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착장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선착장에 내려서 우리는 배를 기다리고 있다.
'사계(四季)'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비발디가 아름다운 고향의 춘하추동을 노래한 것이다.
근처 상점에서는 남세스럽게도 남근과 여성의 몸매를 나렴한 바지를 팔고 있어 이것도 기념 될 것 같아 주인 몰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곳은 서방공개지국(西方公開之國)인 모양이다. 베네치아를 영어로는 베니스(Venice)라고 한다. 모스크바를 영어로 모스코바라 하듯이 내국인과 외국인이 부르는 국명이 다른 경우이다.
베네치아는 섬 나라다.
게르만족의 대 이동으로 이곳까지 쫓겨운 사람들이 1,600년 전 베네치아만(灣) 갈대가 우거진 얕은 석호에 떡갈나무 기둥을 박고 그위에 돌을 쌓아 기초를 만들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112개의 섬들 사이 카날레라고 불리는 작은 수로에 13세기부터 410여 개의 다리와 176개의 운하를 놓아 하나의 '물의 도시'인 인공도시 베네치아를 만들었다.
그래서 하중 때문에 이곳에서는 4층 이상의 건물은 지을 수가 없다.
교통 수단은 바포렛또라는 배를 타고 신비하게도 바닷가 물 속에서 그대로 솟은 중세기의 건물들과 호화로운 궁전과 섬을 연결하는 석교들을 감상하며 30여분만에 베네치아에 도착하였다.
이 섬을 가기 위해서는 메스테르에서 철교를 건너서 기차 타고 베네치아 기차역으로 들어 올 수도 있다.
이 베네치아역에 도착하기 위해서 건너야 하는 846년에 완공되었다는 다리도 지반을 다지기 위해 75,000개의 말뚝을 박아 만들었다 한다. 베네치아에 오니 유서 깊은 세계적인 관광 도시에 자동차나 오도바이가 한 대도 없다.
여기 교통수단은 도시의 버스나 전차에 해당하는 바포렛또나 곤돌라다. 그러니까 도로가 수로인 셈이다.
곤돌라 ( gondola )란 배는 바이킹 배와 같이 배의 이물(앞)과 고물(뒤)이 초생달 모양 휘어져 올라간 조고마한 배로 5~6명을 태우고 뱃사공이 배위 뒤 고물[船尾]에서서 노를 저어 가는 것이다.
승선 비용이 50유로(6만원 정도)이지만 단체 여행 옵션에 있어서, 곤돌라를 타고 1시간 동안 지은 지 1,400년도 더 된다는 운하 양편에 화려한 귀족풍의 집과 다리를 지나며 중세기의 모습을 유람하듯 물의 도시 베네치아 경치를 완상하였다. 이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총길이 3,8km의 S자 모양의 대운하(Canal Grande)를 따라서-.
그 운하의 깊이는 최고가 5m, 폭은 50m였다. 그 운하 끝 부분에 나포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고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이 있다.
*산 마르코 광장 (Piazza di San Marco)
마르코 광장은 베네치아 관광 1번지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한다.
이곳에 서면 우리 남대문 시장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과, 수천 수만 마리의 비둘기가 관광객이 주는 먹이 찾아 몰려다닌다.
이 광장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은 산마르코 대성당을 위시해서 광장 오른쪽에 고딕식 화려한 건축물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이 있고, 그 광장 한 쪽에 100m 높이의 대종루(Campanile)가 있다.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로 오르면 전 시내를 뒤덮은 붉은 지붕들과 거기에 어울린 파란 바닷물과 마르코광장의 비둘기 때의 장관을 볼 수 있다지만 투어여행에서 어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다 할 수 있겠는가.
'성마르코 대성당'이라 할 때 '마르코'란 우리들에게는 '마가'로 불리우는 사도 베드로의 통역 ·비서였던 신약성서 '마가의 복음서'을 지은 사람이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크의 시신을 베네치아로 모셔다가 안치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 성마르코 대성당이다. 그때 현지인들이 너무나 많은 돈을 요구하기에 마차의 맨 아래에다가 시신을, 그 위에다가 돼지고기를 덮어 숨겨 가지고 수로(水路)를 통해 베네치아에 모셔와 안치하게 된 내력을 저 정문 아취 위에 조각하여 놓았다.
자세히 보면 금분 장식은 비잔틴 양식이며, 요란한 첨탑 장식은 고딕 양식이고, 아치형의 정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인데 버섯모양의 지붕은 이슬람양식이다.
이는 당시의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중심 도시가 되어 동서양과 교역하면서 동서양을 아우르던 중세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문 조각에서 유명한 것이 아치 위의 태라스에 있는 1204년에 코스탄티노폴에서 가져왔다는 네 개의 금동 말이다. 하도 귀한 세계의 유산이라서 진본은 대성당 내부에 보관하고 있다고-.
이 건물이 완공된 시기가 11세기 ~15세기라니, 우리 나라 고려때부터 세종 때에 해당하는 시기다.
성당 웅장한 내부는 중앙홀 바닥서부터 벽은 물론 천정까지 그림들 모두가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다.
그린 그림에다가 손바닥 만한 색깔의 돌을 붙였다는 말이다.
* 한숨의 다리 [탄식의 다리, Ponte dei Sospiri]
가이드가 베네치아에 가서 '뽄데'를 보여 주겠다더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는 멋진 다리로 간다. '뽄데'란 이탈리아어로 다리(橋)라는 뜻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의 창에 철책을 한 것이 피옴비 감옥이고, 다리 건너가 두칼레 궁전인데 다리 위에서 보면 저 멀리 난간 위에 지어놓은 다리가 바로 '한숨의 다리'다.
옛날에 죄인이 형을 받고 저 다리를 건너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탈출한 딱 한사람이 있다. 그 위인이 바로 천하에 바람둥이의 우상 카사노바다. 그는 15 개월 옥살이 끝에 탈옥 하였다.
스스로를 '상갈의 기사'라고 자처하면서 빠리로 망명하여 50여년 간 유럽을 떠돌면서, 언어의 연금사라는 별명답게 자유분방하고 재치있는 화술과 넓은 교양, 190cm의 키로 귀부인으로부터 아래로는 하녀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여성과 사귀면서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문학가다.
검은 머리 파뿌리처럼 하얗게 될 때까지 잔소리를 들으며 한 여인과 살고 있는 우리네에게는 꿈 같은 사람이다.
마르코 광장에 카사노바가 탈옥하면서 커피 한 잔을 유유히 마시고 사라졌다는 '플로리안'이 지금은 세계 최초의 카페[커피판매점]가 되어 남아 있다.
대운하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역사가 오래되고, 유명한 다리가 15 세기에 세웠다는 리알토 다리다.
역시 지반을 튼튼하기 위해 12,000개의 말뚝을 박은 다리다.
24 개의 베네치아 특유의 상가들이 자리 잡은 중앙의 작은 배가 드나들라고 만든 아치형의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운하의 모습을 그리려, 사진으로 찍으려 세계의 화가와 사진작가가 모여든다는 곳이다. 우리는 아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 내일은 로마에 입성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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