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뉴질랜드 남․북섬 패키지여행(상)

ilman 2013. 2. 8. 12:25

    

저자 주: 사진이 사이트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바람에 사진 일부는 현지에서 구입한  관광 소개 사진을 이용하였습니다.

 뉴질랜드 남섬 패키지여행

 

*.. 키위(kiwi)들이 사는 나라  

 

흰 구름이 길게 덮인 새파란 하늘 밑에서 1,000만 마리 소가 사는 나라.

별빛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는 십자성이 내려다보는 초원에서 8,000만 마리 양들이 잠드는 나라.

지구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발견된, 지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낙원(樂園).

인간이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지상 천국.

지상 낙원 건설이 국가의 목표인 나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가 키위의 삶을 책임져 주는 나라.

가난한 키위도 최소의 여유나마 함께 갖고 즐기며 살 수 있는 나라.

번지점프, 래프킹(급류타기), 낚시, 등산의 스포츠 레저의 천국.

에베레스트 정상을 세계 최초로 등정한 에드먼드 힐러리경 키위의 조국.

한반도 1.2배의 땅에서 인구 459만 6,000명(2015) 키위들이 사는 나라로 우리는 가고 있다.

 

우리는 호주 시드니를 거쳐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를 거쳐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를 구경하고 북섬으로 간다. 

 

키위(kiwi)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뉴질랜드 국조(國朝)인 키위라는 새와 키위라는 과일도 있지만, 키위는 뉴질랜드 사람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사진 출처: 네이버 이미지)

키위 새는 크기가 닭 만한 새인데, 뉴질랜드에는 천적인 맹수나 맹조류가 없어서 구태여 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날개와 꼬리가 퇴화하여 닭처럼 날개는 있으나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그러나 들개와 고양이 족제비, 담비 등이 천적이 되어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다.

그래서 낮에는 나무 구멍이나 땅속에서 코알라와 같이 거의 18시간 잠을 자는 야행성이 되었다. 색깔이 갈색 깃털에 부리가 길었다. 그 부리를 진흙 속에 깊이 박고 지렁이나 곤충이나 그 유충을 잡아먹거나 연한 풀뿌리 먹고산다.

키위의 암놈은 체중이 2Kg 밖에 안 되지만 500g이나 되는 알을 낳는다. 그러나 의외로 이 알을 품어 부화시키는 일은 수놈 키위 몫으로 새끼가 알에서 깨어 나올 때쯤이면 가엾게도숫놈 키위의 체중이 1/3이나 준다.

 뉴질랜드 남편들을 키위 허즈벤드(kiwi husband)라고 한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술집으로 가서 1차집, 2차집 하다가 막차집은 노래방이 되는 한국 가장들과는 달리, 퇴근 즉시 그대로 집으로 직행하여, 잔디 깎기나 세차는 물론 저녁 설거지 같은 자질구레한 궂은 일까지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회식한다 하여 늦는 일도 없다. 회식도 아내와 함께 하는 것이 이 나라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림 잘하는 한국 여인과 뉴질랜드 키위와는 궁합으로 천생연분이란 말도 있다.

  새의 이름을 키위라고 한 것은 새의 울음소리가 '키위, 키위' 한다 하여 옛날 이곳 원주민 마오리(maori)족들이 키위라고 불렀기 때문이란다. 

 

과일 키위는 여름에 유백색의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달걀 크기와 모양이 같고 아주 짧은 다갈색 털의 열매가 열린다. 이걸 반으로 자르면 담녹색에 수박처럼 까만 씨가 많지만, 연하여 그냥 먹을 수가 있다. 그 맛은 달지만 약간 시다.

미국 식품영양학회가 각 과일의 칼로리 당 영양분을 분석하여 순위를 매겨서 발표하였는데 1위는 키위, 2위는 파파야, 3위는 멜론이고 그 좋다는 포도가 10위였다.

 키위는 사과의 17배나 비타민C가 들어있는 영양의 보고다. 칼로리는 낮지만 영양은 풍부한 신비의 과일이라고 해서, 요즈음은 건강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참다래라 하여 오래 전부터 재배하여 오고 있다.

