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Sydney) 기행/ 호주 --------------1차 수정
학창시절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음악의 도시 '빈'이 수도인 오스트리아(Austria)를 자주 혼동하였다. 그 중 한 나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를 향하여 장장 10시간을 인도양을 넘어 우리는 가고 있다.
지금은 제목도 지은이도 잊어버린 젊어서 암송하던 영시(英詩)가 입가에 맴돈다.
하늘을 건너서 구름은 가고
들을 넘어서 바람은 간다.
들을 넘어가는 길손은
내 어머니의 유랑의 아들.
왜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n)라 하였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시아 대륙의 남쪽에 미지의 땅이 있다고 믿어 왔다. 그들은 이를 Terra Australia Incognita라 하였다. 글자 순서대로 해석하면 '땅, 남방, 알려지지 않은'이니 곧 미지의 남방 땅이 되니까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n)이란 말은 '남방'(南方)이란 뜻에서 유래된 말일 것이다.
‘시드니와 뉴질랜드'를 투어 하기로 여행사와 계약을 끝내니, 성큼 마음속에 남쪽나라 오스트레일리아가 다가온다. 서점에 들러서, 여행 서적을 뒤적이다 보니 호주 여행할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 몇 가지를 요약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도 호주와 같은 문화권이라 같이 보아야 될 것 같다.
* 차들이 좌측통행하는 나라이니, 길을 건너거나 버스를 탈 때 조심할 것
* 차내에서는 서 있거나,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지 말 것.
* 차내에서는 흡연 음주는 물론 생수를 제외한 모든 음식물을 먹지 말 것.
* 횡단 도로에서는 보행자 절대 안전 100% 우선이므로, 현지인은 달려오는 차를 무시하고 그냥 건너간다는 것을 염두에 둘 것.
* 횡단보도에 서 있으면 모든 차가 멈추니, 빨리빨리 건너갈 것.
* 만약 사고 등으로 경찰에 적발되었을 때는 운전대에 손을 얹고 기다릴 것. 내 리거나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하면 사격당할 수도 있다.
* 경찰을 부르거나 어떤 사고가 났을 경우, 신고 전화번호는 '112'가 아니라 ‘000'이다.
* 함께 가다가 건물의 문을 연 경우 연 사람이 먼저 들어가는 사회가 아니다. 뒷사람이 먼저 들어가도록 기다리며 양보할 것* 식당에서 식사 중에는 모자를 벗어야 하며, 식사 후에는 가급적 함께 일어나도록 할 것.
* 길가다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지 말 것
.* 어린이가 예쁘다고 어루만지거나 머리를 쓰다듬지 말 것.
* 전기는 240 볼트고 플러그가 셋인데 11이 아니고 八자 형이니 이를 맞추어 준비해 갈 것
* 오존층의 파괴로 자외선이 너무나 강렬하니, 장시간 여행 시는 반드시 모자와 선글라스를 쓸 것이며, 여성인 경우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바를 것 등등.
대륙의 막내 호주, 가장 나중 발견한 신천지
한 대륙 한 국가, 축복 받은 행운의 나라
마지막
신비의 낙원
부자 나라 호주여!
이 나라는 한때 백호주의(白濠主義, (White Australia) 정책이라 하며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던 나라다. 최근에도 야당 당수의 선거 공약 중에 하나가, ‘당선되면 호주 인들의 행복을 위해 아시아 이민자들을 몰아내거나 혼내 주겠다.'는 것을 보면 호주 인의 저변에는 아직도 백호주의(白濠主義)가 살아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 교민 3만여 명이 사는 나라이니, 교민을 위해서라도 그들에게는 백안시(白眼視) 될 수 있는 혐오스러운 행동을 삼가야겠다.
90% 영국계 백인들은 원주민 마오리족(maori族)것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심지어는 희귀 동물의 뼈와 함께 에버리진(aborigine)의 뼈를 박물관에 전시해 놓을 정도였다.
그래서 호주 백인들은 과거를 참회한다는 뜻에서 매년 5월 26일을 '소리 데이(Sorry Day)'라는 날을 정하여 반성하고 있다.
