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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靑山島) 이야기

ilman 2021. 5. 21. 10:09

청산도(靑山島) 이야기

청산도(靑山島) 절로 절로, 바다도 절로 절로

섬 절로 하늘 절로 푸름도 절로 절로

이 중에 절로 생긴 몸 구경도 절로 하리라.

                              -청산도/ ilman

 우암 송시열 선생의 시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녹수(綠水)도 절로 절로~ '  내가 가고 있는 청산도(靑山島)를 노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나서 시조시인의 입장에서 청산도를 널리 알리고자 시조화 해본 시조다. 

 청산도(靑山島) 소개

Corona19 역병(疫病)으로 꽁꽁 묶여 아무 데도 못 가고 방콕 하며 살던 내가 2년째 맞는 올봄도 허송세월 하는 것이 안타까워, 친구 따라 용기 내어 천리 길을 달려왔다.
'빨리 가려거든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하지 않던가. 청산도는 청정지역이라서인가 신기하게도 그동안 확진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섬이라 한다.

건강한 사람들이 여행이 좋아 다니는 것이니 그래서 확진자가 없는 천국 같은 청산도가 되었나 보다. 

청산도를 오기 위해서는 완도(莞島) 남동쪽으로 19.7km, 배로 50분을 달려와야 했다. 세계에서 섬이 많은 나라를 조사해 보니,

1위  스웨덴(221,800개), 2 핀란드(188,000), 3 캐나다(52,455) 4 인도네시아: 17,508), 5 호주(8.222) 6 필리핀(7,107), 7 일본(6,853)~10위 Korea(3,300)였다. 섬 중에 한국에서는 25번째로 크다는 33.28 ㎢에, 해안선 길이가 42km가 되는 청산면에서 인구 2,590명(2009)이 살고 있는 청산도는 여수시 완도군에 속한 청산면의 섬이다. 

 청산도는 경치가 너무 좋아 일명 선원(仙源) 선산(仙山)이라 불렀다. 청산도는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섬이라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1981년 12.1 지정: 한국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 

  -2007년 12. 1 선정: 이탈리아의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

  -2012년 CNN 선정: Korea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33 중 4위

  -2013년 환경부 선정: 청산도“상세 마을”- 한국 국립공원 최고 명품마을 

  -2014년 후쿠오카 지사 선정: 일본 한류 팬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하는 영화 서편제 촬영지  청산도

  -2017년 한국관광공사 선정: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 섬

 이 청산도에는 섬 이름처럼 산도 많다. 최고로 높다는 매봉산(384.5m)을 위시해서 대봉산(334m), 보적산(330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다.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하천 따라 좁은 평야가 발달해 있고 남쪽 해안에는 10∼20m의 비교적 높은 해식애(海蝕崖)가 이 섬에 경치를 꾸며 주고 있다.


청산도 관광지 코스

벼르고 벼르던 청산도에 드디어 우리가 상륙한 곳이 바로 이 청산면 '도청항'이다.

청산면에는 23개의 리(里)가 있는데 그중에 청산항은 도청리에 속하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청산항'을 ‘도청항'이라 부른다.

 우리 일행 사진작가 네 명 모두가 청산도가 초행길이라서 이 섬의 명승지가 어디 어디인지, 그곳들을 어떤 경로로 가야 하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이런 경우에는 현지의 광광 안내소에 가서 팸풀릿을 구하거나, 아니면 관광버스나 공용 순환 버스의 노선을 알아볼 일이다. 

 청산면은 교통 사정이 열악한 편이다. 순환 버스, 마을버스, 택시와 개인택시가 각각 1대뿐인 섬이라서 성수기나 공휴일 등에는 교통편이 불편하다. 그래서 슬로길(SLOW)이 생겼나 오해할 정도다.

그래서인가. 승용차는 물론 관광버스까지 차량 36대 이상을 실을 수 있는 대형 여객선 아일랜드호, 청산호, 등이 완도와 목포에서 출항하고 있다. 

 우리는 차로 왔지만 둘러볼 청산도 관광 코스는 대개  다음과 같다.

청산 복지회관 출발- 당리(서편제)― 읍리(고인돌) - 범바위(청계리)- 양지리(구들장논)- 상서리(돌담길)- 신흥리(해수욕

장)- 진산리(갯돌해변)- 지리(해수욕장)- 청산도항(도착)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옆 이미지와 같은 노선을 청산도인들은 권장하고 있다.


