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라오스

ilman 2012. 12. 10. 09:06
싸바이 디, 라오스(안녕하십니까 라오스)
   
   

 마간산의 군사박물관
어제가 월요일이라 휴관하여 못 본 호치민 묘와 호치민 박물관을 둘러 디엔비엔푸(Dien Bien Phu)의 구 병영 안에 있다는 군사박물관을 갔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과 프랑스와 미국과의 투쟁의 역사라, 사이공 함락과 같은 승리의 역사는, 작년에 러시아 전승기념관에서 가서 느낀 것처럼 우리를 부러워하게 하였다.
우리는 승리는감히  엄두에도 못두고 고작 해방이나 기뻐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군사박물관 입구 광장에는 미그21기가 있었고 2층 전시실에는 이것으로 격추시켰다는 미국 B52기의 잔해를 뫃아 놓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중 고마운 것은 우리와 국교 수교 후 과거 그들의 적대국이었던 맹호, 백마부대의 자료를 전시실에서 치워 버린 것이다.
어제 헛걸음하며 허송한 세월은 호치민묘와 박물관과 군사박물관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들러볼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오스행 비행기가 11시 50분에 늦지 않기 위해서 2시간만에 세 곳을 끝냈으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그래서 하노이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하는 60m 높이의 6각형 깃대(旗臺)도 바로 옆에 두고도 생략하였고, 전시실의 일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허나 비싼 돈주고 해외까지 나와서 화를 내며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큰 낭비인가 하는 것을 익히 아는 바라. 라오스 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미련을 버리기로 하였다.
가자,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Bientain)으로!

*사바디 라오스!(안녕하십니까? 라오스)
  우리가 하노이에서 라오스 비엔티엔까지 타고 갈 비행기가 프로펠러 비행기라니 갑자기 으스스한 두려움이 앞선다. 
대구에서 오신 백 개국 이상 해외여행을 다녔다는 80객 황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안전도에 있어서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제일이라고. 비상시에 활강할 수 있어서란다.
라오스 왓타이공항(Wattay Airport)에서 비엔티엔(Bientane) 시내까지는 한 10여 분 정도로 가까웠다.
Bientane(비엔티엔)의 현지 원 라오스 발음은 '위엥찬'(Wieng:도시 Chan:달)이다. 낭만적이게도 '달의 도시'란 의미였다. 이를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이 영어 알파벳 순으로 읽어 비엔티엔(Bientin)이 되었다는 것이다.

라오스는 국민의 90% 이상이 벼농사를 짓는 농업국이지만 관개시설이 부족하여 이웃나라에서는 5모작을 한다는데도 이기작(二期作)도 불가능한 현실하다.
게다가 끊임없는 내전으로 농업국가이면서 식량마저 자급자족이 안 되는 나라다. 슈퍼에 가득한 물건은 모두 이웃나라 태국에서 수입해 온 것이다.
노래도 악보도 없이 외워서 연주하며, 무용단 중에서 여자 역할은 어린 소년이 가 분장하여 대신한다.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시내 웬만한 그림은 직접 그려 붙일 정도의 나라다.
시내에 들어서니 갑자기 조용해진다. 하노이에서 귀가 아프도록 듣던 오토바이 소리도 딱 멈추었고, 높고 큰 건물이 없는 나직한 도시를 마음껏 푸른 하늘이 푹 덮고 있는 것이 한적한 시골 농촌에 온 것 같다.
월남전 때 라오스는 베트콩 편에 서서 무기고 역할을 하여 주는 바람에 미군 폭격기에게 2차대전 때 퍼부은 폭탄보다 더 많은 폭격을 받아서 국토가 초토화되었다더니 그래 그런가 사원 빼고는 큰 건물이 거의 없다. 가로수 우거지 숲의 도시일 뿐이다.
간간이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지나가
는 사이사이에 오토바이 뒤에 인력거를 연결시켜 화려하게 팽키 칠을 한 세 바퀴 차가 이름으로만 듣던 '투투' 로구나.
 

