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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매도(觀梅島)

ilman 2012. 5. 4. 10:25

관매도(觀梅島) 다도해 국립공원/ 관매도 8경 이야기(2)
*. 관호마을의 낭만

 

 여행 와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남보다 일찍 일어나는 일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남보다 많은 먹이를 먹을 수 있다는 말 같이, 낯선 고장 새벽의 그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싱그럽게 피어나는 하루를 일찍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다녀와서 아점(아침겸 점심)으로 먹기로 하고 아내와 함께 관매도에서는 두 번째로 크다는 관호(觀湖) 마을을 향한다.

  선착장을 막 지나다 보니 왼쪽 암벽 중간쯤에 커다란 소나무 화석(化石) 하나가 있다. 길이가 2.3m, 폭이 70cm나 되는 목재화석(木材化石)으로 규화목(硅化木)이라 하는 것이다.
1억 5천만년 경에는 이 지역이 호수였다 하는 그 설명의 기록을 보면 그래서 마을 이름도 '관호(觀湖)마을'이라 한 것 같다.
관매마울에서는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톳을 바다에서 건져서 말리는 아낙네가 많았는데 관호마을 해변 도로는 한 마디로 미역 건조장 같았다. 톳이란 바닷말의 일종으로 갈색말 무리에 속한다. 톳에는 칼슘, 요오드, 철, 마그네슘 등의 영양분이 풍부한 먹리로 유명한 것으로 관매도의 특신믈이다.
마을 입구에 '바다수산'이라는 간판을 보니 성수기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이곳 특산물인 활어, 멸치, 액젓, 돌미역, 돌톳 등을 판매하는 모양이다.
마을 구경은 돌아올 때 하기로 하고 관매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꽁돌과 돌묘(제3경)'를 보러 간다. 

이정표를 보니 마실 수 있는 두레박 우물에서 0.15km를 가니 우실이 있는데 '우실'이 뭘까?

바다가 보이는 언덕 마루턱에 양덕기미 쉼터가 있다. 거기에 돌담이 있고 우실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곳은 관호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우실’입니다.
재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재냉기'라고 하는데 재냉기 바람에 농작물의 피해를 막고자 쌓은 돌담을 우실이라고 합니다.
우실은 마을의 경계가 되는 영역이기도 하고, 상여가 나갈 때의 산자와 죽은 자의 마지막 이별 장소이기도 합니다.

관호마을 우실은 쉼터요 전망대이기도 하였다.
운치 있게 만들어 놓은 흔들리는 나무그네, 8각의 가로 원통에 관매 8경 사진을 넣어 아래위로 돌려가며 보게 한 것도 멋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굽어보는 청정한 해안가의 경관이 절경이다. 그 한 가운데 공처럼 둥근돌이 바로 꽁돌이었다.

 

 

그 꽁돌을 보러 내려가는 나무층계도 멋있지만, 다 내려가서 만나는 기암괴석의 바위들은 파도가 만들어 놓은 기기괴괴한 모양의 형형색색의 돌 무리들이었다.
이런 굽어 보는 조망(眺望)을 보고 일찍이 옛 시인들이 이런 시조를 남겼다.

말이 놀라거늘 혁(革) 잡고 굽어보니
금수청산이 물속에 잠겼어라
저 말아 놀라지 마라 이를 보려 하노라 
                                                                                                                                   -작자 미상
아내가 놀라거늘 나도 놀라 굽어보니
관매도 꽁돌 바위에 이 내 눈도 황홀하다
아내여 놀라지 말고 이 내 말을 들어 보소 
                                    -ilman

-이 꽁돌은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돌이었데요.
그 꽁돌을 두 왕자가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지상에 떨어뜨렸답니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고 내려온 하늘장사가 꽁돌을 왼손에 받쳐 들고 막 하늘로 오르려는데, 어디서인가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더래요. 그 소리에 혹해 하늘로 올라갈 생각도 잊고 있었지요. 옥황상제는 다시 두 명의 사자를 시켜 하늘장사를 데려오게 했는데, 두 사자도 역시 거문고 소리에 매료되어 하늘 오르기를 잃어버렸데요.
이에 노한 옥황상제가 돌무덤을 만들어 그 속에 그들을 넣어 버렸답니다. 그 돌무덤이 돌묘이고, 그 위에 있는 하늘장사의 손자국이 찍힌 둥근 바위가 꽁돌이랍니다.
하늘에서 자기들의 실수로 몇 사람이 희생된 것을 알고 괴로워하던 두 왕자도 이곳에 내려 왔다가 역시 거문고 소리에 희롱당하여 넋을 잃게 되자 옥황상제의 노함을 받아 영원히 바닷물 속에 잠기도록 섬으로 만들어 버렸답니다. 그 섬이 바로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형제섬이랍니다.