*.호주의 희기(希冀) 동물들
드디어 우리는 여름나라 북반부 나라 코리아에서, 겨울나라 남반부 시드니 킹스포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인구 5,000만이 사는 대~한 민국보다 33배나 크다는 이 대륙에서 2천 2백만여 명이 살고 있는 나라에 온 것이다.
면적이 유럽의 약 1.5배. 미국과 크기가 비슷한 나라로 세계에서 6번째로 큰 나라.
태초의 자연이 그대로 숨쉰다는 신비의 나라.
전 세계 양털의 1/3을 생산하는 나라.
나라가 개인의 생로병사를 책임져 주는 나라.
출산 수당, 육아 수당, 학생 수당, 실업자, 장애자, 미망인 또는 홀아비 등 외로운 사람에게 연금을 주고, 질병을 무료로 해까지 주는 지상의 천국.
캥거루가, 잠꾸러기 코알라가 인간과 함께 마음 놓고 뛰놀고 잠자는 나라에 온 것이다.
그중 이 나라 인구의 1/4이나 되는450만 인구가 사는 남반부 최대의 도시가 바로 시드니(Sydney)라는-. 시드니 공항을 나서니 겨울답지 않게 산하가 거의 초원이다.
남쪽으로 갈수록 추워진다는 이 나라의 가장 남쪽 시드니가 이러하다.
북은 열대 지방이고, 이곳은 온대로 사계절이 함께 있는 나라이며, 시드니는 하루에 사계절있다는 나라였다. 그래서 낮은 봄, 가을 같고, 밤은 겨울 같은 날씨란다.
불루마운틴(Blue Mt.)을 가는 길에 '야생 동물원(Australian Wildlife Park)'에 들렀다. 크기만으로는 서울대공원과 비교할 수 없이 작은 동물원이었지만 여기 아니고는 볼 수 없는 희귀 동물이 사는 곳이다. 이 동물원의 특징은 울안으로 들어가 동물을 만져 볼 수도 있고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캥거루는 온순한 동물로 우리가 울안에 들어가 쓰다듬어 주며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여 주었다.
생각보다 작아서 진돗개 만한 이 캥거루가 크기 약 2.5㎝, 몸무게 약 1g의 새끼를 낳으면 새끼는 앞발만을 이용하여 육아낭(育兒囊) 속에 기어 올라가서 젖꼭지를 물고자란다.
호주인 들은 '조이'라 불리는 육아낭 속의 이 새끼 캥거루를 보는 날이면 재수 좋은 날이라 복권을 살 정도로 보기가 힘들다 한다.
처음 호주에 상륙한 영국인들이 육아낭에 새끼를 넣고 두발로 뛰어 다니는 이 이상한 동물을 보고 원주민 애버리진(Aborigine) 에게 물어 보았다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 대답하였다. "캥거루(Kangaroo)." 원주민 말로는' I don't know.'였다.
캥거루의 수명은 15년 내외인데 독수리․ 비단뱀․ 딩고․ 여우 등이 천적(天敵)이지만, 그보다 몇 백 배 무서운 천적(天敵)이 있다. 그게 무엇일까? 사람이다.
잡아먹기도 하고 그 가죽은 벗겨 방석을 만들어 팔고 있는데 꼬리에 앉아 고스톱을 치면 허벌나게 잘된다고 특히 한국 관광객에게 인기가 높다.
이 동물원에서 최고 스타는 뭐니 뭐니 해도 물을 전연 마시지 않고 산다는 코알라(Koala)였다.
나무 위에서만 사는 이 코알라는 유칼리나무 잎만 먹고사는데 유칼리나무 잎에는 알코올 성분이 있어서인가. 먹는 시간을 빼고 20 시간 이상을 나무에 매달려 잠만 자는 잠꾸러기였다. 캥거루처럼 배에 육아낭(育兒囊)이 있어 새끼를 주머니 속에 넣고 1개월 동안 기르다가, 자라면 1년 동안 등에 업어서 키운다.
원주민 애버리진 말로는 크보르(ku-bor-oo)라 하는데, 이는 '물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호주 산림의 90%나 차지하고 있다는 유카리나 잎이었다.
