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an의 세계여행(1)

네팔 투어

ilman 2007. 4. 3. 19:58
<2007. 2. 23~25/카투만두- 포카라-룸비니/ 보물섬 투어 따라 11명/가이드: 네팔인 Maendra Thapa >

*. 나마스데(namaste) 네팔!
  인도와 네팔(Nepal)은 감히 가볼 생각조차 못하던 멀고 먼 나라를 지금 나는 가고 있다.
 꿈 속을 날아가는 것만 같다.
그러나, 고교 은사이기도 한 김찬삼 선생님의 '세계여행'이나 스승의 작품인 배영출판사의 '세계여행기' 전질을 내가 갖고 있는 것이나, 인도 네팔의 CD까지 몇 개 녹화하여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네팔 수도 카투만드Kathmandu)까지 직행하는 대한항공 편으로는 인천공항에서 8시간 거리라지만 그보다 값싼 인디아나 비행기로 가다 보니 홍콩(항공기에서 1시간 체류)을 거치는 바람에 1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인도의 델리(Delh)i에 밤에 도착하였고 오늘 다시 1시간 45분을 날라 비행기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왔다.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여행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팔인들은 만나거나 헤어질 때 인사말로 기도나 합장하듯이 두 손을 턱 아래쪽에 모으고 '나마스데(namaste)!'라고 한다. '저의 신이 당신의 신께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뜻으로, 좀더 정중하게 말하려면 '나마스카르(namaskar)'라고 하는데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의 굴절어)에서 파생된 말이다.
  ‘나마스데(namaste) 네팔!’
 드디어 나도 내륙국 네팔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 네팔이란 나라
 -
  네팔은 북으로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 남으로는 인도 사이에 위치한 동서로 길쭉한 북고남저(北高南底)로, 한반도의 2/3인  147,181㎢ 넓이의 나라다.  에베르트산(8,848m), 안나푸르나(8,075m)를 위시해서 세계 10대 고봉 중에 8,000m 이상 고봉이 8이나 되고 7,650m 이상이 넘는 산 봉우리가 50개가 넘게 있는 세계의 지붕으로 산악인들의 꿈꾸는 동경의 나라다.
  룸비니에서 석가모니가 태어난 나라. 이 세계 유일의 힌두교의 나라로 국민소득 1047.7$로 가난한 2,900만여 명이 사는 나라다. 세계에서 사각형이 아닌 세모인 오직 하나의 국기를 가진 네팔은 한 마디로 현대에서 과거를 사는 나라인 네팔 왕국(Kingdom of Nepal)이다.
 네팔인의 평균 수명은 73.0세의 방글라데시처럼 낮은 70.9세 내외이지만 내가 갈 때의 통계에 의하면 100명 중 1년 안에 11명의 아기들이 사망하는 나라였다. 
카트만두 트리부빈(Tribuvan) 국제공항에서의 입국 수속은 인도를 거쳐 와서 그러한가 여권 도장만 찍는 것으로 통과하였다. 네팔과 한국의 시차는 -3시간 15분으로 시계 바늘을 반대로 돌려야 했다.

*. 수도 카트만두(Kathmandu)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Kathmandu)는 5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해발 1,400m의 분지에 있는 도시다.
우리나라 서울의 1 /2.7인 230㎢ 면적에서 인구 350만여 명이 현대에서 과거를 살고 있는 나라다.
 카트만두(Kathmandu)는  카트(Kath)는 '나무', 만두(mandu)는 '집'이란 뜻으로,  나무로 지은 집이란 뜻이다.  그 카트만두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 옛날 이 카트만두 계곡에는 푸른 호수가 있었다. 어느 날 석가 이전에 출현하여 세 번 설법에 34만 8천 제자를 제도 하였다는 7불 중에 첫째 불인 비바시불 (毘婆尸佛)이 이곳에 내려와서 이곳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명상하며 지낼 때였다.
호수 속에 연꽃 씨앗을 뿌렸더니 6개월 뒤 이 연꽃은 계곡을 가득 메워 찬란하게 피어 있었다. 멀리 티베트에서 이를 본 문수보살이 나가르 코트(Nagarkot) 언덕 위에 와서 사흘 밤낮을 명상하다가 내려와서 초바르(Chobor) 계곡을 '지혜의 칼'로 산허리를 내리치니까 호수 물이 빠지면서 현재의 카트만두 분지가 만들어졌다. 그 뒤 연꽃이 있던 스엠브 언덕 위에 문수보살이 사원을 지었다고 전하여 온다.


