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천하(甲天下) 하롱베이
우리의 베트남 관광은 하롱베이부터 시작되었다.
하롱베이는 하노이에서 5시간 거리에 있는데 일찍이 프랑스의 유명한 출판사가 세계 8대 불가사의 하나라고 소개하더니, 최근에 유네스코가 세계에서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경승지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주었다.
하롱베이는 그 명칭이 한자로 아래 하(下)자, 용 '용(龍)' 자에다 영어로 만(灣)이라는 베이(bay)가 혼합된 것이다. 이름만 보아도 중국의 지배 천년과 프랑스의 지배 87년 간의 슬픈 역사를 깨닫게 한다.
주위가 1,500평방 킬로미터에 호수 같이 잔잔한 에메랄드 호수 같은 녹색 바다에 솟아오른 각가지 모양의 3,000여 개나 된다는 봉우리는 중국 계림의 경치 몇십 배를 하롱베이에다 모아놓았다는 말에 우리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림의 봉우리들이 이강을 따라 배를 타고 올라가며 바라보는 산중의 경치라면, 하롱베이의 절경은 바이차이 선착장에서부터 희미하게 보이는 선경으로 차츰차츰 가까이 다가가는 스릴과 흥분과 즐거움이 있다.
다가가면 섬 앞에 섬이 있고, 희미한 섬 뒤에 숨어 있던 섬들이 다시 나타나고, 또 그 뒤에 섬이 있고 또 그 섬들이 각가지 모양으로 에메랄드 녹색 잔잔한 바다와 절묘하게도 어울려 다가오고 있다.
배가 선착장을 떠나기 무섭게 조그만 쪽배가 다가와 우리의 유람선에 붙는다. 갓 채취한 산호를 사라고, 혹은 과일, 혹은 해산물을 사라고 조르기도 하는 이색적인 모습이 여정을 돋워 주는데, 여인네의 바구니 보트도 보였다. 바구니 보트란 대나무로 엮은 대형 바구니에 검은 기름을 묻혀 만든 1 인승 소형 보트로 노를 저어 가는 것이다.
일행은 그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카메라만 계속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낚시꾼이라, 낚시란 기다리는 시간 예술이어서 한 번 던져 볼 시간이 없는 나그네 신세인 것을 번연히 알건만 대나무 낚시와 병에 새우 이끼를 5,000동(약0.5달라)에 깎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였다.
멀리 보이는 섬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뛰는 가슴을 안고 타이타닉 연인처럼 뱃머리에 캠코더와 디지털카메라를 활짝 열어두고 끄덕이며 이 에메랄드빛 바다 위의 보석처럼 박혀 있는 이 기암 절경의 수석을 바다에 펼쳐놓은 듯한 필설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선경(仙境)을, 찍고 또 찍었다.
누가 계림에 와서 천하 경치를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이제는 계림의 갑천하(甲天下)라 자랑하던 것을 하롱베이에 물려주고 계림은 을천하(乙天下)가 되어야 되겠구나 하면서.
절경이 시작되나 싶었을 때 막아서는 섬이 있고 그 앞에 많은 배들이 모여있다.
이곳이 항다우고(Hang Dau Go)라는 말뚝 동굴이다.
1288년 몽고 군이 하롱베이로 침투해 오자 이 동굴에 매복하여 있던 베트남 쪈 장군이 말뚝을 박아 썰물을 이용하여 퇴각하는 몽고 군을 수장시키고 대승했다. 그때 군사들이 그 말뚝들을 보관해 두던 동굴이라 해서 생긴 이름이다.
바다 위에 동굴이니, 이 동굴도 계림처럼 먼 옛날에 바닷속에 있던 석회석 바위가 물에 녹았던 것이 지각의 융기 작용으로 솟아올라 저렇게 아름다운 섬과 동굴이 되었으리라.
지리학 상으로 보면 하롱베이는 중국 남서부 석회암 지대가 이어진 곳이다. 북쪽 끝 중국 육지에 솟아오른 봉우리들의 무리가 구이린(桂林)이요, 남쪽 끝 바다 위에 불끈불끈 솟아오른 봉우리가 하롱베이라 한다.
삼척(三陟)에서 만난 환상동굴은 산에서 만난 동굴이었고, 계림이나 고씨동굴은 강가에서 만난 동굴이었는데, 이 동굴은 이국의 바닷속에서 만난 항 다우고(Hang Dau Go) 동굴이라서 그 종유석이나 굴속의 갖가지 형상이 더욱 환상적으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하롱베이에 얽힌 아름다운 전설이 있어 우리의 베트남 가이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비록 베트남 사람이라, 그의 떠듬거리는 이야기는 절반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지만 눌변(訥辯)이 달변(達辯) 보다 나을 때가 있다.
말 못하는 벙어리도 진실한 사랑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이국적인 정취를 더해 준다.
"하늘에 하나님 있었습니다. 이 구역에 관광 내려왔습니다. 아이고, 여기 보기도 좋고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바다도 아름다운데 왜 사람 하나도 없느냐? 우리 사람이 없고 귀신만 있구나. 하늘에 돌아와서 용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내려가서 귀신을 다 몰아 내보내라.
