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일산 아파트에 살다 보면 이사(移徙) 가는 이가 많다.
이분들은 가족 형성기(形成期)와 확대기(擴大期)를 거쳐, 자식들이 결혼하여 떠나가는 가족 축소기(縮小期)를 사는 주민들이 많아서 큰 평 버리고, 작은 아파트로 줄여 가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만 해도 한 번도 보지 않고 버린 듯한 호화장정의 '세계문학전집' 28권과 그 외 몇 권을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아내의 잔소리를 외면하고 날름 집어다가 서재를 꾸미다 보니, 그중 사형수가 쓴 5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있기에 침실에 놓고 지내다가 어느 날 자세히 보니 '최영오(崔永吾, 1938년 ~ 1963년 3월 18일) 일병의 옥중수기(獄中手記)'가 아닌가.
그 표지마저 검푸르러 우중충한데 붉은 핏방울까지 있어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최 일병은 나와 한 살 차로 최 일병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천문기상학과 4학년 재학 중 1년 6 개월 단기 복무 학보 병(學保兵)로, 나는 같은 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한 교사로 1년 단기 복무 교보 병(敎保兵)으로 같은 시기에 군대생활 중이어서 이 일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교 선후배 간으로 5.16 군사 혁명을 군대에서 함께 맞은 것이다.
이 책은 그때에 한국 사회를 강타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한 쌍 연인의 연서(戀書)를 둘러싼 슬픈 이야기다. 당시 조간신문(朝刊新聞)의 1단 톱기사에 이런 글이 있었다.
"연서(戀書) 눈 도둑 죽인 격정(激情) / 학도병 두 상사 사살(死殺) 죄로 사형 구형"
한국일보 사설에서는 "학보 병 최영오 일병의 경우"라는 제목 하에, 피살된 같은 부대 정방신(鄭邦信) 병장과 고한규(高漢奎) 상병이 이 연인의 12통 사신(私信)을 가로채어 그 내용을 소대원들 앞에서 읽으며 야유까지 함에 격분한 최 일병은 부대 상관에게 시정을 요구하였다.
두 상급 병이 이 일로 상관들에게 기합을 받고 그 화풀이를 하자 내성적이었던 최오영 일병은 이성을 잃고 불행한 행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19XX.7.8. 낮 12:35경 사단사령부 연병장에 전 장병이 집합하여 위문공연을 관람하게 되었을 때 마침 정 병장과 고 상병이 내무반 앞 국기 게양대에 연병장 쪽의 무대를 향하여 나란히 서있는 것을 보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내무반에 뛰어 들어가 M1 소총에 있는 실탄 1크립(8발)을 장전한 후 들고 나와 그들의 등 뒤에서 정 병장에게 4발, 고 상병에게 3발을 각각 발사하여 즉사시키고 말았다.
당시는 5.16 직후라 국방분과 김재춘 위원장과 육군 참모총장 김종오 대장이 나서서 그 직속상관을 직무 유기죄로 구속하면서, 사신(私信) 검열은 육군 규정을 어긴 것이라 하였고, 사적(私的) 제재의 금지와 서신의 기밀 유지로써 인권 옹호에 만전을 꾀할 것을 강조하겠다고 대국민 유감의 담화를 발표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였다.
문인들도 한 목소리가 되어 '브라우닝'의 말대로 사랑이라는 인생의 목적을 살고 있는 이 한 쌍의 연인을 위한 구명 운동을 위하여 연판장을 돌려가며 서명운동에 앞장섰다.
이 책은 최영오의 '옥중수기(獄中手記)'와 그의 애인 장현숙(張賢淑) 양의 '고백수기', '두 연인들의 사랑의 일기' 그리고 '문제가 되었던 최 군에게 보내는 장양(張孃)의 편지'가, 구상 시인의 서문과 함께 엮었다.
부하의 편지를 허락도 없이 먼저 뜯어보고 여러 사람 앞에서 조롱하며 기합을 주다가 비명의 죽음을 자초한 두 사병 선임은 수원농고를 졸업한 총각이요, 또 한 사람은 전남 정읍농고를 졸업하고 임신한 아내를 두고 제대를 3개월 앞둔 기혼자였다.
