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소금강 산행 Photo 에세이 |
오대산 소금강(小金剛) 산행 (2006. 7. 6/오대산소금강/진고개-노인봉-낙영폭포-만물상-구룡폭포-무릉계-상가촌/늘푸른산악회 따라http://cafe.daum.net/greenalpine2030)
*. 2시간이나 여유있는 진고개 코스 오 대산 소금강 등산의 정 코스는 주문진 쪽 주차장(표고 210m)에서 청학동을 거쳐서 노인봉(老人峰)을 치올라 진고개(표고 980m)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역으로 진고개에서 시작하여 노인봉(老人峰)까지 3.9km만 고생하면 노인봉서부터 소금강까지 9.6km가 내내 내리막길이어서 치오르는 코스보다 2시간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 표고 차가 670m나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고개를 들머리로 하는 코스는 등산회가 선호하는 코스다. 그러나 한국명승지 제1호라는 오대산 소금강은 관광코스로도 유명하여서, 등산보다 관광을 원하는 사람들은 소금강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구룡폭포(九龍瀑布)와 만물상 일대까지만을 오르내리기도 한다. 등산도 그렇다. 등산이란 애써 땀 흘리고 능선에 올라 하나하나의 봉을 지나 정상에 이르는 것이 정석이다. 지상과 하늘의 중간 매개체인 산을 오르는 것이지 선녀처럼 하늘에서 하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역으로 하다보면 어딘지 모르는 명승지를 먼저 보고 아래쪽에 있는 정표나 그 명승지의 설명으로 확인하게 되는 불편도 있고 소설이나 영화를 거꾸로 보는 듯이 실감이 반감하게 된다. *. 소금강(小金剛) 명칭의 유래 소금강(小金剛)은 옛날부터 청학산(靑鶴山)이라 불러왔다. 황병산(1,407m)을 주봉으로 놓고 보면 좌측에 매봉(1,173m), 우측에 노인봉(1,338m)의 세 산의 모습이 학이 날개를 편 듯하다 하다 하여 청학산(靑鶴山)이라 한 것이다. 청학(靑鶴)이란 이 세상에 없는 학이다. 십장생(十長生)의 '학(鶴)'에다가 젊음과 희망의 상징인 '청(靑)'을 더하여 인간이 만들어 놓은 상상의 새이다. 거기에다가 ‘산(山)’을 붙인 것은 전쟁도 피하여 가고, 재난도 들어서지 못한다는 이상향으로 '청학산(靑鶴山)'이라 한 것이다. '청룡(靑龍)'이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청학산을 소금강이라 부르게 된 것은 율곡 선생의 ‘청학산기(靑鶴山記)’에서 유래된다. -선조2년 (1569년) 외할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강릉에 내려와서 머무는 동안 외가집 근처 청학산이 명승지라는 말을 듣고 지인 5명과 청학동에 들렸을 때였다. 청학산은 율곡이 16세 되던 해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윈 후 인생무상을 느껴 금강산에 입사하여 본 험준한 산세, 기암 괴석과 천인단애에 둘려 싸인 담소가 금강산의 축소판 같았다 해서 소금강(小金剛)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듯한 당시 율곡 선생이 썼다는 '小金剛'이라고 글씨가 금강사 앞 바위에 전하여 온다.
그래서 '청학동 소금강'이라 불러 오다가 소금강이 오대산국립공원에 포함되면서 '오늘날과 같이 오대산소금강'으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게 된 것이다. 이 소금강은 오대산공원의 일부로 공원 전체 면적 303.9㎢의 1/4에 해당된다. 그래서 오대산공원을 월정사 지역과 소금강지역 둘로 나뉜다. 젊어서 아내와 함께 주문진에서 무릉계로 해서 낙영폭포에서 텐트 치고 자면서 노인봉을 넘어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를 다녀왔는데, 그때 본 소금강의 경치에 반하여 한번 다시 가보려고 지금까지 별러만 오던 곳이다.
