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일 뻔했어요
"큰 일 날 뻔했어요. 암 직전에 오신 거예요."
3일 전에 국립암센터에서 대장암 검사를 하며 용종을 7개나 떼어내며 하던 의사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 좋아하던 술을 5일째나 한 방울을 못 마시고 집에서 자중하고 있다. 누워서 대장검사를 하면서 모니터에 나타난 나의 창자 대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50년 이상 마셔온 술이 할퀴고 간 그 통로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었었다.
얼마나 많은 술이 저 길을 통과하였을까?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는가. 그때문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추태를 부렸을까.
솔직히 말해서 병원에 오기 전까지 나의 내장에 술이 흘러가지 않은 날은 어렸을 때나, 아니면 이렇게 몸을 아파하는 때 밖에 없었다. 그러고도 술을 마시다가 부끄럽게도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 운전면허증을 다시 따던 날 울면서 나는 이런 시를 썼다.
낯선 이 태워 주며 우리 되거나
초면(初面)과 흠뻑 취해 허허롭던 낭만(浪漫)이
일순의 만용(蠻勇)에
차(車)도
면허(免許)도
돈도
술 마시던 명분(名分)과
그 알량한 체면( 體面)마저
일순간(一瞬間)에 다 날려 버리고,
그리고 그리고도
나를 잃었다.
그 대신에
회한(悔恨)과 불편과, 위로(慰勞)를 얻었고
가해(加害)와
구속(拘束)과
허영(虛榮)에서 해방되었지만,
용서할 수 없는 슬픈 자아(自我)와
밤바다 꿈마다 자결(自決)을 모의한다.
-참회록
그 후로도 술로 인한 슬픔을 까맣게 잊어 버리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시고 다녔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에는 건강을 잃고 그 무서운 백혈병 무균병실에 입원하기도 했었다. 그때도 나는 이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느 땐가
만약 아내의 눈동자에서
내 삶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게 된다면
노을로 떠서 노을 속에 지는 태양같이
가을날의 마지막 단풍잎처럼
아름다운 나머지를 살아가리라.
눈물 겹게 준비하고
친구 따라 여행 떠나던 아내처럼
마음 찍어 기록하리라.
가진 것 없던 나를 있게 해 주고
가슴 깊던 한을 풀도록 지켜 준 것이
그 중 가장 고마웠노라고
무심하였던 그동안이 나를 용서하라고
주저하고 아껴온
나의 가슴을 열어 주리라.
'사랑하였다.'고,
'사랑하고 있노라.고
'사랑하다 가노라.'고--.
당시 생각으로는 내가 마약 무사히 퇴원을 하게 된다면 다시는 술을 안 먹거나 절주하리라. 아침에는 언제나 호수공원에 가서 건강을 위해 걷거나 조깅을 하리라고 맹세하였건만, 그것도 얼마 지나니 흐지부지 도로마미타불이 되곤 했다.
그러다가 대장검사를 한 것이다. 그 자세한 검사 결과가 1주일 후에 나온다 해서 그 예약을 하고 왔다.
나는 지금 의사로부터 금주 선고를 받을까 보아 두려워하는 나날인데, 아내는 그때 만사를 제폐하고 따라나설 모양이다.
의사가 여의사이니 '요번에는-' 하고 아내는 자신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이길 희망은 전무하니, 나의 음주인생은 이제 마감해야 될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의사의 권고를 외면할 정도로 나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게 사실로 다가온다면 그동안 술로 인한 나의 자유분방한 낭만은 사라져 갈 것만 같아 서운하기만 하다.
유난히도 별이 빛나던 밤.
무수히 떨어져 내리던 별똥 하나하나.
여기
주유소(酒有所)에서 별꽃으로 만나
우리가 된다.
하나가 된다.
하늘이 내려와 술잔에 잠기면
우리는 별을 노래하며
구름을 마시는
어항 속에 행복한 물고기.
한 줄기 바람으로
물갈래를 일구다가
비껴가는 그리움..
다시 또
별을 꿈꾸는
나그네가 된다.
-주유소(酒有所)
생각해 보니 나는 술로 인해 수많은 벗도 얻었고, 노숙자와 동숙하기도 하고, 가난한 지갑이나마 가난한 사람을 향해 조금은 열 수 있었고, 그래서 다양한 소재의 글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만 해도 술을 마시다가 새로 산 카메라, 고가의 MP3와 안경 등등을 잃어 다시 사느라 고생을 하였고, 드디어는 암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수술을 하고 보니 매사에 영 자신이 없어진다.
'절주인가 금주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하는 것이 요즘 나의 화두(話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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