▶청산도(靑山島)와 서편제(西便制) 

  청산도가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서편제(西便制)  영화 촬영지였기 때문이다. 서편제는 원작이 이청준의 ‘서편제'란 소설로 영화 '장군의 아들'로 유명한 임권택 감독이 매가폰을 잡아 만든 영화다. 이 서편제가 단성사에서 상영하여 한국 최초로 120만 관객을 자랑하는 대히트를 하면서 절해고도(絶海孤島)인 청산도가 이에 편승하여 온 국민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서편제의 주인공은 의붓 아비 소리꾼 유봉과 딸 송화와 동호 세 사람이 당리의 돌담길을 내려오면서 판소리 '진도아리랑'을 5분간이나 한바탕 신나게 부르며 노니는 것이 서편제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다.

 따라서 청산도 여행에서는 서편제 영화의 간단한 스토리 정도는 기억하거나, 거기에다 판소리에 대한 약간의 기본 상식을 안다면 금상첨화라 할 것이다. 

  
판소리란 국악(國樂)의 한 장르로 긴 이야기(story)를 고수(鼓手)의 북장단과 추임새에 맞추어, 광대(소리꾼)가 혼자서 몸짓(발림)을 섞어 가면서 일정한 대사(아니리)와 소리(창)로 엮어나가는 우리 민족 고유의 극적인 국악의 한 종류다.

 판소리는 크게 서편제(西便制)와 동편제(東便制) 둘로 나뉜다.

*. 서편제(西便制)는 호남의 서쪽인 광주 나주, 보성 등지에서 일어난 판소리 유파로 그 노래가 부드럽고 애절한 한(恨)을 바탕으로 하는 국악의 노래인데 반하여, 동편제(東便制)는 서편제와 반대로 호남 동쪽인 운봉, 구례, 순창 등지에서 일어난 판소리 유파로 웅장하고 그윽한 곡조를 바탕으로 하는 판소리다.

 따라서 청산도의 서편제 내용도 한(恨)에 포인트를 맞추어 진행된다.


소리꾼 의부(義父)인 유봉(김명곤)이 의붓딸 송화(오해영)에게 소리를, 동호에게는 고수(鼓手)로 북치는 법을 가르쳐 나아가는 이야기다.

 동호가 자기 어머니를 아버지 유봉이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다가, 떠돌이 소리꾼으로서의 가난을 박차고 가출해 버리자, 유봉은 친 딸 아닌 송화마저 동호처럼 자기 곁을 떠나 갈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생각에다가 송화의 노래에 서편제의 특징인 한(恨)을 심어 판소리 명창으로 키워주고 싶다는 소리꾼의 욕심에 송화의 눈을 멀게 하려고 한약 부앙을 먹여 송화를 장님으로 만들어 노래를 가르치다가, 한(恨)을 남기고 죽는다. 그 후 떠나갔던 동호는 누나를 찾아 전국 각지를 헤매다가 장님이 된 누나 송화를 주막에서 만나 마지막 판소리 노래 한 마당을 함께 부르면서 서로는 남매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없이 그냥 이별한다는 한(恨)의 이야기가 동호의 회상으로 전개된다.
  주(註): 서편제의 주인공 오해영은 남원에서 미스 춘향 명창으로 1등 당선한 국악인이다.

 

청산도 슬로길 11코스 

  청산도 여행 코스는 다른 여행지와는 차별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제주도에는 '올레 길 20 코스'가 있다면, 청산도에는 '슬로길 11코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산도에는 '11코스(17길) 슬로길 100리 (42.195km)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은 청산도 주민들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저 마을에서 이 마을로, 서로 간에 이동을 위해 옛날부터 있었던 길을 11코스'로 묶어 거기에 아름다움에 이야기를 더하여 조성해 놓은 길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봄에는 유채꽃과 청보리의 푸르름이, 가을에는 단풍의 길이 되어, 그 길 주변을 아름답게 꾸며 주어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하여 '슬로길'이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그 길에는 청산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와  역사가 있어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탐방로'로 선정하였고,  이어 2011년 국제 슬로시티 연맹의 공식 인증을 받아서 '세계의 슬로길 1호'로 지정된 것이니, 이 길은 한국인은 물론 세계에 인정받고 세계인들이 오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길이 되었다.

 

*.1코스: 미항(美港) 길:  5.71km 1시간 30분 

 미항 길은(동 구정길- 서편제길- 화랑포길 거리) 청산도 슬로길 11코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청산도의 관문(關門)인 도청항(청산항)부터 선창 부둣가를 따라 걷는 미항 길은, 청산도에서 가장 활기찬 곳이기도 하다.
여객선이 드나드는 입구의 빨강, 하양 등대가 그렇고,  청산도 비가 또한 그렇다. 초등학교와 면소재지 등 각종 공공시설이 1 코스에 있다. 여객 승차권 구매와 관광 안내소는 물론 청산도 어판장, 청산도의 각종 특산물 상가들과 청산도 먹거리가 거의 이곳에 몰려 있는 곳이지만 민박하려면 1km 이상 떨어진 마을에 가야 한다.