*. 노인봉 가는 길 등산회는 어디나 건장한 젊은이들의 세상이라서 함께한 우리 산악회 회원 48명 전원이 노인봉을 향하고 있다.감자 꽃이 활짝 핀 감자밭 저 너머 운무(雲霧)가 봉두를 가린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울긋불긋한 옷차림의 우리 늘푸른 산 회원들의 모습이 그림 같이 멋지다. 걱정하던 장마가 빗겨간 사이라서 운무가 일행을 감추었다 나타났다 하며 흘러가고 있다. 물을 머금은 검은 산길은 평평하다가 약간의 오름길일뿐이다. 쉬지않고 불어 주는 시원한 바람이 산행을 도와주고 있었고 햇볕은 무성한 초목의 터널을 만들어 주어 상쾌하기 그지없다. 소금강을 찾는 사람들이 연간 25만 명이라서인가. 이정표는 500m~200m 간격으로 계속 되고 있다. 요즈음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갑자기 무릎이 시큰거려 솟으라쳐 놀라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반바지 차림에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스틱 2개를 비상용으로 배낭에 준비하고 다닌다. 일행과 항상 떨어져 다니기 때문에 배낭에는 호루라기와, 땔랑 땔랑 하는 종을 달고 다닌다. 이 산 능선 길을 가다보니 삽으로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무슨 공사 중인가 보다 하였더니 산돼지의 짓이었다. 이런 심산(深山)에서는 뱀은 물론 짐승들이 두려워 피한다는 '종소리'라서 종을 달고 다닌다. 산사에 뱀이 없는 것은 풍경과 운판과 범종 때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치악산 '까치와 선비'의 전설에서 종소리에 뱀이 물러가는 것을 보면 내 생각이 맞는 것도 같다.
앞서가던 우리 일행 중 한 마음씨 고운 여인이 오이를 먹으라 권한다. 먹기 좋게 껍질까지 정성껏 깎은 오이였다. 너무 고마워서 농을 걸어봤다. "오이보다 더 맛있는 게 무얼까요? '참+외' , 참외지요. 오이 가게 전화는 몇 번이 가장 좋을까요? 5252입니다."
여주, 포항, 부산의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앞서 가기에 물었더니 내 흰머리를 보고 하는 그 대답이 걸작이다. "왜, 노인봉이라 하는 거지요?" "노인도 오를 수 있는 곳이니 노인봉이라 하는 거지요." -'노인봉'을 '노인봉(老人峰)'이라 하는 것은 이 산 정상에 있는 화강암의 봉우리 색깔과 모양이 멀리서 보면 백발의 노인과 같이 보인다 하여 생긴 이름인데, 이를 알면서 능청을 부르는 것일까? 여기서의 노인은 나이만 든 보통 늙은이라기보다, 세상의 갖가지의 시련을 이겨내고 삶의 진리를 터득한 노인이라 한다. '신선'하면 연상되는 사람은 언제나 머리가 하얀 노인이다. 이 노인봉도 산 중에도 그런 중후한 산을 말하는 것이리라. 노인봉을 50여 m 앞둔 지점에 길이 두 갈래가 있다. 여기서는 왼쪽 오름길로 오를 일이다. 다른 길로 오르면 등산객이 싫어하는 오르던 길로 되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은 언제나 시끌시끌 떠드는 소리로 다가온다. 아래서 올려다보니 하얀 화강암 바위산이더니, 가까이 오르니 잘 생긴 정상석이 나를 반기지만 운무는 방금 전 툭 트였던 전망을 하얗게 가려 버려 버리고 말았다. 시원한 대가를 받는 듯했다. 나는 한 마리 청학이 되어 땀 뻘뻘, 숨 헉헉 정상에 올랐더니 노인봉이 하얗게 웃으며 이 칠순 노인에게 말을 걸어온다.
