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隨筆)☎

짝짝이 신발

ilman 2013. 5. 22. 07:15
짝짝이 신발

  지난 7월에는 친구들과 용산전자상가에 갔다가 그 근처 술집에서 MP3를 잃었다가 다음날 다행히 찾았다.
주모(主母)에게 고맙다고 술을 팔아주면서 한 잔, 기분 좋다고 거기서 만난 젊은이게도 술 한 잔을 사주며 희희 낙낙하였다.
  그 다음날 가난한 술꾼 친구가 또 불러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영등포에 나갔다가 귀가 하던 버스에서 이번에는 틀니를 잃어버리고 왔다.
음식을 먹으면 끼는 음식 찌꺼기를 남몰래 닦아 아랫주머니에 넣은 것이 버스 바닥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버스 앞자리 바퀴 위 좌석이라서 쪼그리고 앉아서인 것 같다.
혹시나 해서 다음날 새벽에 그 버스 종점까지 가서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하릴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10여일 후 카드를 긁어 고가의 틀니를 새로 하고 오다가 주점에 들렸다.
거기에 물을 얻어먹으러 온 50대의 입심 좋은 가난한 사람이 있어 그와 술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자기가 데리고 다니면서 일시키던 노동자의 막노동을 나이 먹어 자기도 하다 보니 창피해서 먼 동내로 일 하러 다닌다는 말을 들어서 자리를 함께 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칭 깡패라는 깡패 같지 않은 곱상한 얼굴이었다.
"저는 국민학교 3학년 때 가출했어요. 담임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쓰라기에 '깡패'라고 썼어요. 우리 아버지가 깡패였거든요. 담임선생님께 매를 맞고 울며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저를 끌고 학교에 가서 담임 여선생을 무릎 꿇리고 야단을 쳤어요. 제가 어떻게 그 담임선생님을 볼 수 있겠어요. 무슨 염치로 그 선생님께 공부를 배울 수 있겠어요. 그래서 가출을 하였어요. 
  그래서 이번 달에는 물건을 하나도 잃지 않고 보내는 8월이 되자고 혼자서 굳은 맹서를 하다가 무사히 9월을 맞는가 하였는데 이게 웬일인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신발이 짝짝이다.
1년 전 미국에 파견 나갔던 아들이 신발 한 켤레를 보내왔었다.
노인들에게 그렇게도 편하고 좋다는 고급신발 '사스(SAS)' 였다. 고가인데다가 신고 다니기가 편해서 애지중지하다가 그와 비슷한 신발 하나를 더 사서 번갈아 신고 다니기로 했다. 아들의 선물을 아껴 신기 위해서였다.
두 신발이 비슷해서 몇 번 짝짝이로 신고 다닌 생각까지는 나는데, 있어야 할 나머지 짝짝이 신발 한 쌍이 오늘은 없다.
신장은 물론 엉뚱한 베란다까지 뒤지고 다니다 보니 낯선 슬리퍼 한 짝이 있다.
'아하 그랬었구나. 동내 어느 주점에서 화장실 간다고 나갔다가 그 슬리퍼를 그냥 신고 집에 온 것이 분명해.'
그런데 슬프게도 최근에 신발 벗고 올라갈 만한 주점을 간 기억이 영 나지 않는다. 
게다가 막걸리나 마시고 다니는 나에게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주점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시내에 회식하러 모임에 갔던 집에 놓고온 것인가 해서 가는 길에 주인에게 넌지시 물어보기는 했지만 그게 말이 되겠는가. 아무리 취했다 해도 서울에서 그 먼 일산까지 슬리퍼를 신고 오면서 그걸 기억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당분간은 짝짝이를 신고 다니면서 이제는 나도 술을 끊어야 하지, 서글픈 반성이나 하며 살아야지-' 하는 나를 보고 아내는 남들이 미친놈이라고 하면 어쩌냐며 질색을 한다.
"그래그래 난 미친놈이다. 아름다울 '미(美)', 친할 '친(親)' '놈' 자(者), 미친놈(美親者)이란 말이다.
아내가 이 기회에 술을 끊으라고 은근히 압박해 오는 9월 중순의 오늘 아침 그 잔소리를 피해서 자전거를 타고 아파트를 나섰더니 집에 있으라고 하는 뜻인가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아냐 가라고 내리는 가랑비야.' 하는 신파조 생각을 하며 내친김에 동내나 한 바퀴 돌아 보자며 가다보니 내가 자주 가는 음식점이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보름 전에 장모님 모시고 아내와 함께 파주의 아쿠아랜드 목욕탕에 다녀오다가 아침과 점심겸하여 아점으로 식사를 하던 설렁탕집이었다.
 혹시나 해서 찾았더니 내가 보름 넘게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짝짝이 내 신발이 거기 곱게 모셔져있지 않은가.
너무 고마워서 즐겁게 비를 맞으며 집에 가서 슬리퍼를 가져오는 길에 만난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20병을 사서 설렁탕 주인에게 보관료라고 전해 주고 의기양양 돌아왔다.
 잃었다 찾은 물건은 전보다 더 소중한 법이다. 그것도 짝짝이 신발을 찾은 것은 한꺼번에 두 켤레 구두를 찾은 것이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보다 미궁이었던 나의 기억이 그래도 건전하였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신이 난다.
  하여 구두를 정성스레 곱게 닦다 보니 이런 생각이 난다.
'내가 죄 없는 술에게 책임을 전가하였구나! 하마터면 까딱 잘못하였더라면 그 좋은 술을 끊을 뻔도 하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