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커다란 선물을 하나 받은 행복한 날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오랫동안 사귀어 온 기인(奇人?)에게서다.
고등고시(행정고시) 4회 출신. 시집 "애산송(愛山頌)"의 저자. 기록만으로 백운대 정상에 2002년 금년 말까지 통산 1,800번 등정에 도전하는 분, 나와 같이 생맥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오랜 동안의 선배 술친구 두산 하정우 선생이시다.
어느 날 처음으로 젊어서의 고화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그림 한 점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가져가라 했더니 걸어 놓을 데가 없다고 시큰둥하고, 너무 오래 지니고 다녀서, 집에 너무 공간을 찾이 하고 있어서 주고 싶은 사람에게 주시겠다는 것이다.
주신 뜻 기리며 나의 방에 걸어 놓고 두고두고 고이고이 간직하겠다고 했다.
얼떨결에 그림 값이라고 서둘러 술값을 계산하고 나서 댁에 가서 가져다 주시는 그림을 보니, 고색창연한 문짝 반 만한 유리 액자에 정성스레 표구한 산수화(山水畵)가 아닌가?
그동안 그림 하나 거실에 걸어두고 싶어서 화방을 기웃거렸지만 엄두도 못내고 돌아서던 그림들보다 더 윗길에 드는 작품이었다. 황급히 갖고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지은이의 약력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았다.
도촌 신영복: 1976~79 국전 심사위원/ 1953년 국전입선 3회 국립미술관/ 1972년 국전 국립현대미술관/ 1973년 한국현역화가 100인 전 국립현대미술관 -이하 생략-
어느 사이트에는 '주요 고가품 현황'에 그분의 그림도 있었다.
이거 봐라 하고 부런히 여기저기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하선생님과 한동갑인 1933년 생으로 남농 허건의 수제자, 호남 영암에서 활약하시며 한국 산수화의 일 분야를 개척한 대가(大家)가 아닌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그분의 그림 중 유사한 것이 인터넷에 있어 찾아보니 내 것이 된 지금의 그림과 너무나 흡사하여 모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하 선생이 젊었을 때인 1969년 경 어느 분에게 선물로 받은 그림으로, 가난한 시절부터 오랜동안 지니고 이 집 저 집 이사 다닌 것이어서, 종이가 누렇게 된 것이 원래 있던 색깔마저 퇴색한 그림으로 그 바랜 고풍한 맛이 오히려 그림의 품위를 한층 높여준다. 이 산수화는 작가의 초기의 작품의 하나로 여겨진다.
영원한 한국미의 전형을 수묵산수(水墨山水)로써 완성한 겸재 정선(謙齋 鄭敾) 의 화풍을 이어받은 산수화(山水畵)였다.
구름에 안겨 이끼낀 산사(山寺)가 있다. 그 옆에 폭포를 만들고 흐르는 여울이 하얗게 소리 내어 흐르고 있는데, 흰옷 입은 촌부 하나 있어 그 소리를 엿듣고 있다. 그 모습을 구름 위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서 지켜보고 있는 수묵화였다.
서둘러 드릴을 빌려다 벽을 뚫고 못을 박아 거실 전면에 곱게 걸어 두었더니, 외출하다가 들어와 집 안에 들어서면 산하(山)가 집안 가득 눈에 들어온다.
집안에 들어서니
우리 산하(山河) 가득하다
구름 속에 절 한채
계곡물이 폭포수라
거기 서[立]
소리에 취 한
나 같은 이는 누구신가
- 산수화
접하기 힘든 대가의 그림이 나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으니 늦복이 있는 이가 행복하다는 말대로, 나는 복 있는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마저 드는데, 아낌없이 주신 분의 이 고마움을 앞으로 어떻게 갚아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호남에 오승윤 화백이 이렇게 말하였다.
"아름다움을 찾아 그리다 보니 그것이 바로 한국의 자연이더라,"고.
청전(靑田) 이상범 화백도 말하였다.
"한국적인 모습으로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그림만을 그렸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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