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앙정 송순이 노래하던 추월산(秋月山)
너븐 길 밧기요 긴 하날 아래 두르고 꼬잔 거슨 뫼힌가 屛風인가 그림자 아닌가. 노픈 닷 나즌 닷 긋난 닷 닛난 닷 숨거니 뵈거니 가거니 머물거니 어즈러온 가온데 일흠난 양하야 하날도 젓티 아녀 우뚝웃독이 셧난 거시 秋月山 머리 짓고 龍龜山 夢仙山 佛臺山 魚登山 湧珍山 錦城山이虛空에 버러거든 遠近 蒼崖의 머믄 것도 하도 할샤.
위 글은 송강 정철의 스승인 면앙정 송순이 41세 때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 담양의 제월봉 아래에 면앙정(俛仰亭)을 짓고 문인들과 어울리며 지은 가사 면앙정가(俛仰亭歌)의 한 부분으로 면앙정 주위의 산봉우리 중에 추월산의 모습을 노래한 가사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는 11월 초순 가을 산 추월산(秋月山) 들머리 월계리 주차장에 도착하니 하늘은 맑고 삽상한 바람이 심신을 맑게 하여준다. 10시 20분 월계리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하나의 바위로 된 듯한 거창한 바위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전남 5대산, 담양 10경 추월산(秋月山)
주차장에서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는 동안 이곳저곳을 디카에 담다 보니 저 멀리 우리 일행이 벌써 앞서가고 있다. 곶감 파는 두 할머니에게 곶감을 하나씩 팔아 주며 물으니, 보리암까지는 편도로 40분, 추월산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이란다. 길을 막아서는 최근에 세운 듯한 순절비(殉節碑)는 하산 길에 보기로 하고 5분쯤 올랐을까 쉼터가 있는 해발 198m 지점이 추월산 제1등산로와 제2등산로 갈림길인데, 우리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하나?
제1등산로 보리암 가는 길은 보리봉 정상까지 급경사길로 1.3km/1:30분 급경사길이요, 제2등산로는 1.6km/2:00분 우회 하는 길이다. 망설이다가 제2등산로 길을 택하였다. 추월산은 원점회귀原點回歸) 산행인데다가 추월산과 같은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산행 길에서는 보리암을 보러 가다가 뒤돌아보는 담양호(潭陽湖)보다 ,보리암을 향하면서 하산길 내내 담양호의 멋진 모습을 향하고 싶어서였다. 그보다 좌측 길에 있는 운치 있는 나무다리가 나를 부른 것 같다. 정작 다녀와서 보니 추월산 산행은 제2등산로를 오름길로 하여 제1등산로로 하산하는 것이 제격이었다. 추월산은 전남 5대 명산이자 담양 10경이라는데, 전남 5대산은 무슨 무슨 산일까?
전남에 있는 국립공원으로 지리산(1915m), 월출산7(812.7m), 내장산(763.2m)은 물론 들어갈 것이고, 다음으로 도립공원으로 무등산(1186.8m), 조계산(884.3m), 두륜산(703m), 선운산(444.3m)을 넣어야 할 것 같은데 추월산은 도립공원이 아니라 전남기념물 제4호일뿐이다.
그래도 추월산을 전남 5대산 중에 하나라고 구태여 말한다면 무등산 다음에 추월산을 넣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랬다가는 빠진 곳에 사는 하동이나 해남, 고창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그래 그런지 전남 5대산을 명확하게 말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그러나 고운 우리말 이름 찾기 대회처럼, 산 이름으로 그 품평회를 연다면 추월산(秋月山) 이름을 당할 산이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먼 800리 길을 달려 온 것은 무엇보다 '추월산' 이름 때문이 아닌가.
*. 천인단애 우러르며, 호수를 굽어보며 금년 단풍은 여기도 마찬가지여서 찾아보아야 겨우 단풍이 눈에 뜨일 정도였다. 그래 그런가. 등산객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렇게 수도권에서 살다가 먼 산에 와서 만나는 사람끼리는 고향이 각각이라서 주고받는 인사가 '어디서 오셨습니까?'다. 서울에서, 포항에서, 논산에서, 광주에서 이렇게 각양각지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산이었다. 산길에는 도중 도중에 막돌로 쌓은 원추형 돌탑이 유난히 많았다. 몇 번째 층계를 오르니 거울 같은 담양호의 찬란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거기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산죽 길은 높이 오를수록 담양호의 풍경을 더 넓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나무 사이로는 흰 구름 뜬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멋진 추월산 암벽이 시선을 막는다. 정상 가까이서부터는 우뚝 솟은 회색빛 기암절벽이고 그 절벽 가에 마치 깎아놓은 듯한 길이 열리는데 그런 길을 가다보면 움푹 팬 굴 같은 것이 나타나고 그런 곳에는 예외 없이 의자가 있는 쉼터였다.
*. 왜, 추월산(秋月山)이라 했을까 이 산에서 만난 추월산에 대한 어원 소개는 다음과 같다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이면 산봉우리가 보름달에 맞닿을 정도로 높게 보인다는 의미인데, 담양 쪽에서 보면 바위산 추월산의 능선 모습이 스님이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불산(臥佛山)이라고도 한다. '月桂里'(월계리)이란 이름도 달 속에 있는 계수나무란 이름이니 이 고장은 모두 산과 달과 호수와 연관된 이름이다. 이 고장의 옛 이름이 백제 시대에는 秋子兮郡(추자혜군), 추성군(秋成郡)이다가 고려 때 이후로 담주(潭州)라 한 것을 보면, 이 고장은 가을(秋)과 관계가 깊은 곳 같다.
