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의 은인 李光耀
싱가포르(693km)는 서울(605.4km)보다 약간 큰 섬나라인 도시국가이다.
해안선 길이가 193km이니 500리도 채 못되는 작은 나라로 6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독립국가이다.
거기에 5545만여 명이 사는 아주 작은 나라다. 민족도 다양하여 중국계(76%), 말라이계(13.9%), 인도계(1.9%)의 국민이 제 각각 다른 문화를 가지고 어울려 사는 나라다.
작은 나라로 알고 있는 스위스( 41,284㎢)의 1/6밖에 되지 않는 나라가 동양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동남아시아의 정치, 경제, 관광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이렇게 싱가포르는 동양 속의 유럽이 되어 이웃나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에서 열대지방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그 비결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한 마디로 초대 총리 이쾅유(李光耀 )가 싱가포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쾅유(李光耀 ) 어떤 사람인가 ?
그후 변호사,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싱가포르 정부가 수립되던 1959년부터 35세 나이에 초대총리로 1990년까지 31년 동안 세계가 부러워 하는 오늘날의 싱가포르로 키워온 지도자였다.
그동안 자연 자원 하나 없는 가난한 신생 독립국을, 세계가 우려의 눈초리로 보던 400만이 살던 작은 이 도시 국가 싱가포르를 오늘날 같이 동남아시아 무역의 중심지로, 국가경쟁력이 미국에 이어 2위인 나라로. 가장 부패지수가 낮은 세계 7大 국가에 선정되는 영광의 나라로 만들면서 1인당 국민소득 5만6,532 달러(1910년)로 아세아에는 물론 세계 1위로 잘 사는 번영의 나라로 만들었다.
그가 만든 성공 신화 중에 하나가 '교육입국'을 주장하며 다민족 국가인 싱가포르에 77 %의 중국인들이 사는 이 나라의 공용어를 중국어 아닌 영어로 하여 다민족을 하나로 통일 시킨 것이다.
'싱가포르 젊은 학생들이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될 때에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을 그는 예견하였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쾅유는 1당 독제로 민주화를 억누른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단점보다 장점이 그의 단점을 덮어 절장보단(截長補短)의 경지가 될 때는 그 평가는 달라지는 법이다.
만약에 우리나라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싱가포르 이광휘 수상과 같은 혜안(慧眼)이 있었다면, 그보다 미 초대 대통령 워싱턴같이 미국 국민 전체가 3선 대통령으로 추대하기를 원할 때 스스로 물러서는 그런 지배자였다면 불행한 최후를 맞았겠는가. 우리나라는 벌써 선진국 대열에서 세계를 지배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쾅유(李光耀 ) 총리의 국민을 위한 그의 경륜 의 말을 들어 보자.
-독립 직후, 내가 생각했던 또 하나의 목표는 완벽한 주택보급이었습니다.
국민들에게 부자들의 재산이나 지키라고 당신들의 아들을 국가를 위해 싸우도록 군대에 보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20년간 주택자금을 분할 지불함으로써 부담 없이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저축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낮은 가격으로 아파트를 소유할 수 있게 하여 개인 자산을 늘리게 하는 이 방식을 통해서 현재 우리 싱가포르는 95%의 가구가 주택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비에 그 아들이 있다고 이런 인물을 키운 부모는 어떤 사람인가?
-李光耀 수상의 아버지는 조그만 시계방을 해왔습니다. 아버지는 백화점 한 모퉁이에서 시계를 팔고 고쳐주면서 생계를 이으며 자식을 영국의 명문대학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시키는데 아낌없이 투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수상이 된 후에도 시계방에서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아버지는 수상아버지에 관심이 없이 오로지 평생 직업인 시계방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았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대단한 李光耀 수상이 우리나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자신의 통치모델로 삼았었다는 점이다
-李光耀는 중국의 공산화가 부패한 장개석(蔣介石) 군대에 비하여 모택동(毛澤東)과 월남의 호지명(胡志明)이 청렴하였기 때문인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래서 1959년 李光耀 일파가 싱가포르 시의회에 진출했을 때 하얀 셔츠를 입게 하였다. 반부패를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공무원의 임금을 기업체 수준으로 올렸고, 월급 이상으로 사는 것 자체를 부패로 몰았다. 어느 분야에서나 부정과 부패로 일단 낙인을 찍히면 공무원은 물론 택시나 요식업 종사자까지도 영원히 그 직업 그 직종에는 다시는 종사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싱가포르를 만들었다.
그 李光耀 수상이 싱가포르를 발전시키면서 그 모델을 박정희 대통령에서 찾았다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 보니, 35년 동안 누리던 권좌를 스스로 후계자에게 물려주게 된 것 역시 박 전 대통령의 비운을 보고 깨달은 바 있었던 것 같이 생각된다.
-李光耀 수상의 취임식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조국 싱가포르를 위해 다 하였으니 나는 후계자를 위해 물러나겠다고 하면서 이임식도 하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 취임에 단돈 1달러도 쓰지 않은 퇴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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