꽁돌은 직경이 4~5m 큰 둥근 바위인데 상단부에 움푹 들어간 구멍이 있어 사람들이 조약돌을 던져 넣으며 길흉을 점치는 것 같았다. 아내도 돌을 던져 넣고는 희희낙락한다.
금년에 외손녀 대학시험에 합격해 달라고 빌면서 던진 돌이 단번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아내 덕인가. 외손녀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은 아내의 꽁돌에 기원 덕인가 보다.
 

 꽁돌과 돌묘에서 흰 밧줄이 매어진 길을 따라 1km 거리에 ‘하늘다리’가 있다 하여 해안선을 굽어 보며 찾아 나섰는데 산 넘어 산이 계속되는데 아무리 섬 산이라 하여도 오름길이 제법 힘들다.
그러나 그 길에서는 뒤돌아 보는 꽁돌이 아름다움을 더하여 주고 있다. 
앞으로 전개 되는 해안선의 절경도 눈을 놀라게 한다. 그중 저 멀리 바닷가에 다리를 담근  바위 위의 등대는 이국에 온 듯 황홀하다. 그 규모가 작은 것을 보니 무인 등대인가 보다.
  하늘다리는 먼 옛날 동지나해의 거친 파도에 밀려서 50m 절벽이 칼로 자른 듯이 3~4m 폭으로 똑 바르게 갈라져 있는 바위다. '하늘다리'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이 섬사람들이 건너갈 수 있도록 고목을 걸쳐 놓아 다리를 만들었던 것을 지금은 튼튼하고 안전한 다리를 놓으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그 다리의 중간에 강화 투명 플라스틱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게 만들었는데 오금이 저려서 차마 그것조차 디디지조차 못할 정도의 천길 낭떠러지였다. 돌을 하나 주워서 바다에 던지니 13초 후에야 흰 포말이 보인다.
이곳은 옛날 이 섬의 동북쪽에 있는 방아섬에서 방아 찧던 선녀들이 날개옷을 벗고 쉬던 곳이라는 관매 5경이다.
하늘다리부터는 더 갈 수가 없어서 원점회귀(原點回歸)해야만 했다. 그런데 올 때는 편한 내리막길이 이제는 힘든 오르막 길이 되어 우리를 지치게 한다.

하늘다리’ 가는 길엔 오름길이 힘들더니
원점회귀 ‘꽁돌’ 길도 오름길이 대간하다
세상은
내림 길은 잊고
오름 길만 탓하네
                                           -오름 길

*. 관호마을 마실 구경
관호마을에서의 볼거리로는 앞서 말한 톳이나 미역을 해안도로나 담에 말리는 것 이외에도, 돌담길, 벽화길 등이 더 있다.

돌담은 크고 작고, 둥글고 모나고 울퉁불퉁한 제각각 다른 모양의 자연석의 돌로 쌓은 담으로 그래서 더 친근하게 보인다.
해풍과 추위를 막기 위해 쌓은 게 돌담인데 신록의 계절을 맞아 그 위로 뻗어가는  담장이 넝쿨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들 돌담 동네를 보는 흥겨운 마음이 김영랑의 시를 절로 읊조리게 한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그 돌담길을 따라 가다 보면 빨갛고 파란 지붕이 있고, 그런 집 담벼락에는 고운 그림이 그려 있다.
그 그림 중에는 관매도 8 경도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은 것이 관매도라서인지 매화(梅畵)가 많았다.
그중 압권은 학교 칠판 그림인데 그 급훈이 멋지다.
'칠판 앞에서 사진 찍기'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않기'
이정표 따라 ‘전통시범 숙소’를 가보고도 싶었지만 이를 보니 갑자기 시장기가 감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서 서둘러 1시 10분 배 시간에 맞추어 귀가를 할 예정이다.

