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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명산(虎鳴山, 경기 가평 청평 632m)

ilman 2007. 2. 11. 11:27
호명산(虎鳴山, 632m) 산행 Photo 에세이 
(2006. 12. 5/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하천리 우무내- 대성사-1.8km/1:10-정상-3.3km/2:10- 장자터고개-1.8km/1:10- 감로사- 대성사입구/ 일산 한뫼산악회 따라)
*. 호랑이 이야기
국토의 70%나 되는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이어서 옛날에는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우리 민족이 제일 두려워 하던 것이 호랑이었고, 이는 산악신앙과 연관되어서 호랑이를 산신으로 모시는 신앙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단군 전설에는 곰보다 더 무서운 순치할 수 없는 동물이 호랑이요, 풍수지리설에서는 서방을 지켜 주는 방위신으로 우백호(右白虎)가 되고, 땅을 지켜주는 12지신의 하나로 호랑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호질(虎叱)'에서는 위선적인 양반을 꾸짖기도 하는데, 지은이 미상의 다음 시조에서는 나쁜 놈들을 모아다가 호랑이 먹이로 주어야 한다고까지 저주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는 호랑이가 제일 무서운 존재였다.


                                 세상의 험궂은 사람 모아 내어 범 주고저
                                      범 아니 먹거든 불에나 넣어 두고 
                                 그제야 임 향한 情을 다 펴 볼가 하노라.
                                                                        -무명씨


  그런가 하면 소녀로 변신한 호랑이가 탑돌이 하다가 김현과 혼인하는 '김현감호(金俔感虎)'의 설화도 전하여 온다. 이는 동물과 인간의 Sex이니 이야기 자체가 어찌보면 호탕하기 그지 없다.
  정조 때 학자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범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범은 착하고 성스럽고, 문채롭고도 싸움 잘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엉큼스럽고도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 없다. 
  그런 호랑이의 각 부위는 자고로 만병통치약으로도 널리 알려져 왔다.
-호랑이의 뼈는 풍병의 치료제요, 눈은 마음이 산란한 환자에게 특효약이다. 호랑이의 코는 미친 병의 치료와 어린이의 경풍에 좋다고 하며, 이빨은 매독이나 종기의 부스럼에 쓰이고, 오줌은 쇠붙이를 삼겼을 때 사용하면 특효약이 된다는 등등-.

*. 호명산(虎鳴山) 가는 길
  이 호명산은 청량리 역에서 청평역까지 기차를 이용하여 올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산악회 버스로 호명산의 들머리인 가평군 외서면 청평 하천리 우무내에 도착하니 9시 30분, 새로 개통한 외각순환도로를 타고와서 일산서 1시간 30분밖에 안 걸렸다.
세모의 달 12월은 각종 행사가 집중 되어 있는데다가 각종 모임에다가 망년회까지 겹쳐서 '아무래도 오늘 가는 호명산(虎鳴山)이 이 해의 마지막 등산인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름을 호명산이라 하였을까?
글자 뜻대로라면 범 '虎' (호), 울 '鳴'(명)으로 '범이 울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면, 옛날에 우리나라에 범이 울며 다니던 곳이 어찌 이곳뿐이겠는가. 무슨 깊은 전설이 더 있을 것 같만 같다.
대성사 가는 길 우측에 절 '卍'(만) 자가 멋있다.
기독교의 상징이 십자가라면 불교의 상징은 '卍'이다. 부처의 동상 가슴을 자세히 살펴 보면 훌륭한 분의 상징인 '卍' 자 모양이 있다. 그래서 '卍'를 가슴 卍(만)자라고 하다가 절의 처마 밑 등에 주로 쓰여 있는 글자여서 절 '卍'(만)이라고도 하지만, 옥편에는 '불서의 일 만 "萬" 자'로 쓰이고 있다.
사찰에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오른쪽으로 세 번 돈다. 오른 쪽으로 도는 것을 '우선(右旋)'이라 하여 불교에서는 신성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卍'자는 오른쪽으로 도는 길상(吉相)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다.

*.호명산(虎鳴山) 전설

  하천리 마을에서 철길 밑으로 난 길을 따라 감천사(甘泉寺) 입간판을 보며 아스팔트 길을 오르기 30분에 갈림길이 나타난다. 좌측으로는 감천사(甘泉寺) 가는 길이고 , 우측은 대성사(大聖寺) 입구다. 등산 안내 입간판 그림 옆에 지붕이 날라가 버리고 기둥만 남은 문이 있다. 무슨 문일까?
우리 일행은 절보다 산을 보러 온 산꾼들이라 벌써 후미까지 꼬리를 감춘 지 오래다. 등산로에 들어섰다가 되돌아서 혼자라도 절을 둘러 보기로 하였다.  '하산할 때 보지- '하고 그냥 지나쳐 오던 속절없는 유야무야 한 약속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호명산은 아기자기한 바위산이 아닌 육산이어서 오늘은 정상까지만 갔다가 원점회귀하여 감로사(甘露寺)를 둘러볼 생각이다.

