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바티칸시국(市國;Vatican City State) 왔네(9) 로마의 일곱 개 언덕 중에 하나인 바티칸 언덕에 750명이 사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State)이 있다. 면적44 헥타르(13만3천여 평), 그중 26헥타르 건물이고 18 헥타르는 도로와 정원이다. 작은 나라지만 방송국도 있으며 화폐도 있고, 우표도 발행하며, 발전소, 난방, 전화망도 있다. 바티칸시국의 중심은 우리가 방금 도착한 베드로 대성당과 그 옆에 바티칸 궁전이다. 그러나 아쁠싸. 요즈음 교황이 파킨스 병으로 ㅐ거동이 불편하여선지 버킹검 문이 굳게 닫쳐 있다. 바티칸 궁전에는 박물관, 미술관, 회화관, 도서관 등을 위시해서 로마교황의 거주지와 예배당만도 1,400개나 넘게 있다. 다른 것이야 보아도 모르는 것이겠지만 꼭 보고 싶었던 라파엘의 '예수의 승천'이나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만찬'이나 '천지 창조' 등이 싱겁게도 물건너 가고만 것이다. 꿈조차 꾸지 못한 황홀한 하루하루 이 여행 스폰서는요 우리 마누라랍니다 재직 시절에 아내가 친구 따라 먼저 다녀온 곳이 서유럽이라서 지금까지 마음으로만 그리다가, 아내가 친구 따라 중국 오대산을 가면서, 혼자 가기 미안했던지 주는 노자 받아 왔으니, 그러니까 요번 여행의 스폰서도 아내다.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녹음기, 디지털 캠코더로 완전 무장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Roma에 온 것이다. Roma를 거꾸로 쓰면 Amor로 라틴어로 '사랑'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말도 할 수 있다면 Dog도 신(God)인가. *산 베드로 광장에서 퍼온 사진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팔을 벌리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하고 있는 모습이 성 베드로 광장의 모습이다. 대성당이 몸이요, 그리스도의 팔에 해당하는 좌우 회랑은 폭 240m의 큰 반원의 타원형을 그리며 3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한 크기로 있다. 그 두 반원에는 284개의 둥근 기둥이 네 줄로 높이 16m의 천정을 바치고 있고, 그 지붕이 되는 테라스 위에는 142 명의 3.24m 높이의 성인(聖人) 대리석상들이 도열하여 우리가 서 있는 광장을 굽어보고 있는데 대성당 위의 성인들은 그리스도와 그 12 사도들이다. 그 베드로 대성당 정문 입구 계단 앞에는 오른쪽에 성 바오로상과 왼쪽에 천국의 열쇠를 들고 있는 성 베드로 상이 있다. 카톨릭교의 본산지인 이 바티칸시국에서도 가장 웅장한 성 베드로성당에 모신 베드로는 어떤 사람일까.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로 시몬(Simon)이란 평범한 어부로 살다가, 베타니아에서 예수를 만나 '케파(Cephas:반석)'라는 이름을 받았는데 그리스어로 '페트로스'는, 영어로 '베드로'로 그후로 예수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사람이다. 예수님 뜻대로 교회를 반석Cephas: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초석이 된 사람이다. 예수 수난 시에 닭 울기 전에 예수의 제자이기를 로마 병정들에게 세 번이나 부정한 것을 뉘우치며 지내다가 로마로 와서 사도 바울과 함께 로마교회를 세운 사람이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스도, 즉 구세주라고 하며 예수를 가장 사랑하고 믿고 따른 제자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바욘아,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네 혈육이 아니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태복음 16:16,) 이 광장 중앙에 네로(NERO)의 치하에서 순교할 때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기를 자청하면서 순교한 베드로(Peter Sion)를 지켜 본 것이 있다. 지금은 관광객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이집트에서 뺏어온 해 시계처럼 작동하는 오벨리스크다. 1세기 경 로마 황제가 경기장 한가운데에 장식으로 설치해 놓은 것을 그후 교황 식스투스 5세의 명으로 현재의 위치에 옮긴 것이다. 그 탑의 높이만도 25m요, 무게가 300여t이나 된다. 이를 옮기는데 900여 명의 인부와, 말 140여 마리가 동원되어 넉 달이나 걸렸다니 이집트에서 로마까지 옮길 때는 인부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을까. 저 꼭대기를 바라보니 십자가를 올려놓았다. 오벨리스크 꼭대기에는 원래 피라미드가 있던 것인데 십자가라니-. 박해와 학살을 죽음으로써 싸워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올려놓았을 때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까. 그 주위에 한송이꽃 모양으로 대리석군들이 이 오벨리스크를 둘러 싸고 있다. *트레비(Fontana Rrevi) 분수. 