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포천 백운산 산행 Photo 에세이 (2006. 4. 26/ 포천백운산: 광덕고개-백운산정상-삼각봉-도마치봉-흑룡사/Daum ‘우리산내음’ 따라) *. 캐러멜 고개 한국산하에 산행기를 인연으로 하여 만난 사람들의 모임이 ‘우리산내음’인데 그 일주년 기념행사를 한다 하여 참석했더니 평일인데도 52명이나 모여서 함께 백운산을 가고 있다. 차편은 대형버스와 미니버스로 우리가 만나회식하기로 한 ‘이동궁전갈비’ 집에서 마련해준 모양이다. 이런 경우 서로 둘 다 좋은 방법이다. ‘살아서는 포천 가야 양반이고, 죽어서는 장단가야 양반’이란 말이 있다. 우리는 세상만사 번뇌한 일을 모두 뒤로 물려 두고 봄을 맞이하려 그 포천의 백운산을 가고 있으니 양반은 양반인가 보다. 사창리 행 광덕고개를 넘는데 옆의 청파 원장이 군대시절의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 고개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았다. -이 고개를 일명 ‘캐러멜고개’라 한다. 도로가 비포장이었던 한국전쟁이 한창인 6.25 시절의 일이다. 미군 운전병이 광덕고개를 오르는데 졸았다. 그래서 캐러멜을 주어 먹게 하여 졸음을 막게 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로 광덕고개의 꾸불꾸불한 길 모양이 낙타의 등을 연상킨다 해서 카멜(Camel: 낙타)고개라 하던 것이 변하여 캐러멜고개가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군 담배에 카멜이 있어서였을 것이고 우리들은 그보다 캐러멜을 더 좋아하여 캐러멜고개라 한 것 같다. 길이 강을 만나면 나루터가 되고 산을 만나면 고개가 되는 법이다. 그 고개 대신 뚫은 것이 터널이요, 그 나루터를 건너기 쉽게 만들어 놓은 것이 다리다. 고개는 구름도 쉬어 넘는 고개라 하였으니 옛사람들이 함께 넘다 쉬어가는 사이 서로 나눌 이야기가 없었겠는가. 경기도(이동면 도평리)와 강원도(화천) 경계에 있는 캐러멜 고개에 일만도 왔으니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보자. 그중 강원도 고개의 전설을- -대관령 근처에 겨울산행지로 유명한 높이 1,157m의 큰 고개 선자령(仙子嶺)이 있다. 대관령에 신작로가 나기 전에 나그네들이 넘나들던 고개다. 그 초막 골 계곡이 아름다워서 달밤에는 선녀들이 목욕하고 놀다가 하늘로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선녀 ‘仙(선)’ 접미사 ‘子(자)’ 선자령(仙子嶺)이라 했다. -대관령(大關嶺)은 그 높이가 865m, 길이는 13km가 되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개다. 그 99고개가 하도 험해서 '대굴 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에서 대굴령이라 하던 것을 한자로 음차하여 대관령이라 하였다 한다. 이 재는 영서와 영동지방을 잇는 큰 관문이란 뜻에서 큰 大(대), 빗장 關(관) 대관령(大關嶺)이라고 불렀다. -진고개는 서울에도 있지만 평창군 도암면에 높이 1,072m의 긴 고개가 있다, 노인봉(老人峰)이나 동대산(東臺山)의 갈림 길이다. 그 고개가 길어서 '긴 고개'라 하였는데 '길'을 '질', '기름'을 '지름'이라고 하는 사투리처럼 '긴'이 구개음화 되어 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그게 아니고 비만 오면 땅이 질어서 '진고개'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 '고개, 재, 령, 치'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산내음 산악회에는 내노라는 산꾼이 많았다. 그중 연산(連山)님이 말한다. “고개를 뜻하는 말에 ‘재’, ‘령(嶺)’, ‘치(峙’), ‘현(峴)’ 등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어.” 내 국문학으로 평생을 산 사람이니 이를 어찌 그냥 지나치랴. 우리말큰사전(한글학회)과 字典(명문당)의 설명은 이렇다. -고개: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게 된 비탈진 곳. (참고) ‘재’ -재: 길이 통하여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메의 고개. (한) ‘령’ -령(嶺): (접미사) 재나 산마루의 땅 이름을 나타내거나. 재나 산의 이름을 이루는 접미어 -치(峙): 산 우뚝 솟아 있을 ‘峻(준)’, ‘高丘’(고구). 옛날 영조 이전에는 구개음화 안 된 ‘티’ -현(峴): 小而險. 嶺上平高 (작고 험한곳. 재 마루가 평평하고 높은 곳) 이를 요약하면, ‘고개’와 ‘재’는 순우리말로 ‘고개’는 ‘재’보다 더 높은 개념으로 쓰였고, ‘령(嶺)’, ‘치(峙)’, ‘현(峴)’은 한자어로 독립된 낱말보다는 주로 접미사로 ‘峴’은 고개와, ‘嶺’과, ‘峙’는 재와 비슷한 말로 쓰인 것 같다. ‘령(嶺)’은 통행량도 많고 따라서 규모도 큰 지역의 큰 통로에 주로 쓰였다. 한자어란 한자로써 된 낱말로 순우리말과 함께 우리말로 쓰고 있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다. *. 