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하루
아파트 경비도 나이 많다고 안 써준다는 고교 동기 동창의 숨넘어가는 가난한 전화를 듣고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 구일산 장 구경을 갔었습니다.
궂은 비로 장은 서지 않아서 대폿집을 향하고 있는데 눈이 퀭한, 지팡이로 겨우 겨우 조츰조츰 가는 노인이 있어요. 나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막걸리 한 잔 대접했으면 하던 차라 '막걸리 한 잔 하실 수 있으세요?'하였더니 머리를 크게 끄덕이시기에 모시고 문산 집엘 갔습니다. 일산 시장에서 주로 아주 서민들이 가는 곳이지요.
이가 온통 빠지고 힘이 없는 낮은 목소리에 말하는 이야기의 1/5 정도나 겨우 알아들을 수 있는 90도 훨씬 더 돼 보이는 82세의 노인이었습니다.
일산시장에서 장사하는 큰아들이 3만원 하는 사글세방을 얻어 주어 따로 살면서 아침 저녁은 큰아들 집에 가서 얻어먹고, 점심은 굶고 사는 불쌍한 노인입니다.
돈이 생기면 1,000원 하는 막걸리 한잔으로 점심을 때운다는 노인입니다. 똥을 싼 옷이 따뜻한 체온으로 악취를 풍기는 체중 30kg 정도의 굶어 뼈만 앙상한 노인이었습니다.
그 냄새를 맡고 보니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우리 아버지도 중풍에 치매를 사시다가 밖에 나가시면 길을 잃으시고 파출소에서 연락이 오면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끼고 있던 금반지 등도 다 털린 체 확- 풍겨오던 코를 쏘던 똥 냄새 말입니다. 그래서 대낮에 철문을 안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살던 시절입니다.
이 김노인은 다달이 국가에서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주는 노인수당 1,2000원을 알지도 못하고 있으셔서 그 수속을 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동회에서 3개월마다 36,000원씩 통장에 입금시켜 드리는 것이어서 우선 통장을 개설해야 했지만 주민등록증은 분실하셨답니다. 그걸 간수하고 다닐 정도의 입장도 아니어서 먼저 사진부터 찍어야 했습니다. 실명제에 묶여 사는 은행에서는 증명서 없이는 통장 개설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입니다.
주소도 모르는 분이라서 비를 맞으며 그 느린 노인을 모시고 동회를 두 군데나 더듬어 찾아가서 임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은행을 개설하고 동회에 신청하고-.
한 마리의 물고기는 한끼의 양식이 되지만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은 평생의 양식이란 말처럼, 아무 것도 가진 것도 바랄 것도 없는 노인이 매달 1,2000원을 기다리며 살게 해 드린다는 것은 행복을 나누어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궂은비를 맞으며 거동이 불편한 분을 모시고 다니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걸음이 하도 느려서 앞서 가다 기다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하루가 가더군요,
그러다가 김노인의 아들 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먼발치에서 시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던 큰며느리가 급히 피하더라구요. 그러다 얼굴이 마주치니까 외면해 버리구요.
문산집 주모가 말하던 자식들이 버린 노인이란 말이 생각 나더군요. 병드신 노부모를 모시다보면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불행한 자식들이 되는 경우가 이런 경우지요.
월세 방을 함께 가 보았더니 생각보다는 집이 깨끗하고 자식들의 정성으로 그런대로 세간이 갖추어 있더라구요. 그 청소를 해 드리고 왔습니다.
가난이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난인가와 마주친 하루였습니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가난한 자식에게 얹혀 산다는 것은 목숨이 웬수에요 웬수-.' 하던 옛날에 만났던 노숙자의 말이 귓가에 들리더군요.
그때 그 사람은 자식을 위해 집을 나와 준 사람이고, 얼어죽지 않으려고 맨홀에 들어가 자거나, 밤새도록 걸어다녔다는 60대 초반 사람이었지요.
그 개설 통장에 일 만원을 넣어 드리고, 돈 일만원을 드리고, 한 동안은 잡수실 술을 일만원어치를 사 놓고 오면서 우린 서로 약속을 했습니다.
석 달 후 10월 20일 돈을 찾는 날 영감님 술 2,000원어치 사시는 것 먹으러 문산집에 오겠노라고-.
동회에서 알아보니 그 돈은 처음부터 그 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당신 통장에 넣어 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시더군요.
나의 이 모처럼의 선행이 그 자식에게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처럼 이렇게 따로 산다는 것은 자칫하면 식사 기회를 놓쳐서 굶고 사시는 경우도 많을 것도 같아 할아버지 의견에 따랐지요.
잊고 살던 우리 이웃의 가난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노인에게 술친구가 돼 드리고, 도우미가 되어 드린 어제 하루는 나에게는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 수필* (隨筆)☎'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석(壽石) (0) | 2013.02.14 |
---|---|
귀한 선물 (0) | 2013.02.06 |
아빠, ‘국립공원 산행 Photo 에세이’ 발간을 축하해요 (0) | 2013.01.19 |
섣달 이야기 (0) | 2013.01.09 |
웃으면서 삽시다.나의 2012년 (0) | 2012.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