  1코스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서편제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 코스 길에는 '서편재'와 '봄의 왈츠'의 촬영소와 촬영 현장도 볼 수가 있다.

슬로 길을 떠날 때는 바닷가 슬로길 출발점에 있는 문에 매달아 놓은 '느림의 종'을 타종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는 건데 우리는 승용차를 이용해 서두르다 보니 아깝게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 종 위에 느림의 청산도의 로고 달팽이처럼 느리게 천천히 가면선 볼 것을 보며 가야 하는데 차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편제 길에는 당리재 능선길이 있어서 거기서 푸른 바다를 굽어보니 한 폭의 수채화가 펼쳐 저 있었다. 청산도의 아름다운 조망이었다. 

 

우리가 간 때가 맞추어 봄이라서, 이 섬 특유의 돌담 너머에 펼쳐진 초록빛 청보리밭과, 그 너머 또 한 폭의 저 찬란한 노란 유채꽃 밭, 또 그 너머의 푸른 바다에 둥둥 떠있는 저, 저, 저 전복양식장이 마주 보고 있는 푸른 두 산 사이에 아름다운 다도해의 수평선을 배경 삼아 떠 있는 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다녀본 적지 않은 국내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멋진 풍경 사이 황톳길  하나가 꼬불꼬불 우리를 향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등에 지고 올라오고 있다. 천천히 달팽이보다 더 천천히-. 이런 관경을 보니 시심이 절로 동한다.

 

바다보다 넓은 것이 있다.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푸른 것이 있다.

바다다.

하늘과 바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

청산도(靑山島)다. 

                             -청산도/ ilman

 서편제 길에는 주막도 있어 한 잔 걸치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말을 걸어오는 내 또래 주민이 있다. 

"저 빙 둘러 보이는 성(城) 좀 보세요, 왜구로부터 서남해안을 방어하기 위해 쌓았다는 10리나 되는 청진산성(靑鎭山城)입니다. ' 고마운 주민을 만나 건성 보고 지나칠 풍경을 낚기는 하였지만 한 잔의 낭만은 지나치고 말았구나. 


*. 2코스: 사랑길:
 2.1km>48분

  연애바위 입구-1050m-모래낭길(당리재)-1050m-읍리 앞개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슬로길이라 하여 '사랑길'이라 한 것 같다. 그래 그런가 청산도 사람들은 '연애 바탕 길이라고 이르기도 한다. 이 길은 당리에서 구장리를 잇는 해안 적벽길로 이 길에 들어서면 하늘에 떠 있는 듯 신비함을 느끼며 해안 절경의 운치를 즐길 수가 있다. 입구에는 바다로 갈 수 있는 나무 계단이 있어 해변을 거닐며  삶의 여유를 느껴 볼 수도 있는 길로 초입에는 초분 체험장도 있다.

'초분(草墳)'이란 시신을 바로 땅속에 묻지 않고 관을 땅 위에 올려놓고 풀과 집 등으로 엮은 이엉을 그 위에 덮어 두었다가  몇 년 후 뼈를 골라 땅에 묻는 섬사람들의 장례문화다.

 왜 그랬을까? 섬사람들은 죽어 썩어서 냄새나는 시신을 조상 곁에 묻는다는 것은 효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2~3년을 두고 다 썩힌 후 깨끗해진 고인의 뼈를 조상 곁에 묻는 것이 효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는 우리나라 섬지방의 풍습이라니 그 깊은 효심이 나그네의 머리를 끄덕이게 한다.

*. 3코스 고인돌 길: 4.5km> 88분

 읍리의 지석묘(誌石墓)는 남방식 고인돌(전남 문화재 자료 제116호)과  읍리 하마비(문화재 자료 108호)가 한 정원에 모셔져 있다.
읍리 하마비(下馬碑)의 특색은 '下馬碑'란 글자 대신 불상(佛像)을 새겨 놓은 것이다. 여기서는 아무리 지체가 높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 4. 낭길 1.8km 40분

 낭길에서 '낭'은 낭떠러지의 준말이니 낭길은 해안 벼랑길을 말하는 것이다. 청산도 특유의 경치를 보고자 하는 이들이 꼭 가봐야 하는 길이다. 우리들은 차로 인하여 그냥 지나친 길이었다.