중앙선도 없는 포장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붉은 황톳길이다. 이 나라에 도로는 13,971km뿐인데 그 중 25%가 포장 도로요, 34%가 자갈로 겨우 닦인 길이고 41%가 비가 오면 차가 도저히 다닐 수 없는 진창길이라 한다.
차창밖에 위험하게도 차 뒤에 승객이 매달려 가는 송태우라 불리는 승객용 트럭이 지붕 위에 짐을 가득 싣고 지나간다. 옛날 이집트 피라미드를 만나러 가던 길에 룩소르에서 보던 모습이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 시간이어서 우리는 메콩강 가 현지 음식점으로 향하였다.
메콩강 바로 저 넘어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그래도 제일 잘 산다는 나라 태국이다. 이 나라에 해외자본 중 60%를 투자하고 있다는 나라가 태국이다.
슈퍼마켓에 없는 것 없이 가득한 물건은 이웃 나라 태국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그래서 태국보다 더 물가가 비쌌고, 자기나라 돈 킷(kip)보다 태국돈 밧(baht)을 주는 것을 라오스 사람들은 더 좋아하였다. 인플레 때문이었다.

라오스는 한반도의 1.1배의 나라다. 국토가 사방으로 뺑뺑 둘러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중국과 국경을 접하한 내륙국가다.
인구는 약 620만 명으로 국민 95%가 불교를 믿지마는, 국교가 불교는 아니다. 68개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60%가 라오(Lao)족이라서 나라 이름을 라오스라 하였다.
평균 수명은 54세. 문맹률이 15세 이상 40%인 나라. 정식 국명은 라오인민사회주의공화국이다.
철도가 없는 나라이며, 내륙국이지만 메콩강을 지키는 해군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 50만이 사는 이 나라의수도 비엔티엔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란장거리에 들어서도 고색 창연한 사원과 어울린 가로수와 조용한 거리는 소음과 매연에서 쪄들며 살아온 우리에게는 오래 전에 잃어버린 그리운 고향에 온 것 같아 허락만 된다면 계속 여기서 눌러 살고 싶은 생각까지 들게 한다.
그래서 세계 사람들이 '은둔의 나라' 또는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나라'라고 말하나 보다.
동행한 김교장님이 라오스에 무얼 볼께 있느냐, 무얼 보았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난다고 하지만, 나는 그랬다. 불교사원과 자연뿐, 볼 게 없는 것이 라오스의 볼거리라고.
국토 면적의 70%의 영토가 산지로 가장 높은 산이 씨엥쿠앙(Xieng Khouang)주의  푸비아로 최고 해발은 2,820m에 달한다. 경작 가능 지역이 메콩강 가 겨우 4%이기 때문에 농업국이면서도 자급자족을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GNP겨우 250불, 공무원 월급이 50,000kip로 1불이 900kip이라니 한 달 월급이 5만원 내외의 가난한 나라다. 평균 수명도 46세밖에 안 된다. 의료시설이 거의 없고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는 기차도 없다.
우리 나라와는 180번째 수교국으로 베트남과 같이 한국을 자기 나라 발전의 모델 국가로 보며 한국을 '까오리'하며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라다.
신이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나라라는 방글라데시 다음으로 아세아 최빈국 중의 하나인 나라다.
옛날에는 왕국이었다가 그후에 프랑스의 식민지이었다가 1975년부터 지금은 베트남처럼 대통령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영어로 인도하는 가이드는 내가 평생 동안 만나본 적이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영국풍(?)의 신사였다. 일일이 차에서 내리고 탈 때마다 조심스레 우리들을 보살펴 주는 것은 그대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친절이었다. 이것이 라오스의 예의인가 보다.'*. 라오스인들의 예의
  라오스인들은 시체 부위 주에 머리를 가장 중요시하며, 발은 가장 불결한 것으로생각한다.함부로 남의 머리를 만지거나 귀엽다고 쓰다듬든 것을 금기로 여긴다.그래서 남의집에 들어 갈 때나 사원(왓, Wat)을 방문할 때는 소매없는 상의나 반바지를 삼가해야 하고, 신은 벗어야 한다. 
실내에서는 낮은 의자나 방석 위에 앉돠 남자들은 양반다리를 하고 여성은 다리를 한족으로 모아 앉는 것이 예의다. 라오스 사람들은 손님을 맞이할 때 차나 과일 등을 제공 하는데 호의는 거절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마침 점심 시간이라 찾아간 음식정의 종업원들이 베푸는 서비스도 우리를 편안하고 즐겁게 하였다.
우리가 오래 전에 잃어버렸던 동방예의지국을 먼 이국 땅 라오스에서 찾아낸 즐거움이었다.
이렇게 불교 나라답게 착하고 온순하고 상냥한 라오스 사람들이 메콩강에서 잡은 생선과 라오스 열대 과일인 망고, 바나나, 파파야, 수박 둘리안 들이 무엇인가를 하나하나 물어 보며, 라오스 특유의 전통 요리와 쌀밥 앞에 앉아 황톳빛 메콩강을 바라보며 나는 이렇게 행복하였다. 
이런 행복을 누리며 살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하였구나. 해외 여행은 잘 보고, 잘 먹고, 잘 자는 건데 지금은 호식하고 있구나 하면서-.