옛 선인들의 백운산 등반 백운산은 인천 영종도에도, 의왕지 뒤에도, 정선 동강 등에도 있는, 같은 이름의 산이 많다. 산봉우리와 구름이 언제나 함께 연상되는 백운산이란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그 포천 백운산에 대한 옛 선인들의 글이 '내원사적기'에 나온다. 내원사란 백운산에 있는 고찰 흥룡사의 옛 이름이다. -백운산은 세 곳 중의 으뜸이요, 네 산중에 뛰어나다. 태백산(太白山)은 웅장하고 가파르며, 봉래산(蓬萊山, 금강산)은 여위고 험준하며,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은 살찌고 탁하며, 구월산(九月山)은 낮고 민둥산이다. 그러나 이 산은 백두산(白頭山)의 정맥으로 단정하게 뻗어내려 봉우리가 유연하고 높으며 계곡이 깊고 멀고 지세가 정결하며 수기(秀氣)가 청백하다. -내원사사적기 우리들의 백운산 등반은 광덕고개의 가게 샛길 철 계단을 올라 매표소 능선 길로부터 시작되었다. 화창한 봄 날씨라 등산복을 벗고 간소한 차림으로 등산길에 올랐다. 4월 훈풍이 불고 있었다. 광덕고개는 해발 660km로 진달래는 군락지가 아니어서인지 드문드문 피어있었고 나뭇가지 사이로 고불고불 올라가는 광덕고개너너 광덕산(1046.3m) 그 능선이 박달봉(810m)으로 해서 남으로 스카이라인을 이루며 뻗어가고 있다. 이 백운산 능선 길은 오르면 평평한 능선이 나타나고, 봉이 보이면 오름길이 되다가 다시 또 봉이 나타나지만 올라갔다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는 그런 비정의 능선은 아니었다. 그런데 가도 가도 봉(峰)은 봉(峰)으로 계속되고 있다. 기슭의 진달래꽃이 봉우리선 봉오리 里程標 손짓 따라서 시나브로 白雲峰 길 *.백운봉에서 나이 먹고 등산길에서 항상 일행보다 가장 늦는다는 것은 이제 등산을 접어야 할 징조로구나 하지만, 오늘 광덕고개 코스는 아주 어렵지 않게 백운봉에 오를 수가 있어 일행과 함께 점심을 하고 단체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다. 백운봉 정상이라는 곳은 전망이 턱 트인 헬기장으로 북으로는 광덕산, 남쪽으로는 국망봉1,168m이 신로봉 뒤로, 서쪽으로는 가리산이 장엄한 파노라마를 그리고 있다. 가리산은 이 산의 모양이 쌀가마를 쌓아놓은 것 같다 하여 가리산이라 한 산이다. 백운봉은 세 갈래 길로 지나온 광덕고개는 3.2km요, 흥룡사는 3.9km로 백운계곡을 향한 직 코스의 길이지만 지금은 계곡보다 능선이 좋을 때라 1.0km 거리에 있다는 삼각점을 향한다. 삼각봉을 지나고 보니 저런 봉을 어떻게 오르내렸지 할 정도로 그 봉이 연필심 같이 뾰족한 봉인 것을 깨닫겠다. 삼각점에서도 도마치봉까지는 1km 거리도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한 코스였다. 도마치봉도 전망이 뛰어나고 헬기장이 있는 것도 백운봉과 같았다. 도마치봉은 오던 길에서 직진하면 국망봉 가는 능선길이요, 흥룡봉으로 가면 하산길이다. 후미에서 줄곳 나를 도와주시던 최 회장의 말대로 이젠 고생이 끝난 것이다. 그런데 도마치봉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보면 그 이름 속에는 어떤 전설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 도마치봉 전설 - 태봉국 궁예가 명성산 전투에서 왕건에게 크게 패하고 쫓기면서 도망쳐서 백운산에 이러 이 봉을 넘는데 너무 가파르고 힘이 들어서 말에서 내려 걸어서 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자로' 道馬峙'(도마치)라고 쓰는데 길 '道'(도), 말 '馬'(마), 고개 '峙'(치)로 '道' 자가 아무래도 걸림 돌이 된다. '도망치다'의 첫음절의 우리말 '도'를 한자로 음차하여 '道'(도)로 쓴 것이로구나 하니 이해가 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우리가 지나온 백운봉은 904m요, 도마치봉은 937m로 27m나 높은데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것을 보면 정상표지가 뒤바뀐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산책에서는 도마치봉을 백운산 정상으로 보고 백운봉은 904m봉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정부 간행물의 표기를 존중했다고 해도 그릇된 것은 고쳐야 한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현명한 자는 바로 고치는 사람이다. 생각해 보라. '백운산(937m)'로 소개하고 있지 않은가. 도마치봉부터는 하산길이라 생각하고 안심하고 내려오다 보니 무서운 암릉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전시설인 밧줄도, 철책도, 위험 표지판도 없는데 길 같기도 하고 길 같지도 않은 하산 길이 계속되고 있다. 진퇴양란이란 말이 이런 경우를 위해 생겨난 말 같다. 유격훈령장도 이렇게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위마다 지난 겨울 이 코스를 통과한 산꾼의 아이젠에 긁힌 자국 또한 요란하다. 