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전등사 旅情/ 정족산(鼎足山,일명 삼랑성)

ilman 2017. 11. 12. 11:55

*전등사 旅情/ 정족산(삼랑성)

 짓궂은 장마 비 그치더니 찬란한 새파란 하늘이 열려있다.

어떻게 이렇게 청명한 하루를 집에서 낭비할까 해서 '내 고장 강화 6월은 밴댕이 한 철인 시절~' 하면서 강화를 향하였다. 
마니산을 오르며 언제 한 번 가야지 하고 별러오던 강화도 정족산(鼎足山,113m)을 가기 위해서다. 
산과 바다를 다 볼 수 있는 곳이 강화도이고 요즈음은 오뉴월이라.  강화 특산물인 밴댕이 회가 한철이기 때문이다.

비 그친 새파란 하늘에는 하운 기봉(夏雲奇峯) 뭉게구름이 더할 나위 없이 새파란 하늘, 두고 온 우리 산하의 북쪽 하늘이 환상적인 세계를 열고 있다.
밴댕이는 강화 인천 등지의 모래 바닥에서 잡히는 몸길이 15cm 정도의 자연산 고기다. 
탕(蕩)과 구이나 젓갈을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회로 만들어 먹으면 그 맛이 썩어도 준치라는 것보다 낫다.

그러나 냉동으로 먹어서는 안 되고 속살이 하얀 때인 12 시간 이내에 먹어야 한다. 속살이 붉게 되면 젓갈 감으로 적당한 먹거리가 된다. 옛날에는 횟집에서 회의 서비스용으로 나오다가 이제는 강화 특산물이 되었으니 밴댕이 입장으로 보면 행복일까 불행일까.
 밴댕이의 산란기는 4월부터 오뉴월 경이다. 이때가 가장 기름기가 많고 맛이 좋을 때다. 
몰려오는 밴댕이를 강화의 어부들은 발(簾)을 설치하여 잡아서, 옛날에는 나라님 수라 상에도 진상하던 물고기다.
성질이 너무 급하여 물 밖에 나오면 곧바로 죽어 버려서 밴댕이를 잡는 어부들마저 살아있는 밴댕이를 본 사람이 없다 할 정도다. 그래서 쉽게 토라지는 사람들을 빗대어 '밴댕이 소갈머리'라 하는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는 전등사가 아니라 정족산(鼎足山)이라서 등산 책을 찾아보았더니 어럽쇼, 정족산은 경남 양산시에 있는 700m의 산이 아닌가.
강화의 정족산은 산꾼에게는 높이가 113m밖에 안 돼서, 전등사로 인연하여 겨우 이름을 올린 야산이 되었다.
속리산의 문장대, 문수봉, 비로봉, 입석대, 천황봉들이 법주사를 빙-둘러 있는 것처럼, 전등사(傳燈寺)를 정족산 세 봉우리가 빙- 둘러 있어 솥 '鼎'(정), 다리 '足'(족) 정족산(鼎足山)이라 하는 산이다. 그 솥을 뒤집어 놓은 세 개의 발이 바로 정족산 세 봉우리가 된다.
  버스 편을 이용하였는지라 전등사 동문 쪽으로 오르고 있다. 접시꽃이 비 온 뒤 싱싱한 녹음 사이사이에 피어있다. 
길가에 할머니들이 벗지보다는 크고 선명한 붉은 열매를 팔고 있다. 
음력 5월쯤이면 익는다는 뽀구스라는 열매인데 맛이 시고 씨가 컸다. 술을 담으면 그 신맛과 붉은 색깔이 어울려 멋진 가양주(家釀酒)가 된다고 한다.
 정족산 산행은 동문(東門)에 들어서자마자 우측으로 성터를 끼고 올라야 한다.
절보다 산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끔은 이렇게 비껴가는 것이 멋일 때가 있다. 
저 하늘처럼 새파랗게 젊던 가난한 시절 가까운 길을 돌아가는 다니던 것은 이제와 생각하니 그리운 낭만이 되었다. 
건강을 위하여 산에 오르는 경지를 벗어나고 보면 산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발전한다.

산에 가면 알 것 같다.
왜 내가 산에 오르는가를.
정상에 서면 알 것 같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산에게
배우고 싶다
살아가는 삶의 멋을_.
          -산에 가면


몽고 군(蒙古軍)에게 쫓겨 39년 동안이나 강화가 고려의 수도였던 슬픈 역사를 뒤 돌아보게 하는 정족산성을 오른쪽에 끼고 새하얀 구름과 새파란 하늘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
고려사에 의하면 삼랑성(三郞城)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가 삼국시대에 이르러 막돌을 맞추어 쌓았다. 성체 안으로는 막돌을 그 위에 맞추어 가며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한다.

단군께서 세 아들께 성을 쌓게 하시어
사고(史庫)와 왕조실록(王朝實錄) 굳게 지키실 때
성 모양
솥(鼎) 다리 같다 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 이라하네
                                      -삼랑성


  이 삼랑성(三郞城)은 북한산성 같이 커다란 돌을 짜 맞춘 우람한 석성이 아니다. 
자연 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으로 대구 달성공원의 토성이나 강서구 궁성 같이 도시 성()이란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것도 성을 중심으로 오르는 곳에서만 보일 뿐 전망이 탁 트이는 곳에 이르면 성가퀴는 사라지고 만다. 그냥 천연의 낭떠러지를 이용하여 성을 쌓았을 뿐이다. 
그런 성이 빙 둘러 2.3km 오솔길로 이어지다가 남문에 이르면 비로소 의젓한 성()으로 나타 난다.