*라오스 메콩강의 낙조 라오스 메콩강의 낙조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독립기념문 빠뚜사다. 모양과 크기가 프랑스의 개선문을 닮아서, 아래는 프랑스식, 위는 라오스식 오리엔탈 바로크식인데 덩치에 비해 시멘트의 조잡한 건물인 것을 보면 이 나라가 요즈음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가를 말해 주기 위해 일부러 세워놓은 건물 같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1층 기념품 가게를 지나 전망대까지는 시멘트 층계인데 올라가는 손잡이도 없어 짓다만 엉성한 고층 아파트 같다.
시내 중심 가에 있는 이 전망대 6층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라오스 시내는 건물은 안보이고 숲과 붉은 황토 아스팔트에 드문드문 차가 다니고 집 몇 채가 보일 뿐이다. 독립기념문 빠뚜사는 이름으로 보아 프랑스식민지에서 독립되어 이를 기념하는 기념문 같다.

다음에 찾아간 곳이 불교 나라 라오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라는 왓시켓(Wat Si Saket)이다. 이 사원은 1818연 아노우봉(Anuvong)왕에 의해 세워진 사원이다.
외침이 많은 이 나라에 1828년 삼족의 침입을 용케도 피하여 지금까지 남아있는 옛날 그대로의 유일의 사원이다.
이 사원에는 하나의 불상을 모시는 우리 나라 사찰과는 달리 크고 작은 불상만도 무려 6,840여 개나 모시고 있는데 18세기에 출간 된 경전과 함께 이 나라 국보로 보전되고 있다.
그중 가장 아름답고 귀한 불상들이 있는 본전은 안타깝게도 촬영이 금지되고 신발과 모자를 벗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본전 주위를 비잉 둘러 가며, 또 거기서 약간 떨어져 디귿자 모양의 회랑이 본전을 둘러싸고 있는데, 혹은 좌상으로 혹은 입상으로 등신대의 불상들이 본전 불을 지키듯이 둘러 서 있다.
 

그 중 입구에 있는 두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서서 하는 불상의 말씀이 '이제 전쟁과 내란을 고만하시오.' 하는 모습이란다. 부처 앞에 초록색 한국 정종 병 모양의 크기의 꽃 같은 것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이 나라에서 흔한 바나나 잎을 곱게 접은 것이었다.

