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탐방/ 전설 따라 궁예, 도피안사 등
제2땅굴 탐방을 마치고 철원 평야전망대 전망대에 가니 모노레일(monorail)이 운치 있게 우리를 평화전망대로 안내한다.
중부전선 최북단의 위치에 지은 이 철원평화전망대는 남으로 25만 평 규모의 굽어 보는 동승저수지(강산저수지)가 있다. 북으로 비무장지대, 북한의 평강고원과 북한의 선전마을 등을 육안이나 초정밀 망원경으로 굽어 전망할 수는 전망대가 있는 지하 1층 지상3층의 건물이다.
1층에는 이 민족의 비극이 서린 6.25 영상물과 철원 전적기념 물을 전시하고 있고, 2층에는 300석 규모의 영상관람실과 야외 전망대도 있지만 2층 실내 지형축소 모형이 있어 분단의 현실을 실감할 수 있게 한다.
*,궁예(弓裔) 전설
그러나 나는 DMZ로 남북(南北)으로 둘로 나누어진 궁예의 옛 태봉국(泰封國)이 특히 인상 깊었다.
궁예(弓裔)의 한이 어려 있다는 한탄강의 전설이나, 궁예가 904년 철원에 태봉국을 세우고 고구려의 후예임을 내세워 28년간 통치하다가 부하인 왕건에 쫓기어 명성산(鳴聲山923m)에서 피살될 무렵 망국의 슬픔을 통곡하자 새(鳥)도, 말(馬)도, 신하들도, 이 산도 따라 울었다고 하는 명성산(鳴聲山, 울음산) 전설 때문인 것 같다.
그보다 고모부를 죽인 북한의 김정은의 모습이 궁예 말년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서인 것과도 같아서다.
궁예의 전설은 춘천 호반 흥국사의 의암 땜에도 그 흔적이 보인다.
-궁예가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재건하겠다고 세운 절이 속칭 큰절이라 부르는 흥국사(興國寺)여서 이 근처를 ‘대궐 터’라고 하였답니다.
‘작은 초원’, ‘큰 초원’은 당시 군마를 매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말골’이라 하고, 등선폭포 근처의 아랫마을은 군사들이 옷을 말리던 곳이라 하여 ‘의암(衣岩, 옷 바위)이라 한답니다. 의암호(衣岩湖)의 ‘의암’은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지요.
-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弓裔)의 성은 김 씨로 아버지는 신라 47대 헌안왕과 궁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서자(庶子)로 음력 5월 5일 외가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무지개를 닮은 흰 빛이 지붕 위에 있었고, 낳고 보니 아기는 이빨이 다 나 있었다.
일관(日官)이 이를 나라에 불길한 것이로 왕에게 그를 죽일 것을 주청했다. 왕명에 따라서 궁예를 죽이러 온 중사(中使, 내시)는 궁예를 포대기에 싸서 높은 누대에서 아래로 던져 버렸다. 누대 아래서 유모가 궁예를 받을 때 유모의 손가락이 궁예의 눈을 찌르는 바람에 애꾸눈이 되었다. 궁예가 10여 세 되던 무렵 유모에게 자기 출생의 비밀을 듣고 몸을 피해 세달사(世達寺)에 출가하여 스스로 이름을 선종(善宗)이라 하였다. 어느 날 재(齋)에 나갔더니 까마귀 한 마리가 그의 바리때(중의 밥그릇)에 '왕(王)' 자가 새겨진 상앗대를 떨어뜨리고 가는 것을 보고 궁예는 왕권(王權)에 대한 야심을 품게 되었다.
당시 신라는 진성여왕 무렵으로 흉년으로 세금을 높이 매기고 탐관오리와 도국이 발호할 때였다.
궁예는 북원(北原)의 양길(梁吉)의 휘하에 들어가 지금의 강원도 일대 전역을 장악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금상첨화로 송악(松嶽, 개성)의 왕건(王建) 부자의 투항을 계기로 드디어 철원을 도읍으로 하여 ‘영원한 평화가 깃든 평등 세계’, 곧 미륵 세상인 태봉국(泰封國)을 건설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