다음으로 크다는 '에뮤'는 약 1.8m 크기로 키위(Kiwi) 새와 같이 부성애가 강하다. 암놈이 알을 나면 2달 정도 수컷이 알을 품는 날지 못하는 새다. 맹수가 없는 나라여서 날개는 퇴화하였지만, 시속 40~50km를 질주할 수가 있다.
호주 대륙에서 가장 무서운 맹수라는 '딩고(dingo)'는 하얀 진돗개와 다름없는데 늑대보다 약간 작은 야생 들개였다.
원주민이 가지고 온 개가 야성화 한 것이다.
'웜뱃(Wombat)'은 곰과 쥐의 특징을 갖고 있어서, 고양이 잡아먹는 쥐로 알려져 있다.
호주 대륙의 모든 동물을 두루 살피려면 세계적인' 타롱가 동물원(Talong Zoo)'에 가자. 거기엔 369종 3,000여 두나 만나 볼 수 있다 한가. '타롱가 동물원'은 시드니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20분이면 가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
'
*. 호주의 그랜드케년/ 블루 마운틴(Blue Mt.)
봉우리가 없는 산이, 있다는 소리 들었는가
유카리 나뭇잎이 뿜어내는 푸른 지평선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
불루마운틴(Blue Mt.)이래요.
해발 1,000m 전후의 높은 산이 줄줄이 이어진 불루산맥이 수평선 같은 지평선을 이루고 남북으로 뻗어 있는데, 그 색깔이 바다보다 더 푸른빛을 띠고 계곡 너머 저 멀리 보이는 곳이 불루마운틴(Blue Mt.)이었다.
움푹움푹 패인 깊은 계곡은 하류 지역에서 깊은 계곡을 이루어 포트 '잭슨만(灣)''과 '보터니 만(灣)' '등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그랜드캐년의 대안 협곡에서 보이는 푸른빛이 감도는데, 웅장하기는 비슷하나, 그 장관은 그랜드캐년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랜드케년(Grand Canyon)은 이름 그대로 협곡의 거창하고 웅장한 아름다움을 말함이고, 불루마운틴은 이름 그대로 마운틴 즉 산의 유칼리나무 잎에서 증발하는 수액이 햇빛과 조화되어 푸른 안개 같은 장엄을 이루는 빛의 세계였다.
저런 환상적인 푸른 빛깔이 일년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 관광객을 이곳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에코우 포인트(Echo Point)'다. 여기서 동틀 녘 해 뜨는 모습은 형언할 수 없는 신비를 느끼게 한다.
그 바로 왼쪽에 세 붉은 바위 봉우리가 '세 자매 봉(The Three Sisters)'인데, 가이드의 입을 빌어 이렇게 그 구슬픈 전설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들 세 자매는요, 아버지와 이 에코우 포인트에서 단란하게 살았답니다.
어느 날 식량을 구하러 깊은 산에 들어갔더니 굴이 있어서, 그 안에 들어갔다가 그만 실수로 잠자는 무서운 마왕(魔王)의 잠을 깨우고 말았어요.
마왕은 우리 세 자매를 보자마자 아버지께 우리를 달라고 협박하는 거예요. 당황한 아버지는 가지고 있던 요술 지팡이로 마왕 모르게 세 자매를 바위로 만들어 놓고, 아버지는 새가 되어 허둥지둥 날아가다가, 그만 실수로 요술 지팡이를 깊은 계곡에 빠뜨리고 말았어요. 그래서 우리 세 자매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바위로 서 있게 되었답니다.
보통 날이면 항상 원주민 애버리진(Aborigine)들이 이 나와서, 그들만의 고유한 악기를 연주하며, 관광객들에게 이국적인 풍취를 더하여 준다던데, 웬 일일까 우리가 갈 때는 서운하게도 원주민 애버리진의 참모습을 대할 수가 없었다.
불루마운틴을 더 자세히 보려면 부시 워킹(Bush Walking: 숲 속 산책)을 하는 것이 좋다. 거기에는 적게는 1시간 30분에서 5~6시간 등 여러 가지 코스가 있다.
우리들은 세 자매 봉을 더 가까이서 불루마운틴과 함께 보기 위해서 마련된 세계 제일의 '급경사 궤도 열차(시닉 Railway)'를 탔다. 옛날 광부들을 실어 나르던 기차였다.