길 건너에 있는 왓프릿케오(Wat Pra Kaew)는 '왓'이란 이름처럼 사원이면서도 박물관을 겸한 곳이기 때문에, 라오스 관광에서 빠뜨려서는 안될 명소로 바렌티안에서는 가장 볼 만한 곳이었다. 그 본전 내부도 물론 촬영을 금지하는 곳이다.
본전 중앙에 철불인가 커다란 검은 불상이 주황색 장삼을 걸치고서 수많은 석불과 청동불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곳에 모신 부처 중 유명한 것이 에메랄드 부처 좌상이다.
그 원래 부처는 약탈당해 태국에 가 있고, 1942년에 원형과 동일하게 만들어 모셔 놓았는데 녹색 에메랄드 불상의 크기가 한 두 살 먹은 아이 만하였다.
여행에서는 아는 만큼 보게 된다는데 불상에 대하여 문외한인 나이지만, 불상을 보니 아내 생각이 난다.
자식들 다 여위고 나보다 먼저 친구와 함께다녀왔다 하여 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불교신자 아내다. 그 병약한 아내의 건강을 위해 외국에 나오면 유난히 커 보이는 1달라를 에메랄드 부처님께 시주하였다.
비엔티엔은 메콩강 지류 라오강을 끼고 발달한 남국 도시라. 우리는 야자수와 바나나 잎 우거진 강가가 강너머 서쪽 나라 태국으로 지는 낙조가 유명하다 하여 메콩강 가에 갔더니 지금은 건기라 강심에서는 준설기로 모래를 강안으로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어 내륙국의 하천 사랑을 생각게 하는데, 남루한 차림의 부부가 어린 딸을 대리고 야자 열매를 팔고 있다.
야자는 10m~30m 정도나 키가 크다. 그 위에 시원하게 닥지닥지 열린 열매는 어떻게 딸까?
나무 잘 타는 이가 큰 야자나무에 올라 손으로 가지를 잡고 야자열매를 발로 차 떨군다. 그러면 마제트라는 칼로 야자수의 껍데기를 도끼처럼 내리 쳐서 구멍을 내면, 그 섬유질 구멍 사이로 대롱을 넣어 배젖이라는 야자유를 빨아먹는다.
그러면 그걸 다시 네모진 칼 마제트로 반으로 갈라주면 흰 부분을 숟가락으로 닥닥 긁어먹거나 밥에 비며 먹는다는데 생각처럼 맛있지는 않았다.
이 코아(coir)이라 하는 야자껍데기는 취사용 땔감으로 쓰이거나, 말려서 그릇으로 쓰이기도 한다.
야자 잎은 잘 말려서 지붕을 덮기도 하고 내가 1달러 주고 사서 쓰고 다니는 모자를 엮는 재료로도 쓰인다. 이 야자 열매에는 사탕수수처럼 당분이 있어서 이것만을 갈아 야자캬라멜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 뿌리는 약용으로 쓰인다니 열대지방 사람들에게는 이 야자는 하나도 버릴게 없는 필요하고 요긴한 열대 지방의 경제 식물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가 묻는다. 야자는 일 년에 몇 번 띠냐고? 바나나는 2~3번 번 따고 야자는 1번 딴다고 들은 것 같다.
여행의 다섯째 날 해가 지고 있다. 고국 한국에서는 2시간 전에 진 해가 방금  지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았다.
우리 나라보다 몇 배나 더 좋은 자연적 조건을 갖고 사는 메콩강 가 나라의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까?
나그네 카메라에는 이국 하늘의 불타는 저녁노을이 수없이 계속 담기고 있었다.


동해에 해 뜨고
메콩강에 해지는데

태양 밖에도 사는 나라
태양 속에만 사는 나라

빈부가
그 사이에서
서로 뿌릴 내렸구나.
- 라오스의 메콩강 낙조

*라오스 부인의 술대접

라오스에서도 그중 좋다는 라오스프라자호텔에서 우리는 이틀을 묵는다.
하여 짐싸는 것은 내일로 미뤄 두고 여행가 장선생과 함께 아침 산보에 나섰더니 호텔에서 머지 않은 곳에 고색 창연한 높은 탑이 길을 막아선다.
탑은 너무 후락하여 시멘트로 땜질한 흔적도 군데군데 보이는데 그래도 곳곳에 흙이 흘러내리고 있는 아주 높은 뾰족탑이었다.
탑 주변에는 바나나 잎으로 엮어 만든 정종 병 모양의 화분과 향대가 여기에도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아랫부분이 사각기단인 것을 보면 어제 관광 엽서에서 본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탑 탓담(Tat Dam)인 것 같다.
내 또래의 남루한 모습의 노인이 그 옆을 지나가기에 '헤이-하고 불러 인사를 건네니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라이터를 꺼내 켜 보이며 주려 하였더니 이상하게도 수리해 주겠다는 태도다.
라이터를 그에게 주고 탑을 배경 삼아 함께 사진 한 장을 찍은 다음 천천히 버스정거장 근처에 이르렀더니, 이 먼 이국 땅에서 반가이 내게 인사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일까?
아까 만난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길가 노점 앞에 앉아있었는데 그가 입은 옷보다도 더 남루하고 잡다한 슬리퍼와 고무신짝을 수없이 늘어놓고 있다. 그것을 수리해 주고 사는 노점 상인이었다.
그 바로 옆에 흑인 같이 새까만 피부의 사람이 아내와 함께 말린 야자수 긴 나무에 불을 지피고 있어 그에게도 준비해간 일회용 라이터를 하나 주며 수작을 걸었더니, 옆에서 웃으며 영어로 참견하는 사람이 있다. 위통은 홀딱 벗었고 수건 같은 것으로 아래를 두룬 50대 중반의 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
짧은 영어지만 우리는 서로 의사가 통하여 시간이 있으면 오늘 저녁 7시쯤 여기서 술 한 잔 하기로 부질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더니, 이것이 이 여행에서 두고두고 기억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줄이야.