어디서 무얼 하다 백발로 오셨는가 요 아래 산장, 샘터 마련해 놓았으니 쉬다가 청학계곡에 늙는 맘 씻고 가오
그 무서운 질병과 사망을 이겨내고 나의 키 1,338m에 그대 키 보탰으니 8순쯤 다시 만나서 한 번 더 키 재 봅시다 -노인봉이 노인 일만에게 노인봉서 250m 내려오니 노인봉 대피소와 매점이 있고 그 앞에 널찍한 마당이 있지만 평일이라서인가 주인이 없다. 여름 휴가철이 아직 일러서 그런가. 여기서 물을 받아가려고 했는데 150m씩 오르내려야 샘터가 있는 모양이다. 노 인봉서 낙영폭포까지 2km는 가파르고 지루한 돌길의 내리막길이더니 어디서인가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거기에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겹쳐서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일행이 점심을 하고 있는 소리다. 식사 후 나는 제일 선두에서 계곡을 향하여 뛰어 내려갔다. 우리 일행들은 등산이 주 목적인 분들이어서 대충 스쳐갈 곳이지만 나는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카메라에 담으러 온 사람이라서 일행과 속도를 같이 하다가는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였다.
*. 한국명승지 제1호 소금강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요, 냇물은 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소금강은 1,338.4m의 노인봉에서 발원된 물이 주 계곡인 청학천(靑鶴川)이 된다. 여기에 소황병산에서 흘러내리는 사문닫이 계곡과 선녀탕계곡 물에, 매봉의 구룡폭계곡의 물들이 모여서 13km 청학천을 이루어 흐른다. 이 물들이 수많은 세월을 두고 바위를 깎아 낙영폭포, 구룡폭포, 비봉폭을 만들었고, 만물상과 식당암, 연화담과 십자소, 무릉계 등 소(沼)와 담(潭)의 절경을 빚어 한국 계곡의 대표가 되는 소금강계곡이 되어 이렇게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청학동 소금강(靑鶴洞小金剛)은 소금강 매표소에서 400m 지점에 있는 무릉계(武陵溪)를 기준으로 무릉계 상류 10리를 내소금강(-삼선암, 세심폭, 청심폭 ), 하류 10리를 외소금강(-금강문, 취선암, 비봉폭)이라 하여 둘로 나누어 말하기도 하는데 소금강의 경승지는 대개 무릉계로부터 시작되는 위로 40여리의 계곡에 있다. 11번째로 오대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때가 1975년 2월인데, 그보다 5년 전인 1970년 11월에 국가지정 한국명승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소금강이 그렇게 유명하다는 이야기다. 소금강은 위로부터 낙영폭포, 백운대, 만물상, 구룡폭포, 청심대 세심폭포, 십자소, 무릉계로 이어지는 천혜의 명승지가 펼쳐지는데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하였으니 그림부터 보기로 하자.
-삼선암 청심대 식당암 만물상 日月峰 백운대 학유대
*. 소금강과 마의태자 우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왕은 단종(端宗)이요, 세자는 사도세자(思悼世子)와 마의태자(麻衣太子)를 든다. 천년사직 신라를 가벼이 고려에게 넘겨 줄 수 없다고 반대하며 망국의 한을 품고 서라벌을 떠난 마의태자가 금강산에 도착하기 직전에 들린 곳이 소금강이다. 그래서 이 소금강의 몇 군데에 마의태자와 연관된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구룡폭포에서 250m 위에 신라 때 쌓았다는 산성이 아미산성(峨嵋山城)이요, 금강사(金剛寺) 바로 위에 있는 식당암(食堂岩)이 그것이다. -아미산성(峨嵋山城)은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풀고자 쌓았다는 길이 6km쯤 되는 성으로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신라 산성이다. -구룡폭포 맨 위에 9번째로 있는 제9번폭포 상단을 자세히 보면 사람 머리를 놓을 만하게 반원으로 파인 곳이 있다. 이는 마의태자가 아미산성(일명 아야산성)에서 군사 훈련을 시킬 때 군율을 어긴 군졸을 사형시키던 '사형대'라고 한다. -아미산성 부근에는 그 한자의 뜻으로 보아 마의태자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망군대', '왕관대', '천마봉' 등이 있다. -식당암(食堂岩)은 아미산성 바로 아래의 계곡에 있는 넓이가 50평 가량 되는 평평한 너럭바위로 마의태자가 국권회복을 위해서 군사를 훈련시킬 때 군졸 1,000여 명이 밥을 지어 먹었다는 바위다.