기차는 52도가 훨씬 넘는 듯한 경사 길을 거꾸로 쳐 박히듯이 단숨에 내려온다. 열차는 지붕이 있을 뿐 안전장치라고는 양옆에 늘어져 있는 쇠기둥과 밧줄뿐으로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만 우리는 안심하였다. 가이드의 말대로 위험을 책임지고 보상해 줄 수 있는 나라에 우리가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택한 부시 워킹 코스(Bush Walking)는 세 자매 봉 근처의 기암괴석의 절벽을 뒤로하고 나무다리로 이어진 원시림을 보는 워킹이다. 동으로 만든 마차와 석탄 색깔의 까만 마부가 있고, 석탄 박물관에서는 TV를 통하여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주고 있었다.
매년 껍질을 벗어 가면서 자란다는 거목, 나무와 나무가 엉키어 하늘 높이 자라는 부부 나무, 세 나무가 엉킨 첩(妾)나무 등을 지나 삼림욕은 계속되었다. 고사리 하나하나가 야자수보다 더 굵고 더 높았다. 청명한 날인데도 전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너무 무성히 자란 원시림 가운데를 걷고 있기 때문이었다.
올라갈 때의 궤도차는 같은 경사 길이건만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앉고 뒤로 않는 것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이렇게 다른 것인가. 우리가 살아온 길도 이러하리하 생각 된다.
옛날 영국은 죄수들을 미국으로 추방하였다. 죄수에게 드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1776년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미국 대신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새 유형지(流刑地)로 선택하였다.
1788년 1월 11척의 영국 선단(船團)이 7백17명의 살인범, 정치범들과 같은 죄수가 선원들과 함께 1,030명이 이곳에 도착한 이래 1867년까지 16만 명의 유배 죄수가 더 실려 왔다. 생각해 보라. 국외로 추방할 정도의 죄수라면 그 죄질과 형량이 어떠한 사람들인가를.
그러나 조국이 버린 그들에게, 이 새로운 땅은 넓고, 비옥하고, 살기 좋은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 그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우리가 지금 가는 시드니 부근 보터니 만(灣)이었다.
*. 호주의 국기
그 나라의 상징으로 정한 기가 국기(國旗)다. 우리나라 국기가 태극기(太極旗)이듯이 영국의 국기는 '유니온 잭(Union Jack)'이다.
호주나 뉴질랜드의 기가 비슷한 것은 두 나라가 다 영연방 국가이기 때문이라서 푸른 바탕에 왼쪽 위에 유니온 잭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주의 국기에는 유니온 잭 아래에 7개의 뾰족한 뿔대를 가진 큰 별 하나가 더 있다.
7개 뿔대는 호주의 6개 주(州)와 연방 직할시를 나타내고, 오른쪽 중간의 5개의 별은 남십자성(南十字星)으로 남쪽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다. 상선(商船)은 파란 바탕이 아니라 붉은 바탕이었다.
십자성을 아무 데서나 찾지 말자. 남반부 밤하늘에는 십자성(南十字星)이, 북반부 밤하늘에 북극성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국기는 무심히 보면 호주와 같은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별이 남십자성 다섯뿐이다.
이렇게 호주와 뉴질랜드는 같은 나라 같으나 다른 나라요, 다른 나라로 보이나 한국과 일본처럼 비슷한 문화를 갖고 사는 이웃 나라다.
일본과 같이 역사적으로 못된 짓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나쁜 이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사는 가족 같은 이웃 나라이다. 영국을 어머니처럼 모시고 미국을 형처럼 함께 사는 나라들이다.
*. 파도가 구르는 곳/ '본다이 비치(Bondi Beach)'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남쪽나라 해변 가에 왔다.
그 오스트레일리아 해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본다이 비치(Bondi Beach)'에 와 있는 것이다.
푸른 바다 파도를 몰고 오는 시원한 바닷바람 앞에 서면, 구름이 굴러가듯이. 파도가 굴러 왔다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곳을 '본다이(Bondi)'라고 하는 것은 본다리란 말은 원주민 말로 '파도가 구르는 소리'란 뜻이기 때문이다.