용들이 그 지시로 내려왔습니다. 용들은 적들을 다 쫓아 내고도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바다도 좋고, 물 맑, 여자 많고, 그러니까 이 고장 살고 싶은데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화도 내고 다른 용 내려 보냈습니다. 다른 용 내려가 말했습니다. 왜 당신이 하늘에 돌아오지 않는가? 용 대답했습니다. 아이, 여기서 좋다. 여기서 살고 싶다. 할 수 없이 돌아가서 하나님께 보고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식사하고 있어요. 화가 났습니다. 그럼 거기서 돌아오지 말고 살아라. 식탁을 탁 차 버렸어요. 그러니까 식탁 위에 있는 그릇 음식 바다에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접시 모양, 닭, 새우, 거북 같은 봉우리 되었습니다. 바다에 동굴에 구석구석 용모양 낙타, 용 모양 많이 많이 나타납니다.
하롱베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말로 사진으로 문학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이 바다 깊이 평균 30m, 큰 배 다니는 깊이 100m입니다.
물 맑고 공기 좋고 경치 좋습니다. 5시간 빙빙 돌아가면서 관광합니다."
그래 그런가 산인가 봉우리인가 하는 산들은 각기 모양이 있고 3,000봉우리 중 낙타, 버펄로, 코끼리, 거북, 낙타, 싸움닭 등 이름 있는 봉우리만도 1,000여 개나 된다 한다.
하롱베이의 하이라이트는 띡땁(tig tap의 소련식 발음)이라 하는 곳. 무명(無名)으로 있다가 호찌민 주석이 소련 우주인 띡땁(tig tap)과 함께 올라 관광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서양인들이 수영하는 모습과 벌거벗은 여인들의 몸매를 흠쳐보며 오르다 보니 중간과 맨 꼭대기에 정자가 있다. 새처럼 부앙하여 위에서 내려다보니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바다에서 보던 아름다움을 배가(倍加)한다. 그래서 새들이, 비행기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였나 보다.
수평으로 보이던 점점이 박혀 있는 첩첩 해중의 봉우리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와 녹색 바다와 조화를 이룬다. 무릉도원이 있다면, 유토피아가 있다면, 하늘의 선경이 있다면 이런 곳이겠구나 하였다.
섬들과 섬들 사이에는, 이 바다에서 사는 용왕 같은 커다란 고기를 잡아 바다 가운데 가두어 두고 활어로 파는 장수가 있다. 거북은 150 불, 다금바리는 한 마리에 60불- 하며 웬만한 베트남인의 한 달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너무 쉽게 부른다. 후진국 베트남에 와서 서울의 생선회 값과 맞먹는 것을 그 귀한 달라를 주고 그들의 봉이 되어줄 수가 있는가 하여 생선회 먹기를 포기하였더니, 유람선 주인이 갑오징어를 25불 주고 두 마리를 사 먹으라는데 크기가 여인의 얼굴보다 더 하다.
선상 점심은 가이드가 말하는 대로 튀김도 있구, 나물과 같이 볶음도 있구, 오래오래 끓이는 그렇게 요리해서 먹는다는 갖가지 음식이 있었다.
현지 식이지만 여기도 동양이라, 우리의 구미에 쩍쩍 맞는데다가 그 양과 종류가 푸짐하고 넉넉하였다.
우리는 베트남에서 가장 좋다는 타이거비어를 마시면서, 거기다가 이 남지나 해에서 잡은 수북이 썰어놓은 갑오징어 회를 안주하여, 보석 같이 아름답다는 하롱베이 푸른 섬들이 지켜보는 에메랄드 바다 위 선상에서 우리는 마냥 행복하였다.
우리는 일생 중에 이런 즐거움을 몇 번이나 겪었던가, 앞으로 몇 번이나 경험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중국에만 계림이 있고, 베트남에만 하롱베이가 있는가.
그렇게만 믿는 이 있으면 목포에서 배를 타고 완도를 거쳐 제주를 향하여 가며 우리 남해의 다도해가 얼마나 어떻게 아름다운가를 볼 것이다.
위 두 곳이 신이 자연을 통해 일궈 논 서경시라면, 우리 나라 남해를 뚫고 지나가며 만나게 되는 다도해의 풍광은 자연과 인간이 1:1로 함께 쓰고 있는 서정시요, 서사시의 세계다.
하노이 하롱베이가 월남의 수많은 전쟁으로 계림에게 갑천하의 지위를 물려주고 있었던 숨겨진 비경이라면, 그와 결코 못지않은 우리나라 다도해는 무심으로 잊혀 지나쳐온 비경의 세계다.
그러나 우리 민족도 늦게나마 가치를 바라보는 눈을 안으로 돌리고 있는 현명한 민족이 되었다. 밝은 한국의 미래를 보는 신선한 느낌이다.
신토불이라 하여 곡식, 과일, 육류 등 가장 중요한 식생활에서 우리 것을 제일로 치더니, 과거부터 외제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식의 이 나라 의식 구조에서 코리아의 전자제품이, 화장품이, 담배가 외제를 앞지르고 있다. 품질을 우리부터 인정하게 된 것이다.
연이어 푸대접받던 국산 영화가 관객 동원에서 외화를 제치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식이 남들도 사랑해 주는 법이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반가운 일들인가.
타고르의 말처럼 일찌기 동방의 빛나던 횃불이 그 등불을 다시 켜고 있는 것이다.
귀국하면 달려가서. 우리의 계림, 한국의 하롱베이인 남해 다도해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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