  대성사에는 맨 위 좌측에 3 층 석탑이 있고 우측에 산신각이 있다. 석탑 아래에 석가모니를 모신 원형 건물이 있다.

그 아래에 유난히 큰 미륵불 입상이 있고 그 앞에는 금강역사가 눈을 부라리고 서 있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비구 스님이 나를 보고 합장을 한다.
다음은 그 법신(法信) 주지스님으로부터 들은 이 산에 얽힌 전설을 녹취한 것이다.

-옛날에 한 스님이 이곳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계곡에서 흐르는 계류 물에 손을 씻고 있었는데, 그 때 수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옆에 와서 앉더래요.
  "이 놈아, 난 네게 줄 먹을거리가 없다, 가라."
그래도 곁을 떠나지 않더래요. 얼마 후 자리를 옮겨 손을 씻고 있는데 그 강아지가 또 따라와서 떠나가지를 않더랍니다.
  "그래, 이렇게 만나는 것이 우리가 서로 인연인가 보다. 같이 지내기로 하자."
그후 이 근처에 움막을 짓고 그 강아지와 함께 살았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아지는 점점 클수록 보통 강아지의 모습이 아니고 범이더래요. 그 범이 자라자 뒷산에 올라가서 늘 울었답니다. 그러면 이 절 근처에 살던 암호랑이가 '으르렁'하고 같이 울다가 그 우는 소리를 찾아 호명산 정상에 있다는 굴로 향하곤 했답니다. 그 굴은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몸을 피하는 곳이었구요. 그로부터 사람들은 이 산 이름을 호랑이가 우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虎鳴山)이라 하였답니다.

-이 대성사(大聖寺)는요, 천태종으로 왕십리에 있는 승가사의 말사입니다. 50여년 전에 노원구 수락산에 있던 스님이 이곳에 창건한 것을 제가 인수하였지요. 저 아래 요사체 2층에는 1,000불을 모셨구요. 저 위에 원형집 당우는 겉으로는 2층이지만 안으로는 1층입니다.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대웅전으로 완성하고, 지금의 저 대웅전은 지장전(地藏殿)으로 모실 생각입니다. 이곳은 여름에 비가 오면 물이 넘치는 골짜기라서 일주문(一柱門) 쪽으로 하수도 시설을 하였지요. 이곳은 골바람이 센 곳이어서 이 절 입구에 있는 지붕없이 기둥만 있는 문은 옛날에는 不二門(불이문)이었는데 지붕이 바람에 날라간 것이구요.
                                                             -法信 대성사 주지스님으로 부터 채록

드디어 호명산 등산길에 들어섰다. 죽죽 벗은 낙엽송길을 지나니 통나무를 통째로 잘라 정성껏 놓은 층계가 하늘로 오르는 것이 천국으로 오르는 사다리 같다.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이런 층계가 네 번이나 계속되는 육산 오름길이었다. 게다가 이정표 하나 없어서 지루하였다.
저 능선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우리 일행은 벌써 정상을 지나 장자터고개길로 향하는 모양이다. 일행이 간 길을 따라 간다면 제일 보고 싶은 것이 575m 봉을 지나 있는 아가리바위쉼터였다.
'아갈바위'란 바위 모양이 호랑이가 아가리(주둥이)를 벌리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이 산 기슭에 '범우리'란 동내가 있는데 이 역시 '범이 운다'는 뜻으로 호명산(虎鳴山) 과 연관되는 동내 이름이다.
통나무로 엮어 만든 두 개의 간이 의자에 이르러 쉬고 있는데 되돌아 오는 우리 일행들이 있다. 정상인지 알고 갔더니 한참 내려가서 다시 정상을 올라야 하는 것 같아서 하산하는 거란다.  
거기서 얼마 가니 주위에 어울리지 않게 큰 낙락장송이 그 가지가 꺾이어 한쪽을 땅에 기대고 있고 거기서 디시 얼마를 더 가니 비로소 정상 400m라는 이정표가 있다.

*. 호명산 정상에서

호명산 정상은 헬기장이기도 하였다. 네모난 정상석이 있고, 삼각점 설명이 삼각점 위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그 건너 등산 안내 지도가 이정표 대신 서 있다.
사방이 툭 터져서 조망이 시원하였지만 정상에서는 오르는 길에서 문득 문득 보이던 청평 댐이나 청평호는 산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북쪽 멀리 산꼭대기 도로 옆에 호수가 있어 산정호수가 아닌가 생각게 하는데 거기 안내 지도 그림을 보니 호명호수(虎鳴湖水)였다.
-호명호수(虎鳴湖水)는 가평8경 중 제 2경으로 1979년에 해발 550m 산상 4,500평 대지에 조성한 국내 최초로 만든 양수전용저수지다.
양수발전소란 무엇인가.
심야에 남아도는 값싼 전력을 이용하여 하부댐의 물을 상부댐에 양수하여 전력을 많이 쓰는 낮에 그 수력을 이용하여 수력을 발전함으로써 발전 효율을 향상함은 물론 경제적인 전력 계통의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시설이다.
이제야 생각난다. 대성사 법신 스님이 하던 말을-.