본다이 비치는 바람을 막아 주는 섬이나, 언덕 하나 없이 남태평양 바다를 직접 대하고 있어서, 새파란 파도가 철썩이며 이렇게 몰려왔다가 저렇게 물러가고 있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파도가 숨을 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파도가 노래하는 것 같기도 한데, 올 때는 바람처럼 왔다가 물러갈 때는 밀가루보다 더 고운 모래를 밀어 주고 간다.
이런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활처럼 굽어진 경사가 아주 낮은 해안선을 만들며 1km나 이어지고 있다.
하와이 가서 밟고 다니던 모래도, 월남 하롱베이 비치에서 만난 모래도 이렇게 곱지는 못하였다.
은과 금을 곱게 갈아 놓아도 이만 못할 것 같았다. 소월이 살고 싶은 이상향으로 노래하던 마음속의 금모래란 이러하였으리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이 본다이 비치는 세계 최초로 톱리스(Topless)가 시작된 곳이다.
톱리스(Topless)가 무언가. 아담과 이브같이. 여인이 가슴을 들어 내놓고 팬티만 가리고 다닌다는 말이 아닌가.
신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여체(女體)라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아름다운 것이 백인 여인의 몸이라는데, 신이 주신 그대로를 그냥 이 초록빛 바다와 흰 구름과 하얀 모래에 맡겨 두고 자연과 하나 되어 노니는 그 모습은 얼마나 황홀할까. 평범함에 지친 점잖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감격이고 눈요기가 될까.
여기 아니면 어디서 다시 볼 수 있는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일까.
허나 서운하게도 지금은 겨울이고, 비록 여름이라 하더라도 우리와 같은 관광객은 오전에만 다녀가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니, 이 모래 사장에서의 여름날의 노니는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구나.
시드니 서클러 선착장에서 수상 비행기를 타고 20분가량 남쪽으로 가면 팜비치라는 누드 비치가 해안 따라 펼쳐져 있다. 거기서 서양의 선녀 같은 젊은이들이 알몸으로 황금 모래사장에서 배구도 하고 수영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나그네의 마음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한다.
우리 같은 에트랑제가 주의할 때가 있다. 저녁에 바닷가나 공원 근처에서 자동차 지붕 위에 옷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볼 때다. 그것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중이라는 표시라니 사랑을 방해하지 말 지어다..
잔잔한 바람에도 저렇게 심하게 치는 파도는 세계적인 서핑(surfing, 나무 조각으로 파도타기 놀이)의 최적의 조건이 되어, 본다이 비치는 서핑의 메카, 서핑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어 세계 각지의 젊은이를 부르고 있다.
본다이 비치는 여름에는 서핑으로 겨울에는 100m을 훨씬 넘는 수직의 절벽 길 따라 더들리 페이지나 갭팍으로 산책하는 것이 제격이다.
해안선 절벽을 따라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스러지는 파도를 보며, 우리는 '매콰이 등대(Mackuarie Lighthouse)'를 향하고 있다.
100m 수직 절벽 아래 절벽 틈새로 보이는 바다 경치가 너무나도 좋다는 '갭팍(Gap Park, 갈라진 틈으로 보는 공원)'에 이르렀다.
나라가 모든 것을 해결하여 주니 허무해서인가. 이 나라에는 유난히 자살자가 많다나! 기왕 죽을 바에는 아름다운 자연에 몸을 던지자는 것인지, 자살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장소가 바로 갭팍(Gap Park)이 되었다.
그 중간에 커다란 닻이 하나 표지 설명과 함께 서 있다. 1857년에 이 앞 바다에서 침몰한 영국 선박을 기념하는 것이다.
선원 127명 중 1명을 제외한 전원이 풍랑으로 사망하였다 한다.
멀리 보이는 절해고도 같은 곳의 절벽이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이 탈출하던 절벽이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거기서 조금 올라간 곳에 우리가 점심 식사 후에 가기로 되어 있는 시드니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더들리 페이지(Dudley Page)'가 있다.
본다이 비치에서 언덕을 올라 산등성이에 이르면 앞이 확 트인 운동장 같이 널따랗게 펼쳐진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여기가 더들리 페이지(Dudley Page)다.