  우리들은 그 사원의 385개의 계단의 그 양쪽의 불상과 사자·코끼리 등을 새긴 조각상을 보며 사원에 올랐다.
스엠브나트(Swayambnath)는 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으로 '스와얌부나트(Swayambnath)'란 말은 "스스로 존재함(Self-existent)"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약 2,000년 전 석가모니가 카필라성을 떠나 명상 처를 찾다가 들린 곳이라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보우더나트는 반구형 기단의 크기만 36m에 이르는 남아시아의 가장 큰 스투파(탑) 중 하나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지어은 사원이다.

이곳은 티베트가 중국의 한 자치구로 병합 되던 1950년대 티베트에서 집단으로 넘어온 망명자들의 거주지로 오늘날에는 네팔 속의 작은 티베트가 되었다.

*. 네팔 최고의 탑 '스와얌 보드나트 사원(Swayamb Bodhnath)'
  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이라는 보드나트 사원 앞에 서면 웅장한 탑의 규모에도 놀라게 되지만, 탑이 시작되는 돔 위의 '지혜의 눈'과 양미간 사이 제3의 눈은 고졸(古拙) 같이 서툴러 보이나 예스러워 보이는 그 눈이 우리들에게 무언가 생각하게 한다. 
 이 탑은 네팔에서 가장 높은 수투파[사리탑]로 5세기 경에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축조되었다는 탑으로 높이가 38m에 4개의 방형(方形) 기단 부의 높이만도 36m에 이르는 탑이 보드네트(Bodhnath) 사원이다.
'Bodh'란 '깨달음', 'Nath'는 '사찰'이란 뜻이라서 사원 이름을 '보드나트(Bodhnath)'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스투파의 구성은 흰색 반구체의 도금된 사면체 기단 위에 두 눈과 코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원추형의 덮개가 놓여있다. 도금된 사면체에 그려진 '제3의 눈'은 인간의 마음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표시한 것이고, 물음표처럼 보이는 코는 '1'이란 숫자를 형상화시켜 놓은 것으로 극락과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오직 하나로써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위로 시작되는 도금된 13층의 원추형 탑은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13 단계를 뜻한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도금된 천국을 상징하는 종이 있다.
이 탑에 얽힌 전설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하여 오는 데 다음은 그중에 한 이야기다.


 -한 여인이 왕에게 스투파(
寺院)를 지을 땅을 기부할 것을 요청했다. 그녀는 버펄로(물소)의 피부 한 조각만큼의 땅을 요청했고, 왕이 흔쾌히 수락하자 버펄로의 피부를 최대한 길게 잘라 그 끝을 잡고 큰 원을 그려 그만큼의 땅을 달라고 했다.
신하들은 극구 그 땅을 주는 것을 만류하였으나 왕은 "한번 허락된 것은 철회할 수 없다.(Jarung Kashor)"라고 하며 그 땅을 전부 여인에게 주었다. 그 땅 위에 지어진 사원이 보우더나트라 한다.

 
  이 탑을 돌 때는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데, 이 수투파를 한 바퀴를 돌면 불경을 1천 번 읽은 것만큼의 큰 공덕 쌓는 것과 같다고 한다. 


