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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ilman 2013. 5. 22. 08:03

건망증(健忘症)/ ilman의 하루

안경이 눈이 되어 버린 어느 날.
눈을 잃고
근자지소행(近者之所行) 으로
침대에게 죄를 물어
칠흑처럼 어두운 침대 밑을 더둠어
술래처럼 꼭꼭 숨어서 저를 찾는 소리를 즐기던
그 눈을 찾기 전
건망증이 고마운 파란 돈도 낚았다.
어느 누가 보고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어 하랴.
나의 이 초라한 행복을
-건망증



젊어서도 물건을 잃고 항상 찾는 일이 일과였다.
찾다 찾다 보면 ' 지금 내가 지금 무엇을 찾고 있는 거지?' 할 때가 퇴근 시간인 적도 많았다.
그래서 휴대하는 물건들을 옷에 붙들어 매는 것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갑, 핸드폰은 물론 안경 등 줄로 매어달 수 있는 모든 것을 옷에 고정시키곤 했다.
그런데 고희를 넘기고 보니 그 건망증 지수가 더욱 높아져서 젊은 시절보다 하루의 몇 분의 1을 더 찾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서재에서 물건을 가지러 거실로 나갔다가도 찾는 물건이 생각이 안 나서 다시 서재로 들어 오는 경우도 더 잦아졌다.
"당신은 외출할 때 여자보다 더 늦는 남자예요."
아내의 말도 맞다. 외출할 때는 지갑, 핸드폰, 안경도 꼭 찾아야 하지만 수도권에 살기 때문에 전철에서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산 MP3도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걸 둔 곳이 일정하지 않아서 이 방 저 방 기웃거려야 한다. 기억으로 찾지 않고 눈으로 찾는 나이라서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전철표는 뒷주머니, 지갑은 위 셔스 주머니 핸드폰은 허리에 걸고 매기 하는 식으로 스스로 약속을 하였지만 그게 잘 지켜 지지 않는다.

금년 봄에 인도 네팔을 다녀왔는데, 10년을 아껴오던 보이스펜은 네팔에서, 새로 선물 받은 멋진 모자는 인도 타지마할에서 잃고 왔다.
여행 다니면서 나는 물건을 잃고 다니는 것보다 흘리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물건을 잃지 않고 하루를 산 하루는 나에게는 행복한 하루가 된다.
잃는 것이 많으니 사는 것도 많다.
안경은 수시로 사고, 고가의 Mp3도 두 번째나 바꾸었다.

잃는 것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카드(Card)였지만, 카드를 잃고 큰 일을 당한 경험은 없다. 나의 건망증에 대한 깊은 역사는 잊었다 생각하면 일단 신고부터 하여 두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주로 애용하는 카드는 현금카드이다. 잃어버려도 카드보다, 체크카드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 카드를 잃어버리고 찾고 또 찾았다. 은행에 가서 재 발급을 받는 것이 더 편하겠지만 그게 한두 번이 아니다 보니 미안한 생각에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오늘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가려고 반바지를 입으려다가 그 뒷 주머니에서 찾던 카드를 찾아서 아내에게 아침 밥으로 한 턱 내고 오는 길이다.
옛날과 달리 옷이 너무 많아서 어느 옷을 입고 나갔다 왔는지 몰라서 찾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옷을 찾는 방법을 비로소 터득하게 되었다.
'아아, 혁대가 있는 옷이 외출했던 옷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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