로마에 오면 꼭 가 보아야 할 3대 명소가 있다. . '콜로세움', '스페인계단', '트레비(Fontana Rrevi) 분수'다. 옛날 전장에서 돌아오던 지치고 목마른 병사들이 있었다. 그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서 샘터를 안내하여 주었다. 처녀샘이었다. 이곳이 그 '처녀 샘'이 있던 자리요 지금의 트레비(Fontana Rrevi) 분수가 있는 곳이다. '트레비'란 삼거리라는 뜻으로 그 앞 길이 3 거리라서 생긴 말이다. 이 분수는 교황이 주최한 분수 콩쿠르대회에서 당선된 젊은 니콜로 살비가 1762년에 세운 분수다. 트레비 분수는 폴리 궁전 벽을 뒤로 하고 있는데, 세계적인 조각가 브란치의 작품이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어 한번 다녀온 사람들에게 더욱 이 트레비 분수를 잊지 못하게 한다. 맨 위 한 가운데 서 있는 신(神)이 대양(大洋)의 신 오케아누스(Oceannus)요, 그 아래 좌우로 바다의 신 넵튠과 트리톤(Triton)이 이끌고 있는 두 마리 말은 각각 잔잔한 바다와 격동하는 바다를 상징한다. 대양의 신 좌우에 기둥 안의 석상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고 그 앞에 큰 수반(水盤)의 물은 대양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변하는 바다와 풍요와 건강은 인류가 극복해야 하는 꿈의 바다요 우리가 도달하고 싶어하는 이상의 세계다. 거기에다가-,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헵번이 동전을 던지던 데서 이분수는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관광객 중에는 웃으면서 동전을 던지는 사람이 많았다. 분수를 등지고 오른손에 동전을 잡고, 왼쪽 어깨 넘어로 던지는 것이 정석이다. 세 번까지 던진다는데, 첫 번째 던지는 것은 로마에 또 한번 올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소원이요, 두 번째 동전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세 번째 동전은 그 연인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빌면서 던진다나-. 우리 마누라 한데 던지게 한다면 아마도 첫 번째는 몰라도 다음은 절대로 안 던질 것 같다. 그것보다 이런 이야기는 이 돈을 수거하며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이곳 사람들이 두 번, 세 번을 만들어 낸 이야기 같다. 여기 동전은 한 달에 한번씩 수합하여 자선 사업에 쓰는 모양이다. *. 소렌토 우리는 세계3대 미항이라고 하는 '새로운 도시'라는 뜻의 나폴리(Napoli)를 거쳐 나폴리와 마주 보고 있는 아말피(Amalfi) 해안의 보석이라는 쏘렌토(Sorrento)로 가고 있다. 'Come back to Sorrento'(돌아 오라 쏘렌토로)와 'O Sole Mio'(오 나의 태양)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가곡의 고향이 쏘렌토다. 학창시절 음악시간에 이 노래를 안 배운 사람이 있던가. 우리는 언덕 먼 발치에 서서 카메라에 그 멋진 바다와 해수욕장을 담는 것으로 쏘렌토 관광을 다하였다. 투어 일정이 그뿐이기 때문이다. 나폴리도 마찬가지였다. 바닷가에 딱 한번 내려 사진 한 장 찍을 시간을 주고 쏘랜토를 향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곳을 다니느라고 지쳐있었고 멀써 일정 13일 중 11일째라 귀국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기도 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계속되면 잔소리 같듯이 그 동안 보아본 나라와 아름다운 경관이 너무 많다보니 이젠 그게 그거야- 할 정도로 우리는 지쳐있었다. 나폴리와 쏠렌토는 언덕 위에서 멀리 보이는 멋진 원경을 빼고는 서구 지중해에 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라 생각 된다. 우리 나라 한려수도국립공원이나 다도해 해상공원은 이만 못지 않게 얼마나 아름답던가. 남미(南美)는 그 비용이 너무나 엄청나서 못 가봤지만,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5대 주의 경치를 두루 찾아다니면서도 그럴수록 나는 우리 한국의 산하가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고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이런 역마살이 금년에만도 적지 않은 해외여행기, 산행기와 섬여행을 쓰게 하였다. 지금부터라도 나이가 내 마지막 정열을 앗아가기 전까지는 한국의 산하의 아름다움을 더욱 열심히 찾아 다니며 표현하는데 나의 여생을 바치고 싶다. 소재를 기다리다 만나서 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책을 낼 여유가 생기면 마음은 다시 해외로 향하게 되니, 더 다니지 못할 정도로 늙을 때 가서나 내 책의 문자 향을 직접 맡게 되려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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