*. 살아 있는 처녀 신을 모신 쿠마리(Raj Kumari) 사원
  더르바르 광장에서 남쪽 끝에 목조로 된 사원이 있다. 하나의 나무로 만든 목조 조각으로 이루어진 창틀의 기술이 고풍스럽게 매우 뛰어난데 여기는 라즈 쿠마리(Raj Kumari)가 살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쿠마리(Raj Kumari)는 힌두교의 처녀 신 '쿠마리의 화신(化神)'을 말한다.
  학벌이나 외모보다는 신성함을 중시하여 명문가의 어린 소녀 중에서 선출 된 쿠마리는 살아있는 신으로 모든 이들의 숭배를 받는다. 평소에는 외부 출입을 할 수 없지만 1년에 7번 있는 종교의식 때에는 사원 밖으로 나올 수 있고 특히 9월의 인드라 축제 때는 국왕도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영광스러운 존재다.
그러나 라즈 쿠마리가 첫 생리를 하면 신의 저주를 받은 것으로 보고 그 자리를 물려주고 대개는 불행한 운명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들의 가이드의 말로는 자기가 부르면 창문을 통하여 얼굴을 보여 준다고 몇 달러를 준비하라고 하는데 오늘은 기도 중이라 그게 안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모은 돈은 그들의 운영자금으로 쓰이게 된다고 한다.
 저녁에 우리는 교포가 운영하는 '서울 아리랑 하우스'에서 엊저녁에 이어 된장국으로 식사를 하였다.
내일 새벽에는 일출의 명소라는 나가르 코트 (Nagarkot) 로 갈 일정이다.

*. 나가르코트(Nagarkot)의 일출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35km 거리에 문수보살 전설과 관계있는 나가르코트(Nagarkot)는 해발 2,190m로 우리나라 한라산(1,950m)보다 240m나 높은 곳이다. 이곳에 와서 떠오르는 태양에 붉게 물드는 아침노을 속의 에베레스트를 보려고 우리들은 4시 30분에 일어나서 서둘러 왔는데 허무하게도 안개뿐이다.
 좋은 날씨가 우리를 맞았다면 붉은 아침놀에 비친 설산 광탑주칼 산과 서쪽에 있다는 머나슬루와 안네 푸르네의 위용을 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그런 복이 없었다.
 태국에서 온 가족 일행 중 70이 넘은 노파가 휠체어까지 타고 왔는데 그분들도 허탕이다. 대신에 유난히 큰 일출을 마음에 담아가지고 '내일 사랑코트에서나 보지-.' 하고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호텔에 돌아와서 아침 식사 후에 시바신을 모시는 파슈파티나트라는 힌두사원을 간다.

*.파슈파티나트(Pashunath)의 가트(Ghat)
  카트만두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져 흐르는 바그마티(Baghmati) 강을 따라 좌우로 상점이 즐비한 곳을 지나는데 매캐한 냄새가 있어 기분을 이상하게 만든다. 시신을 태우는 연기요, 냄새였다.
 '아아! 그래서 가이드가 아까 마스크를 준비하라고 한 것이었구나.'
여기가 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聖地)로 인도대륙에 있는 힌두교 4대 성지중에 하나다. 
 