키위를 먹을 때에는 반을 뚝 잘라서 스푼으로 파먹거나, 깎아 먹을 때는 칼로 하얀 심지를 파내고 세로로 갈색 겉을 깎아 먹는데, 살 때는 만져서 무르지 않고 단단한 것이 싱싱한 키위라 하니 유념할 일이다.

 이 신비의 과일은 원래 양자강 유역에서 다래처럼 작게 자생하던 것을, 뉴질랜드 인이 갖고 와 오늘날의 크기의 키위로 개량하여 세계 시장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중국에도 수출을 하고 있다.

그 과일이 키위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색깔이 키위라는 갈색 깃털을 가진 키위 새와 비슷하여서였다.

뉴질랜드인 들은 세계에서 자기 나라에만 살면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잘 따르는 이 새를 국조(國鳥)로 삼고 사랑하고 보호하며, 스스로 자기들을 키위라 한다. 이곳에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도 한(韓)키위라고 부른다.

뿐만이 아니라 키위란 이름은 뉴질랜드 화폐, 우표나 모든 주요산물의 상표로 두루두루 쓰이고 있었다.

 

 *. 우리와 반대의 삶을 사는 나라

 

어제 밤늦게 도착한 크리스트처치(Christchurch) 공항에서 입국할 때는 이건 너무 하구나 싶게 듣던 대로 입국 절차가 까다로왔다.
맹인견 같은 커다란 개가 꼬리를 치며 짐마다 냄새를 맡으며 지나가더니, 처음 만난 검사대의 키위는 내가 겨우 팩 소주 10병을 큰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갔는데도 무엄하게 그걸 하나하나 세어 보고 있었다. 구두 발바닥을 들어보라고 하기도 한다.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물을 다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가이드의 말이 맞았다. 그들이 금하는 것들을 가지고 들어가다 적발되면 압수당하는 것은 물론 높은 벌금까지 물어야 한다 하여, 가지고 간 약까지 신고해 달라고 가이드에게 맡길 정도였다.

나중에 듣고 보니 이 나라는 청정의 나라라, 이 나라에 사는 동물이 다 병원균에 약하고 저항력이 없어서 특별한 음식물 반입을 금하고 있는 것이었다.

옛날 미국 관광객이 갖고 들어온 사과 씨가 이 나라에 퍼져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고도 하지만, 아무튼 손님의 가방을 이렇게 심하게 뒤지는 것은 자기 나라를 찾아온 손님에게 이렇게까지 하여야 하나 하는 서운한 생각을 갖게 하였다.

 

 뉴질랜드는 우리와 반대로 사는 나라였다.

인천 공항을 초여름인 6월 31일 출발하였는데 뉴질랜드는 한겨울이다.

겨울인데도 우리나라 겨울 같이 춥지 않았다.

북쪽으로 갈수록 따뜻한 나라이고, 남쪽으로 갈수록 추운 나라였다.

밤에 북두칠성이나 오리온좌가 보이지 않는 대신, 남극성(南極星)과 은하수 속에 십자성(十字星)이 보여 "남쪽 나라 십자성 어머니 얼굴~"하며 노래하던 유행 가사를 흥얼거리다가 살아 계실 적 어머니 얼굴을 떠올라 객수에 잠기게도 하였다.

 <img src="http://id.emimg.com/imgdir/00/00/00/20/08/00200829_2.jpg"width=210 high=130 align="left">뉴질랜드 국기의 왼쪽 위에 있는 유니언 잭은 이 나라가 영국연방의 일원임을 표시한 것이다. 빨간 별 4개는 남십자성을, 진한 파랑 바탕은 남태평양을, 별의 위치는 남태평양 상에서의 이 나라 위치를 나타낸다.

뉴질랜드는 양이 사람보다 23 배나 많이 사는 나라이고, 소가 사람보다 2배 이상 많이 사는 양의 나라, 소의 나라였다.

사회보장제도가 완벽하여 키위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삶을 책임져 주는 나였다.

