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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권금성-흔들바위-울산바위

ilman 2013. 9. 28. 06:41

설악산/권금성-흔들바위-울산바위

6·25의 선물 설악산
백두산(白頭山)을 너무 험하고 깊게 만들었구나!’ 하고 후회하던 조물주가 금강산(金剛山)을 만들고는 ‘이번에는 내가 너무 지나칠 정도로 기교에 치우쳤구나! ’또다시 후회하던 끝에 만든 산이 설악산(雪嶽山)


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강산의 1만 2천봉이 아기자기한 산이라면, 설악의 7,000여 봉도 그에 못지않게 수려하면서 아름다운 산이다.

금강산이 산과 바다를 아우른 산이듯이, 설악산도 동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산이다.

금강산의 만폭동(萬瀑洞)이 아름답다면, 설악에는 천불동(千佛洞)계곡이 있다.

금강산에 상팔담(上八潭)이 유명하다면 설악에는 12선녀탕(十二仙女湯)이 우리들의 눈을 놀라게 한다.

그래서 ‘제2의 금강산(第二金剛山)’이라 하고, ‘산중 미인(山中美人)’이라고도 하는 설악산은 그 이름만 들어도 우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한국의 명산이다.

설악산 대청봉은 1,708m로,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1,638m)보다 70m나 더 높은 산이다.

설악산은 북으로 금강산을 거쳐 백두산에 이르고, 남으로 오대산, 태백산맥을 지나는 백두대간의 허리인 산으로 ‘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산 중의 미인이인 산 중에 산이다.

  설악산은 설봉산 또는 설악으로 불려왔다. 설악이란 이름은 동국여지승람에서는 “한가위로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이듬해 여름에 녹는다[仲秋如雪至夏至而消故名].”란 말처럼, 눈의 산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5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유일의 한국 최초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우리나라 생태계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이 산은 해방 이후에는 38선 이북의 북한 땅이다가 6·25 때 비로소 우리 국군 장병들의 수많은 선혈로 되찾은 땅이니, 설악산은 6·25의 선물인 셈이다. 김일성이 남침을 한 덕(?)에 우리가 마음껏 밟아볼 수 있게 된 산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다.

  지금 Korea 관광 코스 선호도 제1위가 되고 있는 명산이 설악산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금강산을 읊은 시(詩)를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다면 도서관에 하나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는데 내 어찌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이 한 편의 글에다가 다 모아 쓸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이 산에 얽힌 전설을 찾아 설악산 산행을 떠나려 한다.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 우리 민족을 통하여 전설로써 피어난 우리 옛 어르신들의 산 사랑의 이야기 말이다.

  ■ 권금성(權金城)의 전설  

우리는 어제 대포항(大浦港)에 들려 동해 바다를 입으로 회(膾)하며 환호작약하였으니, 오늘은 안복(眼福)을 위해 설악산 소공원에 왔는데 일기 예보대가 빗나갔으면 좋으련만 예보대로 정직하게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그 궂은 비를 맞으며 우리는 울산바위를 향한다.

  고 속초를 거쳐 설악산국립공원을 찾는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1일 코스에 비선대 비룡폭포 코스도 있지만

소공원 → 신흥사 → 흔들바위 → 계조암 → 울산바위’가 있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소공원 남쪽에 하늘을 향해 불끈 치솟아 있는 해발 770m의 권금성(權金城)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10여분이면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옛날 이를 발로 오르기 위새서 비룡교를 건너서 산길 따라 쇠 난간이 있는 층계를 이용하여 안락암을 지나 정상에 정상에 올랐는데 요즈음은 출입이 통제된 모양이다.

  정상에 오르면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봉화대를 만나게 된다. 거기에 어울려 길이 약 2.1km의 산성 터를 보게 된다.이 성은 옛날에는 설악산성이라고 하였다는 권금성(權金城)인데 여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고려 고종 41년(1254년)에 몽고의 침입으로 백성들이 피난할 무렵이었다. 그때 권씨(權氏)와 김씨(金氏) 두 장사가 난을 당하여 산꼭대기로 가족들을 데리고 피란을 와서 적병과 싸우기 위해 하룻밤 사이에 성을 쌓았다.

낮에는 권장사가 그 아래 냇가에서 성을 쌓을 만한 돌을 골라서 던져 올리면 그 위에서 김 장사가 그 돌을 받아 성을 쌓다가, 밤이 되면 김장사가 내려와서 돌을 던지면 권장사가 그 돌로 성을 쌓았다 해서 세인들이 이성을 권금성(權金城)이라 하였다 한다.                                                                      낙산사기>, <신동국여지승람

  그렇다면 ‘권김성’이어야 하는데 왜 ‘권금성’이라 하였을까?

