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수용소
클라쿠프에서 50km 되는 곳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다.
나치 히틀러 일당이 눈의 가시처럼 여기며 증오의 대상이던 유태인, 집시, 정치범, 포로 등을 죽인 600만 원혼이 떠도는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이라 하는 곳이다.
이곳은 인구 밀집 지역과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이었고, 철도편으로 죄수(?) 수송을 직접 이곳까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이리 정하였다 한다.
1940년 독일SS사령부(나치독일친위대)는 루돌프 회수 소장을 임명하고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 728명을 이곳에서 처단하였다.
그때의 그 하늘은 피빛보다 붉습니까.
이 붉은
28동 막사는
원혼 피자욱 아닙니까.
남기신 유품 속에 명복을 담습니다.
관광 길 가스실서 모자를 벗습니다.
시신의
소각장 앞에서
우리들 죄 태웁니다
-폴란드 정부는 1974년에 희생자 박물관을 세우고 폴란드의 민족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 있다. 그때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
밖에 나와보니 이동 교수대(絞首臺)가 있다. 죄없이 죽어간 원혼의 자리다. 그 위에 나도 서 보았다. 싸늘한 감정이 목으로 향한다. 죽일 때 군인은 총살당하는 것이고, 일반인은 교수 당한다 하니 민간인이 처형당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통쾌한 교수형도 있었다. 당시 루돌프 소장 자신도 자신이 집행하던 이 교수대에서 생을 마친 것이다. 이 얼마나 두려운 역사의 아이로니인가.
낭만이 있던가요.
지옥 중에 지옥인
아우슈비츠
사(死)
형(刑)
대(臺)
*ilman이
그 현장 위에
철없이 섰습니다.
-교수대에서
*ilman: 지은이 아호
취사장과 관리 동을 빼고 붉은 28동 건물에 죄수를 닭장보다 더 빽빽이 가두어 두고 2중 3중의 철조망을 치고
고압전류를 흐르게 하여 탈출을 막았다.
수용소 정문 상단에는 쇠 조각을 잘라 독일어로 이렇게 쓰여 있다. "Arbeit Macht Free"(일은 자유를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도 지켜 지지 않은 새까만 거짓말이었다.
죄수가 수송되어 올 때는 양동이 2개씩을 가지고 오게 하였다. 하나는 물통이요, 또 하나는 오줌통이다.
보안을 위하여 주로 밤에 죄인을 수송을 하였는데, 도착하면 즉시 두 줄로 나누어 서게 하였다. 환자, 노인, 애 엄마 등은 왼쪽에,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게 하였다.
왼쪽에 선 사람은 대개 "욕실, 건강, 청결"이라고 쓴 곳으로 보내어 거기 들어가기 전에 옷을 벗게 하였다. 욕실인지 알고 온 가족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육중한 철문을 덜컥 잠가 버렸다. 거기는 캄캄한 가스실로 잠시 있다가 천장 위에서 가스가 뿜어 나오면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는 낌새를 채고는 아우성과 몸부림을 마지막으로 죄없는 이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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