그 무렵에 내 또래인 사병들은 대학 졸업생이 거의 없을 때이어서 당시 군대 사병들에게는 고둥학교 졸업만 하였어도 학벌이 좋은 편인 시기였는데 자기네들보다 한참 졸병이 1년 반의 단기 복무를 하는 우리네 같은 사람들을 계급을 앞세워 괴롭히는 많은 경우로 필자도 죄 없이 시달리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허나, 사랑을 방해하면 지옥도 못 간다는 말을 그들은 왜 모르고 있었을까?
다음은 최영오가 쓴 행복했던 시절의 일기의 일부이다.
"그동안 j 양에게서 잡지책도 소포로 받고, 편지 두 통도 받았다. 그리고 오늘은 또 소포를 받았다. 우표 20장과 봉투 만년필이었다. 새로운 만년필을 사 보낼 수 있는 일이었지만 자기가 쓰던 손때 묻은 만년필을 보냈던 것이다. 알뜰한 성의의 선물이었다. 덩달아 함께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전우(戰友)도 있었다."
누가 이보다 더 귀한 선물을 받은 자 있는가. 누가 이보다 더 큰 사랑을 누린 자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짧으나마 굵고 깊었던 사랑이 우리들을 부러워하게까지 한다.
연인의 수기가 실린 '東亞春秋' 창간호를 사서 들고 근처 다방에 뛰어 들어가 읽으면서 애인 J양은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그렇다. 영오 씨가 먼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으려 계획하고 노력을 경주한 것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은 우리 영호 씨의 발랄한 생명을 빼앗으려고 오히려 필요 이상의 노력을 쏟은 것아 아니었던가.
영오 씨가 누구를 죽였단 말이냐? 저들의 인간 됨을 죽인 것이지-.'
하나의 인간이 인간을 인간 이하의 노리개로 여기고 향락하려는 씹고 싶도록 잔인한 인간성을 죽여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노리개로 취급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악이다. (후략)
여기서 연인(戀人)을 대신해서 어떠한 형극의 형벌이라도 대신 받게 해달라고 처절히 호소하기도 하면서-. 고백수기에는 결국은 원인이 된 자기의 편지로 인한 여인의 그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장양이 다니던 대학의 한 교수는 이러한 마음을 헤아려 독신을 지키며 평생이라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여 주기 위해서 문과대학에서 약학대학으로 전과토록 주선해 주어 장래를 준비하게 하여 주었다.
생각해 보면 이 비극의 여주인공은 지금쯤은 이 세상 어디에서 팔순(傘壽)의 나이에 쓸쓸히 노처녀의 몸으로 어느 약국을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인생이 고해(苦海)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4. 19 때에는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앞장서서 광화문에서 청와대를 향하던 젊디 젊은 서울대학교 천문기상학과 이 젊은이가 쏘고 간 것은 결국은 무엇일까?
나이나 혹은 그 알량한 보잘것없는 지위를 앞세워 약자를 괴롭히는 사회를 쏘고 간 것은 아닌가.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은 자존심이 방아쇠를 담기게 한 것은 아닌가.
아랫사람에게는 아무렇게 해도 된다는 부도덕을 쏘고 간 것은 아닌가.
이러한 일이 지금 군대에서 일어났다면 지금 우리 국민들이 그를 사형장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식의 구명운동을 위해 신문사로 경무대(景武臺, 지금의 청와대)로 찾아다니며 울부짖던 병약한 그의 어머니 이숙자(李淑慈) 여사는 아들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듣던 바로 그날,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살아온 그 한 많은 인생을 '영호야, 영호야!'를 외치며 한강 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지은이: 성철용, 아호 ilman
약력: ‘한국수필’, ‘시조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여행작가
’하루가 아름다워질 때'(시문집), ’한국 국립공원 산행기‘, ’한국도립공원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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