남존여비(男尊女卑)가 아니라 여존남비(女尊男卑)로 가정에서 아내>자식>노인>개>남편 순으로 가장(家長)인 남편 서열이 제일 낮아 이곳 가장들은 남편이 개만도 못한 나라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고 있었다.

차는 좌측통행을 하기 때문에 자동차 핸들이 우측에 있다.

새 차보다 중고차를 선호하여, 일제 중고차가 모든 시내를 누비고 있었다. 한국의 중고차는 운전석이 왼쪽이라 여기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일을 많이 하거나, 위험한 직업이거나, 천한 직업에서 일하는 키위들의 월급이 많아서, 직업에 귀천이 없는 나라였다.
장례에서는 관은 세워서 묻고, 묘소는 산 아닌 동네에 두고, 꽃을 들고 자주 묘를 돌보기 때문에 죽어서도 호강을 하는 나라였다.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고 보단을 눌렀더니, '쏴아' 하며 물이 돌아가며 내려가는데, 시계 반대 방향이었다. 시계를 남반부 사람들이 발명하였다면 시계 방향이 거꾸로 되었을 것이다.

관광국가이지만 우리 같은 관광객이 내국인과 다투면, 손님인 관광객을 강제 출국시키는, ‘손님이 왕’이 아닌 나라였다.

돈을 아래에서 위로 세는가 하면, 면도를 아래서 위로 미는 키위들의 나라였다.

그래 그런가. 이 나라에서 만난 한국인 가이드는 일정표도 뒤에서부터 앞으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   신의 의상(衣裳) 같은 자연 속에, 양들이 사는 나라

캔터버리 평원의 정원도시라는 남섬 최대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 투숙한 홀리데이 호텔은 모래 다시 올 곳이라 시내 경치 구경은 돌아와 하기로 하고 우리는 퀸스타운(Queens Town)을 향하여 8시간의 버스 투어에 나섰다.

40대 초반의 키위 운전기사가 최근에 샀다고 하는 중고차의 맨 앞자리에 나는 요란한 카메라 장비를 하고 앉았다.
디지털카메라, 디지털캠코더, 보이스 펜 등, 첨단 제품으로 무장한 것이다. 보험도 처리해 주지 않는 앞자리라지만 달리는 차 속에서 비디오 촬영은 앞자리 만한 곳이 없다. 달려오는 경치에다 좌우로 지나가는 경치를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보이는 산은 신기하게도 나무가 거의 없는 돌산이고 그 뒤로 2,600m의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 연봉이 산머리에 만년설을 이고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앞서고 뒤서며 딸아 오는 것을 보니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 남알프스 연봉에는 높이 3,000m가 넘는 봉(峰)이 18 개나 된다.

'자연의 아름다움이란 고스란히 신의 의상(衣裳)이다' 라고 한 카알라일의 글이 생각난다.

  뉴질랜드는 쿡 해협(Cook Strait)을 두고 북섬과 남섬 두 섬으로 이루어진 칠레처럼 긴 나라이다.

뉴질랜드 지도를 동서를 뒤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하고 유심히 보자, 우리나라 지도와 비슷하지 않은가? 사이에 있는 쿡해협(Cook Strait)은 바다 휴전선이라 생각하고, 남섬 아래 '마우리 카누의 닻’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스테와트섬(Stewart Island)을 제주도라 생각하면 틀림없는 우리나라 지도가 된다. 그러면 오늘 새벽 우리가 떠나온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는 인천(仁川) 위치에 있고 돌아와 가기로 되어있는 오클랜드(Auckland)는 백두산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 태백산맥의 백두대간 같이 70%의 산악지대가 남섬 서쪽에 치우쳐 있고 평야가 적다.

1,600m 떨어진 호주 쪽에서 매년 편서풍이 불어온다. 비구름은 저 높은 서던 알프스(Southern Akps) 연봉을 넘어 동쪽으로 갈 수가 없어 서쪽에는 연중 거의 비가 내린다. 겨울에는 폭설도 내려 만년설(萬年雪)이 저렇게 쌓이게 된다.

그 반대로 지금 달리고 있는 동쪽은 연평균 강우량이 668mm로 적은데다가 거의가 돌산이어서, 사막처럼 나무가 없고 초원도 드물다.