*. 방아섬(남근바위) 


관매도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최소한도 '관매 8경'은 다 보아야 한다.
그 관매 8경 중에는 도보로 탐방이 가능한 관매 해변(1경), 방아섬(2경), 돌묘와 꽁돌(3경), 하늘다리(5경) 넷이 있다.
선박을 이용하여 섬 일주를 하며야만 볼 수 있는 명승지로는 할미 중 드랭이굴(4경), 서들바굴폭포(6경), 다리여(7경)와 8 경인 하늘담(벼락바위) 넷이 더 있다.

오늘은 선박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더 없이 잔잔한 바다지만 그 배를 이용하려면 15만 원 이상을 투자해야 하고 그것도 성수기라야 가능한 일이다.
여행은 생락의 예술이라서 그냥 떠나려고 하였더니 걸리는 게 있다.
어제 돈대산을 종주하고 관매 8경 중 2 경인 방아섬을 찾아 나섰다가 1 경인 관매도 해변과 숲을 거니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 아쉬워서다.
민박 주인의 말에 의하면 방아섬까지는 아주 평탄한 길로 넉넉 잡아도 왕복에 2시간 이내 거리라 하여 식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방이섬을 찾아 나섰다. 가다가 시간이 부족하면 그냥 돌아오기로 하고-.

어제 갔던 천연기념물 212호의 후박나무를 지나 매화초교와 조도중학관매분교 앞을 지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사 1층은 관매초등학교, 2층은 조도중학 관매분교였다는데 지금은 폐교가 된 건물이라 썰렁하게 텅 비어 있다.
그러고 보니 학교뿐이 아니라 섬 전체에 어린이는 한 사람도 볼 수 없었고 중년 일부와 노인들만이 모여 사는 섬이 관매도었다.
정자를 지난다. 3개 마을 입구 어디에나 있는 4각정자였다.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산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방아섬까지는 해안을 굽어보고 가는 1.35km 거리의 길이었다.

 방아섬 가는 도중 좌측 320m를 내려가면 독립문바위가 있다.
독립문바위란 관매 9경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식동굴의 입구가 독립문 같다 하여 이르는 해식을 말하는데 부안의 채석강처럼 단층절리의 해식 절벽이다.
관매도에는 이런 절리가 수없이 많은데 그 한 층을 형성하는데만도 100년이란 세월이 걸리는 모양이다.

방아섬이 가까울수록 그 해식 절경이 나뭇가지 사이에 굽어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문득 나타나는 절경이 있다.
남근바위라는 별명을 가진 '방아섬'이었다. 방아섬은 밀물 때는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면 뭍에 붙는 그런 섬이었다.
'방아섬'이란 말은 이곳에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전설에서 생긴 말이고, 남근바위라고 하는 것은 섬 꼭대기의 큰 바위 끝이 남자 성기의 귀두(龜頭)를 닮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이를 남근(男根)으로 보지 않고 곡식 등을 찧는 디딜방아, 물레방아, 연자방아와 같이 방앗대로 본 모양이다
그래서 다섯 선녀들이 하늘나라에서 내려와 곡식 등을 찧던 방아로 미화한 것 같다.
예로부터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들이 이 바위 앞에서 정성껏 기도하면 아이를 갖게 된다는 전설이 있어, 그런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곳이 방아섬이라고 한다.
관매도행 배에서 만난 조도에 사는 노인의 말에 의하면 이 섬의 이 바위는 하도 커서 건너편 조도(鳥島)의 신전마을에서도 또렷하게 보인다며 거기 얽힌 전설을 전하여 준다.
신전마을 처녀들이 부엌에서 밥하려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방아섬을 보면, 큰 파도칠 때에는 바위가 흔들흔들 움직이는 것이 거시기가 머시기 하는 것 같아서 부지깽이를 들고 얼굴을 붉힌다는 남새스러운 이야기다.
선녀가 방아 찧었다는 이야기는 선녀들이 옷을 벗고 놀았다는 하늘다리(매화 5경)와 목욕을 하고 즐겼다는 서들바굴폭포나 관매해변 (관매 6경, 1경)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도보로 가능한 관매도의 모든 곳을 구경하였다는 기쁨을 안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나 홀로 왔다면 이런 기회에 진도나 목포의 곳곳을 누비련만 아내의 체력은 지금까지만도 그 도를 넘었는지라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76년만에 처음 보는 그리던 섬을 찾아

‘내’가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나’로 돌아갑니다.
바다를 마시다가
굽어보는 산이 되고
화려한 명품마을 길이 되며
아름다움을 마음에 심고 떠나는 것은

관(觀)
매(梅)
도(島)가
우리를 기다려 준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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