이런 코스를 52명이 주저 없이 통과한 '우리산내음' 산악회 회원들의 산행 실력에 놀라면서 엉기다가 드디어 흥룡봉 정상에 오르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산행 내내 섭섭하게도 한 번도 쉬어 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산에서 쉬어 가자는 소리를 들을 때 행복해 하는 사람인데-. 그래서 사진을 찍기는 좋아하되 박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런 나를 도와 준 분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감사하고 감사한 사람들과 *. 드디어 백운계곡 어디서 거센 바람소리가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바람 소린가 했더니 물소리, 계곡의 물소리였다. 드디어 이 산의 자랑인 백운계곡이 시작되는 소리다. 백운산은 산보다 계곡이 아름다운 산이다. 이곳을 흐르는 영평천(永平川)은 같은 계곡을 지나는 물길이지만 지나는 고장마다 이름을 달리 한다. 산에서는 백운계곡이다가 일동에 가서는 일동천, 포천에 가서는 포천천이 되고 장두면에 가서는 한탄강이 되어 흐른다. 그 중 삼각점과 도마봉에서 흘러서 합수머리를 거쳐 이루어지는 백운계곡은 육산인 백운산의 모습과는 달리 기암괴석을 이루며 맑고 깨끗하고 풍부한 수량으로 광암정, 학소대, 금병암 옥류대를 이루다가 흥룡사를 지나 포천8경의 하나인 선유담 계곡의 절경을 꾸미며 흘러내린다. *. 이동막걸리 도평교 옆에 유명한 한일탁주가 있다. 이동막걸리 양조장이다. 20년 전(前)인가 그곳에 들러 이동막걸리의 유래담을 연로한 주인으로부터 들은 일이 있다. -옛날 마포에서 양조장을 하다가 그만 두고 나그네가 되어 전국 유람을 하던 중 포천 어느 정자 밑에 모여 앉아 있는 노인들을 만났어요. 무엇하던 사람이냐고 묻기에 양조장을 하던 사람이라 했더니 노인들이 말합디다. '우리 마을 백운계곡에 나라님께 진상하던 탁주를 만든 곳이 있었다우. 거기 가면 은행나무 고목이 있고 그 술을 만들 때 길어 쓰던 우물도 남았다오.' 그래서 거기 200m 지하 암반수로 만들어진 이동막걸리는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수출하고 있는 이 고장 명물이 된 것이 한일탁주의 이동막걸리다. 부드러우면서도 혀를 톡 쏘는 단맛은 정주영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북에 갈 때 가지고 간 30여 종의 술 중에 제일 맛있다고 김정일위원장의 칭찬 받은 포천의 명물이라 한다. 백운동 계곡 물은 이끼가 끼지 않을 정도로 물이 맑다. 젊어서 계곡에서 백운봉을 올랐는데 수많은 뱀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물이 좋다는 것이다. *.흥룡사(興龍寺)의 전설 산행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난 백운동 계곡은 커다란 암반으로 물이 운치 있게 흘러내리는데 징검다리를 건너니 다듬은 돌길이 한길이 되고 0.5km 지점에 흥룡사가 있다. 절 입구 우측에 고풍한 부도 군이 있어 흥룡사가 천년 고찰임을 말하여 주고 있다. - 이 절은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인 신라 효공왕 때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지장보살을 모신 처음에는 내원사라 이름한 도량이다. 지장보살이란 석가모니의 부탁을 받아 석가 부처가 입멸한 후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다. 도선국사가 이 절터를 정할 적에 나무로 세 마리의 새를 만들어 공중에 날려 보냈더니 그 중의 한 마리가 지금의 흥룡사 터에 앉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세운 절이라 한다. 일행이 먼저 음식점에 가서 '우리산내음1주년창립 기념행사'를 위해 기다리는 모양이라서 대웅전의 뒤편에 있다는 무영선사 부도와 향토유걱35호라는 청암당부도와 석종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통에는 물을 가득 담았다. 요즈음 나의 등산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산사의 물을 떠다가 집의 냉장고에 두고 다시 또 산을 찾을 때까지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아내는 불교 신자다. 그래서 아내가 다니는 절들의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를 마시기 위해서다.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와 오니 흥룡사에 시 한 수 드리고 싶다. 衆生을 적시는 건 언제나 열려 있는 山寺의 부름이고, 누구나 淸淨水 같은 三寶歸依 願함이니-. 三十三天 二十八宿 話頭로 두드려도 百八 念珠 알알이 돌아가는 세상살이 부처님 微笑로 하여 하나하나 열리니-. -성불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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