양들이 모여 사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면 바퀴가 달린 길고 큰 물뿌리개가 있다. 여름에 이 움직이는 긴 스프링클러로 옮겨 다니며 물을 뿌리면 풀은 우리 땅에서보다 네 배나 더 빨리 자란다. 물을 주지 않으면 이내 말라죽기 때문에 그걸 잘라 건초를 만들어 우리나라에까지 수출을 할 수 있다 한다. 가는 곳마다 비닐에 기둥같이 모아놓은 건초더미는 이국의 색다른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양들이 있는 곳에는 전기가 통하는 울타리를 쳐서 양과 소와 사슴들을 기르고 있는데 양들이 훨씬 많았다. 그 사이 사이에 관광객이 보기 좋게 곱게 전지 한다는 방풍림(防風林)이 있는데, 가지가 나무 밑동부터 무성하여서 골프 공 같은 크기 정도는 도저히 찾을 수 없이 울창하다. 축사가 없이 방목하는 초원에서는 이 방풍림이 비바람이나 눈보라 치는 날에는 양들의 피난처도 되는 모양이다.

사슴 목장에는 울타리가 유난히 높았다. 사슴은 점푸를 잘하기 때문이다. 목장 주들은 이곳에 물탱크를 설치하여 사슴들이 물을 마시게 하는데 일주일에 서너 번만 돌보아 주고 가면 되는 모양이다.

그래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계속 보게 되는 것이 양과 사슴의 목장이련만 일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네와 달리 사람들이 귀한 세상이었다.

 

*.  마운틴 쿡(Mt. Cook)을 보지 않고는 뉴질랜드를 말하지 말라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성공한 키위 힐라리경이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우리 집 뒷산을 오르다 보니 에베레스트 정상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데, 그 뒷산이 바로 저기 보이는 마운틴 쿡(Mt. Cook)이었다.
내가 평생 만나본 산 중 가장 높았던 산은 캐나다에의 롭슨 산(Robson Mt.)이었다. 그때의 감흥을 다음같이 흥분하여 기록한 일이 있다.

"북아메리카의 최고봉 3,954m의 롭슨 산(Robson Mt.) 정상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본연의 얼굴로 하얀 모습의 장관을 드러내어 우리를 맞아주고 있다. 아프도록 목을 뒤로 젖혀야 보이는 저 높은 정상의 흰 눈이 바로 빙하(氷河)이다. 한 번만 구경 오십시오 하는 1,950m의 한라산 정상도 구름에 싸여 보기가 쉽지가 않거든 하물며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 고봉(高峰)이 화창한 날씨를 열어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다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축복인가." 

 

롭슨 산보다는 조금 낮은 3,764m의 마운틴 쿡(Mt. Cook)은 넓이가 700만 라는 마운틴 쿡 국립공원에 있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18여 개가 된다는 3,000m 이상의 봉우리와 2,500m 내외의 봉만도 200여 개나 거느린 서던 알프스의 산이 만년설에 덮인 연봉을 거느리고 있다.
그 앞에 빙하호수 데카포가 새파란 하늘을 헹궈낸 듯한 에메랄드빛 물빛과 어울려 선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갈 때는 구름에 가리어 볼 수 없던 산을 돌아올 때 보니, 구름을 씻고 만년설을 머리에 인 은빛 얼굴로, 같은 길을 되돌아오는 우리들의 아까운 여행을 위로하듯이 서서 맞는다.

 

저 지역은 1년에 200일 이상 비가 오는 서부 지역이라 이곳까지 와서도 보지 못하고 가는 이가 더 많은 것은 물론, 이를 보려 며칠씩 묵어가는 사람도 있다 하니, 대~한민국의 우리들은 그야 말로 하나님이 보우한 민족임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이 곳은 뉴질랜드 투어의 하이라이트로, ‘마운틴 쿡을 보지 않고서는 뉴질랜드를 말하지 말라’라고 하는 경승지다. 마운틴 쿡이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만두 국’으로 기억하자.