읍리 해변 방파제-700m-바람 구명-350m-따순기미-500m-권덕리 해변-250m-권덕리 마을회관

 

*. 5코스 범바위길: 5.54km>약 2시간 5분

  권덕리 마을회관-0.3Km-권덕리 삼거리-0.8Km-말 탄바 위-1.5Km-범바위- 1.8Km-범바위 주차장

청산도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1코스 미항 길 다음으로 많이 찾는 곳이 5, 코스로 보적산(380m) 기슭의 '범바위 길'이요, 그 다음이 '6코스 구들장 길과 다랑이 길'이다.
  5 코스는 권덕리에서 범바위까지 이르는 등산을 겸하는 길로, 바위 모양이 웅크려 앉아 있는 범의 모양을 닮았다 해서 범바위라 부른다. 범바위에서 산을 따라 작은 범바위를 향하여 올라가는 중간에 청산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展望臺)'가 있다. 거기서는 먹거리도 파는 모양인데 오늘은 일출을 보느라 떠난 새벽 일찍이라서 사람이 없었다.

범바위 근처에는 남해 금산사의 금산(錦山)의 보리암 삼층탑 부처님 석상 앞처럼  나침반이 남북을 제대로 가리키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을 보라고 저 아래 둥근 판에 여러 개의 나침반을 설치해 놓고 있다. 여기가 바로 청산도의 생기운을 모아가는 곳으로 유명한 범바위 일대다.

작은 범바위서 청계리까지 이어지는 하산 길은 그 모양이 용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이라 하여 '용길'이라 부른다. 길을 따라 해안절경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 6코스 구들장 길-다랑이길:
 슬로길/ 5.2km> 82분

중촌 들샘-290m-다랑이길(다랭이 논길)-650m- 신풍리 마을회관-805m-숭모사(崇慕祀)-1130m-양지리 구들장논


*구들장 논(세계중요 농업 유산 지정): 언덕인 논이라서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아 바닥을 만든 후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이 구들장 논이다.

세계에서 오직 청산도에만 있는 논이다.

그래서 논에 물이 오래 머물지 못하여 손이 많이 가지만 그로 인하여 그 청산도 쌀맛이 더 일품이라고 한다.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겠다고 만든 논으로 국가로부터 농업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국가와 세계에서 중요 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논이다.
다랑이 논과의 구별은 돌을 쌓아 올린 축대와 그 축대 아래의 돌로 만든 수구(水口)다.

*다랑이 논: 산 골짜기 같은 곳에 층층으로 만든 좁고 작은 산의 논배미다. 

*숭모사(崇慕祀) : 그 마을에 조선 말기 문신 귤은 김류(金瀏) 선생울 모신 사당이 있다. 거문도가 고향인 선생은 청산도의 후한 인심에 매료되어  고향인 거문도를 떠나 작고할 때까지 부흥리에 머물면서 후세를 교육하였다. 이를  잊지 못하여 청산도 제자들이 모신 사당이 숭모사다.

*.이 글 말미에  '귤은  김류 선생 부록'을 참고할 것 


*.
7코스 돌담길
(등록문화제279호): 6.2km> 136분

  상서돌담마을-100m-돌담길/소막-670m-동촌리 돌담길- 410m-동천리 할머니나무-220m- 1박 2일 촬영지 200m-산훙리물등해수욕장정자 쉼터

 청산도는 유난히 돌이 많은 섬이다. 게다가 청산도는 바람이 잦은 섬이라서 마을 전체가 옛날에 쌓은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생태우수 마을(2010), 국립공원 지정 명품마을(2011), 국립공원 지정 최고 명품마을(2014)
*.8코스: 해맞이길 파도가 연주하는 갯돌의 음악소리 슬로길/ 4.1km>77분

*. 9코스: 단풍길 호젓한 가을 색 슬로길/ 3.2km> 55분
*. 10코스 노을 길: 바다로 향하는 거북 같은 슬로길 2.6km>51분

*. 11코스: 미로길: 1.2km/ 21분

 청산중학교서 도청항까지 이르는 마지막 코스로 이 골목길은 미로(迷路)처럼 복잡한 길이다. 

   도청리 뒷등 길-200m- 사장 개-500m-청산지역이동센터(구 우체국)-120m- 안통길-13m- 향토역사문화전시관(구면 사무소)-250m-도청항 방문자센터

안통길(2012년 한국농어촌 건축대전 대상을 수상): 안동길에 들어서면 일제 강점기 건축 양식 등이 옛날 시대상 그대로가 남아 있어 옛날을 되돌아보게 한다. 