-이 절의 뒷산 호명산에 올라가면 권혜경이 노라한 흘러간 노래 '호반의 벤치' 노래 배경이 된 호명호수가 있지요. 나는 시침을 떼고 '그 노래가 어떻게 시작하지요?' 했더니 나직히 읊조린다. 비구니 스님으로부터 황홀하게도 노래 한 곡을 듣게 된 것이다. 

내 님은 누구일까 어디 계실까
무엇을 하는 님일까 만나보고 싶네
신문을 보실까
그림을 그리실까
호반의 벤치로 가봐야겠네.
-호반의 벤치 권혜경


'호반의 벤치'는 내가 총각 시절에 유행하던 노래다. 그 때 그렇게 궁금하던 '내 님은 누구일까?' 하던 나의 님이었던 아내와 만나서 결혼을 한 지도 어연 40여 년에 자식을 낳고 키워서, 조각까지 마추어 막내 손자까지 낳았다. 가만히 한국 평균수명으로 따져서 보니까 살아갈 날이 9년도 안남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님이 누구실까?' 를 노래하면서 판도라의 상자를 가슴에 품고 살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기 짝이 없다.  만해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님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장미의 님은 봄비다.~'하였지만  아까 만난 대성사 법신 스님의 님은 누구였을까?  지금 법신 스님의 님이 석가라면 옛날 형이하학적인 님은 누구였을까? 
하산 약속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지만 뒤늦게 따라가는 것은 앞서간 분들에게 걱정거리가 되는 일이라서 오던 길로 내려가기로 하였다.
세상 살다 보니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이다. 그래서 느긋한 마음으로 하산하면서 점심도 먹고, 준비해 간 행동식도 먹으면서 감로사(甘露寺) 길로 들어섰다.

*.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유명한 감로사(甘露寺)

이 산에 오는 도중 마직이 마을에 있는 '卍기도 도량감로사(甘露寺) 약수터 입구'를 보고 약수터로 유명한 곳이로구나 하며 감로사를 향하는데 호명산 특유의 몽돌 크기의 작은 조각돌로 만든 아스팔트 길로 난 감로사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다 보니 우무내골의 계곡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길은 이름도 멋진 '해탈교'와 '반야교'로 이어지더니 '극락교'를 건너니 드디어 감로사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당우는 스레트 집으로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절 아래 이르니 절 쪽으로 부도와 비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신문기사 스크랩으로 가득 한 게시판이 있다. 감로사는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유명한 절이었다.

*. 소신 공양(燒身供養) 이야기
  절에서는 식사하는 것을 공양이라 하고, 식사 시간을 공양시간이라 한다.
그런데 부모님 공양이란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공양은 불가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불가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불공(佛供), 승려에게 식사 공양하는 것을 반승(飯僧), 부모를 공양하는 것을 부모공(父母供), 스승을 공양하는 것을 사공(師供)이라 한다.
대승불교 보시바라밀(布施婆羅蜜)에 의하면,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에게는 재시(財施),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이에게는 법시(法施), 두려움에 떠는 사람에게는 무외시(無畏施)를 베프는 것이 참된 공양이이라 한다.
이러한 공양 중에 최고의 공양이 소신공양이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이란 자기 몸을 불살라 부처 앞에 바치는 것인데 이 절 스님 충담(沖湛)스님이 소신으로 열반에 든 것이다.
-태고종 원로 스님인 충담(沖湛) 스님이 6월 27일 새벽 경기 가평 감로암에서 몸을 스스로 불 태우는 소신공양을 통해 열반하였다. 조국 통일과 불교 법란 종식 및 한국 불교의 무궁한 발전을 간절히 서원하던 충담 스님은 세수 85세, 법랍 65세로 태고종 총무부장 시성 스님의 아버지이다. 남긴 열반송은 다음과 같다.
"호명산 감로사에 구름과 노닐던/ 이 노승은 본래 서원 성취코자/ 삼보(三寶) 전에 소신공양 올리나니/ 이 인연 공덕으로 부처님의 자비 은혜를 갚고,/ 국태민안하며 불법이 거듭/ 흉륭하기를 기원합니다. 만약 어떤 것이 옳은 것이냐 묻거든/ 모두 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다 하라."
                                             -6. 28일 한국일보 참고




*. 안내 견 진도개
큰스님은 소신공양으로 열반하시고, 감로사의 스님들도 행사로 인하여 산 아래에 나들이를 가신 절에, 안내 견(犬) 흰 진도개와 삽삽개가 나를 충담스님이 발견하였다는 감로각과 미륵불을 안내하더니 절에서 먼 하천리 마을까지 나를 배웅해 준다.
나는 문득 이 진도개를 유심히 살펴 보았다. 이 놈이 혹시 호명산 전설에 나오는 호랑이가 아닌가 하면서-.
 지금은 초라한 감로사 당우들이 든든한 공양주를 만나 재시공양(財施供養) 받기를 기원해 본다.



-'그래 개도 좋고 호랑이도 좋으니 부처님이시여! 충담스님의 꿈이기도한 '호명산 감로사 성역조감도'가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이 ilman이 합장하나이다. 아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