*. 소금강과 율곡 이이 -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이 율곡이 명나라에 서장관으로 다녀왔을 때인 1569년 봄에 외할머니 신사임당이 편찮아서 문병을 하러 강릉에 내려갔다. 거기서 근처에 선경(仙境)이 있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해 4월 15일에 2박 3일로 청학과 함께 노니는 신선을 만나러 친지 5명과 산지기를 데리고 지금의 소금강을 찾아 간다. 이때 율곡은 이 골짜기의 숱한 이름들을 지었다. 그 중에는 금강사 앞에 있는 창운담(漲雲潭, 연화담), 비선암(飛仙岩, 食堂岩), 촉운봉(矗雲峰, 老人峰) 등과 같이 오늘날의 지명과 일치여부가 불분명한 곳도 있다. 그러나 학소암, 식당암, 아미산성, 취선암, 청학산 등은 지금 이름과 똑 같다. 그중 외 소내금강의 취선암(醉仙岩)은 율곡이 하산하면서 함께 간 이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노닐다가 이름 붙였다는 곳이다. 그 때 율곡은 황홀한 눈으로 청학골을 굽어보며 '푸른 물은 낙엽도 발 붙일 틈을 주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바위들의 모양도 천만 가지로 변하며, 산그늘 밑에 나무 그림자는 아지랑이와 섞여서 아스라이 햇볕을 가렸다.' 하면서 소금강을 극찬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열 발자국을 걸으면서 아홉 번을 돌아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명산기'김장호 저에서 요약). 소금강(小金剛)이라는 명칭도 율곡 이이가 쓴 '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위에서 밝힌바 있다. 청학동 금강사(金剛寺) 아래 등산길에 이능암(二能岩)이란 바위가 있다. 이 근처에서 모여 노닐던 학자들의 모임인 이능계원(二能契員)들이 스스로를 말하기를 우리들은 '술'과 '글' 두 가지만은 누구보다도 능하다고 한 '이능계(二能契)'란 글자와 그 계원들의 이름을 바위에 암각하여 놓은 글 앞에 율곡이 썼다는 '小金剛'이란 암각 글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소금강 입구 바위에 세워 놓은 표석의 '小金剛'이라는 세 글자는 이 바위의 글을 탁본한 것을 이용하여 음각으로 새겨놓은 것이다.
*.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듯이 낙영폭포에서 흘러내려 오작폭포 광폭포 삼폭포를 지나 널직한 흰색 암반 백운대에 이른다.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듯이 아름다운 절경도 이렇게 모여 사는가. 만물상에 이르러서는 귀면암 일월암 탄금대, 향로암 등 갖가지 모양의 만물상(萬物像)이 시작되다가 구룡폭포에서 그 정정을 이룬다. 만물상서부터 구룡폭포 사이에 있는 소금강 경치의 하이라이트라는 절승인 기암 기석들이었다. 구룡폭포는 10m 높이에서 어젯밤 비에 불은 많은 물이 수직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그 물줄기는 중간 바위에 부닥쳐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나는 듯 구룡연에 떨어지는데 금강산의 구룡연 상8담에 해당하는 폭포로 9폭9담을 이루며 흐른다. 거기서 폭포의 왼쪽으로 구룡폭 계곡을 따라 오르면 제2폭포 제3폭포로 이어지는데 폭포 거기서부터는 자연휴식년제로 통금행을 금지하고 있다. -구룡폭이라는 이름은 구룡호에서 나온 9마리 용이 폭포 하나씩을 차지하였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폭포다. -그 중 제 6폭포는 다른 폭포와 달리 조용하다 하여 '군자폭포(君子瀑布')라는 이름을 갖는다. 맨 끝의 제9폭이 사형대란 위에서 언급한 바가 있다. -일월봉은 봉우리에 구멍이 동그랗게 뻥 뚫려있는데 그 모양이 낮에 보면 해(日)와 같고 밤에 보면 달(月)과 같다 해서 일월봉(日月峰)이라 하는 것이다.
