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로마에 왔네(11)
* . 콜로세움
한국을 떠나올 때 나는 시조동인 홈피에 이런 시를 남기고 왔다.
가슴속에 하나 하나 고운 얘기 보태가며
무엇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노래하며 다닐 때다
사랑하던, 미워하던 이들을 훨훨 떠나서
단 한번 만나는 사람 우리로 삼다가
우리들
그리워 질 때에
다시 돌아오는 거다
-해외여행
여기서 말하고 있는 '무엇'은 '어디에 있는 무엇'을 말함이었고, 그 어디 속에는 스위스도 있었지만, '로마'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이 가장 보고 싶었다.
그 둥근 원형이 중간이 딱 잘린 타원형 모양의 콜로세움이 보이기 시작하니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콜로세움이란 어원은 무엇일까?
로마, 하면 생각나는 폭군 네로 황제의 거대한 황금 동상 ‘콜로소(Colosso)'가 이곳에 있었다.
그 '거대하다’는 라틴어 '콜로수스(Colossus)'에서 유래한 말이 콜로세움이다.
콜로세움은 수많은 히브리 전쟁 포로들을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한 지 8년만인 서기 80년에 완공되었다.
이 고대 로마인들의 뛰어난 건축물은 가로 190m, 세로, 155m로, 외벽의 아치만도 80개나 된다.
내부는 4단으로 되었는데 1층은 도리아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크린트 양식으로 여러 가지 양싱이 혼합된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그 관람석아 입석까지 있어 1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이름 그대로 거대한 크기였다.
여기서는 관중의 눈요기를 위해서 검투사의 시합, 맹수 사냥 시합을 하는 곳이었고, 또 어떤 때는 경기장에 물을 채우고 '모의해전'까지 벌리던 곳이었다. 이곳에서 무죄한 기독교도들을 야수의 밥이 되게 하며 기독교를 박해하였다는 곳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준공을 기념하는 행사는 100일간이나 지속되었는데 그때 희생된 맹수만해도 9,000마리가 넘는다 한다.
이런 원형 경기장에서 행하여지는 행사를 '루디 치르첸세스'라고 하는데, 매월 15만 명에게 무료 급식과 무료 관람을 시키면서 황제의 폭정에서 시달리는 시민에게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주게 하던 곳이기도 하
였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하자 코로세움도 함께 수난의 역사를 맞아 양과 소를 먹이는 방목장이 되었는가 하면, 다른 건축물을 짓는다고 건축 재료를 뜯어가는 수모까지 당하였다.
*. 개선문
콜로세움 광장에도 개선문이 있다. 콘스탄티누스(Costantino) 대제의 개선문(Arco costantino)이다.
앞에서 말한 기독교를 처음 공인해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누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서기 315년에 세운 문이다.
파리의 개선문과 모양이 같은 것은 이 개선문을 모델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씩은 쓰다듬고 가야할 곳이지만, 이교도들은 외면하고 지나치게 되는 문이 개선문이기도 하다.
개선문의 조각을 감상할 때 유의할 점이 있다. 당시의 조각만이 아니라, 다른 전대의 신전 등의 건축물에서 조각을 마구 떼어다 여기에 붙인 것이 있다는 것을.
*. 포로 로마노 (Foro Romano:로마 공회당)
개선문을 지나면 돌로 포장된 '신성한 길'(Via Sacra)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포로 로마노(Foro Romano)라는 옛로마 광장이다. 이탈리아어 포로 (Foro)는 영어로 Forum 광장이라는 말이다.
이 지역은 주위에 여러 개의 언덕이 있고 당시 그 언덕에는 많은 로마 시민들이 살고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생활의 구심점이 되던 곳이다.
우리는 지금 옛날 로마의 중심 가를 거닐고 있는 것이다. 번성했던 과거는 갔지만 그 길과 그 건축물이 폐허로나마 남아 좌우로 서있는 거리 말이다.
난생 처음으로 왔고 마지막으로 보고 갈 길이니 나의 추억을 위해서, 그리고 다음 분들을 위해서 사진을 놓고 자세히 설명해 볼까.
-< Lozzi Roma sas> 관광서적 참고
맨 위쪽에 보이는 독립문 같은 문이 위에서 말하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다.
그 오른쪽 숲이 전설에 의하면 로물루스가 로마를 창건했다는 팔라틴 언덕(22)이다. 이 언덕에는 아우구스투스 대제의 저택과 도무스 플라비아의 타원형 분수와 황궁 들을 볼 수 있다.
그 바로 아래의 건물이 아우구스투스 신전⑭ 이다.
거기서 쭈욱- 위로 난 돌길이 '비아 사크라'⑤라는 신성한 길이다.
이 길 따라 앞으로 오다 보면 3개의 코린트식 하얀 기둥이 보인다. 이것이 '쌍둥이형제의 신전'이라는 '카스트르와 폴록스 신전'⑫이다. 레질로 호수 전쟁에서 승전한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이 백마를 타고 로마로 달려와서 승리의 소식만을 전하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한다. 이 두 형제에게 헌정하기 위해서 기원전 484년에 세웠다는 신전이다.
그 옆에 원형 평면으로 된 베스타 신전⑪이 있다. 여기에는 로마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성화가 모셔져 있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성화가 꺼지는 날에는 로마에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고 굳게 있었다.
그래서 깨끗한 처녀 제관들을 귀족 가문에서 뽑아서 성화가 꺼지지 않도록 지켰는데, 만약 처녀 제관들이 순결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생매장을 했다 한다.
그 길 건너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쥴리어스 시저'로 유명한 '쥴리어스시저 신전'⑩이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로맨스가 한창인 시절이었다.
그런데 시저의 무덤은 왜 이렇게 초라할까. 진시황의 무덤은 거창한 산이던데. 신라왕들의 무덤은 큰 한 언덕이던데-. 허나 시저를 사랑하는 오늘날의 누군가가 꽃다발로 그 존경과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의 긍지의 표시 같다.
우하(右下)의 기둥들이 '사투르노 신전'⑥이고, 그 길 중간의 우뚝한 기둥이 '포카 황제 기념 원주'⑦다.
좌하(左下) 크게 보이는 문이 셉티미우스 베베루스 '개선문'②이다. 그 뒤로 원형기둥이 보이는 것이 '안토니우스와 파우스트나 신전'⑮이고 그 근처에 로물루스의 원형신전(16)과 '비너스와 로마 신전'(17)이다. 개선문 좌측에 3삼각형으로 조금 보이는 것이 '원로원'① 건물이다.
이 시대가 우리 나라로 치면 위만조선 시대 이전부터 고구려 초기이니, 그 시절의 유물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우렁차게 남아 있으니 당시에는 그 웅장함이 어떠하였을까.
그러나 여기에 있어야 할 진품들은 모두 약탈당하여 우리가 보고 온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니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몇 년 전 그리스의 아트로 폴리스 언덕에서 느끼던 감회가 다시 되살아온다.
그래도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로마의 모습과 그 유산이 부럽기 그지없지만, 그 영광스런 후예가 자기 나라 찾아온 관광객의 주머니나 노리는 소매치기가 되어 세계인에게 악명 높은 주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폐허 앞에서의 영화와 허무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그림 참조*:③로스트리 ④티베리우스황제 개선문 포카황제 기념원주 ⑧ ㅂ바질리카 쥴리아⑨바질리카 에밀리아 ⑬산타마리아 안티쿠아 성당 (14)아우구스투스 신전 (15)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17)비너스와 로마 신전 (18)베스타신전 제관의 집 (19)막센티우스 광회당(바질리카) (20)콜로세움 (22)팔라틴 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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