나는 이를 고려와 조선 초기에 중심사상인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에는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 있다. 
음양오행설의 이론에 의하면 ‘金(금)’은 ‘木(목)’을 이기는 金剋木(금극목)이 된다. 그러니까 金氏(금씨)가 李氏(이씨) 조선을 이긴다는 뜻으로 목(木)자 성의 이씨(李氏)조선이 금씨(金氏)에게 멸망한다는 말이 된다.

 이를 고심하던 당시의 위정자들이 ‘金’의 음을 두 가지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쇠를 말할 때는 ‘쇠 금’, 성(姓)을 말할 때는 ‘성 김’이라고 발음 했을 것이라는 유추다.

연개소문(淵蓋蘇文)이 당나라 태조의 성이 연(燕)씨이므로 천개소문(泉蓋蘇文)이라 하였다듯이, 중국의 금(金)나라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성(姓)에서는 ‘김’이라 바꿔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권금성의 정상에 오르면 울산바위와 만물상과 달마봉은 물론 중청, 공룡능선과 마등령, 저항령, 황철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볼 수가 있다.

속초시를 건너 저 푸른 바다 동해도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금성에 올라보지 않고는 설악을 말하지 말라

는 말이 있다. 이 권금성은 정상인 대청봉으로 이르는 화채능선 코스가 되는 길목이기도 하다. '화채(花彩)'란 봄, 여름에 다양한 야생화가 능선 따라 핀다하여 생긴 말이다.

 

*. 통일대불(統一大佛) 이야기

 

 

 

 

 

 

 

 

 

 

 

 

 

 

신흥사 못미쳐 '飛仙第1橋' 건너기 전에 14.6m의 대불이 비를 촉촉히 맞고 우f리들을 맞고 있다.

온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이루고자 봉안한 대불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 겉모습만 사진에 담다가 발길을 돌리지만 속리산 법주사  대불처럼 이 부처의 몸안에도 내원법당(內院琺堂)이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 통일대불의 몸안에는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내원법당이 있다.  나도 대불 앞에서 이 나라의 통일을 간절히 기원하며 쓴 나의 글을 마음속으로 음영하여 본다.

 

백두대간(白頭大幹) 허리 끊겨 제 각각 한(恨) 세월(歲月)

흘깃흘깃 혈육(血肉)으로 따로따로 반 백년반(반百年)

저 산하(山河)

이 산하(山河) 되어

우리 함께 살아보자 

 

그리움이 북향(北向)하다 천지(天池)에 고이었고

서러움이 남향(南向)하다 백록담(白鹿潭)에 담기었네

언제나

천지(天池), 백록담(白鹿潭)에

기쁜 눈물 더해 볼까

 

흔들바위 이야기

  함께 한 일행이 네분인데 다들 나만큼의 산행 경력이 없는데도 나는 기진 맥진 그분들 맨 후미에서 따라 가고 있다.

그분들보다 더 많은 곳곳의 사진을 욕심 내서도 그렇지만 나의 몸이 따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울산 바위 가는 길에 계조암이 있다. 흔들바위로 유명한 곳이다.

계조암(繼祖庵)은 자장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신흥사(구명 香城寺)를 지었다는 천연 석굴 암자다.

이 계조암에서 동산(東山), 각지(覺知), 풍정(風頂) 스님에 이어 의상, 원효(元曉) 등 조사(祖師)의 칭호를 받을 만한 수많은 승려가 계속 수도하던 도량(道場)이다.

조사(祖師)란 한 종파를 세워 그 종지(宗旨)를 펼친 만한 스님의 높임말이다.

그래서 이을 ‘繼(계)’에, ‘조사의 ‘祖(조)' 자를 더하여 ‘繼祖庵(계조암)’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울산 바위 위에서 내려다보면 목탁(木鐸) 같이 생긴 바위가 보인다. 이 목탁 바위가 천연 굴인 계조암이다. ‘목탁 바위’라는 이름 때문인가. 스님들이 이곳에서 도를 닦으면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빨리 득도(得道)하게 된다는 곳이 바로 계조암(繼祖庵)이었다.  

  계조암 앞에는 자연 문에 해당하는 쌍용바위가 있고 그 앞에 100여 명이 동시에 식사할 수 있을 정도 크기의 '식당바위'가 있다.

식당 바위 끝에 있는 바위가 그 유명한 흔들바위(일명 쇠뿔바위 : 牛角石)다. 한 사람이 밀어도, 백 사람이 밀어도 그 흔들림이 같다는 이 흔들바위는 원래 하나가 더 있었다. 그러나 옛날의 풍수쟁이가 이곳에 불가(佛家)의 영기(靈氣)가 너무 넘침을 시기하여 한 개를 아래로 굴려 떨어뜨려 버렸다 한다. 그런데 큰 식당 바위가 누운 소처럼 생겼다는 기록이 보인다. 위에서 말한 흔들바위가 일명 쇠뿔바위(牛角石)로 그 한 개를 아래로 굴려 떨어뜨렸다는 전설을 생각해 보면 그 두 개의 바위는 소뿔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어제 속초에서 본 속초(束草)의 전설의 소와 연관되는 것 같다.