부자 동네에 있는 이곳은 원래는 개인 소유의 땅이었는데 혼자 시드니의 전경을 보기가 아깝다고 시드니 시에 이를 기부를 하였다. 더들리 페이지(Dudley Page)라는 이름은 기증한 그 부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곳은 우리네 관광객에게는 시드니를 배경하여 촬영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고, 그 지하는 시드니 시의 물을 대는 물탱크로 쓰고 있었다.
*. 세계 3대 미항(美港) 시드니 항(Sydney港) 선상 유람
호주 인구의 1/4인 450만이 사는 시드니는 이 나라 문화 교육, 경제, 산업, 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호주 제1의 도시다.
시드니(Sydney)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며, 호주 개척의 출발점이 되는 곳으로, 이 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인류가 세계에서 가장 늦게 발견된 대륙이라서, 가장 최근에 이룩한 계획도시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 도시보다 더 현대적이고, 더 다양한 도시에서 정열적이고 형식을 싫어하는 여유로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
신의 축복은 기름진 옥토에다 살기 좋은 날씨까지 더하여 주어서, 지금은 7월로 이 나라에서는 한겨울이건만 사람들의 옷차림이 우리나라의 봄 가을과 같다.
어디나 새파랗게 잔디가 자라고 있는, 겨울답지 않은 온화한 겨울을 살 수 있는 나라였다.
이태리의 '나포리 항',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루 항(Rio de Janeiro港)'과 함께 세계3대 미항(美港) 중에 하나인 시드니 항(Sydney港)의 써큘라 부두(Circular Quay)에서 우리는 선상 쿠르즈(유람)를 한다.
배를 기다리는 사이 잠시 항만을 거닐어 보니, 오른쪽에 그 유명한 오페라하우스(Opera House)가 코발트 빛 출렁이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 있는 하버 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배치된 것이,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나발 소리와 북소리가 시선을 빼앗아 보니, 원주민 애버리지니 전통 악기인 나발을 불고 있는데, 관광객 몇이서 흥겹게도 북을 쳐 장단을 맞추고 있다. 거리의 악사였다.
오전에 이곳의 경치를 가장 멋있게 볼 수 있다는 포인트(Macquarie's Point)에서 기념 촬영을 여러 장 하였는데, 지금은 반대쪽에서 그곳을 보고 있다.
잭슨 만(Port Jackson)에 툭 튀어나온 곶(point)에 옛날 유형 식민지 개척시대에 호주의 아버지라고 추앙 받고 있는 주지사 매쿼리의 부인이 살고 있었다.
늘 바다에 나간 남편을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하여 그곳을 '매쿼리 부인의 의자(Lady Macquarie's Chair)''라고도 애칭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선상에 오르니 뷔페식 점심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유람선에서 이곳을 찾아온 세계인들과 온갖 이국 음식을 먹으며, 2시간 동안 유람선에 몸을 싣고 세계인이 동경하는 시드니 하버의 경치에 우리도 그 하나가 되어 있다 생각하니,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고 신기한 일인지를 생각게 한다.
센프란시스코 항에서, 사이공의 메콩 강에서, 이집트의 나일 강에서, 지중해에서 쿠르즈를 하여 보았지만 그곳들보다 몇 배로 더 격을 높게 하여 주는 것은 바로 시드니의 얼굴이라는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 '때문이었다.
시드니 셔쿨라 부두에서 탁 한 눈에 들어오는 베넬롱 포인트 반도 끝자락 자연 암반에 세운 오페라하우스는 하얀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포개 놓은 것 같은 새하얀 지붕이 새파란 하늘과 코발트빛 바다에 어울려 너무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세계 32개국의 232점 공모작 중에서 당선된 건축 건축가 덴마크 요른(jorn utzon)은 잘라 놓은 오렌지 조각에서 힌트를 얻어 설계도를 완성하였다고 한다.
총 공사비만도 1억 200만 달러로 14년간에 걸친 공사로 1975년에 완공되었다.
무엇보다 오페라하우스의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 하얀 지붕이다. 백만 개도 훨씬 넘는 스웨덴 산 세라믹 맞춤 타일로 제작한 것이다.
좌우나 공중 어느 각도로 보아도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직선과 곡선의 조화는, 푸른 하늘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개구름이 살며시 내려와 앉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시드니 인들의 자랑거리자 자존심인 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건축의 세계를 넘어서 조각 경지에 이르렀고, 그 조각에서는 아름다운 가락이 하늘을 향해 울려 퍼지는 듯하다.
