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일만의 하루/ 우리 외손녀 한별

ilman 2017. 5. 30. 19:23

*. ilman의 하루/ 우리 외손녀 한별

‘한별아, 한솔아. 너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 생각 나니? 할아버지는 너희 얼굴을 잃어 버렸는데-."
그래서인지 어제 토요일엔 외손녀 둘이 엄마 아빠 따라 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할인마트에 간 딸이 예쁜 운동화 두 켤레를 사왔습니다. 아이들은 좋아라 신고 펄쩍펄쩍 소리 내며 뛰어 다닙니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질색을 합니다.
그런 자유가 없는 곳이 아파트이기 때문입니다. 사위가 한 마디 합니다.
"아버님, 제가 어렸을 때는 새 옷도 그렇지만 새신을 신고 방에서 뛰놀던 때가 제일 즐겁더군요."
"맞아 정비석의' 성황당'에서 고무신 한 켤레가 현보의 아내를 꼬시는 수단이었거든."
할머니는 저녁 외식을 하고 싶습니다. 설거지가 귀찮기 때문입니다.
"난 할머니가 해주는 무국이 먹고 싶은데-."
할 수 없이 할머니는 쇠고기를 사다가 쇠고기 무국을 끓여 주며 말합니다.
"얘들 외식시켰다가 큰 일 날 번했구나."
너무나 맛있게 먹는 외손녀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할머니, 저요 할머니가 담근 동치미를 먹고 싶은데-"
할머니는 또 울상입니다.
"동치미는 아직 익지 않아서 먹을 수가 없어-."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우리 한별이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을까?"
"저는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우체부도 되고 싶구요. 순경도 되고 싶어요. 수영 선생도 되고 싶구요. 선생님도 되고 싶구요, 문방구 주인도 되고 싶어요. 그리구 응-"
되고 싶다는 말이 하도 너무 오래 계속될 것 같아서 할아버지는 말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오늘 한별이 한솔이는 어디서 자고 싶을까?"
할머니 집에서 자고 싶다는 말에 딸이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내일이 일요일이지만 할머니 아침하시는 것이 고생된다구요.
"내일 아침에는 이 할아버지가 쏜다."
외손녀가 달려와서 할머니 할아버지 뺨에 뽀뽀를 하며 인사를 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히 주무세요."
할아버지가 미소 띤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함께 살면 이런 즐거움도 있는 거지?
그 6살짜리 한별이가 벌써 일어났습니다. 이젠 할아버지가 아침 턱을 내러 가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사위와 딸은 통 기척이 없습니다. 일요일은 잠꾸러기 직장인의 천국 같은 날입니다.
아무래도 아침 겸 점심 겸 '아점'을 해야 할까 봅니다.
한별이는 나머지 무국을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쓴 이 글을 읽고 있습니다.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글자를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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