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표충단(表忠壇)/ 대구
여행은 만남이다.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고장을 만나고, 거기서 사는 사람과 그분들의 새로운 문화를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 여행이다.
나라로 하여, 고장으로 하여 각기 살아온 서로를 즐겁게 만났다가 아쉽게 해어지는 것이 여행이다.
작년 여름 아내와 십자성 아래 뉴질랜드 여행에서 만나서 함께 여행하던 부부를 찾아 우리는 지금 대구로 가고 있다. 여행으로 만났고 인터넷으로 우의를 다져온 사이였다.
팔공산 갓바위와 그 주변을 둘러보고 싶다고 mail을 띄웠더니 반가운 답장이 왔다.
반가운 소식 고맙습니다
벌써부터 뵈올 날이 기다려집니다,
갓바위 오실 적에 시간의 여유를 좀 가지시고 오셨으면 합니다.
좋지는 않지만 금호호텔 숙박권이 제게 있으니 며칠 묵으시면서
구경 함께 다닙시다. 즐겁게 안내코자 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김창환 올림
대구역에 도착하니 우아하고 품위 있는, 눈처럼 하얀 피부의 그의 부인과 함께, 배웅 나온 김 사장이 환한 웃음으로 우리 내외를 반갑게 맞는다.
정년하고 꼭 필요한 다섯 가지라는 일건(一健), 이처(二妻), 삼재(三財), 사사(四事), 오우(五友)를 완벽하게 갖춘 60대 초반의, 공기업 임원을 역임한 분이었다.
세상에는 한 번 만나 평생을 함께 사는 아내와 같은 인연도 있지만, 한번 만나고 영원히 헤어지는 인연이 대부분인데, 한 번 다시 더 만나는 우리도 있다.
우리는 이제 오우(五友)가 되어 서로를 챙겨 주는 삶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 대구까지 계속 차창에 가득하던 눈처럼 유난히 추웠던 하얀 추위가 우리들 마음처럼 오늘부터 누그러진다는 뉴스를 들으며, 우리는 정년 하면서 마련하였다는 그의 고급 승용차 체어맨을 타고 함께 팔공산으로 향하고 있다.
살아온 길은 서로 달라도, 상대가 여유롭게 사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여유를 남과 나누며 산다는 것을 보는 것은 더욱 부러운 일이다.
팔공산은 태백산맥이 남하하다가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곳에 멈추어 솟아 있는 산이다.
주봉인 1,192m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봉(1155m)과 서봉(1150 m)을 두 어깨 양 날개로 하여 빙-둘러 환상적(幻想的)으로 대구직할시와 경상북도의 경계선을 이루며 대구 북부를 두르고 있는 병풍산이 팔공산(八公山)이다.
왜 팔공산(八公山)이라 이름 하였을까?
신라 말 견훤이 서라벌을 공략할 때였다. 고려 태조 왕건은 군사 5,000명을 직접 거느리고 신라를 도우려 갔다가 견훤 군에게 포위되어 중과부적으로 대패하고, 신숭겸 장군이 태조를 가장하여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왕 대신 장렬히 전사하는 그 사이 태조 왕건은 구사일생으로 일 개 병사의 복장으로 위장하고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때 고려국의 신숭겸, 김락 등 8명의 장수가 이곳 공산(公山)에서 전사하였다 하여 그때 이후부터 팔공산(八公山)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팔공산 가는 길에 표충단(表忠壇 지방문화재 제1호. 일명 순절단)을 참배하기로 하였다.
당시의 피 빈 내 나던 비정한 전장 터였던 곳에 천년을 넘어서 아름다운 홍살문이 서 있고, 이곳을 지나니 신숭겸 대장군이 전사했다는 곳에 3단으로 단을 쌓고 '高麗壯節申公殉節之地(고려 장절 신공 순절 지지)'라고 음각 한 비석이 보호각 속에 곱게 모셔져 있다.
이분이 평산 신 씨의 시조 장절공 신숭겸(申崇謙) 장군이다.
왕건은 대장군 신숭겸의 죽음을 매우 애통하여 시호를 장절공이라 내리고, 지묘사를 창건하여 명복을 빌게 하였으며, 후손에게 토지를 내리어 대대로 이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 지묘사가 오늘의 표충단이 된 것이다.
고려 16대 왕 예종은 팔관회(八關會)에 갔다가 이 개국공신의 늠름한 말을 타고 달리는 벽화를 보고 신숭겸(申崇謙)과 함께 전사한 김 락(金樂)을 기리는 향가계 노래 도이장가(悼二將歌)로 다음과 같이 그 충절을 노래하고 있다.
임을 온전하옵게 하신
맘은 하늘 끝까지 미쳤는데
비록 넋은 갔어도
삼으신 벼슬만은 또 하구나
바라보니 일겠노라
그때 두 공신이여
오래도록 곧은
자취는 나타나 빛나는도다
主乙完乎白乎 心聞際天乙及昆 魂是去賜矣中 三烏賜敎麻又欲
望彌阿里刺 及彼可二功臣良 久乃直隱 跡烏隱現乎賜丁
표충단 경내에는 이 충신을 기념하는 수령 400년의 왕건 나무, 신숭겸 나무가 있어 이 충절의 상징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높은 충의를 기리고 있다.
영정을 모신 재실에 들어가니 평산 신 씨 후손들이 춘천에 있는 장절공 묘소 앞에서 제향을 지내고 있는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 있는데 묘가 이상하게도 셋이나 된다. 누구누구의 묘일까.
그때 장절공이 전사한 이곳에서 시신을 찾고 보니 신장군의 머리는 견훤이 잘라가 버린 후였다.
이에 태조 왕건은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없어진 머리를 금으로 만들어 고이 모시어 그 한을 달래면서 행여 이를 탐하는 자 있을까 보아, 어느 것인지 모르게 봉분을 셋으로 하였다 하니, 천년 전의 왕의 애통과 군신 간의 깊은 사랑이 이 노(老) 시인의 심금을 울려 주는구나.
나라가 임금인 시절, 나라님께 바친 머리
금빛보다 빛나는 평산 신 씨 명가 얼굴
팔공산
이름에 묻혀
청사에 빛날 충절이여
이로부터 대대로 명문 가문이 된 평산 신 씨 가문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전한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아들에게 '자지'란 말을 자주 쓰게 된다.
아들 낳기를 소원하던 옛날에 아들은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운 존재다.
그런데 장절공 후손인 평산 신씨 중에 불행하게도(?) '신자지'란 분이 있었다.
그분은 영의정으로 가문을 빛낸 조상이었다. 귀한 자식에게 천한 이름을 지어 장수를 빌던 시절이었고, 조상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 죄가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서 평산 신씨 종친회에서 '자지'란 우리 조상의 어르신 함자를 부르지 말자고 의결하였고, 대신에 선택한 말이 '잠지'라는 말이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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