예로부터 전국에서 가장 강우량이 많은 곳이 이 고장이라 못 담(潭)자가 지명에 붙었으리라.
*. 환경 1번지 담양과 담양호 담양(潭陽)은 환경부가 인정하는 '환경관리 우수 자치단체'로 전국에서 '환경 1번지 Green City'를 자처하는 곳이다. 그중 담양호는 전국에서도 제일 깨끗한 물을 담고 있는 호수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담양호는 영산강 유역의 농업개발산업을 위해 76년 9월에 완공된 제방으로 길이 316m, 높이 46m, 저수량 6,670만t으로 담양 평야와 장성군 진원면, 남면의 농토를 적셔주는 농업용수원으로 영산강의 시원(始原, 용소)이기도 한 그 주위에 추월산 관광단지와 가마골 생태공원, 금성산성 등이 있어 담양 제1의 관광지가 된다. 그래서 등산은 물론 낚시, 모터보트, 윈드서핑, 수상스포트, 스상스키 등으로 유명한 '담양호국민관광단지'로 담양 제1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 호반에는 생선회집, 매운탕 집 등이 성업 중이니 나그네는 걸음을 멈추어 식도락을 즐길 일이다. 그러나 그 인근 부락은 호수로 수몰 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농토가 적어져서 감나무, 밤나무, 싸리나무가 많고 약초가 많다, 그래서였나 이 고장은 한봉(韓蜂)의 최적지가 되었다. 추월산 산록은 역사적인 격전지(激戰地)로도 유명하다.
-인근에 있는 금성산(603m)에 삼한(三韓) 시절에 축조 되었다는 ''금성산성'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은 삼한 시절의 요새지가 분명하다. 임진왜란 때 추월산은 왜놈과의 치열한 격전지였다. 근래에는 동학혁명 때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하던 곳이며 6.25 사면에는 빨지산의 은거지기도 한 곳이다.
*. 보리암(菩提庵) 전설 드디어 아래에서 올려다 보이던 바위산 능선 길에 들어서서 보니 일망무제로 탁 트인 담양호와 그 넘어 금성산이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14km 떨어진 담양읍 '죽녹원'에서 보던 스님이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형국이라는 추월산 위를 나는 지금 거닐고 있는 것이다. 보리봉에서 한참이나 망설였다.
멀리 보이는 추월산 정상까지 갈까 말까 해서다. 능선길로 1.2km/30분 거리니 1시간이면 오가는 거리지만 내가 밟고 선 보리봉이 추월산 정상보다 너무나 아름다와서 높이로만 따지지 않는다면 이 보리봉이 정상 같아서다.
그 중간 거리를 우리 일행이 가고 있는데 그들을 기를 쓰고 따라가는 것은 폐가 되는 것이어서 그 시간에 500m 아래에 있는 보리암 가에서 점심을 먹으며 느긋한 산행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젊고 건장한 산악회 사람들을 따라 다니다 보면 점심을 생략한 경우가 많아서였다. 발길을 보리암으로 돌리면서 마음에 걸리는 것은 추월산 정상 아래에 있는 약수터를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추월산 정상 바로 아래 샘터(쌍대리약수터)는 아무리 가문 날에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보리암에 행실이 좋지 않은 사승(寺僧)이 있어 이 샘가에서 닭을 잡아먹은 일이 있었다. 그 후 석 달 동안이나 이 샘물이 끊기는 바람에 보리암 스님들은 아랫마을까지 내려가서 힘들게 물을 길어다가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샘이다.
*. 보리암(菩提庵)의 전설 보리암을 빼놓고 추월산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리암은 유명한 암자였지만 듣던 대로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관악산 연주암 같지는 않았고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등산로가 없었다. 등산길에서 아래로 100m 빗겨 있는 백양사 부속 암자였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구경(九境)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어서 수도(修道)에 적당한 곳을 찾아 헤매다가 이곳에 보리암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보리암 창사 설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고려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지리산 무주암(無住庵)에서 있을 때였다. 하루는 나무로 매[鷹]를 만들어 하늘에 날려 보냈더니 날아가다가 추월산 정상 부근에 앉아 불좌복전(佛座復田)으로 점지해 준 곳이 지금의 보리암 자리다.
절 이름의 '보리암(菩提庵)'의 '보리(菩提)'란 영생불멸의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거나, 그러한 지혜로 불과(佛果)에 도달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석가모니께서 득도한 곳이 보리수(菩提樹)로 이는 변함없이 진리를 깨달아 불도(佛道)를 이루었다는 나무가 보리수(菩提樹)다. 보리암의 대웅전 마당이 끝나는 곳의 절벽을 쇠 난간 대신에 대나무로 울타리를 하여 놓은 것이 이색적인데 대웅전 앞에 3층탑보다 탑 옆에 녹슨 쇠솥 하나가 유난스레 눈에 띈다. 거기에 대한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하여 온다. - 순창에 불심(佛心)이 깊은 기생이 있어서 이 보리암에 솥을 시주하고 싶었다. 하여 지름 1.2m 깊이 0.7m의 솥을 만들어 절 아래까지 운반은 하여 왔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도저히 해발 600m 위에 있는 보리암까지 운반할 수가 없었다. 낙심하며 밤새 걱정 걱정하다가 다음날 가보니 신기하게도 보리암에 올라가 있지 않은가. 불력이 빚은 이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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