히말라야에 사는 시바(Shiva) 신은 숲을 너무 좋아하여서 금뿔이 있는 사슴 '파슈 파티(Pashpatinath)'로 변신해 놀던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사슴이 산다는 뜻의 '미르가스털리'라고도 한다. 477년에 처음으로 세워 시바신(Shiva神)에게 헌납한 사원이다. 
'파슈파티(Pashpatinath)'란 '괴수의 왕'이란 뜻으로 시바(Siva) 신이 변신한 여러 이름 중 하다.
'파슈(Pashu)'는 '생명체', 파티(Path)는 '존엄한 존재'라는 뜻이다.
  우리가 자주 보고 앞으로도 듣게 될 시바신(Shiva)이란 인도교[힌두교]의 '파괴의 신'으로 일면(一面) 또는 다섯 얼굴(五面)에 몸에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목에 코부라를 감고 한 손에 창을 들고 과거, 현재, 미래를 투시하는 세 눈을 가진 신을 말한다.
위 그림의 둥근 것은 가족들이 제물을 차리고 행사를 하는 곳이요. 강을 따라 우측에 신단들이 많았다.
바그마티 강 건너가 시신을 화장하는 곳인데 지금 두 구의 시체를 화장하는 중이다. 화장이 끝난 곳에서는 무심하게도 불탄 재와 그 시신의 뼈를 강에다 그대로 쓸어 넣고 있다.
그 바로 위에서는 젊은이 둘이서 주낙으로 낚시를 하고 있다. 죽은 자의 불탄 살과 뼈를 먹고 자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는 모양이다.
  여기가 아르여가트로 다리를 중심으로 아래 4개의 서민들의 화장터(Gath)이고, 그 위 2개가 옛날부터 왕족이나 귀인들의 가트(Ghat)인 모양인지 그 부근이 '파슈파티(Pashpatinath) 사원이지만 힌두교인만이 출입을 할 수 있어 우리는 강건너편에서 겉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 옆에는 시바신을 모신 11개의 신단이 있고 그 속에 시버 신의 상징인 링거(둥근 남근  모양)를 모시고 있다.
그 앞에  얼굴에 여러 가지 색칠을 한 수도자 세 사두가 앉아 있는데  사진을 찍으면 세 사람에게 똑같이 돈을 주어야 한다고 가이드가 귀뜸한다.  
  바그마티(Baghmati)강은 갠지스 강의 상류에 있다. 독실한 네팔 힌두교인들은 바그마티 강에서 몸을 씻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고, 이곳을 찾아와 죽음을 맞이한 후  이 파슈파티나트(Pashunath)의 가트(Ghat)에서 화장되는 것을 커다란 행복으로 여긴다. 
  돌아오는 길에 눈길 한 번에 저승까지라도 따라온다는 해금 같은 전통 악기 장수를 만나 30불을 호가 하는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피리를 2불 주고 사오면서 후회를 하였다. '마지막 3불을 달라고 그렇게 소원하던데 흥정이 끝나고 1$을 더 주고 올 걸' 하고-. 그때는 만약을 위해서 몸에 깊이 넣은 달러가 든 지갑을 길을 가며 꺼내는 것이 버거워서였다.

*. 안나푸르나로의 등산과 트레킹의 출발점 포칼라(Pokhara)
  포칼라(Pokhara)행 2시 20분 국내선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기다리다가 오후 5시에서야 비행기에 올라 카트만두 북서쪽으로 약 200Km를 25분간 날아서 네팔 제2의 도시 포칼라를 향하였다. 안나푸르나로의 등산과 트레킹의 출발점인 해발 900m나 되는 포칼라다.
포칼라(Pokhara) 라는 말은 '호수'란 뜻의 네팔어 '포카리'에서 유래한 말이다.
  비행기는 대중버스 크기로 16인승으로 스투디어스는 복장도 양장한 시골 아주머니 스타일이었다.
 날씨가 흐려서인가 비행 중 몇 번인가 2~3m를 뚝뚝 아래로 떨어진다.
그 순간마다 우리는 '이젠 죽었구나!' 하는 공포감에 휩쓸리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비행기의 짐은 짐꾼이 비행기에서 손수레로 나르고 수하물도 자동이 아닌 손수 날라 분배하여 주었다.
세상에서 제일 넘기 어려운 가난이란 고개를 넘지 못한 당시 국민소득이 400 달라 이내의 나라 네팔이기 때문이다. 
공항 화장실에는 휴지도 없었고, 문짝에는 낙서가 어지러워서 옛날 한국의 지방 초라한 시외버스장의 화장실을 보는 기분이었다.
  밖에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호텔에 이르자 지붕에 갑자기 커다란 굉음이 일기 시작하더니 천지가 개벽하듯이 요란하다. 나가 보니 밤톨만한 우박이 내리고 있다. 몸이 오싹해 진다. 만약 30분 전에 이 우박이 내려서 비행기에 맞았다면 우리는 오전에 본 파슈파티나트(Pashunath)의 가트(Ghat)에서 불태워지는 시신의 신세가 될 번했다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감과 함께 안도감이 엄습해 온다.
  옛날 학창시절 애국조회 때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하며 부르던 그 애국가의 노랫말처럼 하느님이 보우하여 주신 것  같다.
 