  청산도는 옛날에 흑산도, 거문도와 함께 3대 남해안의 어장으로 가장 번화했던 거리를 안통길에서 엿볼 수 있다.
한 예로 당시의 일인 주택도 볼 수 있고, 고등어와 삼치 파시(波市)가 지금도 유명하다.

향토역사문화 전시실 (한국농어촌 건축대전 대상 수상(2012): 일제 강점기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로 구 청산도 면사무소 건물로 쓰이던 곳이다.

 

추천코스
   청산도에 사는 사람들도 청산도를 다 다녀본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이, 나와 같이 하루도 다 못 되는 구경으로 어찌 청산도를 논할 수 있으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청산의 11코스(17길)만도 42.195km로 100리 길인데-.

 슬로길은 걷기를 중심으로 한 말이지 '차 슬로 길'이 아니어서 청산도의 진면목을 보려면 걸어서 슬로길 하여야 할 곳이다. 

 게다가 청산도에 대한 자료는 현지 아니면 구할 수가 없어서 청산도에 승용차를 가지고 온 우리 같은 경우도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관광지라 생각되는 곳에 잠깐씩 내려서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슬로길 11개 중에 안 가본 곳이 더 많았다. 청산도뿐만 아니라 모든 여행은 거의 그랬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생략의 예술'이라고 늘 말하며 다니는 사람이다. 

마음이 몸을 부려도 좋던 젊은 시절에 나는 주로 산을 다녔다. 지금은 몸이 마음을 부려 먹을 나이라서 섬을 다니고 있다.

'한국 국립공원 산행기'와 '한국 도립공원 산행기'에 이어 나의 마지막 저서가 될 '한국 해양 국립공원 섬 여행기'를 출간하는 것이 꿈이라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하여 섬을 찾아다니고 있다. 다음은 나의 한 해란 글이다. 

 

한 해의 1/4은 섬 여행을 다니구요.
2/4는 그 글을 쓰며 보내지요.
나머지 1/4은 무얼하냐구요?
탈고를 한 후 ㅈ자축 막걸리 마시며 살아요.
                                 -ilman의 1년

 ilman은 내 필명이다. 건강을 위해 일 만원 어치만 마시자고 지은 자호(自號)다.

이런 나와 같이 청산도를 바삐 떠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청산도는 다음과 같은 주요 코스를 정리하고 있다.  

*. 슬로길 주요 코스 정리 안내

  관광사진 선택 코스: 1. 미항 길./  청산 비경 강력 추천코스: 4. 낭길, 7. 돌담길/

 섬마을 콧바람 산책코스: 3길 / 등산 같은 운동 코스: 2. 사랑길, 5. 길/

시간이 없는 이를 위한 알짜 코스 4. 낭길, 11. 미로길/

 

*. 부록

▶숭모사(崇慕祀)  :

귤은(橘隱) 김유(金瀏, 1814~1884) 선생은 거문도 출생으로  숙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을 거쳐서 대제학에 오른 당대 큰 학자였다.  벼슬길에서 물러나 고향인 거금도(居文島)로 돌아와 만해 김양록(1806~1855) 선생과 함께 낙영재를 짓고 지역의 영재 교육에 힘쓴 분이다.    말년에는 청산도에 들어와서 청산재(靑山齋)를 짓고 후학에게 학문을 강론하다가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청산도의 김낙인 외  43명의 제자들이 뜻을 모아 지금의 청산면 부흥리 호은제 터에 숭모사(崇慕祀)를 짓고 매년 제를 지내고 있다, 

 

귤은 김유(金瀏, 1814~1884) 선생의 전설.

  중국과 러시아 영국 등이 남진 정책으로 거문도를 탐내던 시절이었다.

중국 청나라 수군 제독 정여창이 그 무렵 거문도에 와서 김유(金瀏,)라는 학자를 만나 필담(筆談)을 나누다가 그 문장에 탄복하여 말했다 "이 섬은 문장에 뛰어난 사람들이 사는 섬이로구나!" 이후에 사람들은 이 섬을 클 '거(巨)', 글월 '문(文)' '거문도(巨文島)'라 했다는 이야기다. 

  거문도 동도(東島)에도 김유(金劉) 선생을 기리는 사당이 있고 서도 북쪽에는 대유학자 김양록(晩悔 金陽錄) 선생을 기리는 서산사가 있다.

거문도(巨文島 서쪽에 있는 섬 서도(西島)에 높이 128m의 수월산이 있다. 그 아래 바닷속에 길이 30m 가량의 '문필암(文筆岩)'이라는 남근형 바위가 있어서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섬에 대유학자가 태어날 것이라 하였다.  그분 중에 한 분이 바로 귤은(橘隱) 김유(金瀏)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