내부는 모두 목재로 꾸며져 있는데 방만도 무려 1,000여 개나 되고. 큰 콘서트홀은 수용 인원이 2,700명이나 되며, 1,6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오페라 극장도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건물 제작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너무나 많은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시시드니 시에서 복권을 팔아 건축비에 충당하기로 하였다. 그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된 사람이 8살 먹은 어린이였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 이 불행한 어린이는 그 돈을 노린 유괴범에게 납치가 되어, 피지도 못한 어린 목숨을 8살로 끝맺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다.
유람선은 잠수함 모양의 성채가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곳을 돌아서 시드니의 또 하나의 상징 하버 부리지를 향하고 있다. 이곳이 포트 데니슨 성(城)이다. 이 바다에는 집채만 한 고래가 나타날 정도로 수심이 깊은데다가 세계에서 상어가 가장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라서 1841년까지는 죄질이 나쁜 범죄자를 격리 수용했던 교도소로 이용하였다.
이 성에 수감되면 힘든 노동에 소량의 음식물만을 지급 받아 이시(餓死) 직전까지 가는 죄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섬은 '굶주린 창자'라 고 불려 져서 누구나 이 섬을 두려워하였다.
그 후 크림전쟁 당시에는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여 군 요새로 개조하여 쓰다가 지금은 신기한 곳 찾기를 즐기려 하는 사람들의 가이드 투어인 경우만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그 포트 데니슨 성체를 등지고 하버 부리지를 향하 다보니 센프란시스코 쿠르즈(Bay Cruise)가 생각난다. 금문교(金門橋)를 넘어 알카포네가 투옥되었었던 바다 가운데 있던 중 죄수만 가두어 두었던 감옥 알카트라즈 섬을 돌아보는 투어였다.
시드니 하버는 해안선이 240km나 펼쳐져 있는데, 백사장으로 계속되기도 하지만 육지와 직접 접한 곳에는 해안선 따라 빙 둘러 가며 그림 같은 집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 집들 뒤꼍에는 대개 보트가 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낚싯대만 드리우면 남태평양의 뛰노는 바다 고기를 직접 낚을 수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회(膾)를 탐하는 낚시꾼으로 하여금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배는 오페라하우스가 건너다보고 있는 529m 높이의 하버 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 밑을 통과하고 있다. 하늘에 둥근 호를 그리며 시드니의 남북을 이어주고 있는 이 다리는, 그 모양이 마치 옷걸이 같다 하여 '낡은 옷걸이?(old coaphan)라는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8차선 차도와 두 전철 선로, 자전거 전용도로와 인도로 구성되어 있는 폭 48.8m의 이 다리는 폭으로는 세계 최대, 길이로는 세계 2번째로, 1920년에 몰아친 공항의 타개책으로 호주가 국력을 기울여 장장 9년 만에 완성된 다리다.
공사 당시에는 시간 당 1,000대의 교통량을 생각하고 만든 이 다리가, 지금은 15,000대로 도저히 늘어나는 교통체증을 감당할 길이 없어, 1989년에는 해저터널을 뚫어 교통을 분산시켰다.
이 다리가 녹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팽키 칠을 하는데 그 양만도 자그마치 3만 리들이나 되어 통행세를 받아 이에 충당한다고 한다.
유람선이 이 다리 밑은 지나다 보니 다리 위에 사람이 보인다. 파리론 내부를 통하여 관광객은 10만원(안전 유지비) 가량 돈을 내고 남쪽의 전망대에 오를 수 있는데, 그 조망대에서 한눈에 시드니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경치가 하나하나 그림같이 펼쳐져서 왜, 시드니가 세계3대 미항의 하나인가를 스스로 느끼게 한다고 한다. 그 중에도 밤의 경치는 홍콩과 함께 백만 불의 야경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시드니에서 이틀을 잤다. 한번은 이 투어 여행 첫날 늦게 도착하여서 다음날 구경하고 저녁에 뉴질랜드 남섬을 향하였고, 올 때는 시드니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려고, 오클랜드에서 이곳에 다시 들렸던 것이다.