*. 금강사 주변 경치들 식당암 조금 아래 있는 비구니 사찰 금강사(金剛寺)는 식당암, 삼선암, 연화담, 십자소가 코앞에 있건만 첫눈에도 그리 호감이 가는 산사(山寺)가 아니다. 위 한 편에 제법 예스러워 보이는 부도도 있긴 하지만 현란한 단청을 한 대웅전과 금강사란 현판이 걸린 당우에서도 고찰이란 냄새가 전혀 풍기지 않아서였다. 옛날에 이 근처에 있었다는 신라 사찰 관음암(觀音庵)은 어디로 갔는가. 금강사의 절터가 그 관음암의 사지(寺址)였을 것이라는 것은 그 주변의 경승지가 오히려 말하여 주고 있다. 삼선암, 식당암이 그러하였지만 연화담, 십자소가 그랬다. , -연화담(蓮花潭)이란 작은 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의 일렁임이 연꽃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7선녀가 이곳에 내려와서 목욕을 한 후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바위 화장대(일명 明鏡臺)에서 화장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못이다. -십자소(十字沼)는 연화담처럼 나무로 만들어 놓은 시설물 대(臺)가 없이 깊은 골에 길가 나무에 가려 지나치기 십상인 곳에 있는 못이다. 화강암 절벽이 '十자'형으로 깊게 갈라졌는데 동서남북 사방에서 물이 흘러들면서 폭포와 못을 형성하고 있어서 십자소(十字沼)라 불리는 못이다. 주변에 단풍나무, 박달나무, 목련과 소나무 등이 물속을 수놓듯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 곳이다.
*. 청학산장에서 소금강의 등산의 매력은 백담사 계곡 같이, 길 따로 계곡 따로의 산행이 아니다. 계곡을 끼고 오르 내리는 등산길은 청학천과 우리들이 하나가 되는 곳들이다. 장마철이라서인가 사람끼리의 대화를 방해할 정도로 풍부한 수량의 계곡 물소리는 컸고, 찾아가는 명소는 줄줄이 계속되고 있는데 손님의 먹이를 탐해서인가 다람쥐는 사람 곁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청학산장 가는 길은 깊은 계곡의 청학천을 굽어보는 길이더니 멋진 청학산장(靑鶴山莊)은 막 닥쳐올 휴가철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굳게 닫쳐있다. 오늘 하루를 뒤돌아 보니 후외 없는 하루, 다시 살아 보곺은 하루였다. 아, 한국 산하여, 언제까지 나의 행복은 계속될 것인가. 나의 의지와 다른 무릎 때문에 하는 나의 이야기다. 그때까지 나는 잠그지 않은 산장이 되고 싶다. [참고 사항]소금강분소→0.7km무릉계→0.4km/10분청학산장→0.5km/10분십자소→0.3km/10분연화담→0.2km/5분금강사→0.1km./5분식당암→0.5km/10분삼선암→0.5km/10분구룡폭→1.1km/40분만물상→0.6km/20분백운대→2.9km/1:50분낙영폭포→2km/1:20분노인봉대피소→0.3km/10분노인봉→3.9km/1:40분진고개 -:국립공원 관리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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