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2005년 除夜에 서서

ilman 2007. 2. 11. 11:12

 

 

일만의 하루/ 제야(除夜)에 서서
제야(除夜)에 서서 가는 해를 뒤돌아보니 일년 중 1/4은 여행을 다니었고, 2/4는 그 여행기를 쓰고 있었고, 1/4은 술 마시며 다 써버린 것 같다.
왜 나는 이렇게 적지 않은 여행을 하며 살아온 것일까?
처음에는 떠나는 즐거움에 여행을 하였다. 평범한 일상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이 여행이어서인가 보다.
수필로 등단한 이후에는 그 소중한 여행의 체험을 글로 남기려고 쓰다가, 지금은 기행문을 쓰기 위해서 산행과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늙어서나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한국의 산하와 세계의 명승지를 정리하여서 다녀 온 사람에게는 추억을, 가볼 분에게는 희망을 주는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이 일이 지구를 찾아온 내가 마지막 해야 할 일 같다.

며칠 전 교보에 가서 ‘名山踏査記’(‘솔’출판사)를 내 서재에 모시는 기쁨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동문선’ 등  옛 선인들의 문집에 실려 있는 등산 기행문을 엮은 것인데, 그 중 고려 시대 최고의 문장가 백운거사 이규보의 글은 지금 내가 왜 여행하며, 등산을 하는가 하는 의문을 분명히 말하여 주고 있다.

"내가 일찍이 방방곡곡을 두루 여행하며, 발길 닿는 곳마다 이상한 얘기나 볼 만한 것이 있으면 시를 짓고 글을 지어서 이를 기록하여 둔 것은, 훗날 내가 늙어서 다리에 힘이 없고 노쇠하여 마음대로 여행을 하지 못하고 방안에만 누워 있게 될 때에, 이것을 읽어 보면 젊은 날의 감회가 되살아나 울적한 회포를 풀 수가 있겠기 때문이다."                                                                   -이규보의 "南行記"에서.


거기에 하나 더 해서 지금은 한창 말을 배우고 있는 우리 손자가 커서 나의 글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손자가 누웠다가, 기더니, 걷고 있다.
하부지는 걷다가, 기다가, 누울 텐데.
손자가
말 배워갈 때
잃어 가는 하부지 말.

마음이 몸을 부리던 오늘을 접고 나서
이 몸이 이 마음을 부려야할 내일이면,
아가야
읽어 주거라,
하부지의 글들을.
                 - 시인(詩人) 하부지

아내의 말처럼 반미치광이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쓰다가, 그게 끝나면 다시 또 글을 쓰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되풀이 되다 보니 금년에 쓴 것이 무려 72편이나 된다. 한달에 6편의 장문(長文)의 기행문을 쓴 것이다.
예로부터 전하여 오는 말에 ‘산(山)이 유명한 손님을 맞으면 하루아침에 유명해지고, 시객(詩客)이 좋은 경치를 만나면 붓끝이 춤을 춘다.’고 하였다.
그 글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다. 현지에서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아야 하고 거기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자료를 구해야 하고, 서점을 들락거려야 하며, 인터넷을 한없이 뒤져야 했다. 기행문이 독자에게 가까이 다가서려면 무엇보다 그 자료로 감동시키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산모가 아이를 낳는 것 같은 고된 작업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라서 산후에 기쁨이 큰 것처럼, 수없는 퇴고를 거쳐 탈고하고 나면 기쁨은 배가(倍加) 된다.
그래서 탈고하게 되면 자축의 술을 들게 된다. 나와 일만과 내 아내의 유랑의 남편과 함께.

*. 칭기즈칸의 술 마시는

몽고 제국의 창시자 칭기즈칸도 유명한 술꾼이었나 보다. 오직하면 ‘한달에 세 번만 취하자’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었을까?

“만약 음주를 막을 수 있다면 한달에 세 번만 취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세 번을 넘게 되면 잘못을 범하게 된다. 그가 두 번 취한다면 더욱 좋고, 한 번 취한다면 물론 더 좋다. 그가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마땅히 큰 재목으로 써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큰 유산 하나를 물려받았다. 늙어서 '건강(健康)'보다 더 큰 유산이 또 있겠는가. 내일이면 고희(古稀)가 될 나이에 서서 보니 신통하게도 내 몸에 아픈 곳이 거의 없다. 오로지 아픈 곳은 주머니뿐이다.
그래서 새해부터 칭기즈칸처럼 나도 한 달에 세 번만 취할 수 있다면, 세계를 정복하고도 66세에 병사한 칭기즈칸보다 더 장수의 복을 누리며 더 많은 글을 쓰며 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새해부터 내가 절주(節酒)해야 하는 이유다.
공자의 말씀에 ‘하고자 하는 마음 따라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從心所慾不踰矩)’는 경지의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칭기즈칸처럼 한달에 세 번만 취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그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닮은 삶을 살고 싶다.


“반란(叛亂)을 진압하고 적을 쳐부수어
그들의 재산(財産)과 모든 것을 빼앗는 것. 그리고 그들과 결혼한 부녀자(婦女子)로 하여금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
그들이 갖고 있는 좋은 말 위에 올라타는 것.
그들이 소유한 아르다운 여인의 배를 잠옷과 베개로 삼고 장밋빛 가슴을 바라보며 입을 맞추고 딸기 같이 감미로운 입술과 가슴을 음미하는 것.”
               -초원(草原)의 남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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