오늘 일정은 마애석불을 보고 남굼댐(Namgum Dam) 유람 후에 반모 소금마을 들리는 것이다. 시간이 남으면 꼭 찾아가 아까의 현지인과 한 잔 해야지….
차가 시내를 벗어나 달리기 시작하자 남국의 드높은 야자나무 바나나 나무, 열대지방이라선인가 집들이 우리네와 영 달라 보였다.
길은 뻥뚫리어 앞에도 뒤에도 달리는 것은 우리가 탄 차일 뿐 적막강산이다.  
길가 집들이 우리네와 달라서 궁금해 하던 길중, 화장실도 이용할 겸 길가 농가에 들렸더니, 막 중학교 졸업했을까 하는 소녀가 쟁반에 받쳐 컵과 함께 냉수를 내놓는다.
물을 사먹어야 하는 이 나라에서는 친절 중의 큰 친절이었다. 하도 고마워서 갖고 있던 볼펜 중 좋은 것을 하나 골라 주었더니 서울 가이드 미스터 추(秋)군이 한 마디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의 버릇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순수한 저들의 마음의 친절을 우리네 같은 관광객이 있어 뒤바꾸게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렇기도 하지만, 좋은 일하고도 이렇게 무안을 당하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한다지?.
이곳 집들은 방이 땅과 떨어져 위에 있다. 열대지방이라서 그런가 1층에는 네 기둥만으로 비어있거나 아니면 사람은 위에 살고 아래는 가축을 기르거나 창고로 쓰인다.
이 집에서도 1층은 화장실과 부엌 창고로 쓰고 있었다. 목욕탕 욕조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래도 잘사는 집인 것 같다.
화장실은 욕조의 물을 퍼서 씻어내는 것인지 하얀 타이루 변기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물은 파이프 없이 그냥 밖으로 흐르게 도랑을 파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이 옆에 있는 연꽃 핀 연못으로 흐른다. 라오스의
전통가옥을 개량한 집이었다.