 폐와(Fewa)호수는 시내의 약 5km 지점에 있는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서 만들어진 호수다.
나그네가 복이 있다면 폐와호수 위를 보트를 타고 유람하면서 눈 덮인 히말라야를 관람할 수 있는 천혜의 장소라지만, 여기 역시 안개가 가리어서 호수 한가운데의 힌두사원인 바라비 사원만을 돌아서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폐와호(Fewa湖) 주변의 데비(Devil) 폭포, 마헨드라구파(Mahendra Gupha) 동굴을 둘러보고 오늘 일정을 마감한다.
내일은 사랑코트에서의 일출 속에 안나푸르나를 보는 것이렷다.
*. 사랑코트(Sarangkot)에서의 마차푸차레(Machapuchare)의 위용
  우리는 나가르코트(Nagarkot)에서 보지 못한 일출 속의 설산 히말라야 산이 보고 싶어 5시 30분에 일어나서 부지런을 떨며 30분 차를 타고 '폐와(Fewa)호수' 북쪽에 있는 일출의 명소인 해발 1,592m의 사랑코트에 왔다.
'사랑코트'는 우리의 가이드 네팔인 마핸드라 타파(Maendra Thapa)의 고향이기도 하여 그의 부모와 누이로부터 네팔 고유의 차 '짜이(Chai)'의 맛을 볼 수가 있었다.
추운 새벽에 정성껏 끓여온 따뜻한 짜이를 마시며 세계인들과 함께 일출 속에 안나푸르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오른 쪽으로 저 멀리 가파른 곳에 일구어 놓은 계단밭이 이곳 산지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러나 오늘도 일출로 붉게 물든 설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아아, 저 안개가 걷히더니 희미하게 나마 마차푸차레(Machapuchare)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일찍이 산을 좋아하여 수없는 산을 오르내리며 살아왔다. 이 인도, 네팔 여행을 일주일 앞두고도 설산 덕유산의 설화(雪花)가 보고 싶어 백련사에서 남덕유 영각사까지 30km 능선을 몸을 가눌 수 없는 강풍 경보 속에 단독 종주를 한 사람이지만 이렇게 멋진 산을 보기는 처음이다.
이 마차푸차레(Machapuchare)는 네팔인들이 신성시 하는 산이기 때문에 입산 금지여서 지금까지 이 산 정상을 정복한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힌두교 신화에 의하면 소녀와 물고기의 여신인 마타샤 깐야(Matasya Kanya)가 이 산의 꼭대기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마차푸차레라고 하는 것은 산봉우리가 1마일 간격으로 두 개로 갈라져 있는 모습이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하고 있어서, 네팔어로 '마차(Macha, 물고기)', '푸차레(Puchare, 꼬리)''라는 뜻으로 마차푸차레(Machapuchare)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산을 'Fish Tail'이라고도 한다.

히말라야에는 8,000m 이상 되는 산이 14좌나 있지만 마차푸차레의 멋진 위용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곳이 우리가 지금 온 사랑코트(Sarangkot)라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Lumbini, 藍毘尼)
  카트만두부터 모든 관광지로의 이동은 남녀 따로 따로 나누어서 2대의 찝차를 이용하였다.
가이드는 찝을 이용하여야 빠르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네팔은 인건비가 싸서 버스보다 2대의 찝차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한 차에 각각 6명이 타고 갔는데 가장 편한 앞자리는 가이드 차지여서 둘만이 앉는 뒷자리가 널찍한 상석이었는데 서로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우리 일행들은 보이지 않는 자리다툼을 하였다.
 나는 일찍이 이를 포기하고 모두가 꺼리는 나뿐 중간 가운데 자리를 사진을 찍겠다는 핑계로 자청하였지만 속은 편하지 아니하였다. 그 가운데 자리는 머리 받침도 없어서 퍽이나 힘들었다.
그런 자리에서 해발 1,500m의 사랑코트에서부터 구절양장의 2차선의 좁은 비포장의 내리막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좌측으로 또는 우측으로 쏠릴 때마다 몸을 가누어야 하였다. 
좌측으로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요, 길이 돌아가는 길에도 밀러 설치가 전혀 없어서 경적을 울리며 하는 네팔 인도인 특유의 난폭한 운전은 목숨을 건 긴 여행이었다. 차멀미를 하지 않는 나도 얼굴이 노랗게 되는 것이 토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룸비니까지 230km를 8시간이나 시달려야 했다.
식사는 인도 네팔 현지식이 향료가 많아 애로가 있다고 요리사가 동행하였지만 몇 가지 밑반찬에다가 고국에서 가져간 辛나면에 밥을 말아먹는 부실한 것이었다. 부처님의 탄생지를 찾아가는 고된 고행 같은 그런 여행을 우리는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고 있는 룸비니는 한자음으로 남비니(藍毘尼)라고 하는 네팔 남부 테라이 지방에 있는 한적한 한 마을로 석가모니가 태어난 곳이다.
  