나는 10일째 투어의 마지막 날 피곤하다는 아내를 졸라 호텔 뒤에 있는 백사장을 캄캄한 밤에 거닐다가 아내를 먼저 호텔에 보내고 호텔에 있는 카페에서 56세라는 호주 운전기사에게 한 잔 사며 밤늦게 시드니의 마지막 여정을 달랬다. 마지막 시드니의 밤을 마시다가 객실로 돌아오면서 취기 속에 자문자답하며 흥얼흥얼 돌아왔다.
--해외여행에서 가장 큰 낭비를 하는 사람이 누군가? 저녁에 일찍 자는 사람.
-가장 속상한 사람은? 물건을 잃어버리고 오는 사람.
-가장 멍청한 사람은? 가이드가 소개하는 곳에 가서 물건 많이 팔아주는 사람.
-가장 손해 보는 사람은? 함께 간 사람과 싸우며 다니는 사람.
-가장 후회할 사람은?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에 가서, 거기 아니면 불가능한 옵션이나 사야 할 물건을 외면하는 사람.
-가장 일행에게 폐를 많이 끼치는 사람은? 여행 중 길 잃어버리거나, 아픈 사람.
불행하게도 내 아내는 여행 떠나기 전날 자전거와 충돌로 인하여 여행 내내 아팠고, 나는 세계 여행을 위해 애지중지 모시고 다니던 고가의 망원경을 잃어버리고 왔구나.
송충이의 천국은 소나무
해외 여행길은 찾아오기가 힘들 듯이, 다시 가기는 더욱 어려운 즐거운 낭만의 길이다.
지난 10일 동안, 하루가 새롭게 다가와서는 바삐 흘러가기만 하는 그 추억이 아쉬워서, 달리는 차에서는 차창을 통하여 비디오로, 내려서는 카메라로 기록하며 다녔고, 가이드의 설명은 거의 다 디지털 녹음기에 담아 왔다.
현지에 갈 때마다 그곳에 비치되어 있는 팸플릿을 수집하였고, 가능한 한 그곳의 풍경이 담긴 그림책을 달라를 아끼지 않고 사 왔다. 인생을 두 번 이상 사는 것이 기록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사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그 곳을 3번 이상 여행하는 셈이 된다.
가기 전에는 찾아갈 곳을 연구하느라 도서관보다 편리한 대형 서점을 들락거리다가, 가서는 듣고 보고 기록하고, 다녀와서는 보고들은 것을 열심히 찾아보고 연구하며 이렇게 글로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글쓰기가 끝나면 비디오 편집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개는 벼르다가 다음 여행으로 생략하고 말았지만, 요번 여행에서 술빚을 지고 온대구의 김 사장 부부에게 공항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항에서 헤어질 때 '지금까지 일만(一萬)이 미안하였지만, 귀국하여서는 김 사장 차례요' 하였다.
나는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컴퓨터와 카메라와 비디오와 문학 등에 투자하고 바친 나의 시간과 그 여유를 사랑한다.
세계 5대 주를 다니는 동안, 나만한 장비를 두루 갖추고 다니는 사람을 못 보았대서가 아니라, 그들 세계를 조금이라도 넘볼 수 있기 위하여 적지 않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한 사람이기에 하는 말이다.
지금은 시드니 공항을 떠나서, 흰 구름 아래 호주 대륙을 건너가면서 구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계속 카메라에 담으면서 우리들의 조국 대~한 민국을 향하고 있다.
돌아가면 새벽마다 낚시터에 가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일산 이산포 수로는 하루에도 몇 번 수문(水門)을 열어 한강 물을 받아들이는데도, 더 넓고 깨끗한 한강으로 나지 않고 태어난 그곳에서만 사는 참붕어들처럼, 낯설지 않은 나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 우리는 송충이의 천국이 소나무이듯이, 우리가 태어나서 자란, 거기서 죽어 갈 소나무 우거진 나라, 외국에 가서도 잊지 못하던 우리들 나라 Korea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연어가 고향 찾아 되돌아오듯이
돌아가는 귀국 길, 우리들 나라
그리운
이들의 세상
천국 같은 내 고향
송충이 천국이 소나무이듯이
한국적인 것들은 우리들의 천국
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 속에 있었다.
-귀국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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