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목일과 청명(淸明), 한식(寒食),/ 4월 5일(목), 6일(토)
금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라서 예년보다 더 기다리던 봄이 드디어 왔다.
봄의 전령사 산수유 노란꽃이 다투어 피더니, 벌써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새하얀 목련이 뾰족한 꽃잎을 열었다.
부산의 벚꽃 소식이 오는 것을 보면 곧 '진해 군항 벚꽃축제'와 함께 '서울 여의도 윤중제' 가 봄 소식을 전해 올 것이다. 예년보다 늦게나마 북으로 북으로 꽃들이 구보(驅步)해 오고 있다.
봄의 전령사 산수유 노란꽃이 다투어 피더니, 벌써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새하얀 목련이 뾰족한 꽃잎을 열었다.
부산의 벚꽃 소식이 오는 것을 보면 곧 '진해 군항 벚꽃축제'와 함께 '서울 여의도 윤중제' 가 봄 소식을 전해 올 것이다. 예년보다 늦게나마 북으로 북으로 꽃들이 구보(驅步)해 오고 있다.
풍신(風神)의 꽃샘 추위에 봄은 봄을 고집하고
흰눈도 꼭꼭 숨어 색을 그리는 들판에서
소녀의
젖봉오리 같은
봄을 여는 아, 저 소리
흰눈도 꼭꼭 숨어 색을 그리는 들판에서
소녀의
젖봉오리 같은
봄을 여는 아, 저 소리
*. 청명(淸明)과 식목일(植木日)
청명(淸明)은 24 절기의 하나로 춘분(春分)과 곡우(穀雨) 사이 4월 5일로 식목일과 겹쳐 오기도 한다.
청명(淸明)과 한식(寒食)도 같은 날이거나 그 전후의 날이어서 "청명(淸明)에 죽으나 한식(寒食)에 죽으나" 라는 속담이 생긴 것 같다. 어떤 일이 별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청명(淸明)과 한식(寒食) 무렵은 봄빛이 완연하고 날씨가 맑고 깨끗해지기 시작하는 때여서 농촌에서는 논밭에서 둑을 손보고거나 가래질을 하고 나무 심기를 서두른다.
"청명절에는 부지깽이를 거꾸로 꽂아도 산다."라는 속담처럼 생명력이 왕성한 시기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한식과 청명 무렵인 4월 5일을 식목일(植木日)로 1949년부터 대통령으로 정하고 공휴일로 정하기도 하였었다.
식목일을 4월 5일로 정한 것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참작해서였다.
-신라가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날이 문무왕 17년(677년) 음력 2월 25일로 한식날 무렵이었다. 이 무렵 성종 24년(1343년) 3월 10일에는 성종이 문무백관과 함께 동대문 밖의 선농단(先農壇)에 나가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낸[親祭] 후에 왕이 친히 농사를 지었다.
이에 신라의 삼국통일과 같이 우리들도 통일을 위해 청명(淸明) 전후인 날을 정하여 1949년부터 4월 5일을 국가적인 행사의 날인 식목일로 정하여 공휴일로 지정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동아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상수의 세시풍속
이에 신라의 삼국통일과 같이 우리들도 통일을 위해 청명(淸明) 전후인 날을 정하여 1949년부터 4월 5일을 국가적인 행사의 날인 식목일로 정하여 공휴일로 지정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동아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상수의 세시풍속
*. 한식(寒食)/ 4월 6일(일)
한식(寒食)은 설, 단오,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절 중의 하나다.
한식이 오면 한국 사람들은 정성껏 차린 제수(祭需)를 가지고 성묘를 가서 묘제(墓祭)를 지내고 벌초(伐草)를 하고 잔디를 돌본다.
‘음력 2월 한식(寒食)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하며 옛 사람들은 그 해의 철이 이르고 빠름을 알았다는데 금년 한식날도 2월이어서인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
한식은 신라 시대 무렵에 중국에서 들여온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따라서 한식의 유래담 또한 중국에서 유래되는데 그 몇 가지을 들면 다음과 같다.
한식의 풍속을 고대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나온 것이다. -육당 최남선
옛 사람들는 한식(寒食)에 비가 오면 ‘물한식’이라 하여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였으나 천둥이 치면 흉년이나 국가에 불상사가 난다고 몹시 꺼려했다. 공휴일이었던 4월 5일 식목일은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의하여 지금은 공휴일을 폐지하였다.
--중국의 옛 풍속: 한식 무렵에는 풍우(風雨)가 심하여 불을 금하였기 때문에 이 날 찬밥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한식이 오면 한국 사람들은 정성껏 차린 제수(祭需)를 가지고 성묘를 가서 묘제(墓祭)를 지내고 벌초(伐草)를 하고 잔디를 돌본다.
‘음력 2월 한식(寒食)에는 꽃이 피어도, 3월 한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하며 옛 사람들은 그 해의 철이 이르고 빠름을 알았다는데 금년 한식날도 2월이어서인가 꽃이 다투어 피고 있다.
한식은 신라 시대 무렵에 중국에서 들여온 세시풍속(歲時風俗)이다.
따라서 한식의 유래담 또한 중국에서 유래되는데 그 몇 가지을 들면 다음과 같다.
한식의 풍속을 고대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해마다 봄에 신화(新火)를 만들어 구화(舊火)를 금지하던 예속(禮俗)에서 나온 것이다. -육당 최남선
옛 사람들는 한식(寒食)에 비가 오면 ‘물한식’이라 하여 풍년이 든다고 좋아하였으나 천둥이 치면 흉년이나 국가에 불상사가 난다고 몹시 꺼려했다. 공휴일이었던 4월 5일 식목일은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여론에 의하여 지금은 공휴일을 폐지하였다.
--중국의 옛 풍속: 한식 무렵에는 풍우(風雨)가 심하여 불을 금하였기 때문에 이 날 찬밥을 먹는 습관이 생겼다.
- 개자추(介子推) 전설: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진(晉) 나라에 문공(文公)이 아버지 헌공(獻公)에게 추방당하여 망명 생활을 할 무렵 충신 개자추(介子推)가 19년 동안 모실 때였다.
한번은 문공이 배가 고파서 탈진하여 거의 죽게 되었을 때 개자추는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도려내어 구워 먹여 문공을 살린 일이 있었다.
그 후 진(晉)의 왕이 된 문공은 자기를 도와 준 신하들에게 상을 주었는데 개자추를 깜박 잊고 챙기지 않았다. 뒤늦게 개자추를 생각하고 벼슬을 내리려 하였으나 개자추는 이를 고사(固辭)하고 노모와 함께 면산(緜山)에 들어가 숨어 살며 나오지 않았다.
왕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면산(緜山)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노모와 함께 그냥 타죽고 말았다.
이를 매우 안타까워하던 왕은 개자추가 죽은 날은 불을 쓰지 말게 하여 백성들은 찬밥을 먹게 되었다. 그 후 개자추가 타 죽은 일을 기리기는 것이 한식(寒食) 풍속이 되었다.
이를 매우 안타까워하던 왕은 개자추가 죽은 날은 불을 쓰지 말게 하여 백성들은 찬밥을 먹게 되었다. 그 후 개자추가 타 죽은 일을 기리기는 것이 한식(寒食) 풍속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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