옛날에는 이곳이 석가 탄생지임을 모르고 지내다가 1896년에 커닝암에 의해 석주(石柱)가 발견됨으로 확인 된 것이다. 이 석주는 이곳을 순례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B.C 250년 인도 황제 아소카(Asoka)왕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그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서 전하여 온다.

-이 곳에서 석가족의 성자 불타(佛陀)가 탄생한 것에 연유해서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또한 생산의 8분의 1만을 납입한다
.

이러한 법칙(法勅)이 석주에 새겨져 있어 불교의 4대 성지 중의 하나인 석가 탄생지임이 확인 된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涅槃)에 오를 때 제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난다야 내가 입멸한 뒤 너희 모두가 네 가지 것을 생각할 것이다. 첫째는 여래가 태어난 룸비니이며, 둘째는 여래가 성도한 부다가야이며, 셋째는 여래가 법륜을 굴려 최초 설법한 사르나트이며, 넷째는 여래가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이다.
너희는 이곳을 생각하며 여래를 기억할 것이며, 가르침을 되새길 것이다. 또 네 곳에 모여 탑과 절을 짓고 예경할 것이다.”(『열반경』‘촉루품’)


우리는 이번 여행에 위 불교의 4대성지 중에 석가가 태어난 룸비니Lumbini)를 오늘 보고, 내일은 석가가 처음 설법한 바라나시에 있는 사르나트(鹿野苑)를 보러 간다.

  녹야원 룸비니 매표소에서도 카메라 촬영 티켓을 2불이나 내고 들어서니 붉은 벽돌집이 마야데비(Maya Devi) 사원이다.
그 안에는 부처가 태어났다는 곳이 있고, 석가의 생모 마야 데뷔가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석상이 있다는데 가이드가 그냥 지나쳐서 아깝게 모르고 지나치고 말았다.
 건물 밖 뒤로 가보니 7.2m되는  석주(石柱)가 서 있다. 이것이 저 유명하다는 '아소카왕 석주'라는데 그 위에 있던 탑의 상단부가 벼락을 맞아 파괴되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 앞에서는 법회가 열렸는지 많은 신도를 모시고 스님이 설법을 하고 있다.
  마야데비 사원 서쪽으로 가니 성스러운 연못 푸스카니가 있다. 여기가 바로 마야 부인이 석가모니를 낳기 바로 직전 목욕을 한 곳이요, 석가모니를 낳고 처음으로 몸을 씻긴 곳이라 한다.
  그 주변에 커다란 보리수가 몇 구루 서 있다. 부처 탄생이 2,300여 년 전의 일이니 옛날 보리수의 후손 보리수 나무인 것 같다. 
 이 룸비니에서 석가족의 도읍 카필라바스투의 유적이 약 16km 서쪽에 있으니 불교의 발생지가 룸비니란 말이 실감난다.
우리는 여기서 네팔의 여행을 마치고 내일은 국경을 넘어 인도로 간다.

투어여행의 장점은 저렴한 비용으로 잘 보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지만 우리끼리 몰려다니며 하는 여행이라서 현지인들의 생활과 풍습을 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후답자를 위해서 다음은 각종 서적과 인터넷 등 각종 자료를 찾아 마련한 자료다.