 

시간과 금전에 여유가 있는 나그네라면, 호수 옆길로 난 길을 따라 산록에 있는 호텔까지 5~6시간 걸려 직접 산에 올라 평생의 추억을 만들거나, 아니면 12만원 정도(NZ$190.00)를 들여서라도 바퀴와 스키를 단 경비행기나 헬기를 이용하여 2시간 30분가량 서던 알프스의 산들과 빙하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하다가, 빙하 위 비행장에 내려서, 현지 전문가에게 빙하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워킹을 할 수 있다 하니, 나도 그 대열에 서서 내가 본 캐나다와 노르웨이에 가서 본 빙하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하고 싶어지는구나.
허나 투어 중에도 알뜰 투어를 선택한 우리들이라, 데포 호숫가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개 동상 앞에서 사진으로 마운틴 쿡에 온 것을 기념할 수밖에-. 

 

이곳에서 호수와 어울린 마운틴 쿡의 진면목을 보시려면 유난히 벽난로 굴뚝이 돋보이는 교회 내로 들어갈 것이다. 이 교회는 이 지역의 개척자들을 기념하기 위하여 호수 가에 새워진 초라할 정도로 단순한 건물이지만, 이 경치와 너무나 멋지게 자연과 어울리면서 그 이름도 아름다운 '선한 목자의 교회'이다. 교회에 들어가면 앞에 제단이 있고, 제단으로 향한 벽에 창문이 우리 같은 나그네를 위해서 활짝 열려 있다.

약간은 어둑한 이 교회 내에서 창을 통하여 바라보이는 신이 창조한 저 경치는 산과 눈과 물이 어떻게 조화되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대형 최신 디지털TV을 통하여 보게 되면, 천국 같은 유토피아를 찾아온 나그네의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즐거움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세계 제일의 관광의 도시, / 휴양의 메카 '퀸스타운(Queenstown)'

 이름 그대로 퀸스타운(Queenstown)은 여왕이 살기에 알맞은 호반의 도시이다, 고산 지대라서 고원의 더할 나위 없이 청정한 공기가 그렇고, S자 모양으로 펼쳐진 퀸스타운 도시가 품어 안고 있는 와카티푸 호수(Wakatipu Lake)가 또한 그러하다.

이 호수를 사진보다 마음속에 담아가기 위해서는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고 가는 것보다 호수의 숙녀라는 증기선이나 경비행기를 타고 저 아름다운 자연 속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호수에 떠 있는 산영(山影)과 배 그림자처럼 우리도 그 하나가 되어 버리게 된다. 허나 아내와 함께 하는 알뜰 투어로 이렇게 다니는 것만도 과분한데 어찌 더 이상을 바라리오. 언감생심(焉敢生心)이지 어찌 더 욕심을 내겠는가. 

이 호수를 더욱 유명하게 하고 있는 것은 이상하게도 바다의 간만의 차이처럼, 담수호가 약 15분마다 수위가 8cm 남짓 증감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호수에는 그래서 예로부터 마오리족 연인의 사랑이 얽힌 전설 하나가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옛날에 리마커블스 산에 괴물 하나 살았데. 해마다 마오리 처녀를 괴물에게 바쳤는데, 추장의 귀여운 딸이 그 순서가 되었다지.  죽도록 처녀를 사랑하는 총각이 잠든 괴물 가슴에  칼을 꽂았는데 호수에 굴러 떨어진 괴물이 헐떡이고 있는 거래. 

전설처럼 원래 이 도시에서는 마오리 족이 살았는데 주변에 사금(砂金)이 난다는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자, 금광을 찾아 몰려온 유럽 인에 의해 1850년대부터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그때 사금을 캐던 곳인 카와라우(Kawaru) 강 급류 너머에 애로우 타운이 있어 돼지우리 같은 당시의 남루한 집들이 고생하던 당시 중국인들의 거칠고 고단했던 시절의 옛날을 말해주고 있다.

거기에는 당시 사금을 캐던 장비가 있어 관광객으로 하여금 사금 채취의 경험을 직접 해 보게 한다. 그 무렵이 우리나라에서는 강화 도령 철종 때였다.