비엔티안에서 85km 떨어진 지점에 남굼댐(Namgum Dam)이 있다. 산악이 많은 이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수력발전 시설을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설치할 수 있는 나라였다.
그래서 여기에서 발전되는 전력의 절반은 이웃나라 태국에 수출하고 있다. 전력 수출은 이 나라 외화 벌이의 제 1 순위에 해당한다.
거기서 얼마 안 간 남굼 선창가에서 우릴 태울 배가 기다리고 있는데, 햇빛을 가리울 수 있는 차양이 있는 것 외에 유람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핸들과 그 뒤에 엉성한 쇠 의자를 보니 분명 운전석인 것 같은데 그 앞에 통나무 조각에 밧줄을 감아서 톱니바퀴 대신 배 옆으로 빙 둘러 키를 조정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1,000년 전의 옛날 배를 탄 기분이다. 이걸 타고 가다 고장나면 어쩐다지-.
우리가 누구냐. 그래도 IT산업 세계1위, 조선사업 세계1위, 반도체세계 1위 자동차 산업 세계5위 나라에서 온 코리안이다.
저 멀리 보이는 드문드문 떠 있는 자그마한 붉은 섬과 선착장 사이에 전망대라 하여 훵 뚫린 저 초라한 3층 시멘트 구조물을 보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온 나그네를 위한 선상 유람이라지만 그 배, 그 시설의 초라함이란. 천하절경이라는 하롱베이를 둘러보고 오는 우리 눈높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라 하는 것인가, 하는데 이 낡은 배는 이국 땅 라오스의 젖줄이라고 하는 남굼강(Namgum )의 경치를 돌아 이 남굼강에서 잡은 생선으로 점심을 먹게 되는 남궁 식당을 향하고 있다. 시장기가 돈다.
반모 소금마을에 가까이 오니 어디선가 땅땅 치는 쇳소리가 들린다. 무슨 소릴까?
옛날 이 마을 사람들이 어느 날 우물을 파고 보니, 나온 것은 물이 아니라 천만 뜻밖에도 하얀 소금물이었다.
바다 없는 이 나라의 육지에서 소금물이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던가.
그들은 그들이 믿는 부처님께 얼마나 고마워 감사드렸을까. 아득한 옛날 바다였던 이 곳이 융기 작용으로 이렇게 내륙이 된 모양이다.
그래서 이 마을이 반모 소금마을이 되어 이렇게 관광객까지 부르게 되었다.
입구 높은 탱크 위 파이푸에서는 펑펑 하얀 소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주민들이 이를 받아다가 커다란 구유 같은 쇠그릇에 담아 톱밥에 불을 붙여서 하얀 소금을 구어 낸다. 그 열이 강하고 세어야 하기 때문에 그 옆에 톱밥을 발로 다지는 힘든 작업을 이렇게 매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소금 1Kg을 만들어야 1 달라밖에 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사는 길이요, 유일한 생존 방법이었다.
'땅땅-' 하던 소리는 막대기로 땅땅 치며 구유에 붙어 있는 하얀 소금을 떨궈 내응 그 옆에는 학교를 갔어야 할 15세 전후의 아들이 만드는 소리였다.
관광객의 칭찬을 표정으로 듣고 신이 나서 더욱 힘차게 땅땅치며 소금을 떨궈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버지에게 볼펜을 하나 주었더니 잽싸게 딸이 빼앗듯 채뜨려 간다. 아들이 물끄러미 보는 앞에서.
한 어른이 위통도 벗은 체, 팬티가 보이는 찢어진 남루한 반바지를 입고 맨발로 열심히 톱밥을 밟고 있다.
그 옆에 있는 그들의 잠자리를 몰래 들여다 보았더니 까치집 같은 곳에 여기서는 1달러면 살 수 있는 그물침대 해먹이 그 중 좋은 가구였다.
또 한 사람은 전쟁 때문인가. 그때 묻어놓았다는 지뢰 때문인가. 손마디 하나가 몽땅 잘려 나가 손대신 팔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를 더욱 측은하게 하였다. 그 팔로 소금을 퍼내는 모습이 더욱 그러하였다.
소금마을에 들러오는 우리들의 마음은 어두웠다.
이들이 열심히 밟고 있는 톱밥은 톱밥이 아니라 그들의 고단한 인생이었고, 아이들이 땅땅 소금을 떨구어내려 치고 있는 소리는 삶의 고닲은 아우성이었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달라고 손을 벌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일행 중에는 껌을 나누어 주는 사람, 설탕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개중에는 여러 개를 받아 흐믓해 하는 놈도 있는가 하면, 그걸 못 받았다고 뒷전에서 울고 있는 아이도 있다.
그들 속에는 해방 직후 인천에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하여 '헬로 껌-'하며 손을 내밀던 나의 어린 시절도 섞여 있었다.

