물고기들, 포수 앞의 새였다.
그들이 살아남는 것이 무엇일까? 물고기처럼 계속 자식을 낳는 길밖에 더 있겠는가.
더 이상 가난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집들은 새집보다도 더 초라하였다. 옷으로 타월 같은 것으로 아래만 가리고 사는 사람들이나, 찢어진 옷 그것도 못 입고 맨발로 뛰놀거나, 흙탕물에서 수영하며 놀고 있는 난민촌 아이들을 바라보며, 내 눈에는 그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새였다.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 강가에 모여든 새들이었다. 부리 하나 날개 하나만 가지고.
천진난만하게 재잘거리며 웃고 있는 것은 새들의 나직한 울음소리로 강가에 갇혀 있는 새와 같았다. 영원히 날 수 없는 새, 내일이 없는 불쌍한 새였다.
물고기 잡아먹고
새처럼 살아가요
날개 하나 부리 하나로
새집 짓고 살듯이.
내일이
있다는 것이
사치와 같은 걸요.
호수에 해가 뜨면
새처럼 눈을 뜨고
*톤레샵(Tonle Sap) 노을 보며
새들처럼 잠들지요.
가난이
제일 큰 재산인데
무슨 걱정 또 있겠어요.
- 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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