그 강을 가로질러 있던 광산이 쓸모없이 사라지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카와라우(Kawaru) 다리에서 47m 아래로 뛰어내리는 번지점프(bungeejump)를 고안하여 시작했다.

번지점프(bungeejump)기다란 고무밧줄로 다리를 묶고 다리 위에서 강물을 향해 47m나 102m를 뛰어내리는 것이다. 뛰어내리던 못 뛰어내리던 돌려주지 않는 10여만 원이라는 요금을 내면서, 모든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각서에 서명까지 한다는 곳에 어둑해서 도착해 보니, 사람들은 우리만 있고 상점도 문을 닫혀 있다. 이곳이 관광객들은 평생에 잊지 못할 곳에서의 짜릿한 추억을 위해 줄을 서 기다린다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개척정신이 깃든 어드벤처 레저라지만 돈을 주어도 뛰어내리지 않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카와라우 강을 향하여 뛰어내리는 젊은 마음이 그지없이 부러울 따름이다.

  여기만 오면 이곳은 저렴한 비용으로 계절과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스키와 골프는 물론, 험한 계곡을 나를 듯이 쾌속정을 타고 달리는 제트보트도 있고, 여름에는 급류 타기, 낙하산 타기, 글라이딩 등등- 특별한 훈련 없이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여기가 세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고 오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며, 휴양도시며, 레저 스포츠의 메카인 퀸스타운(Queenstown)이다.

그보다 더 유명한 게 된 것은 퀸스타운이 우리가 지나온 서던 알프스로 가는 입구요, 내일 가기로 된 피오르드(Fjord)의 고장, '밀퍼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었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가는 길

  이곳은 지금이 한겨울이라 새벽이 캄캄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아침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부(西部)는 고산 지대라 구름이 높은 서던 알프스의 연봉(連峰)을 넘지 못하여서 비와 눈이 많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비가 눈으로 바뀌어 길이라도 막히면 어쩌지? 걱정이 앞서는데 초원에는 밤새 눈서리가 왔는지 어제 보던 초원에 눈 덩이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구더기 같기도 한 것이 오물오물 모여 있다. 양이었다.

축사도 없는 초원에서 철조망 때문에 피할 곳이 없어서 양들은 그냥 그 자리에 옹크리고 하나님이 주신 털을 벽과 지붕 삼아 눈비를 맞으며 끼리끼리 붙어 한둔을 한 것이다.

안됐다는 생각이 난다. 우리 인간이 이 자연 앞에 죄를 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맹수가 없는 양들의 낙원 뉴질랜드에 양들의 천적(天敵)이 누구란 말인가? 이 노 시인의 마음에 갑자기 시심(詩心)을 일깨운다.    

보이는 게 초원(草原)뿐인데
다툴 일 있겠어요?
내 것이 아닌 몸인데 두려울 일 있겠어요?
맹수(猛獸)가 없는 이 나라선
인간들이 천적(天敵)이지요.                                         

                   -양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까지는 버스로 4시간. 예약한 배 시간에 맞추어 가야 하기 때문에 어둑한 이른 새벽부터 출발했다.

어제 이곳을 달려 올 때는 산에는 나무 하나 없는 누런 산이었다. 그 산에 고슴도치가 옹크린 듯한 누런 동글동글한 것이 온 산을 덮고 있는데 마치 산 전체가 부스럼이 난 것 같았다. 바위도 아니었다.

이것이 이 나라가 보호하는 터석이라는 풀로 여름에도 색깔이 저렇게 누렇다고 한다. 이 터석이 있는 곳은 법으로 보호하여 초원으로 못 만들게 금하고 있다 한다.

환경 보호에 더할 나위 없이 철저한 이 나라에서는, 나무가 없는 곳에 나무를 심어도 자연 파괴라고 금하는 나라였다.

어제는 나무 대신 터석이 무성했던 산이, 오늘은 초목이 무성한 산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지금 달리고 있는 곳이 서던알프스의 서쪽인 우림(雨林) 지대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길가 초원에 울타리가 끊기었다. 울타리가 그친 곳이 국립공원이라더니 우리는 드디어 피오르드 국립공원 경내에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차로 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황홀한 관광길인데, 밀포드 사운드가 가까워질수록 그 아름다움이 더하여서 차창을 향한 캠코더가 왼쪽,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느라 바빠진다.