비엔티엔으로 돌아 가는 길에 만난 메콩강 다리는 관광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건너가는데, 저 아래 강가에 몸을 담구고서 40대의 한 여자가 미역을 감고 있다.
라오스 전통 숄 하나만 두룬 체 허리를 물에 담그고 몸을 씻고 있다. 상하좌우로 씻고 있다가 가끔씩 손이 남세스럽게도 은밀한 아랫도리를 닦고 있다. 그런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는 짓궂은 사람이로구나.
이것은 라오스 어느 강가에서나 저녁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라오스의 목욕 문화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자마자 혹시나 해서 술을 좋아하는 김교장, 장선생과 함께 약속했던 아침의 장소로 가보니, 길가로 면한 그의 집 정원 돌 식탁 빙 둘러 몇 사람이 어울려 술을 마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정종 병에 약초를 술에 넣은 것으로 보아 그동안 한 잔만이라도 맛보고 싶어 그렇게 찾아 헤메던 라오스 가정집에서 담근 라오스 전통술이었다.
안주 값으로 갖고 있던 라오스 돈 킵(kip 한 4불 정도)을 다 내놓으니 그의 3째 아들이 안주를 사러 가서 회 같기도 하고 쇠고기를 넣어 얼음에 넣은 것 같기도 한 것을 사왔는데 의외로 맛이 있다.
내 옆에는 장선생, 그 옆에는 라오스대학을 나왔다는 40대의 그의 처남, 그 옆에는 우리를 술대접하는 주인 시샵(Sisavpth) 그리고 우리의 김교장님이 자리하고 있다.
후진국에서의 부자는 고위관리 아니면 경찰이나 군인이라더니, 헌병 소령으로 제대한 시샵은 부자였다.
이 길가에 집 3체가 다 그의 집이요, 그 앞에 자동차가 서너대가 그의 것이었다. 
 술을 딸아 주기에 잔을 좀 씻어달라 손짓하였더니 표정이 굳어진다. 예의에 어긋난다는 표정이다.
얼마 있더니 호리병에 담긴 술을 가져오라 하여 먹자 한다. 그걸 한 잔 먼저 먹자고 했더니 마시던 정종 병의 담근 술을 가리키며 영어로 말한다.
'You must finish this wine.' 한다. 두번째로 이 나라 주법를 어긴 것이다. 그래 머리를 조아리며' Ok I understand.'하였다.
저는 라오스식 영어로 하고 나는 부로큰 잉글리시니 서로 피장파장 아닌가.
그래서 그런지 더욱 영어를 쓰기가 편했다. 'After I remember your kindness long long time. '하니 그도 'Ok I understand. '하며 머리를 끄덕인다.
이거다 이거. 문법에 맞지 않으면 어떼. 자고로 언어란 의사가 서로 통하면 되는 거야 되는 거 아닌가.
첫 번째 술이 다하니까 주인 시샵이 집을 향해 큰소리로 누군가를 부른다. 대답과 함께 나타나는 이가 그의 부인이었다.
영화에서나, 귀한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정숙한 미인이었다. 이 나라에서도 돈과 지위는 미녀를 소유하게 되나 보다.
그 귀한 부인이 술잔을 따르기에 누굴 먼저 주나 했는데 반을 따르더니 자기가 먼저 마신다. 그러더니 왼쪽으로부터 차례차례 술잔을 돌린다.
하노이에서 제니파존스를 만났더니 여기서는 미녀 귀 부인을 만난 데다가, 금상첨화로 손수 딸아 주는 술이라. 나는 너무 황홀하고 황송하여 자청하여 몇 잔을 더 마시었다.
주인 시샵은 김교장에게 그리고 나에게 뺨에 입을 맞춘다. 라오스인이 손님에게 베프는 호의인가 보다.
이 고마운 거시기를 어떻게 한다. 그렇다 머시기 하자. 내가 누군가, 카메라맨이 아닌가. 하여 그의 딸과 아내와 고마운 시샵을 카메라에 담으며 말했다. 'If I comeback to korea. I send this picture for you.' 시샵이 말했다. 'Thank you. 우리 셋은 돌아오면서 취중에도 환상적인 이 만남이 얼마나 소중하던지.그러면서 그랬다. 오늘 시샵을 만나니 술도 술이지만, 내 부로큰 영어가 많이 늘었노라고 -.
호텔에 돌아와서 취한 김에 시 한 수 써보았다.
이 열쇠 모양의 나라를 마치 한국을 읊은 타골의 마음이 되어...

꽉 막힌 국토처럼
가난에 갇혔어도

*까올리가 잃은 예절
라오스엔 살아있네
그 열쇠 국토를 여는 날
인도차이나 횃불 되리          
                 
*까올리:코리아를 라오스인이 부르는 말
                --횃불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