*. 카스트(Castre) 제도에 묶여 사는 사람들
  1963년에 폐지되었다지만 지금도 그 저변에 존재하는 네팔에는 세습적으로 네 계급의 카스트(Castre)가 존재한다.
성직자 계급인 브라흐마, 귀족과 무사 계급인 체트라(지배자, 무인), 평민 바이샤(Vaisya:상인, 농부, 장인), 노예 계급 슈트라(Sutra:재봉사, 구두장이, 대장장이)다.
네팔 사람들은 힌두교의 '마누의 법전'에 의하여 운명적으로 이 네 계급에 속하여 태어난다. 네팔인들은 그 이름만 보아도 그 계급과 직업이 구별된다.
성직자 디칼(Dhikal)은 브라만, 카르키(Karki)는 체트리, 키마(Kami)는 대장장이 성(姓), 그왈라(Gwala)는 가축을 돌보는 사람들, 하잠(Hajam)은 이발사, 할코르(Halkhor)는 공동화장실 청소하는 이, 돔(Dom)과 두사Dusahad)는 시체를 처리하거나 화장용 장작더미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 여성들의 지옥 네팔
  아들의 출생은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네팔인들은 아들 선호 사상이 어느 나라보다 깊다. 
아들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늙은 부모를 봉양하며, 가장 중요한 장례식 책임을 맡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 모든 면에서 아들은 우선 순위가 되며, 교육의 기회도 딸에 앞선다. 
학교를 다니는 가정은 극히 드문데 '남의 나무에 왜 물을 주냐?'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다.
여성에게는 무엇보다 순결이 최대한 강조된다. 순결을 잃었거나, 25세가 넘어도 결혼을 못하였거나, 이혼녀나 과부는 불결한 사람으로 그런 여인이 있는 가정은 내세에도 불리한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믿는 나라다.
여인이 지위 향상을 하는 길은 결혼하여 오직 아들을 낳는 길뿐이다.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여인이 가운데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끼는 것처럼, 결혼한 네팔 여인은 미간에 신두르(Sindoor)라는 붉은 점을 찍는다. 작은 구술로 만든 목거리나 팔찌 포테(Pote)도 기혼 여성임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부는 신두르(Sindoor)도 찍을 수 없고, 그 어떤 장신구도 착용할 수 없다. 무늬 없는 흰 옷을 걸쳐야 할 뿐만 아니라 가족 모임이나 각종 행사에 참가할 수 없는 나라다. 과부는 타인에게 불운과 저주를 내리는 재수 없는 여자라고 여기는 관습 때문이다.
이혼 시에도 위자료가 없는 것은 물론 재산 상속도 아들에게만 하기 때문에 이혼녀는 아들과 함께 가난을 살아야 하는 여성에게는 지옥 같은 나라다.
여성공화국 Korea에서 아내 잔소리에 시달리는 분네여. 네팔을 가자. 그리고 거기서 남자다운 대접을 받으며 살자, 그게 좋다면 네팔에서 계속 눌러 사시라.

*. 네팔 사람들의 금기(禁忌)
  -머리는 인간 몸 중에서 가장 신성하므로 아무리 귀여운 어린 아이라도 머리를 함부로 쓰다듬거나 툭툭 치면 안 된다. 함부로 모자를 벗겨서는 큰일 나는 나라다.
  -우리는 머리로 싫고 좋음을 표현한다. 싫을 때는 옆으로 흔들고, 좋을 때는 상하로 끄덕인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싫은 것이 더 많은 세상이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정반대인 곳이 네팔이다. 네팔에 가서 좋으면 머리를 옆으로 흔들 일이다.
  -발은 네팔 인들이 가장 불결하다고 여기는 신체의 한 부분이다. 발로 타인의 신체를 건드리거나 밟거나 발로 음식물이나 사물 집기를 건드리면 안 되는 나라가 네팔이다, 네팔 인을 만나거든 뒤에서라도 사람을 향하여 발을 벋지 말라. 그리고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되 신발의 방향이 불상이나 기도문 쪽을 향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왼 손을 불결의 상징이다. 화장실에서는 왼손으로, 음식이나 돈은 꼭 오른 손을 사용하자.
  -선물을 면전에서 뜯어보고 확인하는 것은 실례가 되는 행위다.
 -네팔인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남녀의 애정표현을 용인하지 않는다.
  -식사 도중에 고춧가루를 권하는 것은 금물이다.
  -생선과 우유를 함께 먹거나, 고기와 우유를 함께 먹어도 안 된다.
  -힌두교도들은 술은 물론 소는 부(富)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고기를 안 먹는다.
 -닭고기 오리고기 버섯, 양파, 부추, 토마토, 달걀 따위도 안 먹는 계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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