이 인적미답의 원시림에 활짝 핀 눈꽃을 보며 우리는 감격하고 있었다. 눈이 오면 원시림적인 설화(雪花)와 피어나는 연무(煙霧)의 계곡 속을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여행 가서는 볼 것을 다 보고 오는 것도 행복이지만, 남들이 못 본 것을 보고 오는 것은 행복 중에 행복이 아닌가.

내리던 비는 눈으로 바뀌고 우리가 탄 관광버스는 곳곳에 체인을 감고 있는 소 중형차를 지나치고 있다.

어쩐다지? 이러다 눈이 막혀 못 가게 되면-. 우리들의 걱정은 자꾸 앞서 가기만 하였다.

이 질투할 정도로 부럽게 아름다운 나라가 그 아름다움 중에서도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국립공원이 13개가 있는데 그 중 9개가 남섬에 있다니, 남섬은 관광 뉴질랜드의 보고(寶庫)인 모양이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가는 길에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터널이 바로 저기 보이는 호머터널(Homer Tunnel )이다. 암석지대의 험난한 공사라서 인부 여러 명이 목숨을 앗아가면서 인부들이 다이너마이트와 곡괭이와 망치와 정만으로 굴을 뚫어 18년만인 1965년에 완공한 길이 1,270m의 터널이다. 이 터널은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로 향한 출구 쪽을 향하여 10˚도의 경사길로 만들어서 물이 자연 배수 되게 하였다.

 

*. 뉴질랜드 관광의 하이라이트 피오르드(Fjord) 공원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에서, 우리들과 같이 이곳을 꿈꾸며 찾아 모여든 세계인들과 함께 10.69km 가량의 선상 유람을 한다. 이곳은 우리들 투어의 최종 목적지로 이 여행의 최고의 하이라이트다.

3일의 지루한 버스여행은 여기를 보기 위해서 감수하여 왔던 것이다.

이 선상 쿠르즈(Cruises)는 2~3 시간 동안 선착장을 떠나서, 먼저 왼쪽 피오르드부터 마이터 봉(Mitre Peak)을 지나 빙하수 폭포가 내리는 수직 절벽 너머로 만년설을 이고 서있는 수많은 흰 봉우리를 바라보며, 옛날 녹옥(綠玉green stone) 채취로 이름난 아니타베이(Anita Bay)을 돌아 우측의 절벽 쪽에 있는 유명한 스티링 폭포(Stirling Falls)에서 폭포수를 맞으면서 돌아오게 되어 있다.

배에 올라 자리를 잡자마자 점심이 시작되었는데 선상 식은 뷔페식이다. 창을 통해 절경을 바라보면서 드시라는 것인데 그 식사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허나 카메라의 눈은 사람 눈처럼 융통성이 없어서, 오늘 같이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을 통해 보는 것을 용납지 않으니 어찌한다? 핀란드에서 스웨덴까지 밤새워 가는 꿈의 여객선 실자라인 같이 밖에서 기계로 창을 닦아주는 것도 아닌데-.

궁리 끝에 먹으면서 나가 찍고, 찍다가 들어와 먹기로 작정하고 들날날락 하는데, 인정 없는 빗줄기가 물을 가장 두려워하는 디지털 캠코더와 카메라를 가슴 아프게 적시고 있다.

 

이곳 선착장에 와서 제일 먼저 눈에 마주치는  수직 산봉우리로 허리에 구름을 감고 있는 해발 1,710m 마이터 봉(Mitre Peak)이다.

그 생김새가 천주교 주교가 의식 때 쓰고 나오는 흰 모자 같다 하여 주교관(主敎冠)이란 뜻의 마이터 봉이(Mitre Peak)라 하였다는데, 그 주변 깊이만도 265m가 넘어 피오르드(Fjord) 지역 중에 가장 깊을 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산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이 당당하고 수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인하여 피오르드(Fjord)에서는 물론 뉴질랜드 관광 사진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자랑스러운 뉴질랜드의 관광의 대명사가 되었다. 