그 속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 속초의 지형이 와우형(臥牛形: 소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소가 누워서는 마음대로 풀을 뜯어먹지 못하기 때문에 풀을 묶어서  소가 먹도록 해야 한다는 속초(束草) 지명 설화에 착안하여 설치한 상징물로 황소는 '힘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로 속초의 무한한 번영과 부(富), 발전을 기원하는 것이다.                  -설악 로데오 '황소상'

 

 

 

 

 

 

*.울산 바위 이야기
옛날에 울산바위를 가려면 계조암에서 다시 1.0km/50분을 더 가서 808계단의 쇠층계를 올라야만 하였다.

그런데 그 계단은 철계단으로 눈비가 오면 위험해서 몇 년 전에 폐다이어를 이용해서 울산바위로 가는 전코스에 층계를 다시 만들었다. 그 갯수가 1,708개로  설악산 대청봉 높이 1708m와 수를 같게 하였다.

   외설악의 얼굴이라는 설악8기(雪嶽八奇)중에 하나인 울산바위는 높이 873m, 둘레가 4km로 6개의 봉으로 된 동양에서는 제일 크다는 병풍 모양의 하나의 돌산이다.

병풍처럼 울타리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울산 바위라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 멋진 뒷모습의그 멋진 뒷모습을 보려면 미시령을 차로 넘어가면서 볼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의 하나가 미시령 코스가 되었다.

울산 바위에는 많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왼편 그림에서처럼 금강산 바위가 되기를 놓치고 울었다 하여 '울산바위'가 있다. 그래서 울산바위를 '천후산(天吼山)'이라고도 하는데, '吼(후)' 자는 울 '후' 자이기 때문이다.

 

-울산(蔚山) 고을 원님이 유람차 설악산에 왔다가 울산바위 전설을 듣고 신흥사 주지 스님을 찾아갔다.'울산바위는 자기 고을 울산의 소유의 바위이니 세를 달라는 것이었다.
히릴없이 울산에 세(貰)를 주다 보니 절의 살림살이가 말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해 한 동자(童子) 스님 나서 그걸 해결해 그리겠다고 나섰다. 동사승은 원님에게 "이 큰 울산바위가 차지한 곳에 농사도 지을 수 없어 이 신흥사도 피해가 커서 세를 줄 수 없으니 이 울산바위를 울산으로 옮겨 가세요."라고 한 것이다. 이에 다급해진 원님이 "울산바위를 재로 꼰 새끼줄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 하였다. 이에 동자는 청초호(靑草湖)와 영랑호(永郞湖) 사이에 많이 자라고 있는 풀로 새끼를 꼬고 그 새씨 줄을 앞바다에 넣어 짠물이 베개 한 다음 그 새끼를 바위에 두르고 겉에 들기름을 바른 후 불을 붙이니 재로 엮은 새끼와 같았다. 그 후 사람들은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있는 동내를 묶을 '束(속)', 풀 '草(초)'자를 써서 '束草'(속초)라 부르게 되었다. 

 

옛날에는 울산바위를 오르는 808계단 입구에 빈대떡 등 먹거리를 파는 상점이 있었는데 쇠층계를 철거하면서 없어져서 나도 모르는 사이 울산 바위를 오르고 있다.

너무 힘들어 거기까지만 갈 생각도 있었는데-.

 

산에 가서 행복한 건 쉬어 가자는 말인데
기다리던 그 말을 내가 내게 하고 있다.
산행은
즐거운 고행
후회 없는 행복들

 

설악산 곳곳마다 자연이 가득한데
그 풍광 하나하나가 지천의 아름다움들
청진기
마음이 되어
디카로 수술한다.                                                 
                        - 산행

드디어 계단에 정상 10분이란 표지가 보이고 그것이 5분이라고 바뀌었는데, 정상을 바로 직전 좌측으로 층계가 있다. 생각에는 정상을 보고 내려 올 때의 길이거니 하고 오르다 보니 우중 운무속에서나마 그런대로 전망을 올려다 볼 수 있는 그곳이 정상 아래 전망대였다.

 

 

 

 

 

 

 

 

875m 정상에서는 무심한 짙은 운무에 사방은 첩첩한 안개뿐인데 비좁은 정상을 1/3이나 찾이한 상혼(商魂)이 고가의 커피를 팔고 있는데 그마저 없더라면 어디서 비를 그으랴 하는 생각이 오히려 고마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