 성() 내부에 해당하는 전등사는 울창한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망만이 일품이다. 
게다가 비 온 뒤 깨끗한 티 없는 하늘은 시야를 강화 초지대교를 넘고, 김포를 지나 김포대교를 건너 저 멀리 일산의 고봉산의 북한 방송을 막아 준다는 안테나까지 선명하다.
 오랜만에 카메라가 호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곗바늘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길로 봉우리 둘을 넘으니 드디어 정족산(鼎足山,113m) 정상이다.
정족산은 강화 남쪽에 있는 산이라서 443m의 진상산과 강화도에서는 최고 산인 469m의 마니산 이 가로막고 있는 그 사이에 바다가 있고 그 건너 섬들도 있다.
마니산의 산줄기가 함허 동천(涵虛洞天)으로 내려와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개벌 조개 잡이와 수영을 겸할 수 있는 동막해수욕장 백사장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여기서 한참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다 보니 왼쪽으로 오솔길이 있어 보니 바위 끝에 녹음 속에 푹 파묻힌 전등사 전경이 있다.
전등사(傳燈寺)란 381년(소수림왕)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라 하다가, 고려 1282년에 충렬왕 비인 정화 공주가 승려 인기(印奇)에게 부탁하여 송나라의 대장경과 옥등(玉燈)을 시주하였다.  이로부터 전할 '傳'(전) 등잔 '燈'(등) '전등사(傳燈寺)'라고 이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깝게도 옥등(玉燈)은 전하지 않는다.
  남문으로 내려 거대한 나무 사이로 대웅전을 향하다 보니 여인이 홀딱 벗은 몸체를 들어낸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아름다운 배꼽 위로 향한 긴 허리 위로 거기 우리들 남정네가 그리워하는 여인네 가슴이 있고 통통한 젖무덤이 알맞은 간격으로 있는데 자신 있는 젖을 보라는 건가, 아니면 막 옷을 벗으려는가. 두 손을 하늘로 짝- 올렸다.
여인의 젖은 저렇게 사발을 엎어놓은 형상도 아름답지만, 산 능선이 흐르듯 아래를 향하다가 문득 멈추어서 봉곳한 봉우리로 뭉쳐 있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
어-, 이 나이에 신성한 산사 경내서 내가 무슨 망발을 하고 있는 거지?

신성한 산사(山寺)에서 남세스럽다 저 나무
배꼽도 드러내고 젖통도 가리지 않고
두 손을
쩍 벌이고서
무슨 화두(話頭)하시는가.
                               -전등사 배꼽 은행나무

유서 깊은 전등사 유물로는 높이 1m, 높이 1.64m의 보물 393호라는 송나라 때 중국 하남성에서 가져왔다는 전등사 범종이 있다. 보물 179 전등사 약사전(藥師殿)과, 국가 비상시 왕이 기거할 수 있는 가궐(假闕) 터도 있지만 반드시 보고 와야 하는 곳이 보물 178의 고려시대 사찰 전등사 대웅전(大雄殿)이다.

그중에서도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것이 대웅전 네 추녀를 받치고 있는 벌거벗은 나녀상(裸女像)이다.

밴댕이 소갈머리 절 아래 주모가
도목수(都木手) 재산 갖고 줄행랑 쳤답니다.
영원한
저주가 되어
벌이 될 줄도 모르고-.
                      -전등사 대웅전 추녀상(醜女像)

가궐(假闕) 터를 지나 나라에서 역대 열성조(列聖朝)의 왕조실록 같은 귀한 책을 보관하여 두던 사고(史庫)에 이르니 어디선가 청아한 판소리 창이 한창이다.

 한 젊은 청년 하나 북 앞에 앉아 먹을 것 마실 것 옆에 놓고 판소리 춘향가(春香歌)를 열창하고 있다.

득음(得音)을 하려고 폭포 밑에서 열창하는 모습이 지금은 산사 사고(史庫) 마루에 있구나. 한 젊은이의 꿈을 여는 소리였다. 문외한인 나의 귀에도 그는 어느 경지에 도달한 광대였다.
 고찰에 우리 고유의 판소리 가창이 맑은 하늘로 뒤덮인 산사의 한 구석을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세상을 향하여 막 피어나려는 꽃봉오리를 보는 것 이상으로 싱그럽고 멋진 소리였다.

강화 정족산은 죄 없는 아내를 집에 묶어 두고 혼자 훌쩍 산으로 떠나는 나와 같은 산꾼들이 아내와 함께 등산과 사찰 탐방을 겸할 수 있는 서울 근교의 최적의 장소이다.
게다가 읍내 버스터미널 옆 풍물시장에서는 인삼막걸리에 계절에 맞추어 저렴한 각종 회가 우리 술꾼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벤뎅이회에 강화 순무에 인삼 막걸리의 술안주라
전등사 삼랑성 둘러 찾아온 길입니다
내일도 오늘 같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단골이라 반겨주는 손맛 따라 왔습니다.
마음처럼 풍성한 그 정성을 마십니다.
비 끝에 활짝 핀 하늘이 나를 불러 왔답니다.
                                     -강화 '풍물식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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