 

*. 피오르드(Fjord)란 무엇인가?

산의 정상 골짜기 부분에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눈이 쌓여 30m 이상 계속 되면, 그 압력으로 큰 얼음 덩어리가 된다. 그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그 무게와 경사로 인하여 눈사태처럼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하게 된다. 빙하가 산봉우리를 칼날 같이 세모로 깎고, 바위를 수직으로 깎으며 지나간 그 빙하가 깊게 파놓고 지나간 자리에 바닷물이 침범하여 된 바다가 피오르드(Fjord)이다.

그래서 피오르드 지대는 경사가 양쪽으로 수직을 이루고, 깊이가 100m가 넘으며, 바닥이 계곡처럼 V자 형이 아니고 U자 형의 계곡이 된다.

지금도 계속 눈 녹은 물이 폭포가 되고 개울이 되어 흘러내리기 때문에 바다이지만 10m 이래는 바닷물이요, 위는 눈 녹은 물 담수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들 앞에 펼쳐진 피오르드(Fjord)의 세계인 것이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이 지역은 우림(雨林) 지대에 속하여 연중 강우량이 7,000m 이상으로 세계에서 제일 많다.

우림 지대답게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봉우리 사이사이 100m가 넘는 곳에서 폭포가 수백 개씩 실처럼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란,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산이 거의 암반이어서 비가 와도 빗물이 스며 들 땅이 없다. 그래서 비가 오면 생겼다가, 비 그치고 3~4 시간 후에는 없어지는 폭포였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보웬 폭포와 스티링 폭포가 160m, 146m의 높이에서 거대한 양의 물을 협곡으로 쏟아 부으며,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와는 또다른 더 장엄한 세계를 연출하여 관광객을 놀라게 하는데, 위험하게도 배는 그 폭포 밑에 바싹 다가서면서 선상 마이크도 흥분하였는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여러분, 이 폭포에서 흩날리는 저 더할 나위 없이 청정한 폭포수를 맞아 보시며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이 폭포수를 한 컵 가득 받아오시는 분이 계시면 고급 위스키 한 병을 선사해 드리겠습니다."

반갑게도 우리의 가이드가 그 통역을 한국말로 하고 있었다. 우리 한국도 이만큼 큰 나라가 된 것이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구경은 이런 선상 쿠르즈도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책로라고 하는 '밀포드 트레킹 코스'도 있다. 바라보는 구경이 아니라 천국 같은 그 자연을 직접 밟아 보며 느끼게 하자는 것. 위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프로펠러 경비행기나 헬리콥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한다.

자,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데 지루하게도 크라이스트처치까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산꾼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원점회귀(原點回歸)를 제일 싫어하는 법인데, 그것도 장장 8시간 이상이라니-.  그래서 올 때는 버스로 오고, 갈 때는 항공편을 이용한다는 행복한 선택여행도 있다 하니, 얼마나 부러워 할 일인가. 

이렇게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이틀을 묵고 QF 항공편으로 쿡해협을 넘어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오클랜드를 향하면서, 남섬 여행에서 키위 나라 위정자들에게 대한 아쉬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밀포드 사운드 투어인 경우, 그렇게 멋진 자연을 두고 지키기만 할 뿐 관광을 위한 투자에 너무 소홀히 했다고 생각해서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지상 낙원 건설에서, 변화하는 뉴질랜드 건설로 선회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여 주기만 하였을 뿐, 이국 땅 먼 나라에서 찾아와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육로를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게 하는 무성의였다. 그 변화를 줄 수는 없단 말인가.

그들은 1.,700m의 호머 터널 하나만을 파는 게 아니라 그런 것을 여러 개 파놓아야 했었다.

작년에 피오르드가 보고 싶어 노르웨이를 가면서 만난,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80리(24km)를 30분 이상 계속 달려야 했던 터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터널은 관광 노르웨이를 꿈꾸며 암벽을 